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나재철 한국금융투자협회 회장

나재철 한국금융투자협회 회장 당선자.

나재철은 한국금융투자협회 회장 당선자다.

증권가를 대표하는 전문경영인으로서 풍부한 현장경험과 친화력을 갖춘 리더로 꼽힌다.

대신에프앤아이와 대신저축은행 등 계열사 사이 시너지를 확대하고 자산관리 중심의 수익모델을 만들어 대신증권 제2의 전성기를 열기 위해 힘을 쏟아 왔다.

1960년 1월11일 전남 나주에서 태어났다. 조선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신증권에 공채로 입사해 대표이사에 오르기까지 줄곧 대신증권에서 일했다. 주요 지점장을 지낸 뒤 서울 강남지역본부장을 맡았다. 대신증권의 사업부와 기획부 등을 거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대신증권 사장에 선임된 뒤 대신에프앤아이 등 자회사 출범을 통한 사업 다각화로 대신증권의 중장기적 성장동력을 마련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대신저축은행의 부실도 정리했다. 덕분에 대표이사 취임 이후 대신증권의 실적은 꾸준히 상승했다.

맡은 업무에 전력투구하는 스타일로 고객과 직원들을 세심하게 챙긴다.

2019년 12월20일 한국금융투자협회장 후보에 당선됐다.

경영활동의 공과
[Who Is ?] 나재철 한국금융투자협회 회장

▲ 대신증권 실적.

△2019년 한국금융투자협회장에 올라
나재철은 2019년 12월20일 한국금융투자협회장에 당선됐다. 임기는 2020년 1월1일부터 2022년 12월31일까지다.

나재철은 대신증권에 30여 년 동안 근무하며 증권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만큼 금융투자협회장에 걸맞는 인물로 평가됐다.

나재철의 1차 선거 득표율은 76.3%로 압도적 표 차이를 보였다. 최종 후보자로 같이 이름을 올렸던 정기승 KTB자산운용 부회장의 득표율은 15%, 신성호 전 IBK투자증권 대표은 8.7%에 그쳤다.

나재철은 당선소감을 통해 "회원사의 정책건의를 확대해 금투업계 요구가 금융당국 정책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는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회사의 의견을 종합해 금융 당국과 국회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 만큼 업계에서 넓은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 협회장으로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9년 기업공개 시장에서 두각 이어가
나재철은 2019년에도 기업공개 시장에서 대신증권의 역량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신증권은 2019년 3분기 말까지 모두 4건의 기업공개 주관을 성공시켰다. 국내 대형 증권사인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의 뒤를 바짝 이었다.

2018년에는 기업공개건수 순위에서 대신증권을 국내 증권사 1위에 올려놓았다.

대신증권은 2018년 애경산업의 단독 주관사로 선정됐고 티웨이항공 기업공개에서는 대표 주관사로 참여하기도 했다.

대신증권은 그동안 기업공개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며 존재감이 사실상 미미했다. 그러나 최근 기업공개팀 인원을 늘리는 등 내부역량을 강화해 이런 성과를 이룬 것으로 파악된다.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기업공개사업에 주력하며 '틈새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한 점도 기업공개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데 보탬이 됐다.

△나인원 한남 불확실성에 대신증권의 부동산 투자성과 지지부진
나재철은 부동산 개발사업인 ‘나인원 한남’에 야심차게 발을 담갔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2018년 6월 나인원 한남 개발사업을 담당하는 대신에프앤아이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부정적)'에서 'A(안정적)'로, 기업어음·전자단기사채 신용등급을 'A2+'에서 'A2'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나인원 한남이 임대 후 분양사업으로 전환되는 데 따르는 재무 부담이 신용등급 하향의 원인이 됐다.

대신증권은 2016년 자회사 대신에프앤아이를 통해 한남동 외인 주택부지를 6242억 원에 사들이고 이를 고급 주택단지로 만드는 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아파트 분양이 지지부진해지면서 대신에프앤아이가 부담해야 하는 이자비용은 갈수록 누적되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나인원 한남의 분양가를 대신증권이 원하는 수준을 밑도는 가격으로 제한하면서 분양이 늦어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남동 주택 부지를 사들일 때 들인 자금은 대부분 차입금인 탓에 분양이 늦어질수록 대신에프앤아이의 비용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나재철은 결국 대신에프앤아이에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겠다며 선을 그었다. 자칫 대신증권의 신용등급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Who Is ?] 나재철 한국금융투자협회 회장

나재철 대신증권 대표이사 사장(왼쪽에서 첫 번째)이 2019년 7월29일 대신자산신탁 공식출범식을 마친 후 이어룡 대신금융그룹 회장(가운데), 김철종 대신자산신탁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와 함께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대신자산신탁>

△대신증권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로 장수 CEO 반열
나재철은 6년째 대신증권을 이끌며 장수 최고경영인(CEO) 대열에 합류했다.

나재철은 2018년 대신증권 대표 두 번째 연임에 성공했다. 나재철은 2012년 5월 대신증권 대표에 처음 올랐고 2016년 한차례 연임했다. 그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며 대신증권의 미래 청사진을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2011년 대표에 내정된 뒤 주식 거래 수수료(브로커리지)에 집중된 대신증권의 수익구조를 탈바꿈하기 위해 인수합병 등을 통한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추진했다.

2011년 중앙부산저축은행과 부산2저축은행, 도민저축은행을 인수한 데 이어 2013년 한국창의투자자문, 2014년 우리F&I를 연이어 인수하며 대신증권을 정점으로 하는 대신금융그룹을 꾸리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나재철은 2016년 3월 첫 연임에 성공했다. 대신증권의 실적 개선 공로를 인정받아 재선임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대신증권의 2015년 순이익은 1360억 원으로 8년 만에 최대치를 달성해 이런 평가를 뒷받침했다.

대신저축은행은 2016년 출범 5년 만에 총자산 1조2659억 원에 이르는 업계 10위권으로 성장했다.

대신에프앤아이는 부동산 개발 등 대체투자로 영역을 확대해 신성장동력을 키우고 있고 대신경제연구소는 주주총회 의안 분석과 지배구조 연구 등 지배구조부문 서비스를 통해 수익구조를 다변화하고 있다.

나재철이 핵심 부서를 두루 거쳐 증권업에 이해가 깊었던 점이 사업 다각화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서울 강서지역본부장과 강남지역본부장, 리테일사업본부장, 홀세일사업본부장, 기업금융사업단장, 인재역량센터장 등을 역임했다.
[Who Is ?] 나재철 한국금융투자협회 회장

나재철 대신증권 대표이사 사장(왼쪽)이 2017년 3월30일 명동 파이낸스 센터에서 이어룡 대신금융그룹 회장(오른쪽) 등 명동 복귀 기념 이벤트 시상식의 참가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명동 신사옥 이전과 자회사 사이 협업 강화
나재철은 2017년 5월 명동 신사옥에 자회사를 모아 계열사 사이의 협업을 확대했다.

나재철은 “32년 동안의 여의도시대를 마감하고 명동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됐다”며 “증권을 비롯한 전 계열사들이 명동에 모여 협업체계를 강화해 제2의 전성기를 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증권은 대신에프앤아이와 대신저축은행, 대신자산운용, 대신프라이빗에쿼티, 대신경제연구소, 대신시큐리티아시아(홍콩 현지법인) 등 자회사 6곳을 두고 있다.

나재철은 이 가운데 대신에프앤아이와 대신저축은행을 중심으로 협업을 늘렸다.

2017년 초 대신증권과 대신저축은행의 복합점포도 만들었다. 은행과 증권의 조합이 아닌 증권과 저축은행이 모인 복합점포는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 이후 대부분 사라졌지만 나재철은 과감히 이를 되살렸다.

자회사들 사이에 협업체계를 갖춰 부동산을 기초자산으로 한 사모펀드인 ‘대신하임전문투자형펀드’판매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2017년 추진해온 자회사 출범을 통한 사업 다각화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산관리사업 집중
나재철은 2012년 자산관리부문에 집중하겠다는 경영목표를 세우면서 금융 주치의 서비스를 강화했는데 대신증권 성장의 밑거름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재철은 대표이사 취임 직후 일부 영업직원들에게 금융 주치의란 호칭을 부여하고 초고액자산가 개개인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 호평을 받았다.

금융 주치의의 성공은 대신증권이 브로커리지 중심 사업구조에서 자산관리로 중심축을 이동하는 계기가 된다. 기존 증권과 채권에 강점을 지녔던 증권사에서 주식과 채권뿐 아니라 ‘생애주기별 맞춤 서비스’ 등 맞춤형 자산관리를 제공하는 증권사로 탈바꿈한 것이다.

2011년 전체수익의 61.8%에 이르던 브로커리지 수익 비중은 2016년 상반기 기준 28.1%까지 낮아졌다. 자산관리부문 수익이 그 자리를 메웠다.
[Who Is ?] 나재철 한국금융투자협회 회장

나재철 대신증권 대표이사 사장과 피쳇 시띠암누아이 부알루앙증권 대표가 2017년 7월10일 대신파이낸스센터에서 ‘온라인 주식거래 플랫폼 수출을 위한 본계약’을 맺은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대신증권 위상 격상
나재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식시장의 침체로 낮아진 대신증권의 위상을 높였다.

2004년 양회문 전 대신증권 회장이 세상을 떠난 뒤 대신증권은 점차 위상이 낮아졌다.

대신증권은 재벌이나 은행 계열이 아닌데도 꾸준히 명성을 이어왔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식시장 침체와 함께 위상이 떨어져 갔다.

나재철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2011년 중앙부산저축은행과 부산2저축은행, 도민저축은행을 인수한 데 이어 2013년 한국창의투자자문, 2014년 우리에프앤아이를 잇달아 인수하는 등 대신증권을 중심으로 대신금융그룹을 꾸리는 데 집중했다.

이런 전략은 주효했다. 대신저축은행은 출범 5년 만에 총자산 규모 10위권 회사로 발돋움했고 부실채권을 주로 다뤘던 대신애프앤아이는 부동산 개발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나재철이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후 대신증권의 실적도 지속적으로 상승해왔다.

△CI 디자인의 경쟁력
대신증권은 2017년 8월10일 연차보고서인 ‘애뉴얼리포트’로 세계 3대 디자인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대신증권 애뉴얼리포트는 명동 파이낸스센터와 대신증권 CI를 그래픽화하고 명동에서 새 출발을 고유의 브랜드 정체성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대신증권은 2013년과 2015년에도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받은 데 이어 세 번째 수상을 한 것이다. 세계 50개국에서 모두 8천여 개의 작품과 경쟁했다.

대신증권은 CI 디자인 리뉴얼 등으로 레드닷, IF 등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디자인상도 받았다.

△영업점 시절 실적 승승장구
나재철은 신생 지점인 서울 대림동 지점에 근무할 당시 꾸준히 고객을 늘려 대신증권 전국 점포를 통틀어 개인 실적 1위를 달성했다. 승진도 입사 동기 40명 가운데 가장 빨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 IMF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주식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을 때 전략적 요충지로 꼽히는 강남지점 지점장으로 투입됐다.

나재철은 강남지점에서 지점장으로 재직했던 7년 동안 모두 4차례나 실적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이런 공을 인정받아 2004년 강서지역본부장으로 임원 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6개 지역본부 가운데 1위에 이름을 올렸다.

비전과 과제/평가

◆ 비전과 과제


나재철은 한국금융투자협회장으로 당선된 만큼 금융투자업계와 금융 당국의 소통을 이끌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금융투자협회장은 금융투자업계의 의견을 모아 국회와 당국에 전달해야 하는 대관능력이 중요한 능력으로 꼽힌다.

더욱이 증권 및 자산운용 등 금융투자업계를 놓고 은행업권과 비교해 영향력이 크지 않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만큼 금융투자협회장의 어깨도 그만큼 무겁다.

나재철은 35년 동안 증권업계에 몸 담으며 영업점, 자산관리(WM), 기업금융, 법인영업, 홍보까지 다양한 영역을 두루 거친 ‘증권 전문가’로 불리는 만큼 금융투자업계를 잘 이끌어갈 역량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나재철은 구체적으로 해외투자 규제 완화, 사모펀드 규제 완화 등 회원사의 정책 건의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재철은 선거에 앞서 "국민자산 증대에 기여하는 투자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기금형 퇴직연금을 도입하고 공모형 리츠 세재 진행 증권거래세 폐지하는 등 자본시장 세재 선진화와 실물·공모펀드 활성화를 실현시키겠다"고 말했다.

◆ 평가

나재철은 1985년 대신증권에 입사한 뒤 30년 이상 줄곧 ‘대신증권맨’으로 일했다. 증권업계는 이직이 잦은 편인데 한 직장에서 사원부터 사장까지 오르는 사례는 흔치 않다.

증권업계의 다양한 분야를 두루 거친 ‘증권 전문가’로 꼽힌다. 서글서글한 성품을 지녀 두터운 인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재철은 업무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평가도 받는다.

1980년대 후반 증권업계 호황으로 나재철을 포함한 모든 직원이 수백만 원에 달하는 성과급을 지급받았는데 저축해둔 자금과 성과급을 합쳐 당시 지점에서조차 구입을 망설인 최고 성능의 컴퓨터와 프린터를 구입했다.

당시로써는 흔치 않은 컴퓨터를 활용해 고객의 이름과 투자종목, 수익률 등을 관리해 빠른 속도로 이름을 알렸다.

등산과 골프, 스키 등이 취미다. 1990년대 초 스키를 처음 배운 뒤 매년 겨울이면 스키장을 찾았고 스키강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 인성고등학교 동문으로 정장훈 국립공원관리공단 무등산국립공원사무소장, 정종기 전파진흥회의 부회장, 기현호 전 광주일보 편집국장, 신정훈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김형석 작곡가 등이 있다.

종교는 천주교다.

사건사고


△노동조합 일원 ‘보복성 징계’ 논란 휩싸여
나재철은 직장 내 ‘갑질’ 파문에 휩싸이는 등 직원들과 갈등에 휩싸였다.

2019년 7월 대신증권 노동조합은 저성과자를 포함한 명단을 만들고 이들을 상대로 사내 발표대회(PT)를 연 것을 두고 ‘직장 내 갑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개된 명단에 포함된 125명은 금융수익 및 오프라인수익, 활동성지표를 토대로 하위권에 속한 직원들로 확인됐다. 이는 WM사업단의 명령을 받은 지점장들이 지점 회의 시간을 통해 선정 기준을 밝히면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노조는 행사 철회를 요구했다.

△대규모 구조조정 논란으로 노사 갈등
나재철 취임 이후 대신증권 실적이 늘어날 수 있었던 것은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과 직원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신증권은 임직원이 2011년 3월 기준 2258명이었으나 2018년 6월 1156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국내 지점은 115개에서 52개로 60여 곳이 문을 닫았다.

직원 1인당 평균 급여액은 2011년 7천만 원, 2012년 6400만 원, 2013년 4600만 원으로 뒷걸음질하다가 2014년 6700만 원으로 다시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고 2015년에도 7600만 원으로 올랐다. 그러나 2016년에는 7700만 원, 2017년에는 7600만 원으로 정체했다. 2011년과 비교해 평균 급여액은 총 8.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과정에서 법적 분쟁을 겪기도 했다. 대신증권은 2015년 10월 이남현 전 사무금융노조 대신증권지부장을 면직 처리했다. 인터넷 카페를 통한 사내질서 문란 및 명예 훼손, 비밀자료 유출·이용·공개 및 허위사실 유포, 업무지시 불이행 등을 이유로 꼽았다.

1심과 2심은 대신증권의 손을 들어줬으나 파기환송심에서 대신증권은 최종 패소했다. 서울고등법원은 2018년 4월13일 대신증권 해고 관련 파기환송심에서 이남현 전 지부장의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대신증권은 2018년 9월3일 사무금융노조 대신증권지부, 대신증권 노동조합과 임금 및 단체협약을 맺었다. 정식 단체협약 체결은 5년만이다.

경력/학력/가족
◆ 경력
[Who Is ?] 나재철 한국금융투자협회 회장

나재철 대신증권 대표이사 사장이 2018년 3월23일 서울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제57기 정기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신증권>

1985년 공채 12기로 대신증권에 입사했다.

1996년 대신증권 양재동지점장으로 일했다.

1997년 강남동지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4년 강서지역본부장을 역임했다.

2005년 강남지역본부장(상무보)을 지냈다.

2007년 강남지역본부장 전무로 일했다.

2008년 자산관리추진본부장 전무에 올랐다.

2009년 홀세일영업본부장 전무로 보직이동했다.

2010년 대신증권 부사장에 올랐다.

2010년 기획본부장 겸 홀세일사업단장을 역임했다.

2011년 대신증권 기업금융사업단장 부사장 겸 인재역량센터장을 지냈다.

2012년 5월 대신증권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2016년 3월과 2018년 3월 연임에 성공해 세 번째 대표 임기를 수행하고 있다.

2017년 한국금융투자협회 회원이사를 맡았다.

2019년 한국금융투자협회 회장에 당선됐다.

◆ 학력

1979년 광주 인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6년 조선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2007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 상훈

◆ 기타


나재철은 2019년 9월30일 기준 대신증권 주식 3만6307주를 들고 있다. 지분은 0.07%다.

2019년 상반기까지 5억3500만 원을 받았다. 급여 2억9900만 원, 상여금 2억3600만 원으로 구성됐다.

육군 병장으로 병역을 마쳤다.

어록


“국내 자본시장은 은행 중심의 금융업 발전과 현존하는 많은 규제들로 인하여 아직까지 선진국에 비해 부진한 수준의 성장을 이뤄왔다. 앞으로 자본시장이 한 차원 더 성장하고, 금융투자업이 제 2의 도약을 맞을 수 있도록 더 많이 소통하며 말씀드린 정책들을 실현하고, 직면한 현안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두발로 뛰겠다.” (2019/12/20, 한국금융투자협회장 당선이 확정된 뒤)

“혁신성장 금융생태계 조성, 모험투자 및 혁신기업 발굴, 글로벌 네트워크 지원 및 해외투자 규제 완화를 통해 금융투자업계의 성장을 도모하겠다. 은행업권 불특정 금전신탁 허용 저지, 사모펀드 규제 완화, 재개발·재건축 신탁방식 의무화 등 업계의 의견이 정책에 잘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 (2019/12/04, 한국금융투자협회장 출마의지를 밝히며)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등 '무질서의 세계'가 다가오고 있다. 따라서 올해 투자자에게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첫째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이 될 것이다." (2019/01/14,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대신증권이 제시하는 자산관리(WM)철학은 ‘금융의 도덕적 선(善)과 충(忠)’을 지키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산이 안정적으로 늘어나는데 헌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WM의 목표를 ‘지불쓰남’으로 정의하였다. 고객들이 자산을 ‘지키고, 불리고, 쓰고, 남겨주게 하자’는 의미다. 고객이 100세에도 재무적으로 건강할 수 있도록 최고의 WM솔루션을 제공해 나가는 것이 목표다.” (2018/05/08, 컨슈머타임스와 인터뷰)

“증시가 크게 흔들리거나 국내외 경제 변동성이 크더라도 꾸준히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고객에게 주식뿐 아니라 맞춤형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시하고 회사도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방향으로 바꾸고 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지속 가능한 경영을 할 수 있는 100년 기업이 될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 것이다.” (2018/03/29, 머니투데이와 인터뷰)

“코스피 최고치 3000을 예상한다. 긴 호흡의 박스권을 뚫고 지난해 코스피는 상승했다. 올해 주가는 계속 쭉 올라가기보다 급등과 조정을 반복하며 상승할 것이다.” (2018/01/31, 중앙일보와 인터뷰)

“대신증권이 2년 전부터 `달러 자산에 투자하라`는 캠페인을 벌여왔던 만큼 우리도 스스로 해외투자를 늘리기 위해 고민을 해왔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실력이나 경쟁력에 맞는 방식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2017/11/28, 이데일리와 인터뷰)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꾸준히 수익을 내는 상품에 투자자들이 몰린다. 고객들이 ‘큰’ 증권사보다는 ‘좋은’ 증권사를 찾는 것이 트렌드다.” (2017/01/09, 서울 명동 대신파이낸스센터에서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하며)

“32년 동안의 여의도 시대를 마감하고 명동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됐다. 증권을 비롯한 모든 계열사가 명동에 모여 제2의 창업이라는 각오로 다시 한번 전성기를 열어갈 것이다.” (2017/01/04, 대신증권이 32년 만에 여의도에서 명동으로 돌아가기로 발표한 뒤 준공식에 참석해)

“30여 년 증권맨 생활의 최종 결론이라면 개인이건 기업이건 리스크 관리를 못하면 언젠가 낭패를 겪는다는 것이다. 욕심을 줄이고 자중할 줄 알아야 기회를 만들 수 있다.” (2016/04/28,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저 또한 회사에 다니면서 고객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한때 그들을 돕는다고 생각한 적이 있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분들이 저를 이 자리까지 이끌어준 것 같다. ‘빚진 자의 마음’으로 더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2016/04/28, 한국경제와 인터뷰에서)

“매사를 초긍정의 자세로 임했으면 한다. 주변 환경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지만 환경 탓만 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이 최악이더라도 초긍정의 자세를 갖고 있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2016/01/13,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증시가 요동치던 시절 솔깃한 유혹에 증권사를 박차고 나가 작전세력에 가담하거나 사업하러 간 분들이 많았지만 대다수는 증시 파도에 휩쓸렸다. 나는 동료들을 챙기고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키우는 삶이 값진 일이라 생각한다” (2015/06/15,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파벌·연줄·학벌·전공과 상관없이 영업 잘하는 직원을 우대하는 것이 대신증권의 전통이다." (2015/01/20,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알리바바와 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들은 지급결제, 송금 서비스부터 투자 중개까지 업무범위를 넓히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융복합이 아직 제한적인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다. 대신증권은 향후 도입될 인터넷 전문은행과 핀테크 시장에의 진출을 위한 플랫폼 도입을 위해 지속적으로 검토 중이다.“ (2015/01/05, 서울경제와 인터뷰에서)

"사상 최악의 증시침체가 이어지고 있지만 대신증권은 사업다각화와 자산관리역량 강화로 수익을 개선해 올해를 재도약의 원년으로 삼을 것이다." (2014/06/16, 대신증권 창사 이후 첫 구조조정에 나서며)

“30년 전 만난 고객이 어느새 중소기업 사장이 되어 코넥스 상장을 검토하고 있다. 신뢰가 두텁게 쌓이면 평생 고객이자 자산이 되는 것 같다.” (2014/04/20,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