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로나19 사태로 위기에 빠진 항공업 등 기간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채비를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지만 저비용항공사(LCC)를 놓고서는 부처 사이의 시각 차이가 커 실제 지원이 이뤄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포화상태인 국내 저비용항공업계의 구조조정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기존에 이뤄졌던 항공업 인수합병도 정부 지원방안을 바라보며 지지부진하다.
 
저비용항공사에 정부지원 장담 못 해, 인수합병 동력도 없어 생존위기

▲ 29일 서울 한국공항공사에서 열린 항공업계 사장단 간담회 모습. <연합뉴스>


30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에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설치하는 내용을 담은 ‘한국산업은행법 일부개정 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정부의 항공업 지원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산업은행이 40조 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운용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돼 금융위와 산업은행은 빠르면 5월부터 기금을 운용하기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22일 ‘항공사 지원 관련 온라인 간담회’에서 “40조 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이 국회에서 관련 법이 통과되는 대로 신속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내부 조직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기간산업안정기금을 본격적으로 운용하기 전에 이미 저비용항공사에 3천억 원을 지원하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각각 1조2천억 원, 1조7천억 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을 결정했다.

그만큼 코로나19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직격으로 맞은 항공업에 추가 유동성을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고 항공업계는 보고 있다.

다만 저비용항공사를 대상으로 한 추가 지원을 놓고 국토교통부와 산업은행 등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다는 점이 추가 지원 집행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23일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저비용항공사에 추가 유동성 지원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다음날 최대현 산업은행 기업금융부문 부행장은 “저비용항공사(LCC) 추가 지원은 현재로서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를 놓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항공사에게만 조 단위의 유동성을 지원하냐’는 저비용항공사들의 불만이 커지자 국토부가 항공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 기간산업안정기금으로 저비용항공사를 추가 지원하겠다며 달래기도 했다.

국토부는 저비용항공사를 대상으로 한 추가지원 여부 및 방법, 규모를 놓고 다른 부처들과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부처 사이의 시각차가 이어지면서 저비용항공사들의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산업은행이 사실상 국내 저비용항공업계가 포화상태인 것으로 판단하고 모든 저비용항공사를 살리기 위한 지원을 진행하기보다는 시장에서 스스로 알아서 구조조정이 이뤄져 살아남는 기업만 지원하려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항공업뿐 아니라 자동차업과 중공업 등 굵직한 주요 기간산업들도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저비용항공사가 정부의 지원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이다.

산업은행으로선 한정된 재원을 가지고 다양한 업종, 기업을 지원해야하는 상황에서 자구안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허약해진 저비용항공사들을 일괄적으로 지원하기에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한국산업은행법 일부개정 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에 원래는 항공운송업, 자동차용 엔진 및 자동차 제조업, 해상운송업, 전기통신업 등 7대 업종이 명시됐었지만 국회에서 통과된 수정안에는 ‘국민경제, 고용안정 및 국가안보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업종에 속하는 기업’으로 바뀌기도 했다.

정부의 항공업 지원을 앞두고 항공업종 내 인수합병도 난기류를 마주하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과 제주항공은 각각 아시아나항공과 이스타항공을 4월에 인수작업을 모두 마무리하기로 했지만 나란히 ‘선행조건 미비’ 등을 이유로 인수일정을 뒤로 미뤘다.

표면적 이유는 해외에서 기업결합심사 승인이 모두 나지 않았다는 것이지만 속내는 정부가 아시아나항공과 이스타항공에 추가로 어떤 지원을 해주는지를 지켜보려는 게 아니냐는 시선이 나온다.

코로나19로 업황이 크게 악화되면서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만큼 인수작업에 선뜻 속도를 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기간산업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대주주의 자구노력을 내세우고 있는 만큼 굳이 정부의 추가 지원방안이 나오기 전에 인수를 마무리해 대주주로서 책임 부담을 지지 않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분석도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