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3사가 국제유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저유가의 장기화로 해양플랜트 발주가 지연돼 올해 해양부문 수주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3사, 저유가로 해양부문 발주가뭄 또 올까 촉각 곤두세워

▲ (왼쪽부터) 가삼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 이성근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 남준우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사장.


10일 조선업계에서는 저유가가 원유 생산과 관련한 해양플랜트의 발주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떠오른다.

일반적으로 해양유전 개발사업의 손익분기점은 국제유가 60달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개발사업들은 단일 프로젝트 규모의 축소나 설계변경, 부품 단가 조정 등을 통해 손익분기점을 낮추고 있다.

문제는 유가가 이미 해양유전 개발사업들의 손익분기점을 크게 밑도는 수준까지 내려와 있다는 점이다.

9일 뉴욕 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31.1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6일과 9일 2거래일만에 32%가 떨어졌다.

산유국들이 원유 감산기조를 끝내고 증산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려는 채비를 하고 있어 유가가 중장기적으로 하향 안정화할 것이라고 증권가는 바라본다.

이 전망이 현실화하면 해양유전 개발회사들의 해양플랜트 발주심리를 얼어붙게 만드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동헌 대신증권 연구원은 “최근 해양유전 개발사업들의 손익분기점은 국제유가 50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며 “저유가의 장기화로 해양플랜트 발주가 지연될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조선3사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해양플랜트는 대표적 설비인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 1기의 건조가격이 초대형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 1척의 5~6배,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1척의 10배 이상에 이르는 거대 설비다.

입찰과 최종 투자결정(FID)을 거쳐 설비 발주에 이르는 과정도 상선보다 길며 도중에 발주 일정이 변동되는 일도 잦다.

이런 특성 때문에 조선사는 해양플랜트 수주건 하나가 무산된다고 해도 글로벌 발주시장에서 때맞춰 다른 발주건이 나오는 것을 기다릴 수 없으며 수주전략을 즉각 수정할 수도 없다.

조선3사는 이미 발주가 몇 차례 지연돼 올해 발주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지는 해양플랜트나 일정 신뢰도가 높은 거대 에너지회사들의 해양플랜트를 중심으로 올해 해양부문의 수주계획을 수립했다.

이런 상황에서 저유가라는 돌발변수는 곧 조선3사의 1년치 해양부문 수주계획을 뒤틀어버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베트남 블록B 프로젝트의 고정식 플랫폼과 미얀마 슈웨3(Shwe3) 프로젝트의 부유식 가스생산·저장·하역설비를 중심으로 해양부문 수주를 풀어간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두 프로젝트 가운데 블록B 프로젝트가 해양유전 개발계획이다.

수주를 놓고 경쟁하던 미국 EPC(일괄도급사업)회사 맥더못(McDermott)이 재무 위기로 파산절차를 밟고 있어 현대중공업이 설비 수주에 가깝다는 전망이 조선업계에서 나오고 있었다.

블록B 프로젝트의 발주처 페트로베트남은 이미 손익분기점의 불확실성을 들어 프로젝트의 최종 투자결정을 2018년 하반기에서 2019년 7월로 한 차례 미룬 뒤 입찰을 2020년 1분기로 늦추고 최종 투자결정도 그 뒤로 재차 미룬 전례가 있다.

이런 과거 사례 때문에 해양유전 개발계획이 저유가 탓에 지연된다면 블록B 프로젝트의 지연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조선업계는 바라본다. 현대중공업으로서는 눈앞에 다가온 수주건수를 놓치는 격이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경쟁하고 있는 캐나다 베이두노르드(Bay Du Nord) 프로젝트의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와 호주 잔스아이오(Jansz-Io) 프로젝트의 반잠수식 플랫폼 선체(Semi-Submersible Platform Hull)도 안심할 수 없다.

두 설비의 수주전 모두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의 양자대결로 좁혀져 있으며 최종 투자승인은 올해 말로 예정돼 있다.

베이두노르드 프로젝트의 발주처는 노르웨이 에퀴노르이며 잔스아이오 프로젝트의 발주처는 미국 셰브론이다.

모두 주요 석유회사(오일메이저)로 분류되는 회사들로 일정 신뢰도는 높지만 낮은 유가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두 조선사도 수주 일정과 관련한 변동 여부를 지켜보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나이지리아 봉가 사우스웨스트(Bonga Southwest) 프로젝트의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가 예상대로 발주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불안요소도 안고 있다.

봉가 사우스웨스트 프로젝트의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는 애초 2019년 발주가 예정됐던 해양플랜트였다. 발주처인 네덜란드 쉘이 손익분기점과 관련한 우려 탓에 최종 투자결정을 미루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입찰 재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조선3사, 저유가로 해양부문 발주가뭄 또 올까 촉각 곤두세워

▲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 '골리앗'.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은 중국 해양석유엔지니어링(COOEC)과 이탈리아 EPC회사 사이펨의 컨소시엄과 설비 수주를 놓고 경쟁하고 있으며 조선업계에서는 삼성중공업의 수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삼성중공업이 나이지리아 현지에 물류회사 라고스와 만든 합자조선소를 보유하고 있어 나이지리아의 로컬 콘텐트법(자원개발계획에 쓰일 설비의 건조공정 일부를 현지에서 진행하도록 강제하는 법)을 준수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유가가 대부분 해양플랜트의 손익분기점을 밑도는 지금 쉘이 입찰을 재개할지조차 확신할 수 없으며 입찰을 마치더라도 최종 투자결정에 이르는 과정이 순탄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어렵다.

조선3사는 해양부문 수주를 놓고 고민이 앞으로 더욱 깊어질 수도 있다.

아직은 국제유가가 30달러선에 있으나 골드만삭스는 국제유가가 최저 20달러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한국에서도 하나금융투자가 국제유가 20달러시대의 도래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 조선사 관계자는 “2014년 말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생산량을 늘리자 다른 산유국들도 원유를 증산하며 국제유가가 2014년 90달러대였다가 2015년 50달러대까지 떨어졌다”며 “당시 2015년부터 해양플랜트 발주 가뭄이 시작돼 2018년에 와서야 발주심리가 회복됐는데 지금 상황이 그때보다 더 안 좋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