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화폐 가운데 최고액권인 5만 원권이 10년 동안 시장에서 주요 화폐로 안착했다.

하지만 5만원권과 함께 발행이 고려됐던 10만 원권은 결제수단의 발전에 따라 현금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발행조차 불투명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5만 원권은 시장에 안착, 10만 원권은 발행도 불투명

▲ 한국의 화폐 가운데 최고액권인 5만원권은 10년 동안 시장에서 주요 화폐로 안착했다. 하지만 5만원권과 함께 발행이 고려됐던 10만원권은 결제수단의 발전에 따라 현금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발행조차 불투명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연합뉴스>


한국은행에 따르면 23일은 5만 원권이 발행된 지 10년째 되는 날이다.

한국은행은 2007년 5월3일 ‘고액권 발행계획’을 통해 10만 원권과 5만 원권을 2009년 상반기에 동시 발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2007년 11월에는 5만 원권과 10만 원권의 초상 인물로 각각 신사임당, 백범 김구를 선정하는 등 발행을 위한 업무를 빠르게 추진했다.

그러나 10만 원권의 발행이 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면서 결국 2009년 6월23일 5만 원권만 발행됐다.

5만 원권은 10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며 주력 화폐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9년 5월 말 기준으로 시중에 유통 중인 화폐 가운데 5만 원권은 금액 비중 84.6%(98조3천억 원), 장수 비중 36.9%(19억7천만 장)이다.

국민들은 거래용 현금의 43.5%, 예비용 현금의 79.4%를 5만 원권으로 보유하고 있다.

특히 5만 원권의 발행 전 고액권의 대용으로 쓰이던 자기앞수표를 거의 대부분 대체하고 있다. 10만 원 자기앞수표의 교환장수는 2008년 9억3천만 장에서 2018년 8천만 장으로 급감했다.

화폐의 신용도 확보에도 성공했다. 10년 동안 5만 원권 위폐 발견장수는 4447장으로 같은 기간 전체 위폐 발견장수의 9.2% 정도다. 그나마도 2건의 대량 위폐사건으로 제조된 위폐 3363장은 조기에 발견되거나 제작단계에서 모두 회수됐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많은 국민들이 5만 원권을 소비지출, 경조금 등에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5만 원권은 금액기준으로 발행 2년만인 2011년, 장수기준으로 2017년에 4개 은행권 가운데 비중이 가장 높아져 중심권종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했다”고 말했다.

5만 원권이 안정적으로 시장에 자리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10만 원권의 발행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10만 원권은 2007년 발행계획 단계부터 뇌물거래, 비자금조성 등 불법적, 음성적 거래를 용이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새로운 최고액권의 발행과 관련된 이와같은 논란은 현재도 변함이 없다. 

결제환경의 변화도 새로운 최고액권의 발행에 부정적 방향으로 변했다. 핀테크기술의 발전으로 다양한 간편결제 수단이 나타나면서 결제수단으로서 현금의 역할은 약화되고 있다.

한국은행의 ‘2018년 경제주체별 현금 사용행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의 평균 거래용 현금 보유규모는 7만8천원이다. 2015년 11만6천만 원과 비교하면 3년 동안 33% 감소했다.

예비용 현금 보유규모도 2015년 69만3천 원에서 2018년 54만3천 원으로 22% 줄었다.

거래용 현금은 설문 당시 응답자가 지갑이나 주머니에 소지하고 있는 현금, 예비용 현금은 소지중인 현금 외에 비상시를 대비해 집, 사무실 등에 보유중인 현금을 뜻한다.

현금보유가 줄어든 이유를 놓고는 응답자 가운데 가장 많은 38.7%가 ‘간편송금 서비스 개발 등으로 현금휴대 필요성 감소’를 꼽았다.

다만 새로운 최고액권을 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의 최고액권은 다른 나라에 비하면 가치가 크지 않으므로 한국의 경제 규모 등을 고려하면 새로운 최고액권을 출시할 만한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5만원권의 액면가치는 2018년 말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0개 최고액권 가운데 4번째로 낮다. 전체 최고액권의 평균값인 16만2천 원의 31%, 중위값인 7만8천 원의 64%에 불과하다.

한국의 권종은 모두 5만 원권까지 모두 4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대부분이 4~7종의 은행권을 발행하고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발행권종이 많은 편도 아니다.

최고액권이 지하경제를 활성화 할 것이라는 주장도 과도한 걱정일 뿐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국제통화기금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는 2009년 국내총생산(GDP)의 23.1%에서 2015년 19.8%로 5만 원권의 발행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