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학자 시절부터 보였던 소신에 따라 '보험료율 인상' 내용을 담은 단일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놓을 수 있을까?

29일 정치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박 장관이 야당의 거센 압박에도 당분간 국민연금 개혁 단일안을 내놓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능후, 국민연금 개혁 힘든 정치상황에 보험료율 인상 소신 관철 험난

▲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 정치적 부담을 느끼는 더불어민주당과 원활한 협의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는 여론도 높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1년째 국민연금 개혁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명확한 단일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복지부는 2018년 12월 4가지 개혁방안을 내놓았는데 올해 8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다시 3가지로 추렸다. 

이를 놓고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은 국민연금법 개정을 위해서는 '정부의 단일안 제출이 먼저'라며 맞섰다.

이에 박 장관은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복지부 종합 국정감사에서 "경제사회노동위에서 올라온 3개 안 중에서 현안 유지에 가까운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2개 안의 정신들을 받들어서 하나의 안으로 만들 수 있을지 내부 토론 중"이라며 "정리가 되면 국회와 상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에선 단일안 마련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보건복지위 기동민 민주당 의원은 종합 국정감사에서 "단일안이 가진 위험성 때문에 또 다시 새로운 국민연금 논쟁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집권 이후 바닥 수준에 머물러 있는 데다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을 놓고도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은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론 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10월4주차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45.4%, 민주당 지지율은 39.9%로 조사됐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자유한국당의 정당지지율 32.8%보다 높긴 하지만 총선을 5개월 정도 앞둔 상황에서 안심할 만한 차이는 아니다.

여론 조사기관인 타임리서치가 9월27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경제사회노동위가 소득대체율 45%를 유지하는 대신 연금보험료를 9%에서 12%로 올리는 방안을 제시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가장 많은 응답자인 48.0%가 ‘소득대체율이 낮아지더라도 연금보험료 인상에는 반대한다’고 대답했다.

국민연금 개혁에 부정적 여론은 재집권까지 생각해야하는 여당에게 총선 이후에도 부담이다.

민주당으로선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크게 홍역을 치렀던 아픈 기억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하던 2003년 당시 정부와 여당이 ‘보험요율을 9%에서 16%로 인상한다’는 개혁안을 내놓았다가 대통령 지지율이 60%대에서 28.8%로 반토막 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6년에 ‘13% 인상안’을 다시 내놓았지만 개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고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퇴하기도 했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보험요율은 손보지 못하고 ‘소득대체율만 45%에서 40%로 낮춘다’는 임시방편을 마련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박 장관으로서는 부정적 여론과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 개혁 논의를 마냥 미룰 수는 없다.

국내외 지표들이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성에 문제가 있음을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발표한 ‘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에 따르면 국민연금 재정은 2042년 적자로 돌아서 2057년에는 고갈된다. 이전 ‘3차 국민연금 재정계산’보다 적자시기와 고갈시기가 각각 2년과 3년씩 앞당겨졌다.

호주의 멜버른-머서가 2018년 발표한 ‘멜버른-머서 글로벌 연금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대상 34개국 가운데 종합점수 30등에 머물렀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지속가능성과 적정성, 완전성 측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교수 출신인 박 장관은 이전부터 꾸준히 국민연금 개혁에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는 한국사회보장학회 회장이었던 2016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간담회에서 "복지국가가 완성돼 갈수록 부담이 많아져야 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장관 재임 중에도 정권과 관계 없이 점진적인 보험료율 인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국민연금 개혁은 박 장관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부여받은 과제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후 보장을 위해 소득대체율을 50%까지 올린다고 약속한 뒤 복지부 장관에 의료분야 전문가가 내정될 것이라는 정치권의 예상을 깨고 복지 전문가인 박 장관을 임명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 노후소득 보장 강화방안 평가' 보고서에서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수준의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 방안을 계속 미룰 경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고령인구로 후세대가 감당해야 하는 부담은 급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