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기업'에 투자하는 금융상품 늘어, 금융시장 안착까지 갈 길 멀어

▲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 통합 ESG 투자 프로세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착한 기업’이 돈도 잘 번다는 아이디어를 담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투자가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점차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글로벌 투자환경 변화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발맞춰 본격화되고 있지만 글로벌 흐름과 비교하면 한발 늦은 만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사회적 책임투자(SRI)를 향한 글로벌 금융시장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내 금융사들이 투자자 다변화 등을 위해 ESG 상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ESG는 기업의 재무적 성과만을 판단하던 기존 투자지표와 달리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 가치와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비재무적 요소를 반영하는 투자지표를 말한다. 

신재생에너지, 태양광, 전기차 등 친환경 프로젝트 및 인프라 사업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사용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되는 채권인 그린본드나 지속가능채권, 사회적 채권 등이 대표적 ESG채권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이 주도하는 분위기였지만 최근 민간기업들의 참여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수출입은행이 국내 최초로 2013년 해외에서 5억 달러 규모의 외화 그린본드를 발행한 데 이어 산업은행은 지난해 5월 국내 최초로 3천억 원 규모의 원화 그린본드를 발행했다.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주도적으로 국내 ESG채권시장을 확대할 필요성이 컸던 데다 그린본드 발행으로 금융회사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의 첫 행보 이후 은행, 금융투자, 카드, 캐피탈 등 각종 금융업권에서도 동참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신한은행과 현대캐피탈 등이 각각 지난해 원화 그린본드를 발행했으며 미래에셋대우도 올해 증권사 최초로 외화 지속가능채권을 발행했다. 

카드업계에서는 최초로 우리카드가 1천억 원 규모의 사회적 채권을 발행했다.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들도 지난해 말부터 ESG외화채를 발행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는 국내 금융지주 최초로 5억 달러 규모의 지속가능채권을 발행하기로 결정한 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직접 해외 기업설명회(IR)에서 투자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KB자산운용과 KTB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등 자산운용사들도 지난해와 올해 잇달아 ESG펀드를 조성해 투자운용하고 있다.

최근 ESG원칙에 어긋나는 기업에는 투자대상에 올리지 않거나 투자규모를 줄이는 글로벌 투자금융사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글로벌에서는 ‘착한기업’이 외부 불확실성에 노출될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 착안해 ESG를 패시브투자(코스피 200등 주요 지수의 등락에 따라 기계적으로 편입된 종목을 사고파는 투자) 유형의 투자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UN의 책임투자원칙 협약에 참여한 글로벌 금융기관은 2300여 곳이며 글로벌 ESG펀드의 운용자산 규모는 2018년 10월 말 기준 1조500억 달러(123조 원) 가량에 이른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스튜드어십코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의 모습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높아진 점도 상당부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과 한국투자공사 등 주요 연기금 운용사들은 정부의 기조에 발맞춰 ESG를 고려한 책임투자원칙을 세우는 등 ESG를 반영한 사회적 책임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이미 ESG 투자가 자리잡은 글로벌과 비교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에 불과한 만큼 아직 국내 금융시장에 안착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투자자들에게 기업의 ESG 관련 정보 공개가 잘 이뤄져야하지만 현재 한국거래소의 기업지배구조 공시제도에서는 비재무적 정보제공이 미흡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자율공시 항목이다보니 기업들이 유리한 정보만 선별해서 공개하는 사례가 잦기 때문이다.

또 국내 투자환경이 단기 수익률을 쫓는 경향이 짙은 만큼 장기투자에 적합한 ESG투자에 기관투자자와 개인투자자들의 참여까지 이끌어내기엔 쉽지 않다는 말도 나온다.

자본시장연구원은 “국내 ESG투자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자자 유입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ESG정보 제공 확대, 객관적 분류기준 마련, 다양한 투자 포트폴리오 개발 노력 등이 요구된다”고 진단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