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소프트뱅크와 손잡고 모빌리티혁명 주도권 향해 질주하다

▲ 토요다 아키오 토요타 회장 겸 최고경영자(왼쪽),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토요타가 모빌리티혁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질주하고 있다.

토요타는 일본 소프트뱅크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손정의 회장이라는 든든한 우군을 통해 세계적으로 자율주행과 차량공유 등에 적극적으로 손을 뻗치고 있다.

토요타의 체질 전환속도를 능가하는 완성차기업을 세계적으로 찾기 힘들 정도다.

토요타는 글로벌 1, 2위를 다투는 판매량, 소비자들의 품질 신뢰 등을 발판삼아 미래 자동차시장에서도 주도권을 확실히 쥐겠다며 체질 전환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 토요타, ‘모네테크놀로지스’로 미래 준비

18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토요타는 ‘모네테크놀로지스’라는 회사를 미래 모빌리티혁명에 대비하기 위한 구심점으로 삼고 있다.

모네(MONET)라는 회사 이름은 모빌리티(Mobility)와 네트워크(Network)를 합친 말이다. 미래차 시장의 핵심 키워드인 두 단어를 회사이름에 담은 데서 토요타의 모빌리티혁명을 향한 선도의지가 읽힌다.

토요타는 모네테크놀로지스의 출범 목적에도 ‘일본의 마스(MaaS, Mobility as a Service의 줄임말로 ’서비스로서의 모빌리티‘를 뜻함) 오픈 플랫폼 구축 및 마스 보급 촉진’을 명시했다.

모네테크놀로지스는 2019년 1월 토요타와 소프트뱅크의 공동출자로 설립됐다. 초기 자본금은 20억 엔(약 200억 원)으로 소프트뱅크와 토요타는 각각 50.25대 49.75의 비율로 자본금을 댔다.

출범 초기만 하더라도 토요타와 소프트뱅크 등 두 회사가 전부였다. 하지만 모네테크놀로지스에 합류한 회사는 계속 늘어 6월 말 기준으로 276개에 이르렀다.

참여 기업의 면면은 매우 다양하다.

토요타의 부품 계열사 덴소와 일본 변속기 전문기업 아이신 등 전통적 자동차 관련 기업은 물론이고 오다큐전철, 카시마건설, 기린주식회사, 빅카메라, 페이팔 등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모네테크놀로지스는 음식과 물류, 여행·여객, 의료, 정보제공서비스, 엔터테인먼트, 부동산, 금융, 교육 등 마스 분야에서 신규사업을 검토하고 있는 사업자라면 소정의 심사 과정을 통해 누구나 ‘모네테크놀로지스 컨소시엄’에 합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모네테크놀로지스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회사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일본 완성차기업 마즈다와 스즈키, 스바루, 이스즈, 다이하츠는 6월 말 모네테크놀로지스 컨소시엄에 투자해 각각 2%씩 지분을 확보하기로 했다.

출자기업이 늘어나면서 자본금 역시 현재 330억 원 수준까지 늘어났다.

◆ 토요타는 이미 ‘체질 대수술’ 진행 중

토요타가 모네테크놀로지스를 중심으로 모빌리티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연합군을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나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자동차산업의 흐름이 이미 완성차 제조와 판매 중심에서 자율주행과 차량공유, 전동화 등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테슬라는 이미 전기차 분야에서 독보적 입지를 구축하며 내연기관차 중심의 완성차기업들만의 리그를 뒤흔들었다. 우버로 대표되는 차량공유사업자의 등장으로 완성차 수요 자체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이미 주류를 이루고 있다.

토요타는 ‘대격변시대’에서 생존하기 위해 ‘체질 대수술’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토요다 아키오 토요타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5월 공식석상에서 “나의 진정한 사명(Mission)은 토요타를 모빌리티 회사로 완전히 재설계하는 것”이라며 “단순히 사람들을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동성과 관련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그 사명”이라고 밝혔다.

그는 2018년 초 미국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자동차회사에서 모빌리티회사로 전환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며 “내 마음 속에서 우리(토요타)가 만들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고도 말했다.

시게키 토모야마 토요타 부사장이 지난해 10월 모네테크놀로지 설립계획을 밝히며 “우리는 전통적 자동차 제조기업에서 새로운 분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토요타의 체질 전환 의지를 드러내는 발언이다.

토요타는 이미 3년여 전부터 이런 의지를 현실로 옮겨왔다.

토요타는 2016년 5월 우버와 양해각서를 체결해 차량공유사업에서 제휴해왔다. 당시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투자금액은 수백억 원 규모로 추정됐다. 2018년 8월에는 두 번째 투자로 5억 달러의 통큰 베팅을 단행하기도 했다.

싱가포르 현지 1위 차량공유기업인 그랩에도 2018년 6월 10억 달러를 투자했고 중국의 우버라 불리는 디디추싱과 7월 말 6억 달러를 투자하고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합작회사 설립계획도 밝혔다.
토요타, 소프트뱅크와 손잡고 모빌리티혁명 주도권 향해 질주하다

▲ 토요타와 소프트뱅크의 합작으로 설립된 모네테크놀로지스에 참여한 기업의 수는 6월 말 기준으로 276개까지 늘었다. <모네테크놀로지스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손정의, 소프트뱅크로 토요타에 날개 달아주다

토요타의 이런 움직임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는 회사가 바로 소프트뱅크다.

소프트뱅크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와 함께 조성한 세계 최대 규모의 기술투자펀드인 비전펀드를 통해 이미 우버와 그랩, 디디추싱뿐 아니라 인도의 올라, 러시아의 얀덱스 등의 주요 모빌리티 플랫폼기업에 오랜 기간 투자해왔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미래에 모빌리티 관련 플랫폼사업자가 대세를 이끌 것이라 판단하고 꾸준히 이들에 투자를 확대했다.

이를 감안할 때 토요타와 손 회장의 협력은 토요타와 손 회장 모두에게 이익을 안겨다주는 결정으로도 볼 수 있다.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가 지향하는 지점이 마스(MaaS)보다 한층 더 큰 개념인 타스(TaaS, Transportation as a Service의 줄임말로 ‘서비스로서의 수송’을 뜻함)라는 점에서 둘의 협력은 앞으로 더욱 큰 시너지를 낼 가능성이 높다.

소프트뱅크가 비전펀드를 통해 투자한 분야를 보면 △우버ATG, 맵박스, 브레인, 크루즈 등 자율주행 기업 △겟어라운드, 리프파킹, 페어 등 개인간(P2P) 차량공유 플랫폼기업 △플렉스포트, 델리퍼리, 토코피디아, 쿠팡 등 물류·이커머스기업 △도어대쉬, 볼트, 그로퍼스 등 주문형 배달 서비스기업 등으로 다양하다.

손 회장이 7월 초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앞으로 한국이 집중해야 할 것은 첫째도 인공지능, 둘째도 인공지능, 셋째도 인공지능”이라고 말한 점을 상기해보면 궁극적으로 소프트뱅크의 궁극적 목표는 ‘인공지능에 기반을 둔 수송과 물류 분야’에 있다고 판단해도 무방해 보인다.

이런 꿈을 조기에 실현시켜줄 사업 파트너로 토요타를 꼽았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토요타와 소프트뱅크는 4월에도 우버의 자율주행 개발 부문에 모두 10억 달러를 출자하기로 결정하며 밀월관계를 과시했다.

이는 두 회사가 모네테크놀로지스를 설립한 뒤 시행된 첫 출자 사례인데 앞으로도 자율주행과 차량공유 등에서 추가 투자 결정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 국내 완성차업계는 일본에게 무엇을 배워야 하나

물론 자동차산업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회사가 토요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너럴모터스(GM)은 2016년 우버의 라이벌격 회사로 평가받는 리프트에 5억 달러를 투자했다. 다임러와 BMW 등 독일 완성차기업들도 세계 곳곳에서 차량공유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토요타가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이 그 어느 완성차기업과 비교해도 앞서있다는 평가에 큰 이견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맥쿼리캐피탈시큐리티의 아시아 자동차 연구 책임자인 자넷 루이스는 “토요타는 개인 모빌리티부터 시작해 고급차까지,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공유 모빌리티와 상업용 차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빌리티 제품 라인업을 개발하고 있다”며 “투자자들은 투자 규모를 봤을 때 토요타가 승자로 보인다는데 동의한다”고 평가했다.

토요타가 투자나 파트너십 이외에도 독자적으로 연구개발에만 쏟아 붓는 돈이 한 해에 약 97억 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평가에 더욱 힘이 실린다.

코지 엔도 SBI시큐리티 수석 애널리스트도 “토요타는 회사를 기존 하드웨어 중심 기업에서 모빌리티 회사로 전환하기로 결심했다”며 “토요타가 빠르게 변화하고 경쟁이 심화하는 자동차산업에서 이길 수 있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토요타의 경영진이 이런 흐름을 쫓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봤다. 토요타의 공격적 발걸음이 미래 모빌리티시장에서 토요타를 강자로 만드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토요타와 소프트뱅크가 손을 잡고 미래차 시대에 대응하는 모습은 한국의 완성차와 모빌리티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모빌리티 관련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국내 완성차기업은 사실상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유일하다.

카카오와 쏘카 등이 나름대로 차량공유 관련 플랫폼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관련 제도가 미비한 탓에 성장속도는 매우 더딘 편이고 네이버가 독자적으로 보유한 인공지능 기술을 바탕으로 진행하는 자율주행차 연구성과도 아직 미미하다.

가장 큰 문제점은 국내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의 합종연횡 전술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의 협업 없이 각개전투식으로 모빌리티 전략을 알아서 추진하는 환경에서는 토요타와 소프트뱅크를 중심으로 한 일본 기업의 파상공세에 미래시장에서 설 자리를 확보하기 힘들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