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야심차게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 목표를 발표한 지 1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 성과는 크지 않다. 특히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는 좀처럼 경쟁사인 대만 TSMC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대책이 절실하다.
 
삼성전자 반도체 위탁생산 제자리, 대만 TSMC 따라잡을 대책 절실

▲ 정은승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


23일 반도체업계 분석을 종합하면 삼성전자는 2019년 4월24일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한 뒤로 파운드리사업을 크게 확대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시장 조사기관 트렌드포스가 추산한 2020년 1분기 기준 파운드리시장 점유율을 보면 삼성전자는 15.9%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2019년 1분기 점유율 19.1%에서 오히려 내려갔다.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한 반도체를 뺀 점유율은 더욱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이 상대적으로 위축된 원인은 고객사 유치의 부진이다.

TSMC는 애플, AMD, 퀄컴, 하이실리콘, 미디어텍 등 여러 글로벌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를 고객으로 두고 있다. 최근에는 7나노급, 5나노급 공정 등 발달된 미세공정의 올해 생산량이 이미 전부 예약됐다는 말이 나온다.

삼성전자도 퀄컴과 엔비디아, 중국 바이두 등으로부터 최신 반도체를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줄어든 점유율을 고려하면 확보한 일감의 규모가 TSMC에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주춤하는 사이 TSMC는 세계 1위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0년 1분기 TSMC 점유율은 54.1%로 2019년 1분기보다 6%포인트나 늘어났다. 사실상 세계 시스템반도체 절반 이상을 TSMC가 생산하게 된 셈이다. 

실적도 순조롭게 개선되고 있다. TSMC는 2020년 1분기 매출 3105억9700만 대만달러(12조6600억 원가량), 영업이익 1169억8700만 대만달러(4조7700억 원가량)를 거뒀다. 2019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은 42%, 영업이익은 90.6% 늘었다. 

반면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사업부와 LSI사업부를 포함한 비메모리사업부의 2019년 전체 영업이익이 1조 원 수준에 그쳤던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미세공정을 고도화해 이런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더 성능 좋은 반도체를 만드는 기술로 고객사를 끌어오겠다는 각오다. 

그러나 TSMC도 삼성전자와 비슷한 수준의 공정을 제공하고 있어 기술 차별화가 쉽지 않다. 

두 기업은 올해 5나노급 반도체 양산을 앞두고 있으며 빠르면 2021년 3나노급 공정 양산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또 TSMC가 미세공정을 확대하기 위한 투자 규모에서 우위에 있는 만큼 삼성전자보다 첨단 공정을 더 빠르게 도입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최영산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TSMC의 2020년 설비투자(CAPEX) 규모는 14억~15억 달러 수준”이라며 “올해 삼성전자 비메모리반도체 설비 투자의 2배 이상”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위탁생산 가격을 놓고는 삼성전자가 TSMC를 이기기는 어렵다. 

파운드리사업부를 포함한 삼성전자 비메모리사업부의 영업이익률은 2019년 기준 8~10% 수준으로 추산됐다. 반면 TSMC는 35%에 이르는 영업이익률을 보였다. 가격 경쟁이 벌어지면 TSMC가 삼성전자보다 더 큰 폭의 가격 인하를 감행할 수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면서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당초 5월부터 세계 각국에서 ‘파운드리포럼 2020’ 행사를 열기로 했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무기한 연기했다. 고객사와 기술적 성과를 공유해 새 고객을 유치할 기회를 뒤로 미룬 셈이다. 

또 대만 디지타임스는 삼성전자의 3나노급 공정 양산계획이 코로나19로 장비 공급에 차질이 생겨 지연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물론 TSMC도 기술 공개행사가 취소되고 공정 지연 가능성이 들려오는 등 삼성전자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후발주자로서 TSMC를 추격하는 위치에 있다는 점을 놓고 보면 코로나19에 따른 타격은 삼성전자가 더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가 무조건 TSMC에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최근 중국과 미국 갈등으로 삼성전자에 이로운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일정 이상의 미국 기술 및 장비를 사용하는 반도체기업들이 중국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할 때 미국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게 하는 상황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화웨이가 TSMC에서 반도체를 위탁생산하지 못하도록 막는 조치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화웨이는 삼성전자 등 다른 기업으로부터 반도체를 공급받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화웨이는 TSMC 매출에서 1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가 이 물량을 확보하게 되면 TSMC와 격차를 상당히 좁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이런 환경은 향후 국제관계 변화에 따라 다시 바뀔 여지가 충분한 만큼 삼성전자가 TSMC를 따라잡을 확실한 계기가 마련됐다고는 볼 수 없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에 ‘비책’이 필요한 이유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