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 한국문학번역원이 계약종료된 직원들의 명의를 도용해 수년에 걸쳐 수차례 보수를 지급한 것처럼 허위로 세금신고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15일 한국문학번역원에 근무했던 A씨에 따르면 근로계약이 종료된 뒤 한국문학번역원에서 3년에 걸쳐 2천만 원 가량의 보수를 원고료 명목으로 A씨에게 지급한 것처럼 허위신고한 사실을 확인했다. 
 
[단독] 한국문학번역원, 퇴사 계약직들 이름으로 급여 수년간 허위지급

▲ 한국문학번역원. 


A씨는 한국문학번역원에 2014년에 1년 동안 계약직 신분으로 근무했다.

A씨는 최근 납세자연맹의 연말정산관련 교육과정을 들으면서 국세청 홈택스에서 납세내역을 확인하고 그와 관련이 없는 소득이 기입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A씨는 ‘기타소득 원천징수영수증’에서 한국문학번역원으로부터 A씨와 같은 주민등록번호의 이름모를 외국인에게 원고료 등 보수를 3년 동안 모두 2천만 원 가량 지급한 것 처럼 허위신고된 사실을 확인했다.

지급기간은 2015~2017년으로 A씨가 이미 번역원 업무를 종료한 뒤였는데 A씨는 신고된 원고료를 한푼도 받지 않았다. 

A씨는 당시 함께 근무한 다른 계약직원 2명에게도 연락을 했고 이들도 계약기간이 종료된 뒤 번역원에서 근무하지 않았음에도 몇십만 원가량의 보수가 수차례 수년 동안 지급된 것처럼 허위신고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도 모두 실제로 보수를 수령하지 않았다.

A씨는 국세청 콜센터(126번)에 신고하면서 탈세제보 담당자에게 이런 사실을 문의했고 담당자로부터 “의심스러운 정황이 나타났으니 우선 경찰서로 신고하라”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 뒤 A씨는 현재 근무하고 있는 회사 근처의 잠실세무서에 이 상황을 알렸고 이 사안은 A씨의 거주지역에 있는 성동세무서로 이관돼 사실확인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성동세무서는 A씨의 ‘근로사실 부인신청서’를 접수받았으며 한국문학번역원에 ‘사실확인 공문’을 보내 사실관계 확인에 나서고 이 과정은 1개월 정도 걸릴 수 있다고 답변했다.

A씨는 국세청 홈택스의 ‘세금포인트’ 페이지에서 허위로 신고된 기타소득과 관련해서 2015년 33만 원가량, 2016년 33만 원가량, 2017년 18만 원가량의 세금을 납부한 것을 확인했다. 이 기간에 A씨가 원고료로 기타소득을 올린 것이 없기 때문에 부당하게 세금을 더 낸 것이다. 

A씨는 "엄밀하게 관리되는 세금 부과절차라고 믿고 종합소득세의 총액만 대충 봤지 그동안 얼마의 세금을 냈는지 구체적 항목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았다"며 "받은 적도 없는 보수가 여러 명에게 지급된 것처럼 허위 신고됐고 3년이나 계속됐는데 단순한 실수라고 볼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만약 단순 업무착오라면 이런 실수가 여러 사람에게 수년동안 지속되는 동안 한국문학번역원이 잡아내지 못한 관리시스템의 허술함의 심각함을 보여준다.

반면 만일 담당직원 개인의 횡령이라면 담당자를 찾아 책임을 물어야 하고 계약종료된 여러 계약직을 대상으로 수년동안 지속된 허위 신고가 만약 조직적 횡령 등으로 나타난다면 한국문학번역원을 상대로 면밀한 감사를 벌이는 것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한국문학번역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A씨의 주민등록번호로 나타났다는 외국인은 누군지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며 “원고료 등 기타소득을 관리하는 담당직원은 현재 퇴사했으며 허위 지급하거나 유용한 사실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한국문학번역원의 조직적 행위라면 비자금을 조성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임직원의 기타소득 등을 관리했던 직원은 2011년8월~2019년5월까지 근무했다. 

한국문학번역원 관계자는 “회계법인을 통해 회계감사를 받고 있으며 원장 등의 결재라인을 거쳐 보수를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세무서 관계자는 “사업자쪽에서 외국인등록번호가 없는 외국인과 근무경력이 있는 직원의 주민등록번호를 섞어서 기입하고 보수를 지급했다고 세무서에 신고한다면 동일인물인지 확인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A씨를 포함한 3명의 계약직원들은 2014년에 근무했고 한국문학번역원은 그 기간에 계약직원을 10명 이상 고용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허위신고가 확인된 A씨 등 3명의 계약직원외에 다른 계약직원들에게도 이런 원고료 지급 등의 허위신고가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당시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은 김성곤 서울대 명예교수(영문학)로 2012년~2017년 제5, 6대 원장을 지냈다. 김 전 원장은 2018년 2월까지 임기가 남아있었으나 2017년 10월 사의를 표명했다.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는 한국문학번역원이 문화체육관광부 지시를 받아 한국문학 세계화를 위한 번역사업에서 특정 문인들을 배제한 블랙리스트를 들고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