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 위탁생산 경쟁사인 대만 TSMC와 양강체제를 구축해 주요 고객사의 반도체 생산 물량을 나누어 수주하며 안정적 성장 기반을 마련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와 TSMC의 위탁생산 공정 기술력이 우위를 가리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서 주요 고객사들도 안정적 물량 확보와 가격 협상을 위해 생산을 나눠맡길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 TSMC와 반도체 위탁생산 ‘양강체제’로 성장기반 확보

▲ 정은승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


9일 타이완포커스 등 외국언론 보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최근 차기 그래픽반도체(GPU) 위탁생산에 삼성전자와 TSMC의 공정을 모두 활용한다는 공식 발표를 내놓았다.

삼성전자와 TSMC는 모두 극자외선(EUV) 기반의 7나노 미세공정을 엔비디아의 새 그래픽반도체 양산에 활용한다. 전체 생산량에서 삼성전자나 TSMC가 차지하는 비중은 공개되지 않았다.

엔비디아와 같은 대형 시스템반도체기업이 두 위탁생산업체의 공정을 동시에 활용한다고 밝힌 것은 삼성전자의 기술력을 TSMC와 대등한 수준으로 인정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TSMC는 2018년 7나노 반도체 미세공정을 삼성전자보다 먼저 상용화하며 엔비디아를 포함한 대형고객사의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 수주를 사실상 독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EUV를 적용해 성능과 생산 효율을 높인 7나노 공정 개발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지만 TSMC도 곧 7나노 공정에 EUV를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큰 성과를 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엔비디아가 삼성전자의 7나노 EUV공정 고객사로 자리잡은 것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위탁생산 고객사 확대에 마중물 역할을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퀄컴과 미디어텍, AMD 등 기존에 TSMC와 긴밀한 협력을 맺었던 시스템반도체기업도 엔비디아를 뒤따라 삼성전자에 일부 물량을 맡기는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타이완리포트는 “엔비디아와 같은 대형 시스템반도체기업이 반도체 위탁생산기업을 다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볼 수 있다”며 “삼성전자가 2차 공급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 세계 대형 시스템반도체기업은 그동안 위탁생산 1위 기업인 TSMC에 모든 생산물량을 맡기는 것 외에 사실상 대안을 찾기 어려웠다.

삼성전자와 글로벌파운드리 등 다른 위탁생산기업의 기술 발전이 TSMC보다 다소 뒤처졌고 반도체 생산능력과 수율, 가격 경쟁력 등에서 고객사의 인정을 받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반도체 생산을 TSMC와 함께 맡게 된 것은 여러 요소에서 큰 발전을 보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전자전문매체 익스트림테크는 “삼성전자가 EUV기술 도입을 통해 TSMC와 위탁생산시장에서 양강구도를 구축해 나고 있다”며 “그동안 고전하던 대형 고객사 확보에 성과를 낼 것”이라고 바라봤다.

세계 대형 반도체기업은 시스템반도체의 안정적 공급망 확보와 원활한 가격 협상 등을 위해 TSMC와 같은 단일업체에 공급을 모두 의존하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삼성전자가 TSMC와 공동으로 고객사 반도체 위탁생산을 수주하는 사례는 앞으로 점점 늘어날 공산이 크다.

이순학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와 TSMC가 모두 EUV공정을 활용하게 되면서 누가 기술적 우위에 있다고 판단하기 어려워졌다”며 “퀄컴도 내년 출시하는 5G통신반도체 생산을 TSMC와 삼성전자에 나누어 맡길 가능성이 높다”고 바라봤다.
 
삼성전자, TSMC와 반도체 위탁생산 ‘양강체제’로 성장기반 확보

▲ 삼성전자의 반도체 위탁생산공장.


삼성전자는 현재 시스템반도체 생산 능력이 TSMC보다 부족한 만큼 고객사의 주요 위탁생산업체로 자리잡기보다 2차 공급사로 진입하며 최대한 고객사를 확대하는 전략을 쓸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생산 투자에만 60조 원을 들인다는 계획을 세운 만큼 앞으로 생산 능력이 확대되고 가격 경쟁력도 높아지면 기존 고객사의 물량 수주 비중이 점차 늘어나면서 안정적으로 시스템반도체 실적 성장을 이끌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일본정부가 최근 삼성전자 EUV공정에 사용되는 핵심소재에 수출규제를 도입한 점은 삼성전자 반도체 위탁생산사업 성장에 걸림돌로 꼽힌다.

하지만 세계 반도체 고객사들이 삼성전자의 반도체 위탁생산 기술을 주목하고 있는 만큼 일본이 이런 규제를 강행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영우 SK증권 연구원은 “세계 시스템반도체기업이 EUV 반도체 생산을 TSMC에만 의존하게 되면 세계 전자업계 전반에 큰 타격이 번질 것”이라며 “일본이 삼성전자를 겨냥한 규제로 큰 비난에 직면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 가능성은 낮다”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