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GI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측과 연합전선을 꾸릴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오면서 ‘행동주의 펀드’를 내걸었던 KCGI가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강성부 KCGI 대표가 조현아 전 부사장의 경영권 승계를 돕고 그 뒤 조현아 전 부사장에게 KCGI의 한진칼 지분을 넘기는 엑시트(투자금 회수) 전략을 세웠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강성부 조현아 한진칼 놓고 손잡나, '적의 적은 친구'라는 돈의 비정함

▲  강성부 KCGI 대표.


29일 업계에 따르면 KCGI는 2018년 11월부터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기업가치 증대를 목표로 하는 ‘행동주의 펀드’를 내걸고 한진그룹 지배구조 및 경영전략을 겨냥한 공세의 고삐를 조여왔다.

강성부 KCGI 대표는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을 이끌어내 기업가치를 키워 수익을 얻겠다며 2018년 8월 KCGI를 세웠으며 KCGI 이름도 ‘한국 기업 지배구조 개선(Korea 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에서 따왔다.

KCGI는 국내펀드 가운데 처음으로 주주 행동주의를 내걸었던 곳으로 한진그룹 지배구조 개편 필요성과 오너일가의 경영능력 미비 등을 주요 무기로 삼았다.

여기에 한진그룹 오너일가의 ‘갑횡포 논란’으로 시작된 한진그룹을 향한 비판여론을 등에 업고 2018년 11월부터 한진그룹에 꾸준히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해왔다.

그런데 3월 한진칼 주주총회를 앞두고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반도건설, KCGI가 만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들이 연합전선을 꾸릴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KCGI는 그동안 한진그룹 오너일가의 경영능력 부족을 비판해왔는데 ‘땅콩회항’으로 사업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장본인인 조현아 전 부사장과 연합전선을 꾸리는 것이다.

구체적 논의내용은 알 수 없지만 KCGI가 지난해 한진칼에 제안했던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 및 감사 선임 등 한진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을 토대로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KCGI가 제안했던 주요 내용 가운데 하나였던 호텔 및 리조트사업부 매각은 올해 주주제안에서 빠질 수도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한진그룹의 호텔 및 리조트사업부를 진두지휘하며 큰 애정을 지니고 있는 만큼 조현아 전 부사장과 손을 잡기 위해선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 대신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해 주주배당 확대 등으로 통해 실리를 챙길 가능성도 있다.

다만 KCGI가 그동안 ‘행동주의 사모펀드’를 내걸고 단기적 수익을 쫓는 다른 헤지펀드와 다르다는 점을 내세웠단 점을 감안하면 이번 연대는 명분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현아 전 부사장 등이 아직 별다른 회사 경영비전 등을 내놓지 않은 상황에서 조원태 회장의 연임을 막기 위해 연합전선을 꾸린다면 KCGI가 표방해오던 것과 사뭇 결이 다르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KCGI가 이미 행동주의 펀드가 아닌 기업 경영권을 넘보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에 가까워졌다는 시각도 있다.

행동주의펀드로서 한진칼 지분을 모아 한진그룹 오너일가를 압박해 엑시트(투자금 회수)하려 했지만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정체성에 혼란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 뒤 한진칼 지분을 꾸준히 늘리면서 덩치를 불린 만큼 이제는 쉽게 시장에 매각하기도 어려운 수준이 됐다.
 
강성부 조현아 한진칼 놓고 손잡나, '적의 적은 친구'라는 돈의 비정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일각에서는 강 대표가 과거 경험을 토대로 조현아 전 부사장의 경영권 승계를 돕고 그 뒤 조현아 전 부사장에게 지분을 넘기는 목표를 세운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강 대표는 LK파트너스와 KCGI에서 일하며 이노와이어리스와 요진건설, 대원 등 중견기업들의 승계 과정에서 ‘지원자’ 역할을 하며 그 과정에서 차익을 거뒀는데 이번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에서도 비슷한 목표를 세웠다는 것이다.

한진그룹 오너일가 가운데 누구도 경영권을 안정화할 단일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만큼 KCGI의 지배구조 개편에 힘을 실어줄 오너일가를 찾아 ‘우호지분’ 역할을 한 뒤 중장기적으로 한진칼 지분을 다시 오너일가에 되팔아 차익을 얻는 방식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경영권 분쟁에서 우위를 잡기 위해 KCGI가 요구하는 지배구조 개편과 배당 확대 등을 전향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런 상황을 활용해 행동주의 펀드로 역할을 하는 것과 동시에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한진칼 지분을 나중에 넘길 안정적 매각처를 확보할 수 있다.

펀드업계 관계자는 “KCGI가 명분을 내걸면서 신선하게 등장했지만 그 명분이 스스로 운신의 폭을 크게 좁히는 올가미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펀드가 수익률을 따지지 않을 수는 없는 만큼 이번 경영권 분쟁이라는 이벤트에서 정체성 혼란을 없애고 진짜 의도를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