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 노영민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

윤종학 기자
2019-12-16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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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노영민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


    ◆ 생애

    노영민은 문재인정부의 두 번째 대통령비서실 실장이다.

    국회와 경제계 등 청와대 안팎의 소통을 강화해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에도 국정동력을 이어갈 수 있게 조율해야 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1957년 11월25일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공장에 취업해 노동운동을 하다가 전기기술업종에서 종사한 경험을 살려 금강전기를 설립했다.

    사업가 경력을 바탕으로 시민운동을 시작했다가 정치에 입문해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러나 시집 강매 논란 등의 여파로 20대 총선에 불출마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 후보 비서실장을 지내는 등 ‘원조 친문’으로 꼽힌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한 뒤 주중국대사를 맡았다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3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사업가 출신으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을 지내 경제 시야도 넓다.

    ◆ 활동의 공과

    ▲ 노영민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후임 실장과 임종석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이 2019년 1월8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노영민은 청와대가 김기현 전 울산시장과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관해 '하명수사'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청와대는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김기현 울산시장 측근의 비리에 관해 울산 경찰에 하명수사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청와대가 하명지시 문건을 보내 강제수사한 의혹이 있다는 입장을 내놨고 이에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경찰에 지시한 것이 아니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영민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 감찰과 경찰수사 압박 의혹을 부인하며 적극 해명했다. 

    노영민은 2019년 11월29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기현씨를 감찰한 적이 없다"며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이 울산 현장에 간 것은 '고래고기'사건으로 검찰과 경찰이 다투는 상황에서 불협화음을 해소하기 위해 내려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압수수색 전에 ‘이첩된 첩보와 관련해 자료를 수집 중’이라는 보고를 한번 받았고 압수수색은 실행 20분 전에 보고받았다"며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업무절차에 따른 것이며 수사를 압박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노영민은 청와대의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무마 의혹에 관해서도 해명했다.

    노영민은 2019년 11월29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당시 수사권이 없는 민정수석실에서 제한된 범위 내에서 조사한 이후에 일정 정도의 문제점을 확인하고 인사조치한 수준에서 정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부실인사 논란
    문재인 정부는 2019년 인사 문제로 홍역을 앓았다. 노영민은 인사추천위원장인 만큼 부실인사 논란의 가운데 놓이며 비판을 받았다.

    노영민은 2019년 4월4일 부동산 투기와 해외 부실학회 참석 의혹 등으로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와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낙마에 관해 공식 사과했다.

    노영민은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인사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에 관해 인사추천위원장으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인사추천에 더 신중을 기하고 검증을 더욱 엄격히 하겠다”고 말했다.

    노영민은 조국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는 과정에서 2011년 민주당 수석원내부대표 시절 권재진 당시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일을 놓고 부정적 태도를 보여온 점이 회자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8월9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했다. 9월9일 딸 특혜 장학금 논란과 사모펀드 등 여러 의혹에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을 두고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찬반 집회가 이어졌고 문재인 대통력 국정지지도는 취임 후 최저치를 보였다.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은 10월8일 검찰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10월14일 사의를 발표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0월16일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으로 대통령을 잘못 보좌한 노영민 비서실장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영민은 11월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인사에 관해 결론적으로 실패한 인사라고 인정했다.

    △국회와 경제계를 향한 소통 강화
    노영민은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과 야당 국회의원 사이에 소통 창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19년 1월11일 여야 대표를 만나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듣고 문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

    노영민은 “정부가 국회와의 소통을 중시하고 당과의 소통을 충실히 하지 않으면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민생경제에 있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노영민은 '원조 친문(친문재인)' 인사로 꼽히는 동시에 민주평화국민연대를 주도하는 등 더불어민주당 내에 탄탄한 기반을 갖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과 공관에서 만찬을 하는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상임위별로 수시로 만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노영민은 사업가 출신에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을 거쳐 온 이력을 활용해 문재인 대통령과 경제계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영민 비서실장을 임명하며 경제계 인사를 만나 소통에 힘써 줄 것을 지시했다.

    노영민은 2019년 1월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 행사에 참석해 기업인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며 취임 후 첫 경제계 소통을 시작했다.

    노영민은 1월16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티타임에서 “(2019 기업인과의 대화) 현장과 사전질문을 통해 나왔던 질문 하나하나에 다 답을 주겠다”며 “기업인들의 건의사항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노영민은 1월24일 중소기업중앙회를 방문해 중소기업인 40여 명과 비공개 간담회를 하고 업계의 현안을 챙겼다.

    노영민은 4월30일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 참석한데 이어 5월22일 충북 오송에서 열린 바이오헬스산업 혁신전략 발표 행사에도 참석하는 등 경제계와의 소통에 적극적 태도를 보였다.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징용 배상 판결을 내린 문제를 놓고 한국 정부와 부딪쳐 오다가 2019년 7월1일 수출규제를 강화했다. 

    노영민은 2019년 7월4일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등 재계 총수들의 만찬에 참석해 일본 수출규제에 관한 조언 등을 구했다.

    △청와대 안살림 기강 확립
    노영민은 후반기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가 성과 내기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청와대 내부 단속부터 철저히 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노영민은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 운영과 정국 구상을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며 검토해야 하는 청와대의 대면보고를 줄였다. 이에 반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각 부처 장관 등의 내각 보고는 확대했다.

    노영민은 취임 초부터 비서관실마다 걸려있는 '춘풍추상(남을 대할 때에는 봄바람처럼 관대하게 대하고 자신에게는 가을서리처럼 엄격하게 대한다)'을 언급하며 공직기강 확립을 주문했다. 

    2019년 설 연휴를 앞두고는 1층 검색대에서 퇴근하는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들을 대상으로 불시 가방 검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가방 검사에선 외부인들로부터의 선물수수, 공문서 무단유출 여부를 집중적으로 챙겼다.

    노영민은 3월 정부가 미세먼지 저감대책의 일환으로 시행한 청와대의 개인차량 이용 금지 조치에 도보로 출근하며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5월 집권 3년차에 접어들었다. 노영민은 5월13일 청와대 직원들에게 초심과 열정을 지켜나가고 성과, 소통과 경청, 절제와 규율의 청와대가 되자는 메시지를 보내며 문재인 정권 3년차의 각오를 다졌다.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 임명
    노영민은 문재인 정부의 집권 초기부터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 후보로 거명돼 왔다. 결국 임종석 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의 뒤를 이어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을 맡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월8일 노영민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으로 임명했다. 노영민은 1월9일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임종석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은 후임자인 노영민을 직접 소개하면서 "각계 현장과 풍부한 네트워크를 보유했고 소통능력도 강점으로 갖췄다"며 "기업과 민생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최고의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노영민은 임명 소감으로 “나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 참 두렵지만 경청을 통해 부족함을 메우려 한다”며 “어떤 주제든, 누구든, 정책이든 가리지 않고 경청하겠다”고 말했다.

    ▲ 노영민 주중대사(오른쪽)가 2018년 12월10일 서울 청와대에서 열린 '2018년도 재외공관장 만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중대사 활동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중국대사를 맡아 중국과 관계 개선 노력을 기울였다.

    2017년 8월 문재인 정부의 첫 주중 한국대사로 내정됐다. 2017년 9월 대사 자리를 수행하기 위해 민주당에서 탈당한 뒤 중국대사로 부임했다.

    중국대사로 임명된 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에 따른 갈등 완화에 힘썼다. 한국-중국 통화스와프의 연장에 이어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도 힘을 보탰다.

    중국 정부를 상대로 한국 기업의 담합 조사를 완화할 것을 요청하는 등 기업친화적 행보도 보였다. 삼성전자가 중국 시안에 세운 반도체공장 기공식에도 참석했다. 

    중국사와 한시, 바둑 등을 잘 알아 중국 인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내부의 인적 네트워크도 상당히 갖춘 것으로 전해졌다. 

    노영민은 2017년 9월29일 외교부 기자간담회에서 이마트와 롯데그룹의 중국 철수가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과 관련되지 않았다고 말해 경솔한 발언이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2017년 12월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임장 제정식 때 방명록에다 황하가 만 번을 굽이쳐 흘러도 반드시 동쪽으로 향한다는 의미의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글을 적었는데 이 말이 조선 시대 명나라 만력제를 기리는 사당 이름으로 사용되는 등 중국을 향한 충성을 의미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노영민은 12월19일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사대주의라면서 모든 일이 본래의 뜻대로 된다는 사필귀정의 뜻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사드 갈등 등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다시 잘 풀릴 것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문재인과 인연
    노영민은 정치권에서 친문재인계 핵심인사로 분류된다.

    2003년 대통령정책실 신행정수도건설 추진기획단 자문위원으로 일하던 시절 문재인과 처음 알게 됐다. 다만 그때는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계파 모임인 민주평화국민연대 사무총장을 역임하는 등 ‘친김근태’ 인사로 분류됐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012년 민주평화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을 중용하는 과정에서 노영민이 후보 비서실장을 맡으면서 ‘친문재인’으로 떠오르게 됐다.  

    노영민은 문재인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한 뒤 선거캠프에 참여한 의원 10여 명과 함께 ‘문지기(문재인을 지키는 사람)’ 모임을 만들었다. 그 이후 최측근 인사로 활동하면서 ‘원조 친문’ 또는 '문재인의 스핀닥터(정치전략가)'로 꼽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시절 노영민은 당직 인선을 총괄했다. 이때 문재인 대표의 측근 인사들을 일컫는 ‘6인회’ 구성원으로도 꼽혔다. 다른 5명은 전해철, 박남춘, 홍영표, 김태년, 윤호중 의원이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선거캠프의 조직본부장을 맡아 선거조직을 총괄하면서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당시 문재인 후보의 지지 모임인 ‘더불어포럼’ 출범을 주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전현직 의원 모임인 ‘달개비’에도 참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경선에 출마했을 때 한 라디오 토론회에서 정치적 고민을 누구와 상의하는지 질문받자 “노영민 의원과 상의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계 입문에서 3선 국회의원까지
    노영민은 1997년 정권교체 민주개혁 충북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1999년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원을 거쳐 2000년 새천년민주당 중앙당 부대변인을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선거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선대위 충북본부장을 맡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충북 청주시 흥덕구을 선거구에 출마해 52.44%의 득표율로 당선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통합민주당,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37.46%, 52.96%의 득표율로 연이어 당선했다. 

    민주당에서 원내대변인과 원내수석부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중진 정치인의 반열에 올랐다. 3선 의원 시절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경제 이슈에 밝은 의원으로도 꼽혔다. 

    노무현 정부 시절 열린우리당 의원들 가운데 이례적으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하는 등 시장에 비교적 가까운 행보를 보여줬다. 

    반도체와 IT산업을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2008년 ‘반도체의 날’ 제정을 제안했고 반도체에 관련된 여러 법안도 발의했다. 2008년 시스템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미래산업 지원을 논의하는 국회신성장산업포럼 설립에 참여해 2015년까지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초선의원 시절 조경태 열린우리당 의원과 ‘한미 의원 친선모임’을 만드는 등 외교관계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2015년에는 이명박 정부의 해외 자원 개발 문제를 조사했던 ‘국회 해외자원개발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노동운동가에서 사업가 거쳐 시민운동가 되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다니던 도중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77년 구국선언서 사건에 연관돼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혐의로 구속된 뒤 2년 동안 복역했다. 

    1979년 광복절 특사로 석방돼 사면복권된 뒤 1980년 연세대 복학생협의회장을 지냈다. 그러나 그해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수배되면서 제적됐다.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서울, 오산, 청주 등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이때 생계를 위해 전기공으로 일하면서 전기공사 2급 자격증을 따 경력을 쌓았다. 청주에서 전기기술자노조를 출범하기도 했다.

    1986년 전기공 경험을 살려 금강전기를 설립하면서 중소기업인으로 활동했다. 그 뒤 청주환경운동연합 이사, 아동학대방지센터 자문위원, 충북자치21 발행인 등 시민운동을 했다. 

    ◆ 비전과 과제

    ▲ 노영민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오른쪽)이 2019년 5월22일 충청북도 청주시 오송 CV센터에서 열린 바이오헬스 국가비전 선포식에 문재인 대통령과 이시종 충북도지사(왼쪽)와 함께 입장하고 있다.<연합뉴스>

    노영민은 문재인 정권이 집권 후반기에도 국정동력을 이어갈 수 있게 국회와 경제계 등 안팎의 사안을 조율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청와대 내부 단속을 강화해 문재인 정권 후반기 발생할 수 있는 논란을 미리 방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영민은 문재인 정권 후반기 정책 수행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국회와 소통을 확대하고 경제계와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잘 보좌하는 것도 노영민의 역할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로 낮아진 문재인 정권 지지율을 높여 국정운영에 힘이 실릴 수 있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다.

    잇따른 인사부실 논란에 대응해 인사시스템 신뢰도를 회복해야 한다.

    노영민은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유재수 감찰무마’, ‘울산시장 하명수사’ 등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에 관해서도 대처해야 한다.

    ◆ 평가

    ▲ 노영민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이 2019년 3월7일 미세먼지 비상저감 조치의 일환으로 청와대 인근 관저에서 걸어서 출근하고 있다.<연합뉴스>

    노영민은 엄격한 규율과 질서를 중시하면서 단호한 리더십의 소유자로 평가된다. 

    발언 논란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김현철 전 경제보좌관의 속전속결 사표 처리와 개발지역 아파트 구입건으로 논란이 됐던 김의겸 전 대변인에 관한 인사처리가 신속하게 진행된 것 등을 통해 규율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3선 의원 출신으로 조직 장악력이 뛰어난 인사로 알려졌다. 

    대표적 ‘친문’으로 꼽힌다.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아 문재인 정부의 집권 이후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 후보로 거명되기도 했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2019년 1월4일 YTN라디오 인터뷰에서 “노영민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선거캠프를) 실질적으로 지휘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과 관계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해 자신이 가장 아끼는 사람을 중국대사로 내보냈다”고 평가했다. 

    민주당에 계속 몸담아 왔지만 비교적 중도 성향에 현실감각을 갖춘 인사로 평가된다. 다만 정책적으로는 강성 이미지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의원 시절 기업 규제 완화와 반도체 육성 등에 상당한 관심을 보여 '시장을 아는 운동권'으로 꼽혔다. 2008년 '반도체의 날' 지정을 주도하기도 했다. 

    학생운동을 할 때는 활동가보다는 분석가나 전략가 성향이 강했다고 한다.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다가 금강전기를 설립해 기업가로 변신한 경험이 있다. 기업가 출신이고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을 지내는 등 경제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사로 꼽혔다.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제적된 후 생계를 위해 전기공사기술자 자격증을 따고 10여 년간 배전현장에서 일했다.

    이론은 강했는데 손재주가 없는 편이라 감전돼 추락할 뻔 하는 등 위험한 순간이 많았다고 한다. 금강전기를 세운 뒤에도 현장 일을 계속했다. 국회 입성 후에도 전력기술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자신을 국회 유일의 ‘전기당(黨)’ 당수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노영민은 주중대사로 시진핑을 여러 차례 만난 뒤 그를 카리스마가 있다고 평가했다. 또 원칙적이면서도 융통성도 지니고 있는 지도자라고 말했다.

    조상이 16대조 시절부터 충청북도 청주에서 살아왔다. 청주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만큼 지역구에 상당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다. 주중대사 시절인 2018년 6월19일 청주를 방문해 6.13 지방선거에 출마한 광역·기초의원 출마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취미는 바둑으로 아마2급의 실력이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한국과 중국 사이의 '바둑 의원외교'를 진행했고 주중대사 시절에도 바둑으로 중국 인사들과 교류했다.

    3대째 기독교를 믿는 독실한 신자다. 아버지는 장로, 형이 목사로 알려졌으며 자신은 교회 고등부 시절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학생운동을 할 때도 연세대학교 기독학생회(SCA)를 이끌었다. 

    예술에 상당한 관심을 보인다. 미술에 일가견이 있고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에는 문학서적에 심취했고 신동엽 시인에게 빠져 갑오년 동학혁명을 노래한 서사시 '금강' 전편을 암송했다고 한다. 1997년 지역 미술작가를 후원하는 동호인모임 무심미술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이장섭 충청북도 정무부지사와 시민운동을 함께 했다. 이장섭 부지사는 노영민이 3선 의원을 지내는 동안 보좌관과 정무 특보 등을 맡은 측근 인사이기도 하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진표 민주당 의원 등과 친분이 깊다고 알려졌다. 이재한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과도 가까운 사이로 전해졌다. 이재한 부회장은 노영민의 정계 입문을 이끈 이용희 전 국회 부의장의 아들이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영민이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으로 임명된 2019년 1월8일 페이스북에서 "노영민은 회사를 경영한 경험과 실물 경제의 이해를 바탕으로 경제계와 원활하게 소통하고 실물경제를 정확하게 진단해 대통령에게 고언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인사"라고 평가했다. 

    ◆ 사건사고

    ▲ 노영민 주중대사가 2017년 11월24일 주중문화원에서 한국-중국 문화교류 행사로 열린 인문학-인문악 융합콘서트에 참석해 자작시를 낭송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과 충돌
    노영민은 2019년 8월6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고(故) 김지태씨 소송 대리 건을 놓고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과 충돌하며 갈등을 빚었다.

    곽 의원은 “김씨가 상속세·법인세 소송에 허위증거를 제출해 이겼다”며 "문 대통령이 소송 대리로 가담했는지 물어보라"고 말했다.

    노영민은 "(공동 대리했지만) 깊게 관여하지 않았다"며 "지금 말씀에 책임질 수 있느냐. 여기서 말고 국회 정론관(기자회견장)에 가서 말씀하라"고 대답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삿대질을 했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오후 회의가 열리자마자 사과를 요구하며 20여분만에 회의를 중단했다.

    노영민은 11월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소리를 지르는 등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자유한국당과 청와대는 11월1일 질의자와 답변자로 설전을 벌이던 가운데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우기지 말라’는 발언을 계기로 고성이 오고 가며 파행을 겪었다.

    김현아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은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이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향해 고성과 호통을 친 일을 두고 "말려야 할 노영민 비서실장은 오히려 함께 소리를 지르며 가세했고 민주당 의원들은 방관했다"며 "역대 최악의 청와대가 얼마나 국민과 국회를 무시하는지 그 민낯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시집 강매 논란
    노영민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이던 2015년 말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 카드결제 단말기를 두고 국회 산업통상자원위 산하 기관들에 그의 시집 ‘바람 지나간 자리에 꽃이 핀다’를 판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강매 논란’에 휩싸였다. 

    시집 강매 논란의 여파로 노영민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에서 물러났다.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원도 자체조사를 통해 노영민에게 당원 자격정지 6개월의 징계를 처분했다. 노영민은 2016년 20대 총선에도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0대 총선에서 노영민의 지역구 청주 흥덕구에는 시인이자 비례 초선 의원이었던 도종환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노영민은 도종환 후보의 지원유세에 참여하며 당선에 일조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2019년 1월7일 노영민이 비서실장에 내정된 사실이 알려진 뒤 “노영민은 2015년에 저서를 강매해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당원 자격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았다”며 “현재 한국의 가장 큰 화두인 ‘갑횡포’외 공정성 문제에 근본적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들 특혜채용 논란
    노영민은 민주당 원내대변인 시절인 2010년 6월 당시 26세였던 아들이 홍재형 국회 부의장의 기획비서관(4급)으로 채용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특혜채용 의혹에 휩싸였다. 노영민의 아들은 2009년 시카고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앞서 노영민은 국회 부의장 경선에서 홍재형 부의장을 적극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노영민의 아들이 20대 중반에 국회 부의장의 기획비서관으로 채용된 점을 놓고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등으로부터 비판이 쏟아졌다. 

    노영민은 연합뉴스에 “홍재형 부의장실에서 영어에 능통하고 경제 분야를 보좌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미국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아들을 소개했다”며 “일반직이 아닌 별정직으로 채용돼 미국에 돌아가기 전인 2010년 말까지만 일하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노영민의 아들은 2010년 10월 사직했다.   

    △골프 외유 물의
    노영민을 비롯한 통합민주당 의원 9명이 2009년 1월9일~13일에 태국 방콕으로 골프여행을 함께 다녀왔다. 임시국회 회기 중에 여행을 다녀온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원혜영 통합민주당 원내대표는 “상임위원회 일정을 생각해 지장이 없도록 계획한 일정”이라면서도 “국회가 파행을 겪고 국민이 걱정하는 상황에서 의원들이 해외에 간 것은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노영민 의원실은 “박기춘 의원의 동생이 운영하는 리조트가 저렴하지만 운영이 어려운 상태라는 말을 듣고 주말을 이용해 회동한 것”이라며 “순수하게 의원 자비로 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숙박비 2만 원, 한끼식대 5천 원, 일일 골프 이용료 3만5천 원으로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호화성 골프여행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민주화운동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다니던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하는 구국선언서를 배포한 사건으로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구국선언서 초안을 작성하고 대강당 3층에서 유인물을 뿌리는 등 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1978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출을 거부하는 옥중투쟁을 벌이다 추가로 기소돼 추가로 징역 5년을 받았다. 1979년 광복절 형이 집행정지돼 석방됐고 1980년 복학해 연세대 복학생협의회 회장으로 다시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수배되면서 연세대학교에서 제적됐다.

    노영민은 2014년 재심에서 긴급조치 9호 위반과 관련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5년 6월에는 1억3420만9600원의 형사보상금 지급 판결을 받았다.

    ◆ 경력

    ▲ 노영민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이 2019년 1월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의 2기 청와대 비서진 임명 관련 답변을 듣다 미소짓고 있다.<연합뉴스>

    1986년 금강전기를 설립했다. 

    1995년 청주환경운동연합 이사를 지냈다. 

    1997년 아동학대방지센터 자문위원을 지냈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충북자치21 발행인을 맡았다.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정세분석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1999년 국민정치연구회 상임이사를 지냈다. 

    2000년 국민정치연구회 충북본부 대표를 맡았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 중앙당 당무위원을 역임했다.

    2003년 대통령정책실 신행정수도건설 추진기획단 자문위원으로 일했다. 

    2004년 5월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2007년 6월 열린우리당 원내대변인을 맡았다. 

    2008년 5월 제18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2009년 2월부터 2010년 8월까지 민주당 대변인을 지냈다. 

    2011년 5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를 역임했다. 

    2012년 12월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2년 5월 제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2015년 7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을 맡았다. 

    2017년 10월 제12대 주중국대한민국대사관 대사로 임명됐다. 

    2019년 1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으로 임명됐다.   

    ◆ 학력

    청주 석교초등학교와 주성중학교를 졸업했다.

    1976년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6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지만 민주화 운동으로 구속과 기소를 연이어 겪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수배되면서 제적됐다.

    1990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6남매 가운데 넷째다. 2018년 2월에 어머니가 구순을 맞았다.

    부인 최영분씨와 연세대학교 동문이다. 최영분씨와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공장에 함께 취업해 노동운동을 했다. 1983년 최영분씨와 결혼했다. 

    노해영씨와 노해준씨 2명의 아들을 뒀다. 노해영씨는 2010년 26세의 나이로 홍재형 국회 부의장실 기획비서관(4급)에 채용돼 특혜채용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 상훈

    2009년 한국전력기술인협회에서 주는 자랑스런 전기인상을 수상했다.

    2011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기술분야에서 의정활동 우수의원으로 뽑혔다. 

    2014년 제2회 한국신뢰성대상 공공부문 수상자로 뽑혔다. 

    2018년 12월 연세대 상경대학·경영대학 동창회로부터 자랑스런 연세상경인상 사회봉사부문을 수상했다.

    ◆ 기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019년 4월 내놓은 고위공직자 재산등록사항을 살펴보면 노영민은 자신과 가족들의 재산을 합쳐 모두 22억8천만 원의 재산을 보유했다. 전체 재산 가운데 아파트와 토지 등의 부동산이 12억7천만 원을 차지했다.

    수형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바람 지나간 자리에 꽃이 핀다(2007)’, ‘하늘 아래 딱 한 송이(2015)’ 등 시집 2권을 비롯해 ‘싯다르타에서 빌 게이츠까지(2009)’, ‘현대사의 비극들(2011)’, ‘내 삶에 다가온 열 개의 성서 구절(2013)’, ‘시대를 일깨운 편지들(2013)’ 등 저서 6권을 펴냈다. 

    ◆ 어록

    ▲ 노영민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가운데)이 2019년 11월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합동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김기현씨를 감찰한 적이 없다.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이 울산 현장에 간 것은 고래고기사건으로 검찰과 경찰이 다투는 상황에서 불협화음을 해소하기 위해 내려간 것이다. 압수수색 전에 ‘이첩된 첩보와 관련해 자료를 수집 중’이라는 보고를 한번 받았고 압수수색은 실행 20분 전에 보고받았다.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업무절차에 따른 것이며 수사를 압박한 적이 없다" (2019/11/29,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기현 전 울산시장 감찰과 경찰수사 압박 의혹을 부인하며)

    "지난 2년 반 문재인 정부 전반기가 대한민국 틀을 바꾸는 대전환의 시기였다면 남은 2년 반 후반기는 전환의 힘을 토대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해 도약해야 하는 시기다"(2019/11/10,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합동 기자간담회에서)

    "결론적으로 그렇게(실패한 인사) 됐다. 시스템에 부족함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언론과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일정 부분 보완해주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참 어려운게 많다"(2019/11/01, 국회 운영위원회 대통령비서실 국정감사에서 유성엽 무소속 의원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인사는 실패인가'라고 묻자)

    "일본의 독도 시비는 대한민국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부인하는 것으로 일본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다. 일본의 이율배반적 태도와 부당한 처사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연장하는 것은 자주국가로서 당당하지 못한 태도다"(2019/08/26,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우리 군의 '동해 영토 수호훈련'을 두고 일본이 항의한 데 관해)

    "기술 패권에 다시는 휘둘리지 않도록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기회로 만들겠다. 막다른 길을 선택한 일본에게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 우리도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고 관광·식품·폐기물 등에서 국민을 위한 안전 조치를 강화하겠다" (2019/08/06,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일본의 경제보복을 두고)

    "문재인 정부가 분배는 중시하면서 성장은 소홀히 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국민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연평균 1882달러 증가했다. 이명박 정부 258달러, 박근혜 정부 814달러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2019/07/30, 사회관계망서비스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서) 

    "꼭 66년만이다. 미국과 북한의 정상이 정전선언 이후 처음으로 판문점에서 만났다. 너무나도 어렵게, 그런데 너무나도 쉽게 군사분계선을 함께 넘었다. 평화가 없으면 미래가 없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곧 길이다."(2019/06/30, 남북미 정상 판문점 회동 이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반독재 투쟁 과정에서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이 당했던 수난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먹먹하다. 김 전 의원을 비롯한 선배들의 민주주의와 통일, 평화를 위한 업적을 가슴에 새기고 우리 후배들도 열심히 하겠다.” (2019/04/21, 김대중 전 대통령 장남인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 빈소에서)

    "국민들이 반드시 진상과 배후를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진상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어떤 성역도 없어야 하고 어떠한 예단도 없어야 된다고 본다."(2019/04/04,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뇌물수수와 성범죄 의혹 재수사와 관련해)

    "인사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데 인사추천위원장으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인사 추천에 더욱 신중을 기하고 검증을 더욱 엄격히 해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2019/04/04, 국회 운영위원회 업무보고에 앞서)

    "청와대의 업무를 살펴본 결과 국정 운영과 정국 구상을 위한 대통령의 시간 확보가 절실하다. 참모진의 대면보고를 줄여야 한다." (2019/01/23, 대통령의 삶에 쉼표를 찍어주자며)

    “문재인 대통령께서 친노동적이라고 많이 알려졌지만 아마 변호사 시절 인권 변호를 해서 이미지가 그런 면이 있는 것 같다. 친기업적 마인드를 지니고 있고 시장 기능의 중요성도 잘 알고 있다.” (2019/01/11,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회동에서)

    "청와대에 일찍 와서 몇몇 방을 들러 봤는데 '춘풍추상(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의 줄임말, 스스로에게는 가을서리처럼 상대방에게는 봄바람처럼 대하라)'이라는 글이 걸려있는 것을 봤다. 청와대 비서실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되새겨야 할 한자성어다. 실장이 됐든 수석이 됐든 나는 비서일 뿐이다. 그것을 항상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2019/01/08, 서울 청와대 대브리핑룸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소감을 밝히면서)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에 안정적인 발전은 역내 안정과 평화·번영에 중요한 요소다. 현재 미·중간 이견이 있는 사안들도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희망한다.” (2018/11/28, 충청신문과 인터뷰에서 중국과 미국의 갈등을 두고)

    “북미정상회담 합의사항이 신속히 이행돼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 정착과 관련된 실질적인 진전을 거두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으며 우리 정부는 중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계속할 수 있도록 전략적 소통을 이어나갈 것이다.” (2018/06/26, 베이징 특파원단과 만나)

    “중국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아 임시정부 청사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잘 보존됐다. 앞으로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 (2018/04/13, 중국 상하이 랭함호텔에서 열린 임시정부 수립 99주년 행사에서)

    “만절필동은 황하가 어떠한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결국은 동쪽으로 간다는 의지를 표현한 말이다. 고전을 공부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올해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미 주호영 원내대표가 이걸 인용했다.” (2017/12/19,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서 만절필동이 중국을 향한 충성을 표현했다는 주장과 관련해)

    “농부가 밭을 탓할 수 없듯 외부환경이 본인 의지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극복하는 스스로의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자구노력은 기업의 몫이다. 이마트가 철수했는데 사드와 아무 관계가 없다. 사드 터지기 전에 철수가 이미 결정됐고 매각을 위해 노력했다.” (2017/09/29, 외교부 기자단과 간담회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에 관련된 중국의 경제 보복과 관련해)
     
    “새누리당은 결국 국민의당과 합친다고 생각한다. 국민의당과 합당하고 싶을 것이다.” (2016/12/03, 한 비공개 강연에서)

    “책임 있게 내 거취를 정하는 것이 제가 사랑하는 당을 위한 도리라 믿는다. 그동안 정말 고통스러웠고 알려진 것과 실체적 진실 간 괴리 사이에서 억울한 점도 없지 않았지만 ‘수원수구(誰怨誰咎,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탓하랴)인 만큼 모두 내 부족함과 불찰에서 비롯된 일이다.” (2016/02/01, 시집 강매 논란으로 중징계를 받은 뒤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VIP’ 자원외교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 최경환 부총리, 윤상직 장관, 박영준 전 차관 등 당시 정권의 실세들이 주도한 것이다. 전문성도 없는 정권 실세들의 선택으로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 것을 놓고 국민 앞에 진실을 밝혀야 한다.” (2014/11/24, 새정치민주연합 ‘MB정부 해외자원개발 국부유출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 시절 이명박 정부의 해외자원외교에 관련된 의혹을 제기하면서)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는 '전깃밥' 외에는 먹어본 적이 없다. 100만 전기인의 애환을 잘 알고 있다. 전기는 완벽한 세계다. 전기를 다루면서 꼼수를 부리면 죽음과 직결될 수 있다.” (2013/06/12, 전기 관련 경력을 소개하며)

    “반도체산업은 우리나라 첨단 IT산업의 기본 동력이다. 이런 반도체산업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13/08/28,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반도체 장비·소재산업 육성전략’ 세미나에서)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의 후보 경선 과정을 통해 선택된다면 당 바깥에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관계에서도 모든 면에서 우위에 선다.” (2012/08/07,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 시절 불교방송 라디오에서)

    “한나라당이 감세 철회와 반값 등록금 등을 추진하고 있다. 요즘 한나라당은 확실히 ‘짝퉁 민주당’이다.” (2011/06/01,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이제 매력적이지만 힘들었던 550일간의 여행을 마친다. 정론관에서 만난 수많은 언론인들과의 행복한 시간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대변인으로서는 좀 나이가 많지 않나 라는 내 나름대로의 쑥스러움도 이 행복함으로 넘길 수 있었다. 아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순간일 것이다.” (2010/08/05, 민주당 대변인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이명박 정권이 대한민국을 유신, 5공 시절로 돌려놓고 있는 줄 알았더니 조선 시대로 돌려놓으려고 했다는 말인가. 조선 시대의 우리 선배들이 모욕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조선 시대가 아니라 그 이전 시대로 돌려놓은 권력의 전횡이다.” (2010/07/09,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이 KB금융지주 회장의 인선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비판하면서)

    “부자 자녀들은 맛있는 도시락을 먹고 서민 자녀만 따로 모여 공짜 밥을 먹어야 하느냐. 빈부격차로 국민들의 편을 가르고 어린 학생들의 마음에 상처를 줘선 안 된다.” (2010/02/19, 무상급식을 제한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나 있었던 언론통제 수준을 뛰어넘는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이 2010년 대한민국에서 청와대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이 사실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암흑기가 도래한 증거다.” (2010/01/15, 한겨레에서 폭로한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의 홍보 문건 논란을 비판하는 논평에서)

    “이명박 정부 1년 동안 민주주의는 후퇴했고 경제는 나락으로 빠져들었고 한반도는 위기로 치닫고 있다. 다음 해 이맘때 2주년을 평가할 때는 제발 긍정적인 평가가 되길 기대한다.” (2009/02/25, 국회 브리핑에서 이명박 정부의 출범 1주년을 평가하면서)

    “강경진압은 강경 대응을 불러온다. 불행한 사태만 초래할 뿐이다.” (2009/02/09, 용산 철거 참사를 계기로 경찰청이 시설 점거 농성의 대처를 강화할 계획을 세우자 반대하면서)

    “키코 등 환헤지 금융상품에 가입했던 중소기업의 위기는 환리스크 관리의 한계이고 실패 사례다. 중소기업들이 참여하는 풀링 시스템을 갖춰 기업 스스로 환위험을 관리할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2008/10/08,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의 코트라와 한국수출보험공사 국정감사에서)

    “일정 규모 이상 국가 가운데 지난 5년 동안 우리나라와 비교해 경제성장률이 높은 나라는 지구상에 한 곳도 없다.” (2008/05/26,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통합민주당 18대 총선 당선자 워크숍에서 전영기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노무현 정부의 무능력함을 주장하자) 

    “개성공단의 지속 여부는 남한의 필요에 따라 전적으로 이뤄진다. 개성공단이 중단되면 우리 기업의 막대한 손해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 한반도 평화도 후퇴한다.” (2006/11/09,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수도 이전은 눈앞에 닥친 현실이며 동시에 역사적 소명이다. 지적 나태나 능력 부족으로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지도자는 역사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는 사람이다.” (2004/10/18, 국회 건설교통위원회의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이명박 서울시장을 추궁하면서)

    “선관위의 활동 자제 권고가 있는 데다 선거를 앞두고 산악회가 사조직 정도로 비춰지고 있어 자진 해체하기로 했다. 순수한 산행 모임으로 애정도 있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운영위원회를 거쳐 결정했다.” (2003/12/17, 한겨레 기사에서 4년여 동안 운영해 왔던 ‘영우산악회’를 해체하는 이유로)

    “한 줄 시 쓰기가 이토록 어려움은/나의 삶이/진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시를 사랑함이/우리 삶을 사랑함이란 것을/알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는/진정/시를 사랑했다.” (1995/04/28, 자작시 ‘우리는 진정 시를 사랑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윤종학 기자]
  • ◆ 활동의 공과

    ▲ 노영민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후임 실장과 임종석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이 2019년 1월8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노영민은 청와대가 김기현 전 울산시장과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관해 '하명수사'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청와대는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김기현 울산시장 측근의 비리에 관해 울산 경찰에 하명수사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청와대가 하명지시 문건을 보내 강제수사한 의혹이 있다는 입장을 내놨고 이에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경찰에 지시한 것이 아니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영민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 감찰과 경찰수사 압박 의혹을 부인하며 적극 해명했다. 

    노영민은 2019년 11월29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기현씨를 감찰한 적이 없다"며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이 울산 현장에 간 것은 '고래고기'사건으로 검찰과 경찰이 다투는 상황에서 불협화음을 해소하기 위해 내려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압수수색 전에 ‘이첩된 첩보와 관련해 자료를 수집 중’이라는 보고를 한번 받았고 압수수색은 실행 20분 전에 보고받았다"며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업무절차에 따른 것이며 수사를 압박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노영민은 청와대의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무마 의혹에 관해서도 해명했다.

    노영민은 2019년 11월29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당시 수사권이 없는 민정수석실에서 제한된 범위 내에서 조사한 이후에 일정 정도의 문제점을 확인하고 인사조치한 수준에서 정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부실인사 논란
    문재인 정부는 2019년 인사 문제로 홍역을 앓았다. 노영민은 인사추천위원장인 만큼 부실인사 논란의 가운데 놓이며 비판을 받았다.

    노영민은 2019년 4월4일 부동산 투기와 해외 부실학회 참석 의혹 등으로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와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낙마에 관해 공식 사과했다.

    노영민은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인사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에 관해 인사추천위원장으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인사추천에 더 신중을 기하고 검증을 더욱 엄격히 하겠다”고 말했다.

    노영민은 조국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는 과정에서 2011년 민주당 수석원내부대표 시절 권재진 당시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일을 놓고 부정적 태도를 보여온 점이 회자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8월9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했다. 9월9일 딸 특혜 장학금 논란과 사모펀드 등 여러 의혹에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을 두고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찬반 집회가 이어졌고 문재인 대통력 국정지지도는 취임 후 최저치를 보였다.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은 10월8일 검찰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10월14일 사의를 발표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0월16일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으로 대통령을 잘못 보좌한 노영민 비서실장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영민은 11월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인사에 관해 결론적으로 실패한 인사라고 인정했다.

    △국회와 경제계를 향한 소통 강화
    노영민은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과 야당 국회의원 사이에 소통 창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19년 1월11일 여야 대표를 만나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듣고 문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

    노영민은 “정부가 국회와의 소통을 중시하고 당과의 소통을 충실히 하지 않으면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민생경제에 있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노영민은 '원조 친문(친문재인)' 인사로 꼽히는 동시에 민주평화국민연대를 주도하는 등 더불어민주당 내에 탄탄한 기반을 갖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과 공관에서 만찬을 하는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상임위별로 수시로 만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노영민은 사업가 출신에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을 거쳐 온 이력을 활용해 문재인 대통령과 경제계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영민 비서실장을 임명하며 경제계 인사를 만나 소통에 힘써 줄 것을 지시했다.

    노영민은 2019년 1월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 행사에 참석해 기업인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며 취임 후 첫 경제계 소통을 시작했다.

    노영민은 1월16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티타임에서 “(2019 기업인과의 대화) 현장과 사전질문을 통해 나왔던 질문 하나하나에 다 답을 주겠다”며 “기업인들의 건의사항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노영민은 1월24일 중소기업중앙회를 방문해 중소기업인 40여 명과 비공개 간담회를 하고 업계의 현안을 챙겼다.

    노영민은 4월30일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 참석한데 이어 5월22일 충북 오송에서 열린 바이오헬스산업 혁신전략 발표 행사에도 참석하는 등 경제계와의 소통에 적극적 태도를 보였다.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징용 배상 판결을 내린 문제를 놓고 한국 정부와 부딪쳐 오다가 2019년 7월1일 수출규제를 강화했다. 

    노영민은 2019년 7월4일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등 재계 총수들의 만찬에 참석해 일본 수출규제에 관한 조언 등을 구했다.

    △청와대 안살림 기강 확립
    노영민은 후반기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가 성과 내기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청와대 내부 단속부터 철저히 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노영민은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 운영과 정국 구상을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며 검토해야 하는 청와대의 대면보고를 줄였다. 이에 반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각 부처 장관 등의 내각 보고는 확대했다.

    노영민은 취임 초부터 비서관실마다 걸려있는 '춘풍추상(남을 대할 때에는 봄바람처럼 관대하게 대하고 자신에게는 가을서리처럼 엄격하게 대한다)'을 언급하며 공직기강 확립을 주문했다. 

    2019년 설 연휴를 앞두고는 1층 검색대에서 퇴근하는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들을 대상으로 불시 가방 검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가방 검사에선 외부인들로부터의 선물수수, 공문서 무단유출 여부를 집중적으로 챙겼다.

    노영민은 3월 정부가 미세먼지 저감대책의 일환으로 시행한 청와대의 개인차량 이용 금지 조치에 도보로 출근하며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5월 집권 3년차에 접어들었다. 노영민은 5월13일 청와대 직원들에게 초심과 열정을 지켜나가고 성과, 소통과 경청, 절제와 규율의 청와대가 되자는 메시지를 보내며 문재인 정권 3년차의 각오를 다졌다.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 임명
    노영민은 문재인 정부의 집권 초기부터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 후보로 거명돼 왔다. 결국 임종석 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의 뒤를 이어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을 맡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월8일 노영민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으로 임명했다. 노영민은 1월9일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임종석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은 후임자인 노영민을 직접 소개하면서 "각계 현장과 풍부한 네트워크를 보유했고 소통능력도 강점으로 갖췄다"며 "기업과 민생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최고의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노영민은 임명 소감으로 “나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 참 두렵지만 경청을 통해 부족함을 메우려 한다”며 “어떤 주제든, 누구든, 정책이든 가리지 않고 경청하겠다”고 말했다.

    ▲ 노영민 주중대사(오른쪽)가 2018년 12월10일 서울 청와대에서 열린 '2018년도 재외공관장 만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중대사 활동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중국대사를 맡아 중국과 관계 개선 노력을 기울였다.

    2017년 8월 문재인 정부의 첫 주중 한국대사로 내정됐다. 2017년 9월 대사 자리를 수행하기 위해 민주당에서 탈당한 뒤 중국대사로 부임했다.

    중국대사로 임명된 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에 따른 갈등 완화에 힘썼다. 한국-중국 통화스와프의 연장에 이어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도 힘을 보탰다.

    중국 정부를 상대로 한국 기업의 담합 조사를 완화할 것을 요청하는 등 기업친화적 행보도 보였다. 삼성전자가 중국 시안에 세운 반도체공장 기공식에도 참석했다. 

    중국사와 한시, 바둑 등을 잘 알아 중국 인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내부의 인적 네트워크도 상당히 갖춘 것으로 전해졌다. 

    노영민은 2017년 9월29일 외교부 기자간담회에서 이마트와 롯데그룹의 중국 철수가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과 관련되지 않았다고 말해 경솔한 발언이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2017년 12월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임장 제정식 때 방명록에다 황하가 만 번을 굽이쳐 흘러도 반드시 동쪽으로 향한다는 의미의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글을 적었는데 이 말이 조선 시대 명나라 만력제를 기리는 사당 이름으로 사용되는 등 중국을 향한 충성을 의미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노영민은 12월19일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사대주의라면서 모든 일이 본래의 뜻대로 된다는 사필귀정의 뜻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사드 갈등 등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다시 잘 풀릴 것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문재인과 인연
    노영민은 정치권에서 친문재인계 핵심인사로 분류된다.

    2003년 대통령정책실 신행정수도건설 추진기획단 자문위원으로 일하던 시절 문재인과 처음 알게 됐다. 다만 그때는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계파 모임인 민주평화국민연대 사무총장을 역임하는 등 ‘친김근태’ 인사로 분류됐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012년 민주평화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을 중용하는 과정에서 노영민이 후보 비서실장을 맡으면서 ‘친문재인’으로 떠오르게 됐다.  

    노영민은 문재인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한 뒤 선거캠프에 참여한 의원 10여 명과 함께 ‘문지기(문재인을 지키는 사람)’ 모임을 만들었다. 그 이후 최측근 인사로 활동하면서 ‘원조 친문’ 또는 '문재인의 스핀닥터(정치전략가)'로 꼽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시절 노영민은 당직 인선을 총괄했다. 이때 문재인 대표의 측근 인사들을 일컫는 ‘6인회’ 구성원으로도 꼽혔다. 다른 5명은 전해철, 박남춘, 홍영표, 김태년, 윤호중 의원이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선거캠프의 조직본부장을 맡아 선거조직을 총괄하면서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당시 문재인 후보의 지지 모임인 ‘더불어포럼’ 출범을 주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전현직 의원 모임인 ‘달개비’에도 참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경선에 출마했을 때 한 라디오 토론회에서 정치적 고민을 누구와 상의하는지 질문받자 “노영민 의원과 상의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계 입문에서 3선 국회의원까지
    노영민은 1997년 정권교체 민주개혁 충북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1999년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원을 거쳐 2000년 새천년민주당 중앙당 부대변인을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선거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선대위 충북본부장을 맡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충북 청주시 흥덕구을 선거구에 출마해 52.44%의 득표율로 당선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통합민주당,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37.46%, 52.96%의 득표율로 연이어 당선했다. 

    민주당에서 원내대변인과 원내수석부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중진 정치인의 반열에 올랐다. 3선 의원 시절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경제 이슈에 밝은 의원으로도 꼽혔다. 

    노무현 정부 시절 열린우리당 의원들 가운데 이례적으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하는 등 시장에 비교적 가까운 행보를 보여줬다. 

    반도체와 IT산업을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2008년 ‘반도체의 날’ 제정을 제안했고 반도체에 관련된 여러 법안도 발의했다. 2008년 시스템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미래산업 지원을 논의하는 국회신성장산업포럼 설립에 참여해 2015년까지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초선의원 시절 조경태 열린우리당 의원과 ‘한미 의원 친선모임’을 만드는 등 외교관계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2015년에는 이명박 정부의 해외 자원 개발 문제를 조사했던 ‘국회 해외자원개발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노동운동가에서 사업가 거쳐 시민운동가 되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다니던 도중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77년 구국선언서 사건에 연관돼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혐의로 구속된 뒤 2년 동안 복역했다. 

    1979년 광복절 특사로 석방돼 사면복권된 뒤 1980년 연세대 복학생협의회장을 지냈다. 그러나 그해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수배되면서 제적됐다.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서울, 오산, 청주 등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이때 생계를 위해 전기공으로 일하면서 전기공사 2급 자격증을 따 경력을 쌓았다. 청주에서 전기기술자노조를 출범하기도 했다.

    1986년 전기공 경험을 살려 금강전기를 설립하면서 중소기업인으로 활동했다. 그 뒤 청주환경운동연합 이사, 아동학대방지센터 자문위원, 충북자치21 발행인 등 시민운동을 했다. 

  • ◆ 비전과 과제

    ▲ 노영민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오른쪽)이 2019년 5월22일 충청북도 청주시 오송 CV센터에서 열린 바이오헬스 국가비전 선포식에 문재인 대통령과 이시종 충북도지사(왼쪽)와 함께 입장하고 있다.<연합뉴스>

    노영민은 문재인 정권이 집권 후반기에도 국정동력을 이어갈 수 있게 국회와 경제계 등 안팎의 사안을 조율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청와대 내부 단속을 강화해 문재인 정권 후반기 발생할 수 있는 논란을 미리 방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영민은 문재인 정권 후반기 정책 수행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국회와 소통을 확대하고 경제계와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잘 보좌하는 것도 노영민의 역할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로 낮아진 문재인 정권 지지율을 높여 국정운영에 힘이 실릴 수 있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다.

    잇따른 인사부실 논란에 대응해 인사시스템 신뢰도를 회복해야 한다.

    노영민은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유재수 감찰무마’, ‘울산시장 하명수사’ 등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에 관해서도 대처해야 한다.

  • ◆ 평가

    ▲ 노영민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이 2019년 3월7일 미세먼지 비상저감 조치의 일환으로 청와대 인근 관저에서 걸어서 출근하고 있다.<연합뉴스>

    노영민은 엄격한 규율과 질서를 중시하면서 단호한 리더십의 소유자로 평가된다. 

    발언 논란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김현철 전 경제보좌관의 속전속결 사표 처리와 개발지역 아파트 구입건으로 논란이 됐던 김의겸 전 대변인에 관한 인사처리가 신속하게 진행된 것 등을 통해 규율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3선 의원 출신으로 조직 장악력이 뛰어난 인사로 알려졌다. 

    대표적 ‘친문’으로 꼽힌다.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아 문재인 정부의 집권 이후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 후보로 거명되기도 했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2019년 1월4일 YTN라디오 인터뷰에서 “노영민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선거캠프를) 실질적으로 지휘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과 관계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해 자신이 가장 아끼는 사람을 중국대사로 내보냈다”고 평가했다. 

    민주당에 계속 몸담아 왔지만 비교적 중도 성향에 현실감각을 갖춘 인사로 평가된다. 다만 정책적으로는 강성 이미지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의원 시절 기업 규제 완화와 반도체 육성 등에 상당한 관심을 보여 '시장을 아는 운동권'으로 꼽혔다. 2008년 '반도체의 날' 지정을 주도하기도 했다. 

    학생운동을 할 때는 활동가보다는 분석가나 전략가 성향이 강했다고 한다.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다가 금강전기를 설립해 기업가로 변신한 경험이 있다. 기업가 출신이고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을 지내는 등 경제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사로 꼽혔다.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제적된 후 생계를 위해 전기공사기술자 자격증을 따고 10여 년간 배전현장에서 일했다.

    이론은 강했는데 손재주가 없는 편이라 감전돼 추락할 뻔 하는 등 위험한 순간이 많았다고 한다. 금강전기를 세운 뒤에도 현장 일을 계속했다. 국회 입성 후에도 전력기술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자신을 국회 유일의 ‘전기당(黨)’ 당수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노영민은 주중대사로 시진핑을 여러 차례 만난 뒤 그를 카리스마가 있다고 평가했다. 또 원칙적이면서도 융통성도 지니고 있는 지도자라고 말했다.

    조상이 16대조 시절부터 충청북도 청주에서 살아왔다. 청주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만큼 지역구에 상당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다. 주중대사 시절인 2018년 6월19일 청주를 방문해 6.13 지방선거에 출마한 광역·기초의원 출마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취미는 바둑으로 아마2급의 실력이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한국과 중국 사이의 '바둑 의원외교'를 진행했고 주중대사 시절에도 바둑으로 중국 인사들과 교류했다.

    3대째 기독교를 믿는 독실한 신자다. 아버지는 장로, 형이 목사로 알려졌으며 자신은 교회 고등부 시절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학생운동을 할 때도 연세대학교 기독학생회(SCA)를 이끌었다. 

    예술에 상당한 관심을 보인다. 미술에 일가견이 있고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에는 문학서적에 심취했고 신동엽 시인에게 빠져 갑오년 동학혁명을 노래한 서사시 '금강' 전편을 암송했다고 한다. 1997년 지역 미술작가를 후원하는 동호인모임 무심미술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이장섭 충청북도 정무부지사와 시민운동을 함께 했다. 이장섭 부지사는 노영민이 3선 의원을 지내는 동안 보좌관과 정무 특보 등을 맡은 측근 인사이기도 하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진표 민주당 의원 등과 친분이 깊다고 알려졌다. 이재한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과도 가까운 사이로 전해졌다. 이재한 부회장은 노영민의 정계 입문을 이끈 이용희 전 국회 부의장의 아들이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영민이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으로 임명된 2019년 1월8일 페이스북에서 "노영민은 회사를 경영한 경험과 실물 경제의 이해를 바탕으로 경제계와 원활하게 소통하고 실물경제를 정확하게 진단해 대통령에게 고언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인사"라고 평가했다. 

    ◆ 사건사고

    ▲ 노영민 주중대사가 2017년 11월24일 주중문화원에서 한국-중국 문화교류 행사로 열린 인문학-인문악 융합콘서트에 참석해 자작시를 낭송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과 충돌
    노영민은 2019년 8월6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고(故) 김지태씨 소송 대리 건을 놓고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과 충돌하며 갈등을 빚었다.

    곽 의원은 “김씨가 상속세·법인세 소송에 허위증거를 제출해 이겼다”며 "문 대통령이 소송 대리로 가담했는지 물어보라"고 말했다.

    노영민은 "(공동 대리했지만) 깊게 관여하지 않았다"며 "지금 말씀에 책임질 수 있느냐. 여기서 말고 국회 정론관(기자회견장)에 가서 말씀하라"고 대답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삿대질을 했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오후 회의가 열리자마자 사과를 요구하며 20여분만에 회의를 중단했다.

    노영민은 11월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소리를 지르는 등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자유한국당과 청와대는 11월1일 질의자와 답변자로 설전을 벌이던 가운데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우기지 말라’는 발언을 계기로 고성이 오고 가며 파행을 겪었다.

    김현아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은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이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향해 고성과 호통을 친 일을 두고 "말려야 할 노영민 비서실장은 오히려 함께 소리를 지르며 가세했고 민주당 의원들은 방관했다"며 "역대 최악의 청와대가 얼마나 국민과 국회를 무시하는지 그 민낯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시집 강매 논란
    노영민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이던 2015년 말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 카드결제 단말기를 두고 국회 산업통상자원위 산하 기관들에 그의 시집 ‘바람 지나간 자리에 꽃이 핀다’를 판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강매 논란’에 휩싸였다. 

    시집 강매 논란의 여파로 노영민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에서 물러났다.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원도 자체조사를 통해 노영민에게 당원 자격정지 6개월의 징계를 처분했다. 노영민은 2016년 20대 총선에도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0대 총선에서 노영민의 지역구 청주 흥덕구에는 시인이자 비례 초선 의원이었던 도종환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노영민은 도종환 후보의 지원유세에 참여하며 당선에 일조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2019년 1월7일 노영민이 비서실장에 내정된 사실이 알려진 뒤 “노영민은 2015년에 저서를 강매해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당원 자격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았다”며 “현재 한국의 가장 큰 화두인 ‘갑횡포’외 공정성 문제에 근본적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들 특혜채용 논란
    노영민은 민주당 원내대변인 시절인 2010년 6월 당시 26세였던 아들이 홍재형 국회 부의장의 기획비서관(4급)으로 채용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특혜채용 의혹에 휩싸였다. 노영민의 아들은 2009년 시카고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앞서 노영민은 국회 부의장 경선에서 홍재형 부의장을 적극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노영민의 아들이 20대 중반에 국회 부의장의 기획비서관으로 채용된 점을 놓고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등으로부터 비판이 쏟아졌다. 

    노영민은 연합뉴스에 “홍재형 부의장실에서 영어에 능통하고 경제 분야를 보좌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미국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아들을 소개했다”며 “일반직이 아닌 별정직으로 채용돼 미국에 돌아가기 전인 2010년 말까지만 일하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노영민의 아들은 2010년 10월 사직했다.   

    △골프 외유 물의
    노영민을 비롯한 통합민주당 의원 9명이 2009년 1월9일~13일에 태국 방콕으로 골프여행을 함께 다녀왔다. 임시국회 회기 중에 여행을 다녀온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원혜영 통합민주당 원내대표는 “상임위원회 일정을 생각해 지장이 없도록 계획한 일정”이라면서도 “국회가 파행을 겪고 국민이 걱정하는 상황에서 의원들이 해외에 간 것은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노영민 의원실은 “박기춘 의원의 동생이 운영하는 리조트가 저렴하지만 운영이 어려운 상태라는 말을 듣고 주말을 이용해 회동한 것”이라며 “순수하게 의원 자비로 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숙박비 2만 원, 한끼식대 5천 원, 일일 골프 이용료 3만5천 원으로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호화성 골프여행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민주화운동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다니던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하는 구국선언서를 배포한 사건으로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구국선언서 초안을 작성하고 대강당 3층에서 유인물을 뿌리는 등 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1978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출을 거부하는 옥중투쟁을 벌이다 추가로 기소돼 추가로 징역 5년을 받았다. 1979년 광복절 형이 집행정지돼 석방됐고 1980년 복학해 연세대 복학생협의회 회장으로 다시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수배되면서 연세대학교에서 제적됐다.

    노영민은 2014년 재심에서 긴급조치 9호 위반과 관련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5년 6월에는 1억3420만9600원의 형사보상금 지급 판결을 받았다.

  • ◆ 경력

    ▲ 노영민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이 2019년 1월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의 2기 청와대 비서진 임명 관련 답변을 듣다 미소짓고 있다.<연합뉴스>

    1986년 금강전기를 설립했다. 

    1995년 청주환경운동연합 이사를 지냈다. 

    1997년 아동학대방지센터 자문위원을 지냈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충북자치21 발행인을 맡았다.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정세분석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1999년 국민정치연구회 상임이사를 지냈다. 

    2000년 국민정치연구회 충북본부 대표를 맡았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 중앙당 당무위원을 역임했다.

    2003년 대통령정책실 신행정수도건설 추진기획단 자문위원으로 일했다. 

    2004년 5월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2007년 6월 열린우리당 원내대변인을 맡았다. 

    2008년 5월 제18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2009년 2월부터 2010년 8월까지 민주당 대변인을 지냈다. 

    2011년 5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를 역임했다. 

    2012년 12월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2년 5월 제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2015년 7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을 맡았다. 

    2017년 10월 제12대 주중국대한민국대사관 대사로 임명됐다. 

    2019년 1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으로 임명됐다.   

    ◆ 학력

    청주 석교초등학교와 주성중학교를 졸업했다.

    1976년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6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지만 민주화 운동으로 구속과 기소를 연이어 겪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수배되면서 제적됐다.

    1990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6남매 가운데 넷째다. 2018년 2월에 어머니가 구순을 맞았다.

    부인 최영분씨와 연세대학교 동문이다. 최영분씨와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공장에 함께 취업해 노동운동을 했다. 1983년 최영분씨와 결혼했다. 

    노해영씨와 노해준씨 2명의 아들을 뒀다. 노해영씨는 2010년 26세의 나이로 홍재형 국회 부의장실 기획비서관(4급)에 채용돼 특혜채용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 상훈

    2009년 한국전력기술인협회에서 주는 자랑스런 전기인상을 수상했다.

    2011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기술분야에서 의정활동 우수의원으로 뽑혔다. 

    2014년 제2회 한국신뢰성대상 공공부문 수상자로 뽑혔다. 

    2018년 12월 연세대 상경대학·경영대학 동창회로부터 자랑스런 연세상경인상 사회봉사부문을 수상했다.

    ◆ 기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019년 4월 내놓은 고위공직자 재산등록사항을 살펴보면 노영민은 자신과 가족들의 재산을 합쳐 모두 22억8천만 원의 재산을 보유했다. 전체 재산 가운데 아파트와 토지 등의 부동산이 12억7천만 원을 차지했다.

    수형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바람 지나간 자리에 꽃이 핀다(2007)’, ‘하늘 아래 딱 한 송이(2015)’ 등 시집 2권을 비롯해 ‘싯다르타에서 빌 게이츠까지(2009)’, ‘현대사의 비극들(2011)’, ‘내 삶에 다가온 열 개의 성서 구절(2013)’, ‘시대를 일깨운 편지들(2013)’ 등 저서 6권을 펴냈다. 

  • ◆ 어록

    ▲ 노영민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실장(가운데)이 2019년 11월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합동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김기현씨를 감찰한 적이 없다.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이 울산 현장에 간 것은 고래고기사건으로 검찰과 경찰이 다투는 상황에서 불협화음을 해소하기 위해 내려간 것이다. 압수수색 전에 ‘이첩된 첩보와 관련해 자료를 수집 중’이라는 보고를 한번 받았고 압수수색은 실행 20분 전에 보고받았다.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업무절차에 따른 것이며 수사를 압박한 적이 없다" (2019/11/29,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기현 전 울산시장 감찰과 경찰수사 압박 의혹을 부인하며)

    "지난 2년 반 문재인 정부 전반기가 대한민국 틀을 바꾸는 대전환의 시기였다면 남은 2년 반 후반기는 전환의 힘을 토대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해 도약해야 하는 시기다"(2019/11/10,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합동 기자간담회에서)

    "결론적으로 그렇게(실패한 인사) 됐다. 시스템에 부족함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언론과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일정 부분 보완해주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참 어려운게 많다"(2019/11/01, 국회 운영위원회 대통령비서실 국정감사에서 유성엽 무소속 의원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인사는 실패인가'라고 묻자)

    "일본의 독도 시비는 대한민국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부인하는 것으로 일본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다. 일본의 이율배반적 태도와 부당한 처사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연장하는 것은 자주국가로서 당당하지 못한 태도다"(2019/08/26,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우리 군의 '동해 영토 수호훈련'을 두고 일본이 항의한 데 관해)

    "기술 패권에 다시는 휘둘리지 않도록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기회로 만들겠다. 막다른 길을 선택한 일본에게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 우리도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고 관광·식품·폐기물 등에서 국민을 위한 안전 조치를 강화하겠다" (2019/08/06,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일본의 경제보복을 두고)

    "문재인 정부가 분배는 중시하면서 성장은 소홀히 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국민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연평균 1882달러 증가했다. 이명박 정부 258달러, 박근혜 정부 814달러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2019/07/30, 사회관계망서비스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서) 

    "꼭 66년만이다. 미국과 북한의 정상이 정전선언 이후 처음으로 판문점에서 만났다. 너무나도 어렵게, 그런데 너무나도 쉽게 군사분계선을 함께 넘었다. 평화가 없으면 미래가 없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곧 길이다."(2019/06/30, 남북미 정상 판문점 회동 이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반독재 투쟁 과정에서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이 당했던 수난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먹먹하다. 김 전 의원을 비롯한 선배들의 민주주의와 통일, 평화를 위한 업적을 가슴에 새기고 우리 후배들도 열심히 하겠다.” (2019/04/21, 김대중 전 대통령 장남인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 빈소에서)

    "국민들이 반드시 진상과 배후를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진상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어떤 성역도 없어야 하고 어떠한 예단도 없어야 된다고 본다."(2019/04/04,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뇌물수수와 성범죄 의혹 재수사와 관련해)

    "인사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데 인사추천위원장으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인사 추천에 더욱 신중을 기하고 검증을 더욱 엄격히 해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2019/04/04, 국회 운영위원회 업무보고에 앞서)

    "청와대의 업무를 살펴본 결과 국정 운영과 정국 구상을 위한 대통령의 시간 확보가 절실하다. 참모진의 대면보고를 줄여야 한다." (2019/01/23, 대통령의 삶에 쉼표를 찍어주자며)

    “문재인 대통령께서 친노동적이라고 많이 알려졌지만 아마 변호사 시절 인권 변호를 해서 이미지가 그런 면이 있는 것 같다. 친기업적 마인드를 지니고 있고 시장 기능의 중요성도 잘 알고 있다.” (2019/01/11,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회동에서)

    "청와대에 일찍 와서 몇몇 방을 들러 봤는데 '춘풍추상(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의 줄임말, 스스로에게는 가을서리처럼 상대방에게는 봄바람처럼 대하라)'이라는 글이 걸려있는 것을 봤다. 청와대 비서실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되새겨야 할 한자성어다. 실장이 됐든 수석이 됐든 나는 비서일 뿐이다. 그것을 항상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2019/01/08, 서울 청와대 대브리핑룸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소감을 밝히면서)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에 안정적인 발전은 역내 안정과 평화·번영에 중요한 요소다. 현재 미·중간 이견이 있는 사안들도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희망한다.” (2018/11/28, 충청신문과 인터뷰에서 중국과 미국의 갈등을 두고)

    “북미정상회담 합의사항이 신속히 이행돼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 정착과 관련된 실질적인 진전을 거두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으며 우리 정부는 중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계속할 수 있도록 전략적 소통을 이어나갈 것이다.” (2018/06/26, 베이징 특파원단과 만나)

    “중국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아 임시정부 청사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잘 보존됐다. 앞으로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 (2018/04/13, 중국 상하이 랭함호텔에서 열린 임시정부 수립 99주년 행사에서)

    “만절필동은 황하가 어떠한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결국은 동쪽으로 간다는 의지를 표현한 말이다. 고전을 공부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올해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미 주호영 원내대표가 이걸 인용했다.” (2017/12/19,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서 만절필동이 중국을 향한 충성을 표현했다는 주장과 관련해)

    “농부가 밭을 탓할 수 없듯 외부환경이 본인 의지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극복하는 스스로의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자구노력은 기업의 몫이다. 이마트가 철수했는데 사드와 아무 관계가 없다. 사드 터지기 전에 철수가 이미 결정됐고 매각을 위해 노력했다.” (2017/09/29, 외교부 기자단과 간담회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에 관련된 중국의 경제 보복과 관련해)
     
    “새누리당은 결국 국민의당과 합친다고 생각한다. 국민의당과 합당하고 싶을 것이다.” (2016/12/03, 한 비공개 강연에서)

    “책임 있게 내 거취를 정하는 것이 제가 사랑하는 당을 위한 도리라 믿는다. 그동안 정말 고통스러웠고 알려진 것과 실체적 진실 간 괴리 사이에서 억울한 점도 없지 않았지만 ‘수원수구(誰怨誰咎,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탓하랴)인 만큼 모두 내 부족함과 불찰에서 비롯된 일이다.” (2016/02/01, 시집 강매 논란으로 중징계를 받은 뒤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VIP’ 자원외교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 최경환 부총리, 윤상직 장관, 박영준 전 차관 등 당시 정권의 실세들이 주도한 것이다. 전문성도 없는 정권 실세들의 선택으로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 것을 놓고 국민 앞에 진실을 밝혀야 한다.” (2014/11/24, 새정치민주연합 ‘MB정부 해외자원개발 국부유출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 시절 이명박 정부의 해외자원외교에 관련된 의혹을 제기하면서)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는 '전깃밥' 외에는 먹어본 적이 없다. 100만 전기인의 애환을 잘 알고 있다. 전기는 완벽한 세계다. 전기를 다루면서 꼼수를 부리면 죽음과 직결될 수 있다.” (2013/06/12, 전기 관련 경력을 소개하며)

    “반도체산업은 우리나라 첨단 IT산업의 기본 동력이다. 이런 반도체산업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13/08/28,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반도체 장비·소재산업 육성전략’ 세미나에서)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의 후보 경선 과정을 통해 선택된다면 당 바깥에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관계에서도 모든 면에서 우위에 선다.” (2012/08/07,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 시절 불교방송 라디오에서)

    “한나라당이 감세 철회와 반값 등록금 등을 추진하고 있다. 요즘 한나라당은 확실히 ‘짝퉁 민주당’이다.” (2011/06/01,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이제 매력적이지만 힘들었던 550일간의 여행을 마친다. 정론관에서 만난 수많은 언론인들과의 행복한 시간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대변인으로서는 좀 나이가 많지 않나 라는 내 나름대로의 쑥스러움도 이 행복함으로 넘길 수 있었다. 아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순간일 것이다.” (2010/08/05, 민주당 대변인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이명박 정권이 대한민국을 유신, 5공 시절로 돌려놓고 있는 줄 알았더니 조선 시대로 돌려놓으려고 했다는 말인가. 조선 시대의 우리 선배들이 모욕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조선 시대가 아니라 그 이전 시대로 돌려놓은 권력의 전횡이다.” (2010/07/09,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이 KB금융지주 회장의 인선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비판하면서)

    “부자 자녀들은 맛있는 도시락을 먹고 서민 자녀만 따로 모여 공짜 밥을 먹어야 하느냐. 빈부격차로 국민들의 편을 가르고 어린 학생들의 마음에 상처를 줘선 안 된다.” (2010/02/19, 무상급식을 제한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나 있었던 언론통제 수준을 뛰어넘는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이 2010년 대한민국에서 청와대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이 사실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암흑기가 도래한 증거다.” (2010/01/15, 한겨레에서 폭로한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의 홍보 문건 논란을 비판하는 논평에서)

    “이명박 정부 1년 동안 민주주의는 후퇴했고 경제는 나락으로 빠져들었고 한반도는 위기로 치닫고 있다. 다음 해 이맘때 2주년을 평가할 때는 제발 긍정적인 평가가 되길 기대한다.” (2009/02/25, 국회 브리핑에서 이명박 정부의 출범 1주년을 평가하면서)

    “강경진압은 강경 대응을 불러온다. 불행한 사태만 초래할 뿐이다.” (2009/02/09, 용산 철거 참사를 계기로 경찰청이 시설 점거 농성의 대처를 강화할 계획을 세우자 반대하면서)

    “키코 등 환헤지 금융상품에 가입했던 중소기업의 위기는 환리스크 관리의 한계이고 실패 사례다. 중소기업들이 참여하는 풀링 시스템을 갖춰 기업 스스로 환위험을 관리할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2008/10/08,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의 코트라와 한국수출보험공사 국정감사에서)

    “일정 규모 이상 국가 가운데 지난 5년 동안 우리나라와 비교해 경제성장률이 높은 나라는 지구상에 한 곳도 없다.” (2008/05/26,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통합민주당 18대 총선 당선자 워크숍에서 전영기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노무현 정부의 무능력함을 주장하자) 

    “개성공단의 지속 여부는 남한의 필요에 따라 전적으로 이뤄진다. 개성공단이 중단되면 우리 기업의 막대한 손해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 한반도 평화도 후퇴한다.” (2006/11/09,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수도 이전은 눈앞에 닥친 현실이며 동시에 역사적 소명이다. 지적 나태나 능력 부족으로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지도자는 역사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는 사람이다.” (2004/10/18, 국회 건설교통위원회의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이명박 서울시장을 추궁하면서)

    “선관위의 활동 자제 권고가 있는 데다 선거를 앞두고 산악회가 사조직 정도로 비춰지고 있어 자진 해체하기로 했다. 순수한 산행 모임으로 애정도 있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운영위원회를 거쳐 결정했다.” (2003/12/17, 한겨레 기사에서 4년여 동안 운영해 왔던 ‘영우산악회’를 해체하는 이유로)

    “한 줄 시 쓰기가 이토록 어려움은/나의 삶이/진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시를 사랑함이/우리 삶을 사랑함이란 것을/알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는/진정/시를 사랑했다.” (1995/04/28, 자작시 ‘우리는 진정 시를 사랑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윤종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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