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발행어음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벤처투자’에 쓰라고 요청하자 증권사들이 난색을 보이고 있다.

증권사 사이에서는 벤처투자는 위험성이 높고 장기적 투자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만기가 짧은 발행어음의 특성과 맞지 않다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발행어음으로 벤처투자 늘리라는 금융위 압박에 증권사들 '난색'

▲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발행어음의 투자처를 놓고 금융당국과 증권사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발행어음의 투자처를 놓고 금융당국과 증권사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금융당국은 '모험자본 투자 활성화'라는 발행어음사업의 취지에 맞게 벤처투자를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는 반면 증권사들은 발행어음의 특성상 벤처투자를 늘리기 어렵다고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발행어음 사업자들의 벤처투자를 장려하는 차원에서 발행어음을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벤처투자를 한 증권사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발행어음사업이 아직 초기 단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초대형 종합금융투자회사의 역량은 시간을 두고 평가할 필요가 있지만 기대보다 혁신기업을 향한 투자가 미흡한 것은 사실"이라며 "구체적 방안이 정해지진 않았지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벤처투자'를 유독 강조하고 있는 것은 정치권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 데 따른 것이다.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5월 말 기준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이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 9조 원 가운데 3년 이내 스타트업, 벤처기업 등을 향한 투자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비판했다. 

김 의원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벤처투자의 특성 등 현실적 어려움이 있어 초대형 종합금융투자회사들의 투자금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을 수는 있다"면서도 "발행어음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정책상 혼선을 빚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증권업계는 발행어음을 통한 벤처투자가 다소 무리한 요구라고 보고 있다. 

발행어음은 만기가 1년도 되지 않아 '단기투자'에 적합한 반면 벤처투자는 기업의 성장가능성을 보고 오랜 시간 투자해야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장기투자'에 속하기 때문이다.

발행어음을 통해 조달한 자금에는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안정적 수익을 내는 게 최우선 과제다. 위험성이 큰 벤처투자로 손실을 보면 증권사가 그 손실을 모두 떠안아야 하는 셈이다. 

금융당국이 모험자본의 범위를 너무 좁게 보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애초에 모험자본은 기업자금 모집주선과 인수, 사모투자펀드(PEF) 출자, 하이일드채권(신용등급이 낮은 회사가 발행한 채권) 인수, 파생상품 투자 등을 폭넓게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그런데 금융당국이 모험자본의 범위를 ‘벤처·중소기업을 향한 보통주 투자’로 좁혀 발행어음의 투자범위를 크게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발행어음 벤처투자를 놓고 의견차이가 큰 만큼 금융당국과 발행어음사업을 하는 증권사들은 당분간 합의점에 이르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발행어음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벤처투자로 활용하기엔 위험성이 크다"며 "발행어음자금을 운용해 안정적 수익을 내는 게 증권사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