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 심상정 정의당 대표

조장우 기자
2019-09-02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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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심상정 정의당 대표.


    ◆ 생애

    심상정은 정의당 대표다.

    2020년 국회의원 총선에서 다수의 지역구 의원을 배출해 비례대표로 구성된 정당이라는 유권자의 편견을 없애고 원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59년 2월20일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다. 교육자가 되고자 서울대학교 사범대에 입학했다가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남성 중심의 학생운동 문화에 문제의식을 느껴 서울대에 최초로 총여학생회를 만들었다.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해 노동운동을 하다가 구로동맹파업 주동자로 지목돼 오랜 기간 수배생활을 했다. 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최초의 민주노조단체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에서 쟁의국장과 조직국장을 지냈다. 최초 산업별 노동조합인 전국금속노동조합의 사무처장을 맡았다.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했다. 

    진보신당을 만들어 대표를 맡았다. 민주노동당과 통합이 실패로 돌아가자 진보신당을 나와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만들었다. 그러나 비례대표 부정경선 파문에 책임을 지고 대표를 사퇴했다.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했지만 다음 선거 대 경기도 고양시 덕양갑에서 손범규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통합진보당 탈당파를 중심으로 ‘진보정의당’을 창당한 뒤 당 이름을 '정의당'으로 바꿨다.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진보결집+(더하기) 등을 통합했다. 

    경기 고양갑에서 3선에 성공해 국회 전반기 정무위원회 위원과 국회 민생경제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6.17%의 지지율을 얻으면서 진보정당 사상 최고 득표율로 정의당의 존재감을 끌어올렸다.

    정의당을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이끌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노동계에서 '철의여인'으로 불리는 대표적 진보진영 정치인으로 한국노동운동의 여성 대표주자다.

    ◆ 활동의 공과

    △정의당 대표로 재선출
    심상정은 2019년 7월13일 정의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정미 의원에게 2017년 7월 대표직을 넘긴 후 2년 만에 다시 대표가 된 것이다.

    정의당의 5기 대표단 선출보고대회에 따르면 심상정은 1만6177표(득표율 83.58%)를 얻어 3178표(득표율 16.42%)를 얻는 데 그친 양경규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을 누르고 당선됐다.

    심상정은 수락연설에서 “한국 정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자유한국당을 역사의 뒤안길로 퇴출하고 집권 포만감에 빠져 뒷걸음치는 더불어민주당과 개혁경장을 넘어 집권경쟁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심상정은 당대표 출마선언을 하면서 “총선승리로 집권의 길을 열겠다”며 “지역구 국회의원을 대폭 늘려 ‘비례 정당’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현재 정의당 의원은 모두 6명이지만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구 의원은 심상정 의원과 여영국 의원 둘뿐이다.

    심 의원과 함께 5기 대표단을 이끌 부대표로는 김종민 후보와 임한솔 후보, 박예휘 후보가 당선됐다.

    ▲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2019년 8월28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한국강소기업협회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개혁특별위원장 교체
    심상정은 신속처리안건지정(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두고 마비됐던 국회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원내교섭단체인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의 합의로 정치개혁특별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2019년 6월28일 교섭단체 원내대표 간 합의에서 정치개혁특위와 사법개혁특위의 위원장직을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각각 나눠 맡기로 하면서 심상정은 위원장직을 내놓아야 했다.

    이에 정의당은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심상정은 원내대표 간 합의가 이뤄진 직후 기자회견에서 “선거제도 개혁은 어떤 경우에도 좌초될 수 없다”며 “국회 정상화를 위해 희생양이 될 수 있지만 오늘의 여야3당 합의는 선거제도 개혁을 좌초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민주당의 선거제도 개혁을 향한 진의가 무엇인지 앞으로 여야4당 공조는 어떻게 할 것인지와 관련해 대답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2019년 7월18일 더불어민주당이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을 맡기로 하면서 홍영표 전 원내대표가 선임됐다.

    정치권에서는 홍 전 원내대표의 선임을 두고 선거제 개혁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로 풀이했고 이를 계기로 정의당의 반발은 가라앉았다.

    △정치개혁특별위원장 선임
    심상정은 2018년 10월 발족한 국회 특별위원회 가운데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선임됐다.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이 함께 만든 원내교섭단체인 ‘평화와 정의 의원모임’은 18개 상임위원장 중 2자리를 요구했고 협의 끝에 민주평화당이 농림축산해양수산위원장을 맡고 정의당은 비상설 특별위원회인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을 맡기로 한 것이다. 

    정치개혁특별위원장 자리는 선거제도 개혁을 강하게 주장했던 정의당으로서는 중요한 자리였다.

    그러나 위원회를 처음 구성할 때부터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논란이 있었다.

    자유한국당은 노회찬 전 의원이 투신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 ‘평화와 정의의 모임’ 소속의원 숫자가 19명으로 줄어들어 원내교섭단체 자격을 잃었으니 정의당을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의 2018년 10월 정례회동에서 처음 협의대로 정치개혁특위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심상정은 정치개혁특별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심상정은 위원장자리에 처음 앉으면서 “2004년 진보정당이 원내정당이 된 뒤 처음으로 주어진 위원장 자리다”며 “그 소임이 다름아닌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이라는 점에서 마치 숙명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정의당 상임대표 퇴임
    심상정은 2017년 7월10일 2년의 임기를 마치고 상임대표에서 물러났다.

    심상정은 퇴임 기자회견에서 “진보적 대중정당의 기틀을 닦는데 주력한 것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의당의 의석 수가 6석으로 적다고 평가하고 군소정당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4기 지도부를 향해 군소정당에서 유력정당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심상정은 “이제 국민의 삶 한복판에서, 일터에서, 지역에서 시민 여러분을 만나고 대화하며 새로운 대한민국의 힘을 모아갈 것”이라며 “정의당의 4기 지도부에도 아낌없는 사랑과 격려를 보내달라”고 말했다.

    △19대 정의당 대선후보
    2017년 2월17일 정의당 당원 총투표를 거쳐 모두 1만239표 가운데 8209표(80.17%)를 얻어 1926표(19.16%)를 얻은 강상구 정의당 교육연수단 집행위원장을 누르고 정의당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심상정이 대선가도에 도전한 것은 3번이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 권영길,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과 함께 후보경선을 펼쳤으나 권영길 의원에 밀려 후보로 선출되지 못했다. 하지만 노회찬 의원을 누르고 2위로 권영길 의원과 결선투표를 치르면서 지지기반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 진보정의당 대선후보로 단독 출마했으나 야권단일화를 위해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를 공식 지지하며 후보에서 사퇴했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 여성, 청년, 노동을 중시하는 공약들을 발표했으며 최종적으로 6.17%의 득표율을 얻었다.

    6.17%의 득표율은 진보정당 사상 최고의 득표율로 평가받는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운동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특검 도입, 최순실씨 체포, 박 대통령의 퇴진 등을 강력히 주장했다.

    2016년 10월25일 박근혜 대통령 사과 기자회견을 놓고 “뭘 잘못했는지 뭘 하겠다는지가 없다. 거짓말로 국민을 우롱한 기자회견”이라며 “인터넷 실검 1위가 ‘탄핵’이고 2위는 ‘박근혜 탄핵'이다. 모든 야당과 언론, 국민 대다수가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으로 경악하고 있다. 국민들은 개·돼지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10월30일 검찰을 방문해 최순실씨를 즉각 체포하지 않는 데 항의하며 정확하고 올바른 수사를 당부했다. 심상정은 서울중앙지검에서 이정회 차장과 면담하기 전에 기자들과 만나 “최씨를 즉각 체포 수사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고 밝혔다.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매번 직접 참석해 시민들과 만나며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 퇴진, 탄핵 등을 외쳤다. 11월12일 광화문에서 열린 ‘대통령 하야촉구 정의당 사전결의대회’에서는 “정의당이 진보정당이기 때문에 더 세고 더 강하게 하야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다”며 “국민의 관점에서 대한민국 헌법에 부합하는 가장 책임 있고 가장 올바른 길이 대통령 하야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2017년 3월31일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자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은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도 내팽개치고 형사피의자를 자처한 데 따른 자업자득이다”며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이 ‘법의 지배’가 실현되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논평했다.

    ▲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2019년 8월22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정의당 상무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2년 18대 대선 출마와 사퇴
    2012년 10월 특권층에 맞서 싸우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진보정의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지만 한 달 뒤 야권단일화를 위해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며 후보에서 사퇴했다.

    심상정은 2012년 11월26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진보정의당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한다”며 “저의 사퇴가 사실상 야권의 대표주자가 된 문재인 후보를 중심으로 정권교체의 열망을 모아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심상정은 “그동안 우리 정치에서 선거 때마다 반복되어 온 후보단일화를 위한 중도사퇴는 이제 제가 마지막이 돼야 한다”며 “대통령 후보로서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만 노동권 강화와 정치개혁을 향한 진보정의당의 노력은 정책연대를 통해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는 “진보정의당과 심상정 후보의 지지에 감사하다”며 “정권교체와 새로운 정치를 위한 결단이자 헌신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의당 창당
    2012년 5월 통합진보당의 부정경선사건 이후 구당권파의 패권적 당 운영을 비판하며 노회찬 의원 등과 함께 탈당해 9월 진보정의당을 창당했다.

    진보정의당은 2013년 7월 당이름을 정의당으로 바꾼 뒤 2015년 10월 국민모임, 진보결집+ (더하기), 노동정치연대 등과 통합당대회를 열고 진보세력을 결집하며 새롭게 태어났다.

    심상정은 진보세력과 결집하기 전 정의당에서 최고위원, 원내대표 등을 역임했고 2015년 7월 3기 지도부 선출대회에서 노회찬 전 대표를 꺾고 당대표에 올랐다. 2015년 11월부터 2017년 7월10일까지 상임대표를 맡았다.

    정의당은 2016년 20대 총선에서 심상정이 경기도 고양갑, 노회찬 전 대표가 경남 창원시 성산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정당득표 7.2%를 받아 이정미, 김종대, 추혜선, 윤소하 등 4명의 비례대표가 국회에 입성했다.

    △19대 국회의원
    2012년 19대 총선에서 야권 단일후보로 고양시 덕양갑에 출마해 손범규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이기고 재선에 성공했다.

    심상정은 개표 막판까지 손범규 후보에게 밀렸으나 마지막 해외부재자 투표자 개표에서 극적으로 역전해 170표 차이로 손 후보를 누르고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70표 차이는 19대 총선에서 가장 적은 득표수 차이로 기록됐다.

    19대 국회에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정감사 우수의원,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등에 뽑혔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고양갑에 출마해 53%의 득표를 얻어 진보정당 최초의 3선 국회의원이 됐다.

    △통합진보당사건
    2012년 4월 통합진보당은 4.11총선 비례대표 경선에서 부정, 부실선거가 자행된 사실이 드러났다.

    통합진보당은 부정선거에 수긍하지 못하는 당권파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당권파로 갈라지는 내홍을 겪었고 5월12일 열린 중앙운영위원회의에서 심상정을 비롯한 이정희, 유시민, 조준호 공동대표단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날 중앙운영위원회에서 폭력사태가 일어나며 조준호, 유시민 공동대표 등이 당원들에게 맞아 부상을 당하고 며칠 뒤 당원 분신사건이 일어나며 사태가 일어나며 사태가 더욱 커졌다.

    결국 9월 심상정은 권영길, 천영세 전 민주노동당 대표, 조준호, 유시민 전 공동대표 등과 함께 당을 탈당해 새진보정당추진회의를 결성하고 10월 진보정의당을 창당했다.

    △초선 국회의원 시절
    민주노동당은 2000년 1월 창당 이후 4년 만인 2004년 원내진출에 성공했고 당시 심상정은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17대 국회에서 재경위원회, 예결산특별위원회, 한미FTA특별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다.

    초선 국회의원으로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금융과 산업을 분리하는 금산법 개정 등을 놓고 기득권 세력과 자주 부딪혔다. 심상정은 삼성그룹 등 재벌중심의 경제구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대연정 제안,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도입추진 등을 놓고 노무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심상정은 17대 국회에서 여야가 뽑은 최고 국회의원, 초선의원이 뽑은 베스트 의원 1위, 국회 입법정책 개발 최우수의원 등에 선정됐다.

    △구로동맹파업과 노동운동
    1980년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해 노동조합을 결성하면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구로공단의 대우어패럴에 미싱사로 취업해 노동조합을 결성한 뒤 1985년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했다.

    구로동맹파업은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일어난 동맹파업으로 심상정은 구로동맹파업의 주동자로 지명수배됐고 10년 가까이 수배생활을 했다.

    수배생활을 하는 동안 서울노동연합, 전국노동조합협의회에서 노동운동을 해나갔다. 1993년 연행돼 징역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선고공판을 받았을 때 만삭의 몸이었다.

    1995년 창립된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인 민주금속연맹과 금속산업연맹에서 사무처장을 맡아 노동운동을 이어갔다. 금속연맹은 산별노조인 전국금속노동조합으로 발전했고 심상정은 2003년까지 금속노조 사무처장으로 일했다.

    정부는 2001년 구로동맹파업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했다.

    ◆ 비전과 과제

    ▲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2019년 7월20일 고려대학교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노회찬 전 의원 1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다. <정의당>

    심상정은 정의당 대표로서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비례대표로 구성된 정당이라는 유권자의 편견을 없애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 관리도 해야 하고 다른 곳의 지원유세도 가야 하는 짐을 짊어지고 있다.

    특히 심상정의 지역구 고양갑은 고양시 교통 인프라 확충을 향한 수요가 많은 곳으로 공약을 통해 이와 관련된 민심을 다독여야 할 필요가 있다.

    진보정당의 유력정치인이었던 노회찬 전 의원의 빈자리를 메우고 차세대 리더를 키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심상정은 정의당 유일의 지역구 의원이자 3선 중진 의원이다. 심상정을 제외한 정의당 의원들은 모두 비례 초선 의원이다. 심상정은 20대 국회 초선 의원 5명을 모두 재선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나아가 총선 승리를 통해 국회 내에서 정의당의 입지를 다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 선거제도 개편을 위해 힘써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뼈대로 심상정이 발의한 선거법 개정안은 2019년 8월29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통과했다. 이르면 11월 본회의 의결을 거쳐 2020년 총선에 도입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으로 수권정당으로 정의당이 도약하는 발판도 마련해야 한다.

    심상정은 당대표 수락연설에서 정의당의 위상을 높이고 더불어민주당과 개혁경쟁을 넘어 집권경쟁을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기도 했다.

    ◆ 평가

    ▲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2019년 8월18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심상정은 정의당을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6.17%의 지지율을 얻으면서 진보정당 사상 최고 득표율로 정의당의 존재감을 끌어올렸다는 소리를 듣는다.

    노동계 '철의여인'으로 불리는 대표적 진보진영 정치인으로서 젊은 시절부터 한국의 노동운동 역사와 함께해 한국노동운동에서 여성 대표주자라는 상징적 존재로 평가받는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유권자 사이에서 밝고 스스럼없이 소통해 ‘심블리(심상정+러블리)’라는 애칭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정치인으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는 ‘명품좌파’라고 부를 정도로 높이 평가했으며 국회의원 출신 보수성향 논객인 전여옥은 ‘약자를 보호하는 세상에 관심 있는 사람’으로 칭찬하기도 했다. 

    구해근 미국 하와이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이란 책에서 심상정을 “1980년대 노동운동의 산 증인이랄까, 목적의식을 지니고 현장 속으로 들어가 대중운동을 해온 대표적인 여성 노동운동가”라고 평가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뽑혔을 때 조세개혁을 통한 복지 증진과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데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받았다. 이후 비례대표로 당선된 뒤 삼성의 불법 행위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문제를 비판하는 등 적극적 의정활동으로 ‘한국 진보진영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운동권에서 주류로 활동한 적은 없다고 자평한다. 실제로 단위 노조위원장이나 연맹 혹은 민주노총의 임원자리를 맡은 적은 없고 주로 투쟁을 기획하고 현장경험을 중시하는 노동활동가로 두각을 나타냈다. 전노협과 민주노총 결성을 주도했고, 대기업 중심의 전국금속노조에서 사무처장을 지냈다.

    노동자로 여성으로 어머니로 한가지 역할도 놓치지 않아 슈퍼우먼으로 불린다. 수배로 도피생활을 할 때 몸이 상해 술을 못하지만 노동자들의 술자리에는 늦게까지 남았다고 한다. 1993년 도피생활을 마치고 법정에 섰을 때 아이를 임신해 배가 남산만한 그를 보고 판사가 놀랐다고 한다.

    책임정치를 바탕으로 한 희생정신도 높이 평가된다. 2010년 경기지사 선거와 2012년 대통령 선거 때 야권 단일화를 위해 후보에서 물러났다. 통합진보당 대표 당시 비례대표 부정경선의 책임을 지고 대표에서 사퇴했다.

    스스로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일로 ‘결혼’을 꼽는다. 결혼한 뒤 삶으로서 운동을 더 깊이 이해했다고 한다.

    ‘사랑’ 때문에 운동권에 입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좋아한 남학생들은 모두 운동권 출신이었고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시위대를 따라다니다가 노동운동에 눈을 뜬 것으로 전해진다.

    심상정의 남편 이승배씨는 적극적인 외조로 유명하다. 이승배씨 역시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두 사람을 이어줬다고 한다.

    이승배씨는 청년시절 노동운동을 함께 하며 심상정과 사랑을 키워온 만큼 노동운동가로서 아내를 전적으로 이해하고 돕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배씨는 2016년 4월 뉴스1과 인터뷰에서 “부인이 집안일을 하는 것은 사회적 기회비용의 낭비라고 생각한다”며 “집안일과 바깥일을 동시에 하는 슈퍼우먼을 기대할 수 없기에 집안일은 내가 신경써서 한다”고 말했다.

    팬클럽 ‘심크러쉬’가 있다. 심상정은 2016년 7월24일 열린 팬클럽 창단식에서 “어제 잠을 못 잤다. 소개팅 앞둔 사람처럼 너무도 설레고 초조했다. 이렇게 많이 모일 줄 몰랐다. 정말 감사하다”고 들뜬 심경을 전했다.

    오마이뉴스가 심상정의 정치자금 사용내역을 분석한 결과 주로 국회 후생관과 국회 의원식당 등 주로 저렴한 곳에서 식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한국 진보정치의 결정적 순간들에서 탈당을 하거나 당원들에게 위임받은 직책 등을 포기해 분열정치를 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심상정은 2008년 이후 ‘정치적 둥지’를 두 차례 뛰쳐나온 적이 있다.

    심상정은 통합진보당이 경선 부정 의혹 등으로 논란을 겪던 2012년 노회찬 전 의원 등 이른바 ‘신당권파’와 함께 “당내 낡은 질서와 패권에 야합할 수 없다”며 “대중적 진보정당 창당에 힘쓰겠다”며 통합진보당을 나왔다.

    2008년에도 노회찬 전 의원과 함께 “친북주의에 물들지 않은 새로운 진보정당을 창당한다”며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것을 가장 어려웠던 시기로 꼽는다.

    3선 의원이 된 후 방송, 특히 예능 출연이 잦은 편이다. 2016년 12월 JTBC '말하는대로' 출연을 시작으로 2017년 6월 KBS '냄비받침', 11월 JTBC '나의 외사친'에 출연했고 2018년에는 JTBC '썰전'에 여러차례 출연했다.

    2019년 5월에는 SBS '미운우리새끼'에 등장했다. 드라마 '보좌관' 출연을 앞둔 임원희 배우가 심상정 의원실에서 일일 보좌관으로 활동했다. 심상정은 임원희 배우에게 낯을 가린다며 타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페이스북에는 “지역구에서 이렇게 의원보다 더 인기 있는 보좌관은 글쎄, 바로 잘리지 않을까요?”라고 글을 남겼다.

    ◆ 사건사고

    ▲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2019년 7월23일 경남 창원에서 열린 노회찬 전 의원 1주기 추모제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제 관련 발언 논란
    심상정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선거제 개편을 추진하는 도중에 한 발언이 논란을 빚었다.

    2019년 3월17일 여야 4당이 선거제 개편안 단일안에 잠정합의를 했다. 이에 비례대표 의석을 권역별로 적용하는 방법을 놓고 기자가 예시를 들어달라며 질문하자 심상정은 “산식이 굉장히 복잡해서 여러분은 이해 못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국민을 설득하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국민들은 산식이 필요없다”며 “컴퓨터를 칠 때 치는 방법만 알면 되지 그 안의 컴퓨터 부품이 어떻고 하는 것은 알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심상정의 발언을 비판한 것을 놓고 “정치개혁의 큰 호박을 굴려야지 말꼬리나 잡는 것은 좁쌀정치”라고 말하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심상정은 3월19일 해당 발언은 선관위에서 계산식이 나오면 추후에 말씀드리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미연합훈련 비난성명 서명 논란
    심상정은 2018년 8월 한미 합동훈련을 전쟁연습으로 적은 공개선언문에 참여해 논란이 됐다.

    심상정을 비롯해 김두관·조정식·이원욱·소병훈·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6명은 6·15 경기본부가 발표한 경기8·15선언에 이름을 올렸다.

    선언문은 한미 합동훈련을 전쟁연습으로 표현하고 북한을 겨냥한 모든 전쟁연습을 중단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의원들은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지 못하거나 보좌진의 착오로 서명했다며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취소조치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갈리아 논란
    정의당은 2016년 7월 소위 ‘메갈리아 논란’으로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게임업체 넥슨은 2016년 7월 남성혐오 사이트로 알려진 ‘메갈리아’를 후원하는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SNS에 올린 한 성우와 계약을 해지한 것이 알려졌다.

    이를 놓고 인터넷 상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는 7월20일 “정치적 의견이 직업활동을 가로막는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며 “넥슨의 결정이 부당하며 이런 결정은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의당의 이런 지적을 놓고 메갈리아를 옹호한다는 주장이 빗발쳤고 일부 당원들은 탈당계를 내고 당을 나가는 사태로 이어졌다.

    정의당 상무집행위원회는 25일 “이 논평은 메갈리아에 대한 지지여부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님에도 정의당이 친메갈리아인가 아닌가를 놓고 수많은 논쟁을 야기했다”며 “부당한 노동권의 침해라는 취지전달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논평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심상정은 7월29일 직접 홈페이지에 “부적절한 논평이 나가 걱정과 실망을 끼쳐 죄송하다”며 “서운하셨겠지만 다시 한번 힘을 모아달라”고 글을 올렸다.

    △전과 기록
    심상정은 두 차례 전과가 있다.

    구로공단 동맹 파업을 조직한 혐의로 수배됐다가 10년 만에 체포돼 1993년 11월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금속노조 사무총장이었던 2003년 4월에는 일반교통방해,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으로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았다.

    ◆ 경력

    ▲ 20대 구로공단 미싱사 시절 동료들과 물놀이를 갔을 때(왼쪽에서 네번째).

    1980년 서울대학교 최초로 총여학생회를 창설해 초대 총여학생회장을 지냈다.

    1980년부터 1년 동안 구로3공단의 남성전기 노동조합의 교육부장으로 활동하다가 해고됐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 구로1공단의 대우어페럴 미싱사로 근무하다가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지명수배됐다.

    1985년부터 1년 동안 서울노동운동연합 결성을 주도하며 중앙위원장을 맡았다.

    1987년부터 1995년까지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쟁의부장, 쟁의국장, 조직국장 등을 역임했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민주금속연맹과 금속산업연맹 사무처장을 맡았다.

    2000년 4.13총선 때 민주노동당 의원으로 국회 입성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당시 당대회 부의장을 거쳐 민주노동당 대의원 겸 중앙위원까지 맡았다.

    2001년부터 2003년 9월까지 전국금속노동조합 사무처장으로 일했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17대 국회에 입성했다. 같은해 민주노동당 원내 수석부대표로 선임됐다.

    2008년 1월부터 한달 동안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선거에서 경기도 고양시 덕양갑에 출마했으나 손범규 한나라당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2008년 3월부터 2009년 3월까지 진보신당 공동대표,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진보신당 상임고문을 지냈다.

    2011년 9월 진보신당을 탈당하고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만들어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과 함께 공동대표가 됐다. 같은해 10월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공동선거대책위워장을 맡기도 했다.

    2012년 5월 19대 총선에서 야권 단일 후보로 경기도 고양시 덕양갑에 통합진보당 후보로 출마해 손범규 새누리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2012년 7월 통합진보당 원내대표에 선출됐다. 2012년 9월 통합진보당에서 나와 진보정의당을 만들었다.

    2012년 10월 진보정의당의 18대 대통령선거 후보로 단독 등록했으나 11월 말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의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뒤 후보에서 사퇴했다.

    2013년 7월 진보정의당은 정의당으로 당이름을 바꿨고 정의당은 2015년 국민모임, 진보결집, 노동정치연대 등과 함께 정의당으로 재창당했다.

    2015년 7월부터 11월까지 대표를 역임했고 11월부터 상임대표를 맡았다.

    2016년 5월 20대 총선에서 경기도 고양시갑에서 정의당 후보로 출마해 손범규 새누리당 후보를 누르고 3선 국회의원이 됐다.

    2017년 2월 정의당 당원 총투표에서 정의당 대선후보로 공식선출됐다.

    2017년 7월 정의당 상임대표에서 물러났다.

    2019년 7월 정의당 대표에 올랐다. 
       
    ◆ 학력

    ▲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심상정 정의당 대표.

    1971년 대조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74년 충암중학교를 졸업했다.

    1977년 명지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3년 서울대 사범대학교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남편 이승배씨와 사이에 아들 이우균씨가 있다.

    ◆ 상훈 

    2013년 대한민국입법대상을 받았다.

    2018년 제20회 백봉신사상 대상을 받았다.

    ◆ 기타

    2019년 3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따르면 본인과 배우자, 모친, 장남 명의로 모두 13억2516만 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저서로 ‘당당한 아름다움’(2008)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2013) 등이 있다.

    공동저작으로는 ‘꿈꾸는 여대생에게 들려주는 여성리더들의 이야기’(2009) ‘인생기출문제집’(2009) ‘심상정, 이상 혹은 현실’(2010) ‘내가 걸은 만큼만 내 인생이다’(2011) ‘인생에서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2011) ‘그대 아직도 부자를 꿈꾸는가’(2011) 등이 있다.

    ◆ 어록

    ▲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2019년 7월23일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후보자는 오랫동안 도덕적 담론을 주도했는데 짊어진 도덕적 책임과 그 무게가 커진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조 후보자는 칼날 위에 선 자세로 성찰하고 해명하기 바란다." (2019/08/22,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상무위원회 모두발언에서)

    “아베 정부의 파렴치한 경제보복을 향해 한국정부와 정치권이 합심해 단호히 대처해 공동번영의 새로운 한일관계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한국 정부는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질서를 수호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국제사회에 알려야 한다." (2019/07/18,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상무위원회의에서)

    “검찰은 앞으로도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전모와 진실을 명명백백히 밝혀 금융시장의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특정 사익을 위해 공적 규율이 훼손되는 시대를 끝내야 한다” (2019/04/29,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한 보도자료에서)

    “부동산 투기를 방조하는 것은 성실한 시민들을 모욕하는 일이다. 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한 확고한 의지와 일관성을 보여줘야 한다” (2018/09/11, 종합부동산세 강화법안을 발의하면서)

    "공정과 기회의 균등은 오히려 시장경제와 자유주의적 가치의 요청사항이다. 잘못된 관행이 있다면 바로잡고 채용비리를 뿌리뽑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18/05/24,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안을 발의하면서)

    "민간기업이라도 공개채용이라는 것은 수많은 지원자의 약속이고 일종의 사회계약이다. 공개된 기준과 다른 기준으로 직원을 채용하는 것은 그 약속과 계약을 저버린 것이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은행이 국민이 낸 공적자금의 투입으로 회생했다. 아쉬울 때는 국민의 지원과 공적자금을 요구하고 사회적 가치를 위반했을 때는 불개입을 주장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2018/02/06, 국회 본관에서 연 은행 채용비리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은 노동권이 결국 직장에서의 촛불이라는 걸 인식할 때 가능해진다. 노동권이 인정받는다는 건 개인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해 공정하게 평가받는 사회가 된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만 냉전적 이데올로기가 악용되면서 노동이 폄하됐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되었으면 노동자들에게 정당하게 성과를 되돌려야 한다는 것, 그게 시대정신이다.” (2017/11/30, ‘난 네 편이야’를 출간하고 yes24와 한 인터뷰에서) 

    “정치인에게 말은 재주라기보다 곧 그 정치인의 가치이자, 비전이자, 소통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이 말을 잘한다는 것은 국민에게 신뢰를 받는다는 것이다. 지역구 주민 중 한 분이 다른 사람 말은 못 믿어도 심상정 말을 믿는다고 말씀해 주신 적이 있었다. 국회에서 심상정에게 주어지는 권력이 있다면 그건 제 권력이 아니라 주민들 거라는 생각을 늘 한다.” (2017/11/30, ‘난 네 편이야’를 출간하고 yes24와 한 인터뷰에서) 

    “문,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물론 정권이 바뀔 것이다. 그러나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여러분의 삶이 바뀔 것이다.” (2017/04/07,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소위 ‘양강구도’는 국민의 뜻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퇴행적인 정치공학의 산물이다. 기득권 세력이 이번 대선을 ‘문재인 대 안철수’라는 양강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저의 사퇴는 촛불 시민의 사퇴다. 제 정치인생을 걸고 완주하겠다고 다시 한 번 밝힌다.” (2017/04/06, 기자간담회에서)

    “황교안 권한대행은 명심하라. 소녀상 철거를 국민 몰래 약속하겠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않길 바란다.” (2017/04/05,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나라 꼴이 왜 이렇게 됐나. 연례행사처럼 재벌총수들이 검찰로 줄줄이 불려가고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풍경은 왜 되풀이되나. ‘법 앞의 평등’에 예외를 뒀기 때문이다. 사면은 국민이 시끄러울 땐 잡아넣었다가 조용해지면 빼내주자는 말이다. 국민들을 개, 돼지로 보는 발상과 뭐가 다른가. 내가 대통령이 되면 이재용 부회장,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하지 않을 것이다.” (2017/04/01,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 논란을 두고)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은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도 내팽개치고 형사피의자를 자처한 데 따른 자업자득이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이 ‘법의 지배’가 실현되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017/03/31,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을 두고)

    “진보정당은 8,90년대 청년들이 2000년에 만든 정당이었다. 청년들에게 정의당을 내어주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꿈만 남기고, 모든 것을 바꾸자.” (2017/03/26, 정의당 19대 대선승리 전진대회에서)

    “황교안 총리가 그렇게 천지분간을 못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2017/03/14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황 총리의 출마 가능성을 묻자)

    “김고은씨 팬클럽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2017/03/09 JTBC 썰전에 출연해 별명이 ‘2초 김고은’이란 말을 듣자)

    “법원이 수명연장을 취소한 월성1호기부터 문을 닫겠다. 2040년까지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해 한국 탈핵시대를 열겠다. 탈핵은 더 이상 비현실적인 꿈도, 실현 불가능한 목표도 아니다. 국민안전은 그 어떤 이유로도 미뤄서는 안 된다.” (2017/03/06, 2040탈핵공약을 발표하며)

    “2019년이면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된다. 지금부터라도 역사바로세우기 노력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2017/03/01, 3·1절을 맞아 논평을 내고)

    “월급 조금 주려고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관행부터 뿌리 뽑겠다.” (2017/02/12, 비정규직 공약을 발표하며)

    “출산휴가를 90일에서 120일로 확대하고 현재 유급 3일인 배우자 출산휴가를 30일로 늘리겠다.” (2017/01/23, 대선1호 공약인 ‘슈퍼우먼방지법’을 발표하며)

    “열심히 일하고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 (2017/01/19, 대선출마를 선언하며)

    “변화의 열망과 좌절의 한숨이 공존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선생님의 가르침이 절실한 때입니다. 여전히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2017/01/15, 신영복 선생 1주기 추도사에서)

    “이번 대선은 촛불민심을 대변하는 길이다. 이 문제에 응답하는 정의당이 되려고 한다. 한국에서 노동문제를 국가의 제1의제로 삼는 최초의 대통령이 되고 싶다.” (2017/01/09, 기자들과 간담회에서)

    “선거권 연령을 적어도 18살로 낮춰야 한다.” (2017/01/02, 선거권 연령 개정에 대해)

    “대통령이 국민의 탄핵을 받았으니 국정교과서도 마땅히 탄핵받아야 한다. 겨울방학, 크리스마스, 새해 등으로 기대감에 부푼 아이들에게 국정교과서 폐기야 말로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2016/12/12, ‘국정교과서 해부 및 대책마련을 위한 긴급토론회’ 축사에서)

    “국민의 뜻을 받드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자했던 국민을 또다시 좌절시켰다. 비겁하고 고약한 대통령이다.” (2016/11/29,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담화문을 두고)

    “만일 국회에서 탄핵을 반대하면 반대세력과 정치인을 국민이 자르면 된다. 헌법재판소가 국민 뜻과 다른 판결을 낸다면 헌법을 고쳐서라도 대통령 임기단축을 하는 국민탄핵으로 박 정권을 끌어내려야 한다.” (2016/11/26, 박근혜 대통령 퇴진 이동당사 출범식에서)

    “정의당이 진보정당이기 때문에 더 세고 더 강하게 하야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관점에서 대한민국 헌법에 부합하는 가장 책임 있고 가장 올바른 길이 대통령 하야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2016/11/12, 광화문에서 열린 ‘대통령 하야촉구 정의당 사전결의대회’에서)

    “이번 달 한·중·일 정상회담이 있는데 대통령이 가기 어려울 것이고 간다 해도 대한민국의 국제적 수치가 되지 않겠나. 기자들이 전부 최순실, 샤머니즘을 물어볼 것이다. 주요 정상들도 ‘식물대통령’과 주요한 외교현안을 협의하지 않을 것이다." (2016/11/09, 이재명 성남시장과 회동에서)

    “고(故) 백남기라는 이름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역사가 됐다. 고인은 밭은 숨결을 이어가며 인간의 존엄성과 시민의 권리를 웅변하셨다.” (2016/11/06, 백남기씨의 영결식 추도사에서)

    “오늘 대통령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아파 잠시나마 위로라도 건네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대통령의 고통보다 이를 지켜보는 참담한 국민들이 더 걱정된다.” (2016/11/04, 박근혜 대통령의 국민담화에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국정을 농단한 주범 최순실을 공항에서 체포하지 않은 것은 물론 오늘 소환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검찰을 국민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 (2016/10/30, 최순실씨의 강도 높은 수사를 요구하며)

    “전경련 해체는 권력에 결탁한 강자만 행복한 ‘이권추구 경제’가 아니라 모든 경제주체가 함께 행복한 ‘정의로운 경제’로 나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2016/10/16, 전경련 해체촉구 결의안을 발의하며)

    “유한킴벌리는 미국 킴벌리가 70%, 유한양행이 30% 지분을 소유하고 있지만 2012년 이사 선임권을 둘러싼 분쟁이 킴벌리 측의 승리로 끝나면서 100년 전통의 유한양행 시대는 끝나고 사실상 미국계 기업이 됐다.” (2016/10/11, 국정감사에서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을 몰래 올려왔다고 주장하며)

    “요즘 제 별명이 ‘심블리’다. 얼굴도 많이 예뻐졌다고 하는데 정치인의 얼굴이 예뻐지는 이유는 유권자들의 사랑을 받아서다. 지역구 주민들께 감사한다.” (2016/04/07, 선거운동 도중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세계평화는 물론이고 한반도 비핵에 대한 민족의 염원에 반하는 파괴적 행위다. 미사일 발사는 북한 주민의 생존마저 위태롭게 하는 자학적 행태로 정의당은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 (2016/02/07,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두고)

    “정당정치는 책임정치다. 공천할 때는 언제고 문제가 생기면 나 몰라라 하는 정치,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정치를 바꿔야 한다. 정당 공천을 받은 국회의원이 부정선거나 부정부패 등으로 의원직을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실시할 경우 해당 정당은 후보를 공천하지 말고 선거비용의 50%를 정당의 국고보조금에서 삭감해야 한다.” (2016/01/12, 정당의 ‘공천무한책임제’를 제안하며)

    “정부가 10억 엔을 받고 일본에 너무 많은 것을 내줬다.” (2016/01/06, 24주년 수요집회에서)

    “서민과 중산층의 진보, 밥 먹여주는 진보, 민생 진보로서 노선을 선명히 걷겠다. 확고한 당의 방침으로 진보 재편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고 이기는 정당이 되겠다.” (2015/07/20, 정의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정의당은 창당 때부터 분열된 진보세력을 하나로 결집시켜 명실상부한 진보대표정당의 위상을 갖추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뿌리가 같은 진보세력의 결집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오늘 함께 공동선언을 하는 4자뿐 아니라 그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진보정치를 지지하지만 동참을 유보해왔던 많은 세력들과 지지자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더 큰 책임으로 임하겠다.” (2015/06/04, 정의당을 중심으로 진보정당을 강력하게 만들겠다고 밝히며)

    ▲ 2012년 12월19일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이 노회찬 의원과 함께 18대 대선 개표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오늘 중앙위를 마지막으로 공동대표직을 내려놓는다. 진보 정치 15년을 돌아보니 고통스러운 결정의 순간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여러분의 결단으로 진보 정치의 새 시대를 힘차게 열어 달라.” (2012/05/12, 통합진보당 사태로 대표직에서 내려오며)

    “정부의 매몰찬 일방주의가 가장 힘없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정부에서 ‘떼법’을 목청 높여 주장해왔는데 그 결과가 철거민 다섯과 특공대원 한 사람의 죽음으로 나타났다.” (2009/01/20, 용산참사 당시 정부의 무리한 진압을 비판하며)

    “국민 건강을 지키려는 일본 정부의 끈질긴 노력과 국민의 반대 목소리를 외면하는 한국의 태도가 너무 다르다.” (2008/05/30, 정부의 미국 쇠고기수입을 비판하며)

    “지난 대선에서 국민이 보낸 최후통첩을 겸허히 받들어 민노당을 새로 태어나게 하라는 소임을 맡았으나 기대와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물러나게 됐다.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2008/02/05,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장에서 사퇴하며)

    “비례대표 후보는 진보정당의 예비내각 역할을 담당할 능력이 있는 분들을 위주로 구성돼야 한다. 명망성보다 실력, 당내보다는 당 바깥 인사를 중심으로 추천하겠다. 당의 빗장을 과감히 열겠다.” (2008/01/14,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뒤 기자회견에서)

    “특수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인생의 지혜로 삼고 있는 인물에게 국민들이 어떻게 국정을 맡길 수 있겠는가.” (2007/09/13,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주요 일간지 편집국장들과 저녁자리에서 “특수서비스에 종사하는 여성을 고를 때 덜 예쁜 여자를 골라야 서비스가 좋다”고 말한 것을 두고)

    “자본이동이 자유로워지면 수혜 계층과 피해 계층 사이에 필연적으로 양극화가 심해진다. 구제금융 위기와 한미FTA는 모두 자본 이동의 자유를 대폭 허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득 불평등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2007/04/19, 한미FTA를 반대하는 보도자료를 통해)

    “한미 FTA는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라 미국의 다국적 기업을 옹호하기 위한 보호무역 강요다. 노무현 대통령이 허세욱 동지의 고통스런 절규를 외면한다면 살인정부라는 오명을 벗기 어려울 것이다.” (2007/04/01, 한미FTA 저지 촛불문화제에서 허세욱씨의 분신을 언급하며)

    “정권교체가 아니라 시대교체다. 민주노동당의 힘으로 보수정치 시대를 끝내고 가난한 사람의 민주주의 시대를 힘차게 열어내겠다.” (2007/03/07,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출마를 선언하며)

    “부동산 투기만은 잡겠다던 노무현 정부가 마침내 부동산 불패신화 앞에 참패를 선언하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가 부동산투기를 잡은 게 아니라 부동산투기가 노무현 정부를 잡고 말았다.” (2006/11/15, 공급확대를 중심으로 한 정부의 부동산대책을 비판하며)

    “이 시장의 발언은 일본 우익인사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일본 정부에 대한 우리 정부와 국민의 사과 촉구 노력을 폄하하는 것이다. 이 시장이 계속 대권의 꿈을 키우려 한다면 국민에게 겸허히 사죄하고 역사부터 다시 공부해야 할 것이다.” (2006/02/01,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아시아의 정치 지도자들이 과거에 얽매여 국가간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아시아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고 말한 데 대해)

    “삼성그룹이 지난 1997년부터 98년까지의 기아사태에 개입됐는지 여부와 ‘금융산업구조조정을위한법률’(금산법) 개정 문제 등에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이건희 회장에게 직접 물어야 한다. 그동안 드러난 삼성그룹의 탈법·불법사례가 전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만큼 반드시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 (2005/09/08, 국회 재경위 전체회의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국정감사 증인 채택을 주장하며)

    “연정론에 편집증적으로 매달리는 대통령의 모습이 안쓰럽다. 연정 대상으로 거론한 한나라당은 지역주의 타파와 정치개혁을 할 능력과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2005/07/28,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두고)

    “국세청이 개인의 배임수재에 대해서는 형사처벌 과정에서 수재액을 몰수한 뒤에도 소득세를 부과한 전례가 있었지만 정치인들의 뇌물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개인에 대해서는 이런 혹독한 처벌을 하면서 뇌물을 받은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2005/04/22, 고위공직자가 받은 뇌물에 과세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재벌경제 논리를 말하는 의원들 사이에서 서민경제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기싸움에 논리싸움까지 해야 할 상황이라 고민이 많다.” (2004/05, 재정경제위원회 상임위원으로 배정되면서)

    “지난해 현대차의 영업이익 7조5500억 원의 5% 내외면 불법파견 문제는 다 해결할 수 있다. 그동안 사내하청 고용으로 값싸게 쓴 비용을 제 값 내고 쓰려고 하니 아까운 것이다. 11년 동안 불법적으로 착취 당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2004/03/12, 한 라디오매체에 출연해)

    ”왜 감옥살이 안 했냐고 나한테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수배생활 중에 경찰이 여자들을 잘 구별 못하더라. 화장만 조금 하고 다르게 꾸미면 얼굴을 못 알아본다.” (2004/03/11, 한겨레21과 인터뷰에서)

    “여성 활동가들 가운데 결혼하면 끝이라고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결혼한 뒤 삶으로서 운동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엄마로 며느리로 아내로 또 일하는 여성으로서 겪는 고통과 어려움이 활동가라고 해서 면제되는 것도 아닌데, 온몸으로 부딪쳐오면서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2004/03/11, 한겨레21과 인터뷰에서)

    “2007년 고리1호기 수명연장 근거서류 가운데 하나인 ‘고리1호기 계속운전의 경제성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최근 열람해 보니 발전소 철거비용 등 원전 사후처리 비용이 누락되고 원전 평균이용률을 현실과 다르게 적용했다. 이는 분명 고리1호기 수명연장을 위해 경제성 분석을 조작한 것이다.” (2003/05/08, 고리1호기 경제성분석 문제를 지적하며)

    “두산은 법과 원칙을 줄곧 내세우면서도 오직 돈벌이에만 매달려 노동법이 인정하는 노조와 파업을 거부해왔다. 파업으로 생산이 멈추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사업장은 노조를 귀찮은 존재지만 그래도 파트너로 인정하고 타협하는데 두산중공업은 한순간에 노조를 없애기 어려워지자 단계적으로 무력화하는 수순을 밟아왔다.” (2003/03/14,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 분신사망 사태가 벌어진 뒤 금속노조 사무처장으로서)

    “4월14일 새벽 여의도 민주노동당 당사는 침울했다.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로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탓도 있었지만 내부 정치만 잘됐더라도 53년 만의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이라는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자괴감이 컸다.” (2000년 4·13 총선 뒤 계간지 ‘창작과비평’에 쓴 글에서)
  • ◆ 활동의 공과

    △정의당 대표로 재선출
    심상정은 2019년 7월13일 정의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정미 의원에게 2017년 7월 대표직을 넘긴 후 2년 만에 다시 대표가 된 것이다.

    정의당의 5기 대표단 선출보고대회에 따르면 심상정은 1만6177표(득표율 83.58%)를 얻어 3178표(득표율 16.42%)를 얻는 데 그친 양경규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을 누르고 당선됐다.

    심상정은 수락연설에서 “한국 정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자유한국당을 역사의 뒤안길로 퇴출하고 집권 포만감에 빠져 뒷걸음치는 더불어민주당과 개혁경장을 넘어 집권경쟁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심상정은 당대표 출마선언을 하면서 “총선승리로 집권의 길을 열겠다”며 “지역구 국회의원을 대폭 늘려 ‘비례 정당’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현재 정의당 의원은 모두 6명이지만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구 의원은 심상정 의원과 여영국 의원 둘뿐이다.

    심 의원과 함께 5기 대표단을 이끌 부대표로는 김종민 후보와 임한솔 후보, 박예휘 후보가 당선됐다.

    ▲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2019년 8월28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한국강소기업협회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개혁특별위원장 교체
    심상정은 신속처리안건지정(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두고 마비됐던 국회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원내교섭단체인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의 합의로 정치개혁특별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2019년 6월28일 교섭단체 원내대표 간 합의에서 정치개혁특위와 사법개혁특위의 위원장직을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각각 나눠 맡기로 하면서 심상정은 위원장직을 내놓아야 했다.

    이에 정의당은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심상정은 원내대표 간 합의가 이뤄진 직후 기자회견에서 “선거제도 개혁은 어떤 경우에도 좌초될 수 없다”며 “국회 정상화를 위해 희생양이 될 수 있지만 오늘의 여야3당 합의는 선거제도 개혁을 좌초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민주당의 선거제도 개혁을 향한 진의가 무엇인지 앞으로 여야4당 공조는 어떻게 할 것인지와 관련해 대답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2019년 7월18일 더불어민주당이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을 맡기로 하면서 홍영표 전 원내대표가 선임됐다.

    정치권에서는 홍 전 원내대표의 선임을 두고 선거제 개혁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로 풀이했고 이를 계기로 정의당의 반발은 가라앉았다.

    △정치개혁특별위원장 선임
    심상정은 2018년 10월 발족한 국회 특별위원회 가운데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선임됐다.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이 함께 만든 원내교섭단체인 ‘평화와 정의 의원모임’은 18개 상임위원장 중 2자리를 요구했고 협의 끝에 민주평화당이 농림축산해양수산위원장을 맡고 정의당은 비상설 특별위원회인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을 맡기로 한 것이다. 

    정치개혁특별위원장 자리는 선거제도 개혁을 강하게 주장했던 정의당으로서는 중요한 자리였다.

    그러나 위원회를 처음 구성할 때부터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논란이 있었다.

    자유한국당은 노회찬 전 의원이 투신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 ‘평화와 정의의 모임’ 소속의원 숫자가 19명으로 줄어들어 원내교섭단체 자격을 잃었으니 정의당을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의 2018년 10월 정례회동에서 처음 협의대로 정치개혁특위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심상정은 정치개혁특별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심상정은 위원장자리에 처음 앉으면서 “2004년 진보정당이 원내정당이 된 뒤 처음으로 주어진 위원장 자리다”며 “그 소임이 다름아닌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이라는 점에서 마치 숙명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정의당 상임대표 퇴임
    심상정은 2017년 7월10일 2년의 임기를 마치고 상임대표에서 물러났다.

    심상정은 퇴임 기자회견에서 “진보적 대중정당의 기틀을 닦는데 주력한 것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의당의 의석 수가 6석으로 적다고 평가하고 군소정당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4기 지도부를 향해 군소정당에서 유력정당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심상정은 “이제 국민의 삶 한복판에서, 일터에서, 지역에서 시민 여러분을 만나고 대화하며 새로운 대한민국의 힘을 모아갈 것”이라며 “정의당의 4기 지도부에도 아낌없는 사랑과 격려를 보내달라”고 말했다.

    △19대 정의당 대선후보
    2017년 2월17일 정의당 당원 총투표를 거쳐 모두 1만239표 가운데 8209표(80.17%)를 얻어 1926표(19.16%)를 얻은 강상구 정의당 교육연수단 집행위원장을 누르고 정의당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심상정이 대선가도에 도전한 것은 3번이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 권영길,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과 함께 후보경선을 펼쳤으나 권영길 의원에 밀려 후보로 선출되지 못했다. 하지만 노회찬 의원을 누르고 2위로 권영길 의원과 결선투표를 치르면서 지지기반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 진보정의당 대선후보로 단독 출마했으나 야권단일화를 위해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를 공식 지지하며 후보에서 사퇴했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 여성, 청년, 노동을 중시하는 공약들을 발표했으며 최종적으로 6.17%의 득표율을 얻었다.

    6.17%의 득표율은 진보정당 사상 최고의 득표율로 평가받는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운동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특검 도입, 최순실씨 체포, 박 대통령의 퇴진 등을 강력히 주장했다.

    2016년 10월25일 박근혜 대통령 사과 기자회견을 놓고 “뭘 잘못했는지 뭘 하겠다는지가 없다. 거짓말로 국민을 우롱한 기자회견”이라며 “인터넷 실검 1위가 ‘탄핵’이고 2위는 ‘박근혜 탄핵'이다. 모든 야당과 언론, 국민 대다수가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으로 경악하고 있다. 국민들은 개·돼지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10월30일 검찰을 방문해 최순실씨를 즉각 체포하지 않는 데 항의하며 정확하고 올바른 수사를 당부했다. 심상정은 서울중앙지검에서 이정회 차장과 면담하기 전에 기자들과 만나 “최씨를 즉각 체포 수사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고 밝혔다.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매번 직접 참석해 시민들과 만나며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 퇴진, 탄핵 등을 외쳤다. 11월12일 광화문에서 열린 ‘대통령 하야촉구 정의당 사전결의대회’에서는 “정의당이 진보정당이기 때문에 더 세고 더 강하게 하야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다”며 “국민의 관점에서 대한민국 헌법에 부합하는 가장 책임 있고 가장 올바른 길이 대통령 하야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2017년 3월31일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자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은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도 내팽개치고 형사피의자를 자처한 데 따른 자업자득이다”며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이 ‘법의 지배’가 실현되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논평했다.

    ▲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2019년 8월22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정의당 상무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2년 18대 대선 출마와 사퇴
    2012년 10월 특권층에 맞서 싸우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진보정의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지만 한 달 뒤 야권단일화를 위해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며 후보에서 사퇴했다.

    심상정은 2012년 11월26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진보정의당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한다”며 “저의 사퇴가 사실상 야권의 대표주자가 된 문재인 후보를 중심으로 정권교체의 열망을 모아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심상정은 “그동안 우리 정치에서 선거 때마다 반복되어 온 후보단일화를 위한 중도사퇴는 이제 제가 마지막이 돼야 한다”며 “대통령 후보로서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만 노동권 강화와 정치개혁을 향한 진보정의당의 노력은 정책연대를 통해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는 “진보정의당과 심상정 후보의 지지에 감사하다”며 “정권교체와 새로운 정치를 위한 결단이자 헌신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의당 창당
    2012년 5월 통합진보당의 부정경선사건 이후 구당권파의 패권적 당 운영을 비판하며 노회찬 의원 등과 함께 탈당해 9월 진보정의당을 창당했다.

    진보정의당은 2013년 7월 당이름을 정의당으로 바꾼 뒤 2015년 10월 국민모임, 진보결집+ (더하기), 노동정치연대 등과 통합당대회를 열고 진보세력을 결집하며 새롭게 태어났다.

    심상정은 진보세력과 결집하기 전 정의당에서 최고위원, 원내대표 등을 역임했고 2015년 7월 3기 지도부 선출대회에서 노회찬 전 대표를 꺾고 당대표에 올랐다. 2015년 11월부터 2017년 7월10일까지 상임대표를 맡았다.

    정의당은 2016년 20대 총선에서 심상정이 경기도 고양갑, 노회찬 전 대표가 경남 창원시 성산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정당득표 7.2%를 받아 이정미, 김종대, 추혜선, 윤소하 등 4명의 비례대표가 국회에 입성했다.

    △19대 국회의원
    2012년 19대 총선에서 야권 단일후보로 고양시 덕양갑에 출마해 손범규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이기고 재선에 성공했다.

    심상정은 개표 막판까지 손범규 후보에게 밀렸으나 마지막 해외부재자 투표자 개표에서 극적으로 역전해 170표 차이로 손 후보를 누르고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70표 차이는 19대 총선에서 가장 적은 득표수 차이로 기록됐다.

    19대 국회에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정감사 우수의원,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등에 뽑혔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고양갑에 출마해 53%의 득표를 얻어 진보정당 최초의 3선 국회의원이 됐다.

    △통합진보당사건
    2012년 4월 통합진보당은 4.11총선 비례대표 경선에서 부정, 부실선거가 자행된 사실이 드러났다.

    통합진보당은 부정선거에 수긍하지 못하는 당권파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당권파로 갈라지는 내홍을 겪었고 5월12일 열린 중앙운영위원회의에서 심상정을 비롯한 이정희, 유시민, 조준호 공동대표단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날 중앙운영위원회에서 폭력사태가 일어나며 조준호, 유시민 공동대표 등이 당원들에게 맞아 부상을 당하고 며칠 뒤 당원 분신사건이 일어나며 사태가 일어나며 사태가 더욱 커졌다.

    결국 9월 심상정은 권영길, 천영세 전 민주노동당 대표, 조준호, 유시민 전 공동대표 등과 함께 당을 탈당해 새진보정당추진회의를 결성하고 10월 진보정의당을 창당했다.

    △초선 국회의원 시절
    민주노동당은 2000년 1월 창당 이후 4년 만인 2004년 원내진출에 성공했고 당시 심상정은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17대 국회에서 재경위원회, 예결산특별위원회, 한미FTA특별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다.

    초선 국회의원으로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금융과 산업을 분리하는 금산법 개정 등을 놓고 기득권 세력과 자주 부딪혔다. 심상정은 삼성그룹 등 재벌중심의 경제구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대연정 제안,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도입추진 등을 놓고 노무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심상정은 17대 국회에서 여야가 뽑은 최고 국회의원, 초선의원이 뽑은 베스트 의원 1위, 국회 입법정책 개발 최우수의원 등에 선정됐다.

    △구로동맹파업과 노동운동
    1980년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해 노동조합을 결성하면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구로공단의 대우어패럴에 미싱사로 취업해 노동조합을 결성한 뒤 1985년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했다.

    구로동맹파업은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일어난 동맹파업으로 심상정은 구로동맹파업의 주동자로 지명수배됐고 10년 가까이 수배생활을 했다.

    수배생활을 하는 동안 서울노동연합, 전국노동조합협의회에서 노동운동을 해나갔다. 1993년 연행돼 징역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선고공판을 받았을 때 만삭의 몸이었다.

    1995년 창립된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인 민주금속연맹과 금속산업연맹에서 사무처장을 맡아 노동운동을 이어갔다. 금속연맹은 산별노조인 전국금속노동조합으로 발전했고 심상정은 2003년까지 금속노조 사무처장으로 일했다.

    정부는 2001년 구로동맹파업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했다.

  • ◆ 비전과 과제

    ▲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2019년 7월20일 고려대학교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노회찬 전 의원 1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다. <정의당>

    심상정은 정의당 대표로서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비례대표로 구성된 정당이라는 유권자의 편견을 없애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 관리도 해야 하고 다른 곳의 지원유세도 가야 하는 짐을 짊어지고 있다.

    특히 심상정의 지역구 고양갑은 고양시 교통 인프라 확충을 향한 수요가 많은 곳으로 공약을 통해 이와 관련된 민심을 다독여야 할 필요가 있다.

    진보정당의 유력정치인이었던 노회찬 전 의원의 빈자리를 메우고 차세대 리더를 키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심상정은 정의당 유일의 지역구 의원이자 3선 중진 의원이다. 심상정을 제외한 정의당 의원들은 모두 비례 초선 의원이다. 심상정은 20대 국회 초선 의원 5명을 모두 재선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나아가 총선 승리를 통해 국회 내에서 정의당의 입지를 다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 선거제도 개편을 위해 힘써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뼈대로 심상정이 발의한 선거법 개정안은 2019년 8월29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통과했다. 이르면 11월 본회의 의결을 거쳐 2020년 총선에 도입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으로 수권정당으로 정의당이 도약하는 발판도 마련해야 한다.

    심상정은 당대표 수락연설에서 정의당의 위상을 높이고 더불어민주당과 개혁경쟁을 넘어 집권경쟁을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기도 했다.

  • ◆ 평가

    ▲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2019년 8월18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심상정은 정의당을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6.17%의 지지율을 얻으면서 진보정당 사상 최고 득표율로 정의당의 존재감을 끌어올렸다는 소리를 듣는다.

    노동계 '철의여인'으로 불리는 대표적 진보진영 정치인으로서 젊은 시절부터 한국의 노동운동 역사와 함께해 한국노동운동에서 여성 대표주자라는 상징적 존재로 평가받는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유권자 사이에서 밝고 스스럼없이 소통해 ‘심블리(심상정+러블리)’라는 애칭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정치인으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는 ‘명품좌파’라고 부를 정도로 높이 평가했으며 국회의원 출신 보수성향 논객인 전여옥은 ‘약자를 보호하는 세상에 관심 있는 사람’으로 칭찬하기도 했다. 

    구해근 미국 하와이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이란 책에서 심상정을 “1980년대 노동운동의 산 증인이랄까, 목적의식을 지니고 현장 속으로 들어가 대중운동을 해온 대표적인 여성 노동운동가”라고 평가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뽑혔을 때 조세개혁을 통한 복지 증진과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데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받았다. 이후 비례대표로 당선된 뒤 삼성의 불법 행위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문제를 비판하는 등 적극적 의정활동으로 ‘한국 진보진영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운동권에서 주류로 활동한 적은 없다고 자평한다. 실제로 단위 노조위원장이나 연맹 혹은 민주노총의 임원자리를 맡은 적은 없고 주로 투쟁을 기획하고 현장경험을 중시하는 노동활동가로 두각을 나타냈다. 전노협과 민주노총 결성을 주도했고, 대기업 중심의 전국금속노조에서 사무처장을 지냈다.

    노동자로 여성으로 어머니로 한가지 역할도 놓치지 않아 슈퍼우먼으로 불린다. 수배로 도피생활을 할 때 몸이 상해 술을 못하지만 노동자들의 술자리에는 늦게까지 남았다고 한다. 1993년 도피생활을 마치고 법정에 섰을 때 아이를 임신해 배가 남산만한 그를 보고 판사가 놀랐다고 한다.

    책임정치를 바탕으로 한 희생정신도 높이 평가된다. 2010년 경기지사 선거와 2012년 대통령 선거 때 야권 단일화를 위해 후보에서 물러났다. 통합진보당 대표 당시 비례대표 부정경선의 책임을 지고 대표에서 사퇴했다.

    스스로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일로 ‘결혼’을 꼽는다. 결혼한 뒤 삶으로서 운동을 더 깊이 이해했다고 한다.

    ‘사랑’ 때문에 운동권에 입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좋아한 남학생들은 모두 운동권 출신이었고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시위대를 따라다니다가 노동운동에 눈을 뜬 것으로 전해진다.

    심상정의 남편 이승배씨는 적극적인 외조로 유명하다. 이승배씨 역시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두 사람을 이어줬다고 한다.

    이승배씨는 청년시절 노동운동을 함께 하며 심상정과 사랑을 키워온 만큼 노동운동가로서 아내를 전적으로 이해하고 돕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배씨는 2016년 4월 뉴스1과 인터뷰에서 “부인이 집안일을 하는 것은 사회적 기회비용의 낭비라고 생각한다”며 “집안일과 바깥일을 동시에 하는 슈퍼우먼을 기대할 수 없기에 집안일은 내가 신경써서 한다”고 말했다.

    팬클럽 ‘심크러쉬’가 있다. 심상정은 2016년 7월24일 열린 팬클럽 창단식에서 “어제 잠을 못 잤다. 소개팅 앞둔 사람처럼 너무도 설레고 초조했다. 이렇게 많이 모일 줄 몰랐다. 정말 감사하다”고 들뜬 심경을 전했다.

    오마이뉴스가 심상정의 정치자금 사용내역을 분석한 결과 주로 국회 후생관과 국회 의원식당 등 주로 저렴한 곳에서 식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한국 진보정치의 결정적 순간들에서 탈당을 하거나 당원들에게 위임받은 직책 등을 포기해 분열정치를 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심상정은 2008년 이후 ‘정치적 둥지’를 두 차례 뛰쳐나온 적이 있다.

    심상정은 통합진보당이 경선 부정 의혹 등으로 논란을 겪던 2012년 노회찬 전 의원 등 이른바 ‘신당권파’와 함께 “당내 낡은 질서와 패권에 야합할 수 없다”며 “대중적 진보정당 창당에 힘쓰겠다”며 통합진보당을 나왔다.

    2008년에도 노회찬 전 의원과 함께 “친북주의에 물들지 않은 새로운 진보정당을 창당한다”며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것을 가장 어려웠던 시기로 꼽는다.

    3선 의원이 된 후 방송, 특히 예능 출연이 잦은 편이다. 2016년 12월 JTBC '말하는대로' 출연을 시작으로 2017년 6월 KBS '냄비받침', 11월 JTBC '나의 외사친'에 출연했고 2018년에는 JTBC '썰전'에 여러차례 출연했다.

    2019년 5월에는 SBS '미운우리새끼'에 등장했다. 드라마 '보좌관' 출연을 앞둔 임원희 배우가 심상정 의원실에서 일일 보좌관으로 활동했다. 심상정은 임원희 배우에게 낯을 가린다며 타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페이스북에는 “지역구에서 이렇게 의원보다 더 인기 있는 보좌관은 글쎄, 바로 잘리지 않을까요?”라고 글을 남겼다.

    ◆ 사건사고

    ▲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2019년 7월23일 경남 창원에서 열린 노회찬 전 의원 1주기 추모제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제 관련 발언 논란
    심상정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선거제 개편을 추진하는 도중에 한 발언이 논란을 빚었다.

    2019년 3월17일 여야 4당이 선거제 개편안 단일안에 잠정합의를 했다. 이에 비례대표 의석을 권역별로 적용하는 방법을 놓고 기자가 예시를 들어달라며 질문하자 심상정은 “산식이 굉장히 복잡해서 여러분은 이해 못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국민을 설득하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국민들은 산식이 필요없다”며 “컴퓨터를 칠 때 치는 방법만 알면 되지 그 안의 컴퓨터 부품이 어떻고 하는 것은 알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심상정의 발언을 비판한 것을 놓고 “정치개혁의 큰 호박을 굴려야지 말꼬리나 잡는 것은 좁쌀정치”라고 말하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심상정은 3월19일 해당 발언은 선관위에서 계산식이 나오면 추후에 말씀드리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미연합훈련 비난성명 서명 논란
    심상정은 2018년 8월 한미 합동훈련을 전쟁연습으로 적은 공개선언문에 참여해 논란이 됐다.

    심상정을 비롯해 김두관·조정식·이원욱·소병훈·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6명은 6·15 경기본부가 발표한 경기8·15선언에 이름을 올렸다.

    선언문은 한미 합동훈련을 전쟁연습으로 표현하고 북한을 겨냥한 모든 전쟁연습을 중단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의원들은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지 못하거나 보좌진의 착오로 서명했다며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취소조치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갈리아 논란
    정의당은 2016년 7월 소위 ‘메갈리아 논란’으로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게임업체 넥슨은 2016년 7월 남성혐오 사이트로 알려진 ‘메갈리아’를 후원하는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SNS에 올린 한 성우와 계약을 해지한 것이 알려졌다.

    이를 놓고 인터넷 상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는 7월20일 “정치적 의견이 직업활동을 가로막는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며 “넥슨의 결정이 부당하며 이런 결정은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의당의 이런 지적을 놓고 메갈리아를 옹호한다는 주장이 빗발쳤고 일부 당원들은 탈당계를 내고 당을 나가는 사태로 이어졌다.

    정의당 상무집행위원회는 25일 “이 논평은 메갈리아에 대한 지지여부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님에도 정의당이 친메갈리아인가 아닌가를 놓고 수많은 논쟁을 야기했다”며 “부당한 노동권의 침해라는 취지전달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논평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심상정은 7월29일 직접 홈페이지에 “부적절한 논평이 나가 걱정과 실망을 끼쳐 죄송하다”며 “서운하셨겠지만 다시 한번 힘을 모아달라”고 글을 올렸다.

    △전과 기록
    심상정은 두 차례 전과가 있다.

    구로공단 동맹 파업을 조직한 혐의로 수배됐다가 10년 만에 체포돼 1993년 11월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금속노조 사무총장이었던 2003년 4월에는 일반교통방해,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으로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았다.

  • ◆ 경력

    ▲ 20대 구로공단 미싱사 시절 동료들과 물놀이를 갔을 때(왼쪽에서 네번째).

    1980년 서울대학교 최초로 총여학생회를 창설해 초대 총여학생회장을 지냈다.

    1980년부터 1년 동안 구로3공단의 남성전기 노동조합의 교육부장으로 활동하다가 해고됐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 구로1공단의 대우어페럴 미싱사로 근무하다가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지명수배됐다.

    1985년부터 1년 동안 서울노동운동연합 결성을 주도하며 중앙위원장을 맡았다.

    1987년부터 1995년까지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쟁의부장, 쟁의국장, 조직국장 등을 역임했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민주금속연맹과 금속산업연맹 사무처장을 맡았다.

    2000년 4.13총선 때 민주노동당 의원으로 국회 입성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당시 당대회 부의장을 거쳐 민주노동당 대의원 겸 중앙위원까지 맡았다.

    2001년부터 2003년 9월까지 전국금속노동조합 사무처장으로 일했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17대 국회에 입성했다. 같은해 민주노동당 원내 수석부대표로 선임됐다.

    2008년 1월부터 한달 동안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선거에서 경기도 고양시 덕양갑에 출마했으나 손범규 한나라당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2008년 3월부터 2009년 3월까지 진보신당 공동대표,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진보신당 상임고문을 지냈다.

    2011년 9월 진보신당을 탈당하고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만들어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과 함께 공동대표가 됐다. 같은해 10월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공동선거대책위워장을 맡기도 했다.

    2012년 5월 19대 총선에서 야권 단일 후보로 경기도 고양시 덕양갑에 통합진보당 후보로 출마해 손범규 새누리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2012년 7월 통합진보당 원내대표에 선출됐다. 2012년 9월 통합진보당에서 나와 진보정의당을 만들었다.

    2012년 10월 진보정의당의 18대 대통령선거 후보로 단독 등록했으나 11월 말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의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뒤 후보에서 사퇴했다.

    2013년 7월 진보정의당은 정의당으로 당이름을 바꿨고 정의당은 2015년 국민모임, 진보결집, 노동정치연대 등과 함께 정의당으로 재창당했다.

    2015년 7월부터 11월까지 대표를 역임했고 11월부터 상임대표를 맡았다.

    2016년 5월 20대 총선에서 경기도 고양시갑에서 정의당 후보로 출마해 손범규 새누리당 후보를 누르고 3선 국회의원이 됐다.

    2017년 2월 정의당 당원 총투표에서 정의당 대선후보로 공식선출됐다.

    2017년 7월 정의당 상임대표에서 물러났다.

    2019년 7월 정의당 대표에 올랐다. 
       
    ◆ 학력

    ▲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심상정 정의당 대표.

    1971년 대조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74년 충암중학교를 졸업했다.

    1977년 명지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3년 서울대 사범대학교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남편 이승배씨와 사이에 아들 이우균씨가 있다.

    ◆ 상훈 

    2013년 대한민국입법대상을 받았다.

    2018년 제20회 백봉신사상 대상을 받았다.

    ◆ 기타

    2019년 3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따르면 본인과 배우자, 모친, 장남 명의로 모두 13억2516만 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저서로 ‘당당한 아름다움’(2008)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2013) 등이 있다.

    공동저작으로는 ‘꿈꾸는 여대생에게 들려주는 여성리더들의 이야기’(2009) ‘인생기출문제집’(2009) ‘심상정, 이상 혹은 현실’(2010) ‘내가 걸은 만큼만 내 인생이다’(2011) ‘인생에서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2011) ‘그대 아직도 부자를 꿈꾸는가’(2011) 등이 있다.

  • ◆ 어록

    ▲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2019년 7월23일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후보자는 오랫동안 도덕적 담론을 주도했는데 짊어진 도덕적 책임과 그 무게가 커진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조 후보자는 칼날 위에 선 자세로 성찰하고 해명하기 바란다." (2019/08/22,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상무위원회 모두발언에서)

    “아베 정부의 파렴치한 경제보복을 향해 한국정부와 정치권이 합심해 단호히 대처해 공동번영의 새로운 한일관계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한국 정부는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질서를 수호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국제사회에 알려야 한다." (2019/07/18,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상무위원회의에서)

    “검찰은 앞으로도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전모와 진실을 명명백백히 밝혀 금융시장의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특정 사익을 위해 공적 규율이 훼손되는 시대를 끝내야 한다” (2019/04/29,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한 보도자료에서)

    “부동산 투기를 방조하는 것은 성실한 시민들을 모욕하는 일이다. 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한 확고한 의지와 일관성을 보여줘야 한다” (2018/09/11, 종합부동산세 강화법안을 발의하면서)

    "공정과 기회의 균등은 오히려 시장경제와 자유주의적 가치의 요청사항이다. 잘못된 관행이 있다면 바로잡고 채용비리를 뿌리뽑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18/05/24,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안을 발의하면서)

    "민간기업이라도 공개채용이라는 것은 수많은 지원자의 약속이고 일종의 사회계약이다. 공개된 기준과 다른 기준으로 직원을 채용하는 것은 그 약속과 계약을 저버린 것이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은행이 국민이 낸 공적자금의 투입으로 회생했다. 아쉬울 때는 국민의 지원과 공적자금을 요구하고 사회적 가치를 위반했을 때는 불개입을 주장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2018/02/06, 국회 본관에서 연 은행 채용비리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은 노동권이 결국 직장에서의 촛불이라는 걸 인식할 때 가능해진다. 노동권이 인정받는다는 건 개인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해 공정하게 평가받는 사회가 된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만 냉전적 이데올로기가 악용되면서 노동이 폄하됐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되었으면 노동자들에게 정당하게 성과를 되돌려야 한다는 것, 그게 시대정신이다.” (2017/11/30, ‘난 네 편이야’를 출간하고 yes24와 한 인터뷰에서) 

    “정치인에게 말은 재주라기보다 곧 그 정치인의 가치이자, 비전이자, 소통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이 말을 잘한다는 것은 국민에게 신뢰를 받는다는 것이다. 지역구 주민 중 한 분이 다른 사람 말은 못 믿어도 심상정 말을 믿는다고 말씀해 주신 적이 있었다. 국회에서 심상정에게 주어지는 권력이 있다면 그건 제 권력이 아니라 주민들 거라는 생각을 늘 한다.” (2017/11/30, ‘난 네 편이야’를 출간하고 yes24와 한 인터뷰에서) 

    “문,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물론 정권이 바뀔 것이다. 그러나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여러분의 삶이 바뀔 것이다.” (2017/04/07,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소위 ‘양강구도’는 국민의 뜻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퇴행적인 정치공학의 산물이다. 기득권 세력이 이번 대선을 ‘문재인 대 안철수’라는 양강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저의 사퇴는 촛불 시민의 사퇴다. 제 정치인생을 걸고 완주하겠다고 다시 한 번 밝힌다.” (2017/04/06, 기자간담회에서)

    “황교안 권한대행은 명심하라. 소녀상 철거를 국민 몰래 약속하겠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않길 바란다.” (2017/04/05,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나라 꼴이 왜 이렇게 됐나. 연례행사처럼 재벌총수들이 검찰로 줄줄이 불려가고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풍경은 왜 되풀이되나. ‘법 앞의 평등’에 예외를 뒀기 때문이다. 사면은 국민이 시끄러울 땐 잡아넣었다가 조용해지면 빼내주자는 말이다. 국민들을 개, 돼지로 보는 발상과 뭐가 다른가. 내가 대통령이 되면 이재용 부회장,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하지 않을 것이다.” (2017/04/01,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 논란을 두고)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은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도 내팽개치고 형사피의자를 자처한 데 따른 자업자득이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이 ‘법의 지배’가 실현되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017/03/31,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을 두고)

    “진보정당은 8,90년대 청년들이 2000년에 만든 정당이었다. 청년들에게 정의당을 내어주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꿈만 남기고, 모든 것을 바꾸자.” (2017/03/26, 정의당 19대 대선승리 전진대회에서)

    “황교안 총리가 그렇게 천지분간을 못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2017/03/14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황 총리의 출마 가능성을 묻자)

    “김고은씨 팬클럽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2017/03/09 JTBC 썰전에 출연해 별명이 ‘2초 김고은’이란 말을 듣자)

    “법원이 수명연장을 취소한 월성1호기부터 문을 닫겠다. 2040년까지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해 한국 탈핵시대를 열겠다. 탈핵은 더 이상 비현실적인 꿈도, 실현 불가능한 목표도 아니다. 국민안전은 그 어떤 이유로도 미뤄서는 안 된다.” (2017/03/06, 2040탈핵공약을 발표하며)

    “2019년이면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된다. 지금부터라도 역사바로세우기 노력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2017/03/01, 3·1절을 맞아 논평을 내고)

    “월급 조금 주려고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관행부터 뿌리 뽑겠다.” (2017/02/12, 비정규직 공약을 발표하며)

    “출산휴가를 90일에서 120일로 확대하고 현재 유급 3일인 배우자 출산휴가를 30일로 늘리겠다.” (2017/01/23, 대선1호 공약인 ‘슈퍼우먼방지법’을 발표하며)

    “열심히 일하고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 (2017/01/19, 대선출마를 선언하며)

    “변화의 열망과 좌절의 한숨이 공존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선생님의 가르침이 절실한 때입니다. 여전히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2017/01/15, 신영복 선생 1주기 추도사에서)

    “이번 대선은 촛불민심을 대변하는 길이다. 이 문제에 응답하는 정의당이 되려고 한다. 한국에서 노동문제를 국가의 제1의제로 삼는 최초의 대통령이 되고 싶다.” (2017/01/09, 기자들과 간담회에서)

    “선거권 연령을 적어도 18살로 낮춰야 한다.” (2017/01/02, 선거권 연령 개정에 대해)

    “대통령이 국민의 탄핵을 받았으니 국정교과서도 마땅히 탄핵받아야 한다. 겨울방학, 크리스마스, 새해 등으로 기대감에 부푼 아이들에게 국정교과서 폐기야 말로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2016/12/12, ‘국정교과서 해부 및 대책마련을 위한 긴급토론회’ 축사에서)

    “국민의 뜻을 받드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자했던 국민을 또다시 좌절시켰다. 비겁하고 고약한 대통령이다.” (2016/11/29,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담화문을 두고)

    “만일 국회에서 탄핵을 반대하면 반대세력과 정치인을 국민이 자르면 된다. 헌법재판소가 국민 뜻과 다른 판결을 낸다면 헌법을 고쳐서라도 대통령 임기단축을 하는 국민탄핵으로 박 정권을 끌어내려야 한다.” (2016/11/26, 박근혜 대통령 퇴진 이동당사 출범식에서)

    “정의당이 진보정당이기 때문에 더 세고 더 강하게 하야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관점에서 대한민국 헌법에 부합하는 가장 책임 있고 가장 올바른 길이 대통령 하야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2016/11/12, 광화문에서 열린 ‘대통령 하야촉구 정의당 사전결의대회’에서)

    “이번 달 한·중·일 정상회담이 있는데 대통령이 가기 어려울 것이고 간다 해도 대한민국의 국제적 수치가 되지 않겠나. 기자들이 전부 최순실, 샤머니즘을 물어볼 것이다. 주요 정상들도 ‘식물대통령’과 주요한 외교현안을 협의하지 않을 것이다." (2016/11/09, 이재명 성남시장과 회동에서)

    “고(故) 백남기라는 이름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역사가 됐다. 고인은 밭은 숨결을 이어가며 인간의 존엄성과 시민의 권리를 웅변하셨다.” (2016/11/06, 백남기씨의 영결식 추도사에서)

    “오늘 대통령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아파 잠시나마 위로라도 건네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대통령의 고통보다 이를 지켜보는 참담한 국민들이 더 걱정된다.” (2016/11/04, 박근혜 대통령의 국민담화에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국정을 농단한 주범 최순실을 공항에서 체포하지 않은 것은 물론 오늘 소환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검찰을 국민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 (2016/10/30, 최순실씨의 강도 높은 수사를 요구하며)

    “전경련 해체는 권력에 결탁한 강자만 행복한 ‘이권추구 경제’가 아니라 모든 경제주체가 함께 행복한 ‘정의로운 경제’로 나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2016/10/16, 전경련 해체촉구 결의안을 발의하며)

    “유한킴벌리는 미국 킴벌리가 70%, 유한양행이 30% 지분을 소유하고 있지만 2012년 이사 선임권을 둘러싼 분쟁이 킴벌리 측의 승리로 끝나면서 100년 전통의 유한양행 시대는 끝나고 사실상 미국계 기업이 됐다.” (2016/10/11, 국정감사에서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을 몰래 올려왔다고 주장하며)

    “요즘 제 별명이 ‘심블리’다. 얼굴도 많이 예뻐졌다고 하는데 정치인의 얼굴이 예뻐지는 이유는 유권자들의 사랑을 받아서다. 지역구 주민들께 감사한다.” (2016/04/07, 선거운동 도중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세계평화는 물론이고 한반도 비핵에 대한 민족의 염원에 반하는 파괴적 행위다. 미사일 발사는 북한 주민의 생존마저 위태롭게 하는 자학적 행태로 정의당은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 (2016/02/07,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두고)

    “정당정치는 책임정치다. 공천할 때는 언제고 문제가 생기면 나 몰라라 하는 정치,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정치를 바꿔야 한다. 정당 공천을 받은 국회의원이 부정선거나 부정부패 등으로 의원직을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실시할 경우 해당 정당은 후보를 공천하지 말고 선거비용의 50%를 정당의 국고보조금에서 삭감해야 한다.” (2016/01/12, 정당의 ‘공천무한책임제’를 제안하며)

    “정부가 10억 엔을 받고 일본에 너무 많은 것을 내줬다.” (2016/01/06, 24주년 수요집회에서)

    “서민과 중산층의 진보, 밥 먹여주는 진보, 민생 진보로서 노선을 선명히 걷겠다. 확고한 당의 방침으로 진보 재편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고 이기는 정당이 되겠다.” (2015/07/20, 정의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정의당은 창당 때부터 분열된 진보세력을 하나로 결집시켜 명실상부한 진보대표정당의 위상을 갖추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뿌리가 같은 진보세력의 결집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오늘 함께 공동선언을 하는 4자뿐 아니라 그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진보정치를 지지하지만 동참을 유보해왔던 많은 세력들과 지지자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더 큰 책임으로 임하겠다.” (2015/06/04, 정의당을 중심으로 진보정당을 강력하게 만들겠다고 밝히며)

    ▲ 2012년 12월19일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이 노회찬 의원과 함께 18대 대선 개표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오늘 중앙위를 마지막으로 공동대표직을 내려놓는다. 진보 정치 15년을 돌아보니 고통스러운 결정의 순간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여러분의 결단으로 진보 정치의 새 시대를 힘차게 열어 달라.” (2012/05/12, 통합진보당 사태로 대표직에서 내려오며)

    “정부의 매몰찬 일방주의가 가장 힘없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정부에서 ‘떼법’을 목청 높여 주장해왔는데 그 결과가 철거민 다섯과 특공대원 한 사람의 죽음으로 나타났다.” (2009/01/20, 용산참사 당시 정부의 무리한 진압을 비판하며)

    “국민 건강을 지키려는 일본 정부의 끈질긴 노력과 국민의 반대 목소리를 외면하는 한국의 태도가 너무 다르다.” (2008/05/30, 정부의 미국 쇠고기수입을 비판하며)

    “지난 대선에서 국민이 보낸 최후통첩을 겸허히 받들어 민노당을 새로 태어나게 하라는 소임을 맡았으나 기대와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물러나게 됐다.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2008/02/05,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장에서 사퇴하며)

    “비례대표 후보는 진보정당의 예비내각 역할을 담당할 능력이 있는 분들을 위주로 구성돼야 한다. 명망성보다 실력, 당내보다는 당 바깥 인사를 중심으로 추천하겠다. 당의 빗장을 과감히 열겠다.” (2008/01/14,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뒤 기자회견에서)

    “특수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인생의 지혜로 삼고 있는 인물에게 국민들이 어떻게 국정을 맡길 수 있겠는가.” (2007/09/13,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주요 일간지 편집국장들과 저녁자리에서 “특수서비스에 종사하는 여성을 고를 때 덜 예쁜 여자를 골라야 서비스가 좋다”고 말한 것을 두고)

    “자본이동이 자유로워지면 수혜 계층과 피해 계층 사이에 필연적으로 양극화가 심해진다. 구제금융 위기와 한미FTA는 모두 자본 이동의 자유를 대폭 허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득 불평등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2007/04/19, 한미FTA를 반대하는 보도자료를 통해)

    “한미 FTA는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라 미국의 다국적 기업을 옹호하기 위한 보호무역 강요다. 노무현 대통령이 허세욱 동지의 고통스런 절규를 외면한다면 살인정부라는 오명을 벗기 어려울 것이다.” (2007/04/01, 한미FTA 저지 촛불문화제에서 허세욱씨의 분신을 언급하며)

    “정권교체가 아니라 시대교체다. 민주노동당의 힘으로 보수정치 시대를 끝내고 가난한 사람의 민주주의 시대를 힘차게 열어내겠다.” (2007/03/07,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출마를 선언하며)

    “부동산 투기만은 잡겠다던 노무현 정부가 마침내 부동산 불패신화 앞에 참패를 선언하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가 부동산투기를 잡은 게 아니라 부동산투기가 노무현 정부를 잡고 말았다.” (2006/11/15, 공급확대를 중심으로 한 정부의 부동산대책을 비판하며)

    “이 시장의 발언은 일본 우익인사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일본 정부에 대한 우리 정부와 국민의 사과 촉구 노력을 폄하하는 것이다. 이 시장이 계속 대권의 꿈을 키우려 한다면 국민에게 겸허히 사죄하고 역사부터 다시 공부해야 할 것이다.” (2006/02/01,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아시아의 정치 지도자들이 과거에 얽매여 국가간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아시아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고 말한 데 대해)

    “삼성그룹이 지난 1997년부터 98년까지의 기아사태에 개입됐는지 여부와 ‘금융산업구조조정을위한법률’(금산법) 개정 문제 등에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이건희 회장에게 직접 물어야 한다. 그동안 드러난 삼성그룹의 탈법·불법사례가 전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만큼 반드시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 (2005/09/08, 국회 재경위 전체회의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국정감사 증인 채택을 주장하며)

    “연정론에 편집증적으로 매달리는 대통령의 모습이 안쓰럽다. 연정 대상으로 거론한 한나라당은 지역주의 타파와 정치개혁을 할 능력과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2005/07/28,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두고)

    “국세청이 개인의 배임수재에 대해서는 형사처벌 과정에서 수재액을 몰수한 뒤에도 소득세를 부과한 전례가 있었지만 정치인들의 뇌물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개인에 대해서는 이런 혹독한 처벌을 하면서 뇌물을 받은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2005/04/22, 고위공직자가 받은 뇌물에 과세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재벌경제 논리를 말하는 의원들 사이에서 서민경제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기싸움에 논리싸움까지 해야 할 상황이라 고민이 많다.” (2004/05, 재정경제위원회 상임위원으로 배정되면서)

    “지난해 현대차의 영업이익 7조5500억 원의 5% 내외면 불법파견 문제는 다 해결할 수 있다. 그동안 사내하청 고용으로 값싸게 쓴 비용을 제 값 내고 쓰려고 하니 아까운 것이다. 11년 동안 불법적으로 착취 당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2004/03/12, 한 라디오매체에 출연해)

    ”왜 감옥살이 안 했냐고 나한테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수배생활 중에 경찰이 여자들을 잘 구별 못하더라. 화장만 조금 하고 다르게 꾸미면 얼굴을 못 알아본다.” (2004/03/11, 한겨레21과 인터뷰에서)

    “여성 활동가들 가운데 결혼하면 끝이라고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결혼한 뒤 삶으로서 운동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엄마로 며느리로 아내로 또 일하는 여성으로서 겪는 고통과 어려움이 활동가라고 해서 면제되는 것도 아닌데, 온몸으로 부딪쳐오면서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2004/03/11, 한겨레21과 인터뷰에서)

    “2007년 고리1호기 수명연장 근거서류 가운데 하나인 ‘고리1호기 계속운전의 경제성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최근 열람해 보니 발전소 철거비용 등 원전 사후처리 비용이 누락되고 원전 평균이용률을 현실과 다르게 적용했다. 이는 분명 고리1호기 수명연장을 위해 경제성 분석을 조작한 것이다.” (2003/05/08, 고리1호기 경제성분석 문제를 지적하며)

    “두산은 법과 원칙을 줄곧 내세우면서도 오직 돈벌이에만 매달려 노동법이 인정하는 노조와 파업을 거부해왔다. 파업으로 생산이 멈추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사업장은 노조를 귀찮은 존재지만 그래도 파트너로 인정하고 타협하는데 두산중공업은 한순간에 노조를 없애기 어려워지자 단계적으로 무력화하는 수순을 밟아왔다.” (2003/03/14,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 분신사망 사태가 벌어진 뒤 금속노조 사무처장으로서)

    “4월14일 새벽 여의도 민주노동당 당사는 침울했다.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로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탓도 있었지만 내부 정치만 잘됐더라도 53년 만의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이라는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자괴감이 컸다.” (2000년 4·13 총선 뒤 계간지 ‘창작과비평’에 쓴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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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의 댓글 1개

박상정 | (112.140.68.63)   2019-09-03 11:34:59
심쌍전씨 여당 이중대 역활 그만하세요
야당이면 야당에 목소리 네세요
무조건 야당 시다바리 노릇하지마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