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국내 온라인유통시장에서 1등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계획된 적자’ 전략의 방향성을 놓고 고심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든든한 우군이었던 소프트뱅크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안정적 자금 확보의 통로가 막힌 만큼 추가 투자금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수익성을 증명해야 한다.
 
쿠팡, 수익성 증명 요구와 '계획된 적자' 사이에서 어떤 선택할까

▲ 김범석 쿠팡 대표.


하지만 롯데와 신세계 등 대형유통사들이 온라인사업에 전사적 역량을 쏟으면서 ‘출혈경쟁’에 뛰어든 만큼 선뜻 ‘계획된 적자’에서 발을 빼기에도 여의치 않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쿠팡이 소프트뱅크로부터 추가 투자금을 유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받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2분기(7월~9월)에 7조 원을 웃도는 손실을 봤다. 사상 최대 손실규모로 14년 만에 분기 적자다.

위워크, 우버, 디디추싱 등에 대규모 투자를 한 비전펀드에서 막대한 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현재의 투자전략을 유지하겠다면서도 투자한 기업이 자생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손 회장은 “비전펀드가 투자한 88개의 다양한 기업이 장기적으로 엄청난 수익을 낼 것인 만큼 전략 변경은 없다”면서도 “앞으로 투자대상 기업이 적자에 빠졌다고 해서 이를 구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 회장은 쿠팡이 ‘계획된 적자’ 전략을 펼치는 과정에서 돈이 필요할 때마다 통 큰 투자로 든든한 우군이 돼줬지만 이를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이미 쿠팡과 같은 처지인 위워크와 우버 등 다른 비전펀드 투자대상 회사들은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기 위해 분주하다.

위워크는 공유오피스 서비스만 남긴 채 다른 사업부문을 모두 처분하기로 하고 대규모 인력감축과 사업재정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버는 차량공유서비스에서 금융과 광고, 인력매칭서비스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두 기업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새 서비스를 내놓으며 ‘혁신’의 대명사로 불렸지만 이렇다할 실적을 내지 못한 채 각종 악재에 휘말리자 결국 내실을 다지고 수익내기에 집중하고 있다.

쿠팡 역시 당분간 사업 확장보다는 직매입 단가를 낮추고 수수료 수익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쿠팡의 사업이 수익성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지 못하면 새로운 투자자로부터 외부 투자금을 유치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더라도 최근 위워크 상장 무산 등으로 비전펀드 투자대상 회사들을 바라보는 시장의 반응이 차가워진 만큼 쿠팡 스스로 사업성을 증명해내지 못하면 상장작업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

다만 쿠팡은 앞으로도 ‘계획된 적자’ 전략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 홈플러스 등 전통적 유통강자들이 온라인에 방점을 찍고 속속 온라인 유통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만큼 자칫 ‘숨고르기’가 패착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대형유통사들은 비록 온라인 진출시기를 놓쳐 주도권을 이커머스업체들에게 내줬지만 기존에 갖추고 있는 인프라와 유통망, 상품 소싱 노하우 등을 활용해 벌어진 격차를 좁히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국내 온라인유통시장에서 한발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던 쿠팡이 외형 성장속도를 조절하면 기존 대형유통사들에게 기회를 내주는 격이 된다.

온라인유통시장을 선점해 미국 아마존처럼 지배적 사업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향해 매년 큰 폭의 적자를 보면서도 버텨온 시간이 모두 날릴 수도 있는 셈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