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한국의 세계무역기구(WTO) 농업 분야 개발도상국 지위 문제와 관련해 농업계의 부정적 여론을 달래는 부담을 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일 정치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정부는 한국의 세계무역기구 개발도상국 지위를 놓고 포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현수, WTO 농업 개도국 지위 포기로 가닥 잡혀 농심 달래기 부담 커

▲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정부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미국에서 귀국하는 대로 대외경제장관 회의를 열어 최종 결정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대외경제장관 회의는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는데 홍 부총리는 20일 현재 G20 재무장관 회의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 총회 등 참석을 위해 미국 출장 중이다.

홍 부총리의 귀국일은 21일로 예정돼 있다.

정부는 늦어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개발도상국 지위와 관련해 언급한 시한인 10월23일까지 공식적으로 태도를 밝힐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결정이 공식화되면 김 장관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농업계 설득 작업이다.

전국농민총연맹, 한국농축산연합회 등 농민단체들은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는 농업 주권 포기”라며 정부가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부터 강하게 반대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김 장관은 앞으로 정부가 세계무역기구 협상에서 정부가 어떤 전략으로 대응할지 등을 놓고 농업계에 정부 정책방향을 설명하고 의견을 듣는데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정부를 향한 농업계의 불만에는 앞으로 열릴 세계무역기구 농업협상에서 불확실성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결정은 세계무역기구의 새로운 농업협상부터 본격적으로 그 여파가 미친다. 이미 체결된 협상을 통해 누리는 한국의 개발도상국 혜택은 영향이 없다.

농협 농정통상위원회 조합장들은 성명을 통해 농업부문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를 놓고 “지금 당장 피해가 없더라도 앞으로 무역협상이 진전돼 타결됐을 때 수입산 농산물에 부과되는 고율 관세와 농업계에 지급되는 농업보조금 등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농업보조금과 관련해서는 현재 도입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공익형 직불제의 취지와 효과를 설명하고 농업계의 지지를 구할 수도 있다.

공익형 직불제는 지나치게 쌀 위주로 운영되는 현행 농업보조금 제도의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한국의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에 따른 정부 보조금 제한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이다.

김 장관은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시절부터 공익형 직불제 도입에 주도적 역할을 맡아 왔다.

김 장관은 장관 취임사에서도 “공익형 직불제 개편을 차질없이 추진할 것”이라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법 개정작업과 2020년도 예산 확보, 세부 시행방안 마련 등을 꼼꼼하게 챙길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개발도상국 지위를 놓고 농민들이 이미 강력하게 반대의사를 표시하고 있는데도 포기로 방향을 잡은 것은 사실상 개발도상국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올해 2월 세계무역기구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G20 정상회의 회원국 △1인당 국민소득 1만2056달러 이상 △세계 교역량에서 0.5% 이상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 등 네 가지 기준을 제시하며 이 가운데 하나라도 해당하는 국가는 개발도상국이 아니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월27일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세계무역기구에서 개발도상국 지위와 관련해 90일 안으로 진전된 내용을 들고오라고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가 알려지자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미국 정부가 제시한 조건 가운데 일부를 만족하는 국가들이 잇달아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선언을 했다.

한국은 개발도상국 지위를 누리는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네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한다.

홍 부총리는 9월20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세계무역기구에서 다른 개발도상국들이 한국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놓고 문제를 제기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며 “앞으로 개발도상국 지위를 유지할지를 놓고 근본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 바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