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이 에너지저장장치 화재사고의 배터리 리콜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LG화학은 최근 2017년 난징 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탑재한 에너지저장장치에서 화재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정치권으로부터 자체리콜을 요구받았지만 해외시장에 미칠 영향이 크고 원인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 섣불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LG화학이 에너지저장장치 화재사고 배터리 리콜에 신중한 까닭

▲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사장.


선제조치로 배터리를 리콜하자니 화재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배터리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고 리콜을 안하자니 화재가 추가로 발생했을 때 자칫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을 수도 있다.

8일 LG화학에 따르면 연말까지 에너지저장장치 화재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자체조사를 마무리하고 그 결과에 따라 배터리 리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LG화학 관계자는 “조사의 공정성, 전문성,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문가를 동석하는 등 장치를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LG화학이 섣불리 배터리 리콜을 결정할 수 없는 것은 에너지저장장치 화재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리콜하는 것이 국내외사업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급성장하고 있는 해외 에너지저장장치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LG화학 배터리사업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리콜 결정에 신중을 거듭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세계 에너지저장장치용 배터리시장은 삼성SDI와 LG화학이 전체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지만 중국 업체들이 후발주자로 뛰어들어 추격을 시작했다. 중국 최대 배터리업체인 CATL은 올해 9월 미국 시장용 에너지저장장치 배터리를 미국 태양광 전시회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2017년 같은 시기 중국 난징 공장에서 초도생산한 배터리는 현재 국내 198개 사업장, 해외 118개 사업장에 사용되고 있다. 국내외 리콜을 진행하면 비용은 약 1500억 원 이상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리콜을 진행하면 에너지저장장치 화재사건과 관련한 보험금 지급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도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에 따르면 LG화학은 에너지저장장치 화재 관련해 보험회사에 먼저 피해회사에 보험금을 지급하고 이후 구상권을 가리자고 제안했고 보험회사들은 일차로 보험금을 지급했다. 앞서 삼성화재는 LG화학을 상대로 구상권 청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이라 LG화학이 리콜에 나서면 보험회사들이 곧바로 구상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LG화학은 조사를 통해 혐의를 벗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화재가 난 배터리가 장착된 해외 에너지저장장치에서는 지금까지 화재가 발생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김준호 LG화학 부사장은 7일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해외에서는 에너지저장장치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국내에서는 배터리보호시스템(BMS)과 전력변환기(PCS)에서 호환이 스탠다드로 정확하게 정립되지 않아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전문가들 가운데 한국 에너지저장장치 화재의 원인을 안전규정이 미비한 상황에서 설치를 서두른 데 있다고 보기도 한다.

로저린 미국방화협회 에너지솔루션위원회 마케팅 담당 부회장은 지난 6월 미국 에너지스토리지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에너지저장장치 화재가 발생한 원인은 기준을 설립하기 전에 에너지저장장치 설치를 너무 서둘렀기 때문"이라며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규정을 설립하지 못하면 설치시설 중 일부에서 결함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석현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