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강병중 넥센타이어 회장
강병중 넥센타이어 회장.


강병중은 1939년 7월 경상남도 마산시 성호동에서 태어났다. 본가는 길성리다.

진산초등학교와 마산동중학교, 마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집안이 부농이었으나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었고 농지개혁으로 가세가 기울어 고교시절과 대학시절 학비를 스스로 벌면서 배웠다.

동아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는데, 졸업하는 그해 결혼했고 중고 화물차 수입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 뒤 운수회사를 만들어 키워나갔다.

부산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학했다.

5년 뒤 운수회사를 그만두고 1100평 쯤 되는 흥아타이어 재생공장을 사들여 흥아타이어공업을 설립했다.

강병중은 최연소로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았다. 동남은행, 경남생명보험 등 금융사를 설립했으나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지분가치가 폭락해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그는 우성타이어를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사세를 키웠다.

사명을 넥센타이어로 바꾼 뒤 5천억 원을 투입해 부산에 넥센타이어의 창녕 공장을 지었다. 당시 창녕군수가 창녕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강 회장을 적극적으로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산의 본사 공장과 중국 공장에 이어 세 번째 생산기지를 마련한 것이다.

그는 2014년 회사의 매출을 1조7588억 원으로 끌어올렸다.

강병중은 넥센타이어를 2018년까지 글로벌 톱 10 안에 들어가게 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

외아들인 강호찬 넥센타이어 사장이 그룹의 지주사인 넥센의 지분 50.51%를 확보해 사실상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40년 넘게 ‘타이어 외길’을 걸어온 타이어 전문가다. 뚝심이 세다.

해외시장에서 ‘타이어 강’으로 불린다. 해외 전시회에 참여해 많은 질문을 하는 것에 외국인들이 강한 인상을 받으면서 붙여준 것으로 보인다.

서두르지 않는 경영스타일을 지녔다. 결단을 내릴 때 내리되, 무리수는 두지 않는다. 좌우명은 ‘천고마비’다. 천천히, 고개들지 않고 마음을 비운다는 뜻이다.

투자를 과감하게 하고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한다.

결정은 신중하게 하는데 일단 결정하면 강하게 밀어붙인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72년 부산시 중고육상경기연맹 회장을 역임했고 1975년 학교법인 옥광학원 이반성중학교 이사장을 맡았다.

1977년 10월 흥아타이어공업의 대표가 됐다. 1988년 부산상공회의소 제13대, 14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1988년 한국자유총연맹 부산시 지회장, 1992년 부산지방국세청 민관세정협의회 회장, 1993년 부산무역협회 설립추진위원회 회장 등을 거쳤다.

1994년부터 부산상공회의소 제15, 16, 17대 회장을 계속 이어서 맡았다.

1999년6월 넥센타이어 대표이사 회장이 됐다.

2002년 KNN문화재단 이사장과 회장직에 올라 지금까지 일을 맡고 있다.

2012년 진주·부산발전협의회 회장으로 선임됐다.

◆ 학력

1952년3월 진산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55년 마산동중학교를 졸업했다.

1958년 마산고등학교를 나왔다.

1966년9월 동아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71년3월 부산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을 수학했다.

◆ 가족관계

부인 김양자씨와 사이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장남은 강호찬 넥센타이어 사장이다.

◆ 상훈

1980년12월 제17회 수출의 날 대통령상을 받았다.

1986년3월 조세의 날 대통령상을 받았다.

1988년12월 88올림픽 참여장 체육부 장관상을 받았다.

1992년4월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다.

1992년6월 무역진흥 대상을 받았다.

1994년3월 조세의 날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2000년7월 신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2007년11월 수출 4억불탑을 받았다.

◆ 상훈

1980년12월 제17회 수출의 날 대통령상을 받았다.

1986년3월 조세의 날 대통령상을 받았다.

1988년12월 88올림픽 참여장 체육부 장관상을 받았다.

1992년4월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다.

1992년6월 무역진흥 대상을 받았다.

1994년3월 조세의 날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2000년7월 신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2007년11월 수출 4억불탑을 받았다.

어록


“운수업을 하면서 비중이 큰 소모품인 타이어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자동차와 함께 타이어사업의 성장성을 확신했다.” (2015)

“인생은 골프와 같이 너무 서둘러서도 안 되고 잘났다고 으스대서도 안 된다.” (2012)

“무슨 일이 있으면 밤에 잠도 자지 않고 심사숙고를 한다. 머리맡에 메모지를 두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메모를 한다. 또 하나의 개인적 특징이 있다면 친인척을 회사에 두지 않는다. 넥센은 물론 계열사에도 관리직 중에 친인척은 한 명도 없다.”(2013/04/29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에서)

"기업의 성패는 투자에 달렸다. 체코에 투자해 공장을 새로 짓기로 한 결정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10년 뒤 시장을 내다보고 내린 것이다.“ (2014/06/26 체코 자테츠지역에 타이어공장을 짓기로 계약서를 쓴 뒤)

“지난해 불확실한 경기상황에서도 꾸준히 투자해 우수인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교육 등으로 고용의 질을 높이고 일자리 창출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다.” (2015/03/25 청와대에서 ‘고용창출 우수기업’행사에서 100대 우수기업에 선정돼 인증패를 받으면서)

“창녕공장 건립 계획을 발표한 2009년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경제상황도 안 좋은데 국내에 공장을 건립하겠다고 하자 반대가 심했다. 땅값도 비싸고 인건비 부담도 큰데 왜 외국에 나가지 않고 한국에 그 많은 투자를 해서 큰 공장을 짓느냐고 의아해 했다. 투자규모가 당시 매출액보다 큰 1조 원이 넘었기 때문에 노조와 임직원의 우려의 목소리가 매우 컸다.” (2015/0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창녕공장 건립에 반대여론이 많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해)

“넥센타이어는 1999년 사명을 변경하기 전까지 여러 차례 회사의 주인이 바뀌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직원들 마음속에 ‘안정된 회사가 있어야 우리가 있다’는 정서가 형성된 듯하다. 노사의 상생이 없으면 회사도, 직원도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거다. 회사는 직원과의 소통을 늘려갔다. 경영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큰 현안에 대해서 노조와 합의과정을 꼭 거쳤다. 직원복지에 대한 꾸준한 투자도 노사 간 신뢰의 바탕이 됐다.” (2015/0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23년 연속 노사 무분규 달성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대해)

◆ 평가

40년 넘게 ‘타이어 외길’을 걸어온 타이어 전문가다. 뚝심이 세다.

해외시장에서 ‘타이어 강’으로 불린다. 해외 전시회에 참여해 많은 질문을 하는 것에 외국인들이 강한 인상을 받으면서 붙여준 것으로 보인다.

서두르지 않는 경영스타일을 지녔다. 결단을 내릴 때 내리되, 무리수는 두지 않는다. 좌우명은 ‘천고마비’다. 천천히, 고개들지 않고 마음을 비운다는 뜻이다.

투자를 과감하게 하고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한다.

결정은 신중하게 하는데 일단 결정하면 강하게 밀어붙인다.

◆ 기타

‘부울경은 하나다’라는 책을 냈다.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는데 키가 작아 떨어졌다.

방송인 강호동 씨와 5촌 지간이다. 명절 때마다 강 회장과 만나 함께 성묘하러 간다.

호는 월석(月夕)이다.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창녕공장에 국내에 제 2공장을 설립하게 된 데는 김충식 창녕군수의 적극적 유치노력이 영향을 미쳤다.

2009년 6월 김 군수는 강 회장과 점심약속을 잡았으나 강 회장이 다른 급한 업무로 불가피하게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넥센은 김 군수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김 군수가 끝까지 기다리겠다고 해 강 회장과 저녁 무렵이 다 돼서야 만났다.

김 군수와 공무원들이 늦은 저녁까지 그대로 강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고 강 회장에게 창녕의 입지 우수성과 파격적 지원 등을 자세히 소개했다.

김 군수의 정성 어린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고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해 창녕으로 공장입지를 정했다.

하지만 대합지역 주민들이 '타이어공장'이 들어선다는 말이 나오자 '공해업체'라고 극렬히 반대하고 일부 광역단체까지 반대하자 김 군수는 주민들과 지역단체회원을 공장에 견학시키며 이런 인식을 바꾸는데 노력했다.

이렇게 해서 지금의 창녕 넥센타이어 공장이 설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