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기업결합 심사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을 무겁게 주시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애초 공정위가 담당하는 국내 기업결합 심사를 쉽게 통과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 기업결합 심사까지 속도를 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공정위는 노동계, 지역사회, 정치권의 압박이라는 부담을 안고 있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인수 공정위 심사에 '수주 제한' 꺼낼까

▲ 한영석(왼쪽) 가삼현 현대중공업 공동대표이사 사장.


현대중공업이 공정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수주 점유율 제한'이라는 카드를 꺼낼 것이라는 시선도 늘어나고 있다.

6일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 위한 기업결합 심사를 6월 중으로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국내 기업결합 심사를 담당하는 공정위가 우호적 태도를 보인 바 있어 국내 기업결합 심사를 빠르게 통과한 뒤 해외 기업결합 심사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3월 독일 국제경쟁회의에서 기자들에게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에 따른 글로벌시장에서 독점 우려는 없다”며 “해외 경쟁당국이 충분히 한국 공정위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결론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외 기업결합 심사가 모두 끝나야 산업은행이 한국조선해양에 대우조선해양 지분 55.7%(5973만8211주)를 현물출자하는 등 대우조선해양 인수의 실무 과정이 시작될 수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공정위의 판단근거가 앞으로 해외의 기업결합 심사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만큼 긍정적 판단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선주들이 대거 모인 유럽에서 기업결합을 깐깐하게 심사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현대중공업은 공정위의 긍정적 판단을 넘어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

기업결합을 심사하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 심사와 관련해서는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선박 수주시장에서 조선사는 ‘을’이며 선주가 ‘갑’이다. 시장에서 독점력이 커져 선박 가격을 높이는 ‘슈퍼을’의 등장을 유럽연합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이 '우군'으로 여겼던 공정위가 쉽게 기업결합 승인을 내기에 부담스러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어 해외 기업결합 심사의 '예선전'인 국내 기업결합 심사에도 난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앞서 5월20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 ‘현대중공업 법인분할의 문제점과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조선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서 김종훈 민중당 의원,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추혜선 정의당 의원 등은 공정위가 두 회사의 국내 기업결합 심사를 승인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2018년 말 기준으로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의 국내 수주잔량 점유율을 모두 더하면 79.1%로 국내 조선사업의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5월7일에는 대우조선해양 노조가 속한 ‘대우조선 동종사 매각 반대 지역경제 살리기 거제범시민대책위원회’가 경남대책위원회, 전국대책위원회와 함께 감사원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대상으로 국민감사를 요청했다. 

김 위원장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에 문제가 없다고 발언한 것을 놓고 기업결합 심사와 관련해 담당 공무원 업무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심사기준을 제시하는 등 직권남용 및 월권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움직임이 공정위를 움직여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을 불허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하지만 논란이 커지면 기업결합 심사 기간이 늘어질 수 있다고 현대중공업은 우려한다.

이 때문에 증권가에서는 현대중공업이 공정위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자체적으로 수주 점유율을 제한하겠다는 약속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두 회사의 결합으로 강력한 독점력을 지닌 회사가 탄생해 선박 수주시장의 질서를 파괴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해소하려 한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2018년 말 기준으로 글로벌 선박 수주시장에서 점유율 1위다. 자회사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의 수주잔량을 포함해 1114만5천 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로 글로벌 수주 점유율 13.9%를 보였다.

대우조선해양은 584만4천 CGT로 점유율 7.3%의 2위로 집계돼 두 회사가 결합하면 글로벌 수주 점유율 21.2%의 거대 조선사가 탄생한다.

최근 글로벌 선박 발주량이 늘고 있는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과 초대형 유조선(VLCC)에서는 두 회사의 수주잔량 점유율 합계가 2019년 3월 기준으로 각각 58.5%, 56.6%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두 회사가 결합하면 LNG운반선 등 선박의 수주시장에서 과반이 넘는 점유율로 독과점 우려가 발생할 있다”며 “수주 점유율에 상한선을 두는 조건으로 합병을 진행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