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전 이게 위조나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년에 이 대학 꼭 갈 거거든요.”

영화 ‘기생충’에서 재수생 기우는 고액 과외 자리를 소개받고 연세대학교 재학증명서를 위조한다.
 
정의당 비례 1번 류호정 '대리게임' 해명에서 영화 '기생충'이 떠오른다

▲ 정의당 류호정 비례대표 후보.


나중에 실력을 갖춰서 연세대에 입학을 할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아버지 기택은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는 명대사로 기우를 격려한다.

기생충의 데자뷰처럼 게임판에서도 이런 논리가 간혹 보인다.

라이엇게임즈의 PC온라인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는 이용자들의 실력에 따라 등급(티어)을 분류한다.

일부 이용자들은 등급을 올리고 싶은 욕심에 다른 사람에게 계정을 임시로 넘기고 등급을 올려달라고 의뢰한다. ‘대리게임’으로 불리는 행위다.

팀 경쟁으로 이뤄지는 게임에서 상대 팀에 원래 등급보다 실력이 높은 이용자(피의뢰인)가 있으면 허무하게 질 가능성이 높다. 남이 등급을 올려준 계정으로 게임을 하는 이용자는 팀원들보다 실력이 떨어져 팀에 폐를 끼친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게임을 즐기려는 게임이용자들이 대리게임을 게임 생태계를 교란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비판하는 이유다. 

대리게임을 해준 사람은 처벌을 받는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2019년 6월부터 ‘의뢰인의 계정을 제공받아 대신 게임을 진행해 점수·성과 등을 올려주는 행위’ 등은 수사의뢰 대상이 되며 적발 때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이용자는 이후 피나는 노력으로 다른 사람이 올려놓은 등급에 실력을 맞췄다며 잘못을 가리려 한다. 기우가 나중에 연세대에 입학할 것이라며 학력 위조를 합리화하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류호정 국회의원 후보의 이야기다. 류 후보는 정의당에서 비례대표 1번을 받았다. 

15일 열리는 총선에서 정의당이 정당득표율 3%만 넘기면 류 후보는 국회의원 배지를 단다.

류 후보는 2014년 당시 남자친구에게 리그 오브 레전드 계정을 빌려줬다. 남자친구가 게임을 한 뒤 류 후보 계정의 등급은 크게 뛰었다. 

류 후보는 대리게임 자체를 놓고는 거듭 사과를 했다.

그는 3월 “2014년에 조심성 없이 주변 지인들과 계정을 공유했다”며 “문제가 돼 사과문을 올리고 동아리 회장에서 물러났다”고 말했다. 류 후보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게임 동아리를 만들어 회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당시에 쓴 반성문을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시 꺼내 읽었다”며 “부주의하고 경솔한 태도를 철저히 반성하고 실망한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류 후보가 충분히 반성을 했다면 6년이 지난 일로 발목을 붙잡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류 후보는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등급에 걸맞는 실력을 이후에 갖췄다고 해명을 더했다.

최근 한 게임 전문지 인터뷰에서 류 후보는 “부계정을 만들어 본계정과 비슷한 등급을 달성했다”며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처럼 출퇴근 때 핸드폰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 방송을 공부하듯 보고 게임을 1천 판 정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게임 이용자이자 유권자들은 류 후보의 변명을 곱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 누리꾼은 “‘대리수능’으로 서울대에 입학한 뒤 열심히 공부해서 모의고사 1등급을 받는다고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동섭 미래통합당 의원도 최근 류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대리게임을 ‘한낱 게임문제’로 치부해서는 안된다”며 “대리게임은 첫째, 게임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둘째, 애꿎은 일반 이용자들에게 박탈감을 주며 셋째, 신규 이용자들의 유입을 막아 게임 생태계를 파괴하고 넷째 게임회사에 손해를 끼친다”고 말했다.

류 후보가 당선한다면 화려한 수식어를 여럿 얻는다.

1992년에 태어나 최연소 당선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이어 두 번째 게임업계 출신 국회의원이 되며 아프리카TV에서 개인 인터넷방송인(BJ)으로 활동한 경험도 이색적이다. 류 후보는 과거 스마일게이트메가포트에서 일했다 권고사직으로 퇴사해 해고 노동자와 여성이란 점을 선거활동에 적극 내세우기도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재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