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말씀 못 드리지만 인기 트림(세부사양 등에 따라 나뉘는 일종의 등급)은 현재로서는 최소 8~9개월은 기다리셔야 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현대자동차의 한 판매 대리점에 대형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팰리세이드’의 구매의사를 전달하며 대기기간을 물어보자 돌아온 답변이다.
 
현대차 팰리세이드 인도 대기시간 열 달, 노조만의 문제 때문인가

▲ 현대자동차의 미국 수출용 '팰리세이드'.


출시된 지 일곱 달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요를 쫓아가지 못하는 생산량 탓에 대기기간이 길다고 하소연하는 고객들이 많다.

기다리다 지쳐 계약을 포기한 고객만 해도 2만 명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계약 포기사태가 한동안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노사의 한 차례 증산 합의에도 불구하고 팰리세이드의 북미 수출이 본격화하면서 5월부터 내수용 생산이 줄었기 때문이다.

1~4월 팰리세이드 판매량은 월 평균 6158대다. 하지만 5월과 6월 판매량은 각각 3743대, 3127대로 뚝 떨어졌다.

현재 국내 대기물량만 해도 3만5천 대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생산량을 늘리지 않으면 단순 계산으로도 꼬박 열 달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차량의 공급부족은 기존 고객의 이탈뿐 아니라 판매 촉진에도 좋지 않다. 인내심 많은 고객이라도 열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선뜻 차를 구매하기 힘들다.

이 사태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걸까?

최근 현대차 노조에 이런 비판이 집중되고 있다.

노사는 6월에 2차 증산 논의를 통해 울산4공장뿐 아니라 울산2공장에서도 팰리세이드를 일부 생산하기로 합의했다. 월간 생산량이 기존 8640대에서 1만1천 대 수준으로 늘어나 숨통을 일부 틔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이 합의는 울산4공장 조합원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증산이 되면 향후 수급이 정상화했을 때 울산4공장에 배치될 물량이 적어져 특근수당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노조 본인들이 합의해놓고 노조 본인들이 약속을 파기한 것’ ‘잘 팔리는 차가 나왔는데 특근수당에 눈이 멀어 고객은 안중에도 없다’ ‘저절로 굴러온 복덩이를 제 발로 차버린 격’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를 노조만의 문제라고 보기만은 힘들다. 팰리세이드 출시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주체인 경영진에게도 분명한 책임이 있다.

이광국 현대차 국내영업본부장 부사장은 지난해 12월 팰리세이드 신차발표회에서 “초기 반응이 워낙 좋아 애초 계획했던 숫자보다 목표 판매대수를 다시 봐야할 것 같다”며 “구체적 대수는 언급하기 힘들지만 생산과 공급을 고려해 목표를 재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전계약에서만 2만 대 넘는 주문이 몰릴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을 문제로 보긴 힘들다. ‘대박’을 기대하고 목표를 세우는 것 또한 문제다.

하지만 문제가 판매량 예측 실패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현대차 팰리세이드 인도 대기시간 열 달, 노조만의 문제 때문인가

▲ 이광국 국내영업본부장 부사장(오른쪽)이 2018년 12월11일 경기 용인 엠앤씨웍스스튜디오에서 열린 신차 팰리세이드 출시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현대차가 애초 예상했던 것과 달리 팰리세이드를 구매하는 고객의 수요는 상위 트림인 프레스티지모델에 집중됐다. 대형 SUV의 특성상 18인치 휠보다 20인치 휠을 선호하는 고객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20인치 휠의 재고 부족현상이 심각해졌고 출고 초기부터 대기기간만 반 년이 넘는 차라는 꼬리표가 붙기 시작했다.

현대차는 원래 20인치 휠을 놓고 내수용 차량에는 미쉐린 제품을, 북미용 차량에는 브리지스톤 제품을 사용하려고 했는데 인도 지연이 심각해지자 이를 병행투입하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옵션 운영이 중단된 사례도 있다.

현대차는 차량을 커스터마이징(고객맞춤형)할 수 있는 브랜드 상품 ‘튜익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팰리세이드에는 ‘알콘 브레이크 패키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를 선택하는 고객이 많아 재고가 일찍 소진되자 패키지 운영을 슬그머니 중단(현재는 선택 가능)하기도 했다. 

‘큰 휠’과 ‘강한 브레이크 성능’을 원하는 대형 SUV 고객 수요에 대한 사전조사가 미흡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들이다.

북미에서도 애초 예상했던 목표치인 1만9천 대를 훨씬 넘는 3만 대 이상의 팰리세이드가 계약된 것으로 전해진다.

계속되는 경영진의 예측 실패를 논외로 하더라도 "증산 논의에 앞서 1·2·3차 협력기업의 부품 공급능력은 얼마나 되는지, 충분한 부품을 확보할 수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노조 관계자의 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회사의 절박한 증산 요구에 특근 수당이 줄어들 가능성을 염려해 퇴짜를 놓는 노조의 태도에도 분명 문제는 있다.

하지만 팰리세이드의 인도 지연 사태를 노조의 일방적 잘못으로만 몰아가는 행태도 결코 온당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