이스타항공 매각 무산으로 지난해부터 추진되던 저비용항공사 재편작업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정부가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입증하는 저비용항공사에게만 지원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앞으로 시장이 주도하는 '적자생존' 구도로 저비용항공사들의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저비용항공사 각자 살 길 찾아 발버둥, 인수합병 통한 재편 물 건너 가

▲ 저비용항공사 항공기 모음. <각 항공사 사진 취합>


27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의 인수 포기 이후 새로운 인수자를 찾거나 자금지원을 해줄 우군을 확보하려 하는 등 ‘플랜B’를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정부는 이스타항공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지원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스타항공으로선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사실상 파산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큰 만큼 그 전에 활로를 찾으려는 것이다. 

이스타항공은 현재 신규 투자유치 및 제3의 인수후보자를 찾는 노력과 동시에 전북도 등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등을 이끌어내는 방안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국토교통부가 이스타항공 지원에 일단 한발 물러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만큼 이스타항공의 이런 계획이 진척을 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상도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은 23일 브리핑에서 “이스타항공에서 플랜B를 제시하면 정부의 도움이 필요할 때 돕는 순서로 진행하겠다”며 “플랜B는 이스타항공이 발표해야할 부분이라 구체적 내용을 말씀드리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이스타항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정부는 항공업이 기간산업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저비용항공사를 향한 지원에 까다로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기간산업안정기금 운용심의위원회가 기금 지원대상에서 저비용항공사를 제외한 뒤 저비용항공사를 대상으로 한 자금지원방안은 아직까지 별다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저비용항공사들은 국회를 찾아 고용유지 지원금의 지원기한 연장을 요청하는 등 정부 차원의 지원을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지만 이 역시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정부가 ‘고용안정’을 최대 정책 목표로 두고 있는 만큼 당장 고용유지 지원금의 지원기한 연장을 얻어낼 수는 있겠지만 항공업황 회복이 요원한 만큼 ‘언 발에 오줌누기’식의 단기 처방에 그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데는 코로나19로 업황이 악화된 것과 별개로 국내 저비용항공사들의 숫자가 지나치게 많아진 만큼 자생력이 없는 저비용항공사를 모두 지원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2004년 티웨이항공을 시작으로 국내에 등장한 저비용항공사는 사업 초기 틈새시장을 공략하며 자리를 잡았지만 2005년 제주항공, 2007년 이스타항공, 2008년 진에어 및 에어부산 등 빠르게 늘어나면서 출혈경쟁이 본격화됐다.

현재 국내 항공사는 대형항공사(FSC) 2곳과 저비용항공사(LCC) 7곳이 영업을 하고 있다. 허가절차 밟고 영업을 준비하고 있는 저비용항공사는 2곳이다. 

한국보다 땅이 훨씬 큰 미국과 중국에서도 저비용항공사가 각각 9곳, 6곳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포화상태인 셈이다. 

저비용항공사들은 출혈경쟁을 벌이느라 재무부담이 악화한 데 더해 일본과 무역분쟁, 코로나19 등을 잇달아 겪으며 기초체력이  급격히 흔들린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해외사례처럼 인수합병 등으로 덩치가 커진 ‘메가 저비용항공사’를 등장시키고 이런 과정에서 저비용항공사가 점차 정리되는 ‘연착륙’을 꾀하려 했지만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제주항공이 발을 빼면서 국내 저비용항공사 가운데 인수합병을 진행할 여력을 갖춘 곳은 없는 데다 당분간 중장기적으로도 저비용항공업에 진출할 인수후보군을 찾기도 쉽지 않다. 

저비용항공사의 과당경쟁으로 촉발된 근본적 문제가 코로나19로 더욱 앞당겨지면서 이스타항공을 비롯한 저비용항공사들이 중장기적으로 구조조정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이유다.

이에 따라 앞으로 재무구조가 취약한 저비용항공사는 퇴출되는 등 시장에서 자체적으로 통폐합이 진행될 가능성이 큰 만큼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에어부산, 플라이강원 등은 각각 유상증자 또는 전환사채 발행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자금 수혈 창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10년 여에 걸쳐 진통을 겪었던 정부 주도의 조선업 구조조정 과정을 경험한 산업은행 등은 저비용항공사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철저히 자구안 마련을 먼저 요구하고 있다”며 “자생력을 입증하는 저비용항공사가 나타나는 것을 기다리겠다는 태도를 명확히하고 있는 만큼 저비용항공사들이 각자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