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중국 화웨이를 따돌리고 스마트폰 선두지위를 공고히 할 기회를 얻게 됐다.

미국 정부가 화웨이에 관한 제재를 강화하면서 화웨이의 스마트폰용 반도체 수급에 ‘빨간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미국 화웨이 반도체 확보 차단 추진, 삼성전자 스마트폰 반사이익 보나

▲ 노태문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 사장.


27일 영국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정부의 고위 관리들은 미국에서 만들어진 반도체 장비를 사용하는 외국기업이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기 전에 미국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게 하는 조치에 합의했다.

이는 사실상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대만 TSMC를 겨냥한 조치로 여겨진다.

로이터도 “이번 조치는 하이실리콘 반도체의 주요 생산자인 TSMC를 노린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이실리콘은 화웨이의 반도체부문 자회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 조치에 동의했는지 혹은 새로운 조치가 언제 시행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최근 5G통신 네트워크사업 등과 관련해서도 화웨이 제재를 늦추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새로운 조치가 시행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TSMC는 하이실리콘 등 중국 기업에 매출 20%를 의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화웨이가 TSMC로부터 많은 반도체를 공급받는다는 의미다.

이번 조치에 따라 TSMC의 반도체 공급이 제한되면 화웨이는 스마트폰 등 반도체가 필수인 제품을 생산하는 데 있어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사업의 호재를 맞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화웨이는 삼성전자의 가장 강력한 경쟁사로 꼽힌다. 다른 모바일 강자 애플은 독자적 운영체제 iOS를 사용하는 만큼 삼성전자, 화웨이 등과 고객층이 다소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마트폰시장 점유율에서도 화웨이는 삼성전자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시장 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화웨이는 2019년 기준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 2억4060만 대를 보였다.

삼성전자는 출하량 2억9570만 대로 1위를 유지했는데 화웨이는 삼성전자와 비교해 다소 차이가 나지만 미국 정부의 제재와 같은 악재를 겪으면서도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반도체 공급 제한은 다른 제재와 차원이 다른 만큼 앞으로 화웨이가 삼성전자와 스마트폰사업 주도권을 다투는 일이 아예 불가능하게 될 수도 있다.

화웨이에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화웨이는 미국 정부의 제재를 대비해 중국 SMIC 등 TSMC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기업을 확보하는 데 노력해왔다.

하지만 SMIC와 TSMC는 규모 자체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이를 보이는 만큼 화웨이 수요에 충분한 반도체를 생산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시장 조사기관 트렌드포스가 집계한 2020년 1분기 파운드리시장 점유율 추산치를 보면 TSMC는 54.1%를 차지한 반면 SMIC는 4.5%에 불과하다.

특히 반도체 미세공정 쪽에서는 아직 SMIC가 TSMC에 한참 못 미쳐 화웨이 최신 스마트폰 ‘P40’ 시리즈 등에 요구되는 고성능 반도체 생산이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 화웨이 반도체 확보 차단 추진, 삼성전자 스마트폰 반사이익 보나

▲ 화웨이 스마트폰 'P40프로'.


P40 시리즈에는 하이실리콘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기린990’이 탑재된다.

기린990은 7나노급 반도체로 알려졌는데 현재 TSMC와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7나노급 미세공정을 제공하는 파운드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SMIC가 7나노급 공정을 개발하고 있지만 아직 양산까지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화웨이로서는 스마트폰사업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셈이다.

다만 국제관계를 고려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화웨이에 관한 반도체 공급 제한조치를 실행에 옮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미국과 중국은 1월 1단계 무역합의안에 서명한 뒤 2단계 무역합의를 논의하고 있다. 1단계 무역합의안에는 화웨이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만큼 트럼프 대통령은 2단계 무역합의를 더욱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한 협상 카드로 새로운 제재를 꺼냈을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대만정부와 관계도 염두에 둬야 한다. 화웨이가 TSMC로부터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하게 되는 것은 결국 TSMC의 일감이 큰 폭으로 감소해 대만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또 미국의 화웨이 제재를 빌미로 반도체산업에 관한 통제를 강화하는 일이 다른 동맹국들을 자극할 수도 있다.

IT매체 WCCF테크는 “세계 반도체산업의 상당 부분이 미국 기술과 지식재산권을 활용한다”며 “이런 조치는 미국의 수출 통제권한을 실질적으로 높이고 그 과정에서 미국 동맹국을 화나게 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