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4사가 1분기 전례 없는 규모의 적자를 봤다.

정유4사는 2분기에 재고 관련 손실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정유제품 수익성이 회복되지 않고 있어 경영환경이 여전히 녹록치 않다.  
 
정유4사 1분기 적자 4조4천억, 2분기 재고손실 줄어도 수익 시름 깊어

▲ (왼쪽부터)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총괄사장, 허세홍 GS칼텍스 대표이사 사장, 후세인 알 카타니 에쓰오일 CEO, 강달호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사장.


12일 정유4사의 2020년 1분기 잠정실적을 분석해보면 기존에 최악의 실적을 거뒀던 2014년 4분기와 비교도 안 될 만큼 힘든 분기를 보냈다.

정유4사는 2014년 4분기 합산 적자 1조1327억 원을 냈다. 그런데 올해 1분기의 적자 합산치는 4조3775억 원으로 당시의 4배 수준이다.

SK이노베이션이 1분기 영업손실 1조7752억 원을 내 2014년 4분기의 정유4사 적자를 단독으로 넘어설 정도였다.

다만 1분기 정유4사 적자의 주요 원인이었던 원유 재고의 평가손실은 2분기에는 상당 부분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4월 배럴당 20달러선을 위협받다가 5월 들어 배럴당 25달러 수준까지 가격을 회복했다.

국제유가가 아직 3월 평균가격인 30.8달러보다 낮은 만큼 2분기 재고 평가손실이 추가로 발생할 수는 있으나 규모는 1분기보다 작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유가는 석유수출국기구와 주요 산유국들의 모임(OPEC+)이 5월부터 원유 생산량을 하루 970만 배럴 줄이는 감산을 시행하면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앞서 11일 로이터 등 외신은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가 6월부터 원유 감산 합의에 따른 감산량보다도 생산량을 하루 100만 배럴 더 줄이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감안하면 국제유가가 재차 급락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러나 정유사들은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정유제품의 수익성 문제는 오히려 2분기 들어 더욱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2분기 재고 평가손실이 다소 사라진다고 해도 실적은 적자폭을 줄이는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정제마진이 손익분기점 수준으로 회복돼야 흑자전환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재로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정유사들의 정제마진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4달러 수준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지난 주(4일~8일) 정제마진은 배럴당 –3.3달러까지 떨어졌다.

이는 2019년과 2020년을 통틀어 주간 최저치다.

이는 글로벌시장, 특히 아시아권 시장에서 중국의 티팟(Teapot, 정제능력 10만 배럴 안팎의 소규모 정제처리설비)들이 정유제품 수출을 늘리며 공급과잉을 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4일~8일) 중국 티팟들의 평균 가동률은 75.1%로 집계됐다. 역사상 최대치다.

중국 티팟들의 정제능력 합산치는 일 400만 배럴 수준으로 국내 정유4사의 합산 정제능력인 일 311만5천 배럴을 웃돈다. 시장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규모다.

중국 정부는 정유제품시장의 내수를 활성화하기 위해 배럴당 40달러의 국제유가를 기준으로 내수용 정유제품의 소매가격 하한선을 정하고 있다.

실제 국제유가가 20~25달러를 오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 티팟들이 빠른 시일 안에 가동률을 낮출 가능성은 적다. 이는 스스로 이익을 줄이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정유4사는 6월이 되면 사업 수익성이 더 악화할 수도 있다.

이에 앞서 7일 아람코가 아랍산 경질유(아랍라이트)의 아시아 공시가격(OSP)을 5월 배럴당 –7.3달러에서 6월 –5.9달러로 1.4달러 높였기 때문이다.

아람코는 오만산 원유와 두바이산 원유의 평균가격을 기준으로 공시가격을 정한다. 아랍산 경질유의 5월 공시가격인 –7.3달러는 오만산 원유와 두바이산 원유의 평균가격에서 7.3달러를 뺀 것이 아랍산 경질유 가격이라는 뜻이다.

아랍산 경질유는 원유의 불순물 함량이 적어 최고급 원유로 꼽힌다. 정유4사가 주력으로 도입하는 원유이기도 하다.

아람코가 4월 아랍산 경질유의 아시아 공시가격을 –3.1달러로 책정했을 때 이미 업계에서는 ‘파격적 가격 인하’라는 말이 나왔다. 이를 감안하면 아랍산 경질유의 가격은 여전히 싸다.

그러나 수익성 악화에 신음하는 정유4사로서는 저가 원유 투입효과가 공시가격 인상분만큼 줄어든다는 점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도 아람코의 이번 공시가격 조정을 정유사들의 실적 개선 기대치를 낮추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