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상생형 지역일자리를 추진하면서 지방자치단체를 주체로 삼은 상향식 의사결정과 대기업 외 중견·중소기업의 참여 확대에 힘을 실을 것으로 전망된다.

12일 정치권 관계자와 전문가의 말을 종합하면 대기업 위주의 상생형 지역일자리사업이 먼저 부각되면서 자칫 박근혜 정부의 지자체 대상사업인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나타났던 부작용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상생형 지역일자리는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어떻게 차별화될까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월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상생형 지역일자리 모델 확산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하향식 의사결정과 높은 대기업 의존도로 사업의 지속가능성이 도마에 올랐는데 문재인 정부는 상생형 지역일자리사업에서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상생형 지역일자리는 기업과 지역 노동계가 협력해 임금을 낮춘 일자리를 만들면 정부와 지자체가 복지·재정·금융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현대차가 참여한 ‘광주형 일자리’가 첫 사례로 꼽힌다.

광주형 일자리에 이어 LG화학이 참여를 검토하는 ‘구미형 일자리’ 등 대기업 중심의 상생형 지역일자리사업이 부각되면서 자칫 제2의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박근혜 정부가 대기업을 통한 지역 창업·벤처기업 육성과 지원을 목표로 만든 기관이다. 대기업 1곳이 지역 1곳을 전담하는 방식으로 지자체 17곳에 각각 세워졌다. 

2015년 6월 출범한 뒤 정부가 주도해 대기업의 참여를 압박한다는 논란이 이어졌다. 정부예산 1600억 원, 대기업 지원금 700억 원이 들어갔지만 성과가 모호하다는 비판도 거셌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로 바뀐 뒤 대기업의 창조경제혁신센터 지원금이 전반적으로 줄어들면서 정권 교체의 영향이 관련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흔들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이런 문제를 고려해 정부는 지역일자리사업의 설계를 주도하는 역할을 지자체에 맡긴 뒤 지원만 맡는 상향식 모델을 상생형 지역일자리에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자체에서 신청한 상생형 지역일자리사업은 30여 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는 현재 상생형 지역일자리에 관련된 자문과 지원 협의를 지방자치단체 9곳과 진행하고 있다. 

김현철 군산대학교 융합기술창업학과 교수는 “창조혁신경제센터는 대기업이 단순투자만 맡았던 만큼 손을 떼기도 쉬었다”며 “반면 상생형 지역일자리는 대기업이 지자체로부터 적정한 임금 수준을 보장받고 구체적 사업모델에 따라 경영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고 말했다.

지자체가 지역 상황과 참여를 검토하는 기업 사정에 맞춰 상생형 지역일자리사업을 기획하는 만큼 창조경제혁신센터와 비교하면 자발적이고 지속가능한 투자를 끌어내기 쉽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주무부처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옛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중소벤처기업부로 바꾸면서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의사결정 구조를 자율적으로 개편했다. 

운영주체도 대기업에서 지자체와 현지 중견·중소기업, 대학 등으로 옮기고 있다.

상생형 지역일자리도 이와 마찬가지로 향후 상황에 따라 중견·중소기업 위주로 운영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컨대 최근 가시화된 ‘밀양형 일자리’는 경상남도 창원시 마천공단 등의 중소기업 30곳이 밀양하남일반산업단지로 한꺼번에 이전해 친환경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라북도 군산시도 최근 한국지엠 군산공장을 인수한 중견기업 엠에스오토텍 중심의 컨소시엄과 연계해 상생형 지역일자리사업을 추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두희 한국산업연구원 지역정책실 연구위원은 “현재 검토되는 상생형 지역일자리는 중소기업 생산협의체나 협동조합 모임처럼 대기업이 없는 형태도 많다”며 “정부도 상생형 지역일자리가 정권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지속가능성과 투자 실효성을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국내 제조업 구조가 대기업과 협력회사 중심으로 구성된 만큼 대기업이 없는 형태의 상생형 지역일자리사업이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이 주체를 맡은 상생형 지역일자리사업은 인건비 부담이 예상보다 늘어난다면 대기업 중심과 비교해 버티기 힘들다”며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비교적 낮은 임금 수준 등의 우호적 조건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