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우대국가)에서 제외한다면 한국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업계의 생산차질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5일 반도체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빼면 국내 반도체기업의 생산량이 한동안 줄어들거나 수출품의 납기 맞추기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 빼면 반도체 디스플레이 생산차질

▲ 25일 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다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업계가 직접적 영향을 받을 업종으로 꼽히고 있다. 사진은 SK하이닉스 인천공장의 모습. <연합뉴스> 


일본 경제산업성이 24일까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빼기 위한 법률 개정에 관련된 의견을 받은 결과 3만 건의 90% 이상이 제외에 찬성했다고 요미우리신문 등이 25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빼기로 결정한다면 이르면 8월 중순부터 개별수출 허가를 면제해 왔던 조치가 폐지된다.

개별 허가절차에는 최대 90일이 걸린다. 한국 기업이 일본 정부에 수입 목적과 용도 등을 알린 다음 허가를 받는 구조라 일본 정부가 수출 허가를 추가로 늦추기도 쉽다. 이렇게 되면 일본산 반도체 소재품목의 수입이 한동안 중단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특히 반도체 소재는 물론 부품과 장비 전반이 전략물자에 포함된다. 전략물자는 대량파괴무기나 재래식 무기, 미사일 등의 제조, 개발, 사용 등에 쓰일 수 있는 물품과 기술을 말한다. 전략물자를 수출하려면 일본 정부의 개별 허가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일본 정부가 4일부터 반도체의 핵심 소재품목 3개를 한국으로 수출할 때 적용되던 절차 간소화를 폐지한 뒤 수출 허가가 지금까지 단 한 건도 나오지 않기도 했다.

이주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일본이 반도체 관련 전략물자 품목의 수출을 사실상 중단한다면 국내 기업의 정상적 생산활동과 공장 건설이 한동안 힘들어진다”고 바라봤다.

특히 반도체 제조용 웨이퍼와 블랭크마스크의 수출 절차가 늦어질 가능성이 한국 반도체기업에 타격을 입힐 요소로 꼽힌다.

웨이퍼는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실리콘 기판을 가리킨다. 블랭크마스크는 석영유리 기판에 크롬막과 감광액을 입힌 물건으로 반도체 제조의 필수요소인 포토마스크의 생산재료로 쓰인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일본산 실리콘 웨이퍼는 6월 기준으로 국내에 수입된 실리콘 웨이퍼 9억9400만 달러 규모의 38.7%(3억8500만 달러)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반도체 생산에 사용하는 실리콘 웨이퍼의 절반 정도를 일본에서 수입한 물품으로 쓰고 있다고 알려졌다. 

블랭크마스크는 일본 ‘호야’와 ‘울코트’가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의 차세대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극자외선(EUV)용 블랭크마스크는 호야가 세계에서 독점생산한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 기업들이 생산하는 웨이퍼와 블랭크마스크는 일본을 비롯한 글로벌회사와 비교해 기술력이 다소 부족한 편”이라고 파악했다.

한국 반도체기업은 반도체 생산장비의 32%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시장을 독점한 리소그래피 장비를 제외하면 일본의 수입 비중은 46.9%까지 올라간다. 

특히 포토리지스트의 부착력을 높이는 데 필요한 포토리지스트 베이커(98.8%)를 비롯해 반도체용 퍼니스(95.2%)와 습식각기(93%) 등의 장비는 일본에 수입량을 90% 이상 의존하고 있다.

한국 디스플레이업계도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빼면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전체 장비 수입액의 82.7%를 일본이 차지한 데다 주요 장비의 대체도 쉽지 않다.

디스플레이 생산에 쓰이는 올레드(OLED) 패턴 형성장비와 건식각기 장비는 100% 일본에서 수입되고 있다.

디스플레이 소재인 올레드용 파인메탈마스크(FMM)도 일본 DNP가 글로벌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한국 중소기업이 소재 개발을 마쳤지만 100% 대체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이주완 연구위원은 “디스플레이는 장비 국산화율이 반도체보다 높아 피해도 적겠지만 국산화가 어려운 장비 일부의 일본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다”며 “일본 기업이 생산을 독과점한 품목도 있어 한국 기업이 향후 공장을 늘리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