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유럽연합과 무역분쟁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한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의 국회 비준과 관련해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 놓였다.

핵심협약을 비준해야 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노동계와 경영계 사이에 갈등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비준에 필요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등 관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재갑, 노조법 개정 노사갈등에 ILO 핵심협약 비준 놓고 시간에 쫓겨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3일 노동계와 경영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고용노동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조법 등 관련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개정안의 세부사항을 두고 노사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경영계는 노동권을 강화하는 내용의 ILO 핵심협약이 그대로 비준되면 노사 사이 힘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조 파업기간에 다른 근로자를 고용하는 대체근로제의 허용, 사업장 점거 전면금지 등 회사 측 방어권을 보장할 수 있는 내용도 노조법 개정안에 추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경영계가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며 “국내 노사관계의 특수상황을 봤을 때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들에 대비해 노조법에 사측 방어권도 보장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노동계는 노조법 개정안 내용이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기준에 크게 못 미친다고 비판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마련한 노조법 개정안은 실업자와 해고자 등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노조 전임자를 향한 급여 지급 금지규정도 삭제했다.

다만 사업장 내 생산시설 점거행위를 일부 금지하고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조항이 함께 들어간 점이 노동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는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은 정부가 그대로 비준을 하면 된다”며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을 비준하게 되었을 때 노조법도 바꿔야 하는데 경영계가 기존 노조법 개악까지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계가 원하는데로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을 하려면 노조법 개정안을 경영계에 유리하게 변경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유럽연합과 분쟁 해결절차에서 한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여부를 따지는 전문가패널 보고서가 올해 말에서 2020년 초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 장관은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국회 비준에 힘써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한국 정부가 전문가패널의 보고서를 따르지 않더라도 유럽연합이 관세 인상을 바로 하지 않겠지만 수입통관 절차를 까다롭게 만드는 등의 비관세 제재를 시행할 가능성은 있다.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은 국제노동기구가 채택한 189개 협약 가운데 가장 기본적 노동권에 관한 8개 협약으로 우리나라는 결사의 자유 및 강제노동 금지와 관련한 4개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이에 유럽연합(EU)은 한국이 한국-유럽연합 FTA에 규정된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노력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분쟁 해결절차에 들어가며 한국을 압박했다.

이 장관은 6월 국제노동기구 총회 대표연설을 통해 “정기국회에서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을 위한 법률 개정안과 국제노동기구 협약 비준의 동의안을 논의하도록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고용노동부는 실업·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해야하는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10월4일 노조법 등 관계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 장관은 같은 날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조법 개정안은 10개월 동안의 사회적 대화와 노사 의견을 수렴해 마련됐다”며 “개정법안이 국회에서 심도있게 논의될 수 있도록 의원들의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윤종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