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디스플레이산업의 '마지막 보루'로 꼽히는 재팬디스플레이(JDI)를 구하기 위해 최대 고객사인 애플이 직접 자금을 지원하고 인수합병에 참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애플이 아이폰용 올레드 최대 공급사인 삼성디스플레이에 의존을 낮추는 동시에 직접 디스플레이 기술을 확보해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재팬디스플레이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애플, 일본 디스플레이 '구원투수'로 등장해 삼성디스플레이 견제

▲ 팀 쿡 애플 CEO.


4일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국언론 보도에 따르면 애플은 경영난을 겪고 있는 재팬디스플레이에 자금 지원계획을 놓고 적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재팬디스플레이는 애플 아이폰에 사용되는 LCD패널로 연매출의 절반 정도를 올리고 있는데 최근 LCD를 탑재한 아이폰의 판매량이 예상치를 크게 밑돌며 심각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다른 주요 고객사인 중국 화웨이가 미국 정부의 제재로 세계에서 스마트폰을 판매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서 재팬디스플레이의 경영난은 앞으로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재팬디스플레이는 약 4년 전에 애플에서 약 2조 원 가까운 돈을 빌려 아이폰용 LCD 생산공장도 지었는데 돈을 갚지 못해 애플에만 1조 원이 넘는 부채를 쌓아두고 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애플은 최근 재팬디스플레이의 부채를 일부 탕감해주고 상환시기를 늦춰주기로 결정했다.

애플이 재팬디스플레이에 사실상 자금을 지원하면서 구원투수 역할을 자처한 셈이다.

재팬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애플이 재팬디스플레이를 도우려는 의지는 놀랄 정도로 강력하다"고 말했다.

닛케이아시안리뷰에 따르면 애플은 중국 및 홍콩 금융기관과 손을 잡고 재팬디스플레이에 별도로 사업 운영자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재팬디스플레이는 4월부터 중국 금융기관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에 지분 매각을 논의하고 있었지만 투자자들이 실적 부진을 이유로 재팬디스플레이 인수 추진을 중단하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애플은 내년부터 아이폰 모든 제품에 LCD 대신 중소형 올레드패널을 탑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이패드와 맥북 등 다른 제품에 올레드패널 탑재가 확산될 가능성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이 LCD 공급사인 재팬디스플레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뜻밖의 일이다.

애플이 재팬디스플레이의 LCD가 아닌 중소형 올레드사업과 관련한 협력 강화를 노려 적극적으로 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재팬디스플레이는 아직 중소형 올레드시장에 정식으로 진출하지 못했지만 올해 애플 '애플워치'에 탑재되는 소형 올레드패널을 공급하며 처음 시장에 뛰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재팬디스플레이의 자회사인 J올레드는 과거 소니와 파나소닉, 재팬디스플레이 등 일본 패널업체의 올레드사업부를 통합해 세워진 기업으로 막대한 디스플레이 기술자산을 확보하고 있다.

경영난이 장기화되며 연구개발과 생산투자 차질로 올레드시장 진출이 늦어졌지만 기술력에서는 충분히 한국과 중국 디스플레이 선두업체를 따라잡을 잠재력이 있는 업체로 평가받는다.

애플은 현재 아이폰용 중소형 올레드의 유일한 공급업체인 삼성디스플레이에 의존을 낮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공급사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LG디스플레이의 중소형 올레드 기술력과 생산능력은 아직 삼성디스플레이보다 크게 떨어지고 중국 BOE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상황을 고려할 때 애플과 거래하기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이 재팬디스플레이에 자금을 지원해 적극적으로 시장 진출을 앞당기도록 돕는 것은 결국 삼성디스플레이와 거래를 축소하기 위한 준비작업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애플이 수년 전부터 직접 디스플레이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계획을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진 만큼 재팬디스플레이와 손을 잡고 올레드 기술을 확보해 삼성디스플레이에 맞설 가능성도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일본 정부펀드 INCJ는 애플이 재팬디스플레이에 자금 지원계획을 내놓자 INCJ가 재팬디스플레이에 빌려주었던 부채도 면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애플, 일본 디스플레이 '구원투수'로 등장해 삼성디스플레이 견제

▲ 재팬디스플레이 자회사 J올레드의 중소형 올레드패널.


과거 디스플레이 강국으로 꼽히던 일본은 샤프가 대만 홍하이그룹에 인수된 뒤 재팬디스플레이를 디스플레이산업 최후의 보루로 삼고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애플이 이번 지원을 통해 디스플레이산업을 지키려는 일본 정부의 노력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일본 정부는 최근 한국에 폴더블(접는) 디스플레이의 핵심소재 수출을 제한하기로 하며 삼성디스플레이를 압박하는 등 한국이 빼앗은 디스플레이산업 주도권에 미련을 보이고 있다.

애플은 삼성디스플레이의 중소형 올레드시장 독주가 반갑지 않은 상황인데다 모회사인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최대 경쟁사인 만큼 일본 디스플레이산업 지원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전자전문매체 나인투파이브맥은 재팬디스플레이가 애플의 지원금을 경영난 극복뿐만 아니라 아이폰용 올레드패널 생산을 위해 활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