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사업에 관해 미국과 중국 갈등에 따른 새로운 변수들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오고 있다.   

미국 정부는 대만 TSMC와 삼성전자 등 미국 기술과 장비를 사용하는 반도체기업들이 중국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할 때 미국정부로부터 허가를 받도록 하는 방안을 최근 내놨다.
 
미국 중국 반도체 견제 강화, 삼성전자 미국 의식해 현지 투자 키우나

▲ 정은승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


18일 증권가와 외국언론 분석을 종합하면 중국 파운드리기업 SMIC가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업으로부터 TSMC를 대체할 업체로 대두되고 있다.

TSMC의 기존 점유율을 상당 부분 차지해 삼성전자의 새 경쟁자로 부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TSMC는 미국 생산시설을 확대해 애플, 퀄컴, AMD 등 기존 미국 고객사들과 연대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가 TSMC를 상대로 미국 기업들의 차세대 반도체를 수주하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되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TSMC가 미국공장 증설을 결정함에 따라 화웨이의 SMIC 의존도가 본격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TSMC가 미국 공장 증설을 계기로 미국 상무부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더욱 많은 간섭을 받게 된다면 화웨이와 TSMC의 관계가 훼손되면서 화웨이에서 SMIC의 점유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바라봤다.

이는 SMIC가 예상보다 빠르게 주요 파운드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TSMC는 파운드리시장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한 채 굴지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점유율에서 화웨이가 기여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IT매체 폰아레나에 따르면 TSMC 매출 가운데 화웨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8%에서 2019년 14%로 확대됐다.

앞으로는 이처럼 막대한 매출 일부가 TSMC가 아닌 SMIC로 향할 공산이 크다. 화웨이는 미국 정부의 제재로 TSMC로부터 반도체를 받기 힘들게 되는 만큼 상대적으로 미국 기술에 덜 의존하는 파운드리기업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SMIC는 최근 화웨이로부터 14나노급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기린710A’를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IT매체 기즈모차이나는 기린710A가 100% 중국 기술로 설계되고 생산된 제품이라고 전했다.

SMIC가 이렇게 화웨이를 기반으로 실적을 키우면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2인자의 위치를 위협받을 수도 있다. 

SMIC는 1분기 기준 파운드리시장 점유율 4.5%로 아직 삼성전자(15.9%)와 비교해 덩치가 크지 않다. 하지만 미국 글로벌파운드리, 대만 UMC 등 3~4위권 업체들과 달리 7나노급 이하 미세공정을 개발하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7나노급 공정을 제공하는 삼성전자와 TSMC를 따라잡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셈이다.

물론 업계에서는 SMIC가 이른 시일 안에 삼성전자와 TSMC의 기술 수준에 도달하기는 어렵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SMIC 등 반도체기업에 정부 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고 SMIC 내부적으로 기술 개발이 활발한 점을 고려하면 SMIC가 단기간에 큰 폭의 공정 향상을 달성할 수도 있다.

IT매체 아난드테크 등에 따르면 SMIC는 최근 극자외선 장비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14나노급 공정보다 반도체 성능을 높인 ‘N+1’ 공정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처럼 SMIC의 성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파운드리 톱기업인 TSMC도 삼성전자에 위협이 되는 한 수를 뒀다.

15일 TSMC는 2024년까지 12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에 5나노급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TSMC가 미국에 직경 200mm 웨이퍼가 아닌 300mm 웨이퍼용 공장을 건설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TSMC는 트럼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고 미국 고객사들로부터 더 많은 반도체를 수주하기 위해 이번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파악된다. 또 대규모 투자를 통해 미국 정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화웨이와 거래를 계속 미국 정부로부터 허락받으려는 계산이 깔렸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TSMC는 애플, 퀄컴, AMD, 엔비디아 등 미국업체에 60% 이상의 매출을 의존하고 있다”며 “TSMC의 이번 미국 공장 건설은 최대 고객이 위치한 국가에서 정치적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미국 중국 반도체 견제 강화, 삼성전자 미국 의식해 현지 투자 키우나

▲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사업장. <삼성전자>


이미 미국 기업을 상대로 5나노급 반도체를 선점한 TSMC가 이처럼 미국시장 공략에 힘을 기울이면 삼성전자로서는 앞으로 최신 제품을 수주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대만 공상시보는 TSMC가 인텔과 애플, 퀄컴 등 미국기업으로부터 2022년까지 생산할 5나노급 반도체를 주문받았다고 전했다.

이처럼 파운드리업계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대규모 투자를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파운드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TSMC를 추격하고 SMIC를 뿌리치기 위해서는 이 규모를 더욱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김경민 연구원은 "TSMC의 의사 결정에서 알 수 있듯 미국 정부는 기술집약도가 높은 전공정 라인의 리쇼어링(해외기업 복귀)을 원한다"며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와 격차를 좁히고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고객사와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오스틴 증설을 추진해야 한다”고 바라봤다.

도현우 연구원은 “이번 투자로 미국 고객과 더 밀접한 관계가 가능해진 TSMC의 견제를 위해서도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오스틴 공장 투자계획이 내부적으로 검토되는지를 묻는 말에 "투자와 관련한 사항은 확정되기까지 공개할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