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를 둘러싼 소송에서 치열한 싸움을 예고했다.

배터리업계 1위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공격하는 LG화학과 배터리사업 명운을 걸고 방어하는 SK이노베이션은 어느 한 쪽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LG화학 SK이노베이션, 전기차배터리 소송에서 퇴로 막고 결전태세

▲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왼쪽)과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총괄사장.


정부는 이번 소송으로 국가핵심기술 유출과 미래 성장산업에 그늘이 질까 우려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CT)는 30일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제기한 소송과 관련해 조사개시(Discovery) 결정을 내렸다.

이에 앞서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영업기밀을 침해했다며 미국 델라웨어주 지방법원과 국제무역위원회에 제소했다.

두 회사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합의는 절대 없다"며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아 SK이노베이션의 기술력이 LG화학보다 앞 섰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번 소송을 미국 법원과 국제무역위원회로부터 SK이노베이션의 기술력 우위를 증명받는 계기로 삼겠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 NCM622, NCM811을 업계 최초로 개발하고 공급했고 차세대 배터리 핵심기술인 NCM9½½ 역시 세계 최초 조기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며 "안타깝지만 절차가 시작된 만큼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노하우와 기술력을 입증하는 기회로 삼겠다"고 밝혔다. 

한 업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이 지금 물러서면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는 꼴이 되는데 기업 이미지에 치명적이다"며 "SK이노베이션은 물러설 수 없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LG화학은 이번 조사를 통해 영업비밀 침해 내용이 명백히 밝혀질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별도의 소송 대응팀을 꾸려 6개월 이상 준비하고 그 이전부터 증거를 수집하며 치밀하게 준비해온 만큼 SK이노베이션과 합의는 없다고 일각에서 나오는 협상 가능성을 일축했다.

LG화학 관계자는 "이제 조사개시를 했는데 합의는 말도 안된다"며 “현재 단계에서 언급할 상황이 아니다”고 말을 아꼈다. 

업계 관계자는 "LG화학이 소송장에 영업기밀과 관련된 구체적 내용을 적시하지 않은 것은 일종의 전략이었을 것"이라며 "미리 구체적인 사안이 알려지만 상대 쪽에서 방어전략을 구상할 수 있기 때문에 소장 외에 추가로 준비한 자료가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번 국제무역위원회의 조사개시 결정으로 SK이노베이션의 입장은 다급해질 수 밖에 없다.

LG화학은 국제무역위원회에 SK이노베이션이 생산한 배터리 셀, 배터리 팩, 배터리 샘플 등 관련 제품을 전면 수입 및 판매 금지할 것을 요청했다. 조사결과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의 북미 배터리산업 전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국제무역위원회의 조사범위에는 ‘영업비밀 횡령에 의한 배터리 공정(Processes)’까지 포함돼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제무역위원회가 LG화학의 손을 들어주면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법인은 LG화학의 기술을 침해하는 행위는 일절 할 수 없기에 생산도 할 수 없게 된다”며 “미국 법원에서 LG화학이 어디까지 이익을 침해받았는지 판단하기 달린 부분”이라고 바라봤다. 

SK이노베이션은 소송이 장기화할 수록 SK이노베이션의 리스크가 커져 고객사 확보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LG화학의 입장이 마냥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정부의 국가핵심기술 유출 심사가 소송 초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국제무역위원회는 조사가 시작되면 증거개시절차에 따라 양측에 필요한 자료를 제출하기를 요청할 수 있다.

소송 쟁점이 배터리 기술 유출인만큼 배터리 기술에 대한 자료를 제출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전기차 배터리 기술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있다. 소송을 제기한 LG화학 쪽에서 먼저 SK이노베이션의 기술침해를 증명할 자료를 제출해야 하지만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한 정부 관계자는 “국가핵심기술은 전략적 산업의 정보가 해외로 빠져나갈 경우 국익에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고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국제무역위원회가 조사개시를 결정한 만큼 LG화학이 국제무역위원회에 제출하는 자료 중 국가 핵심기술이 있는지 여부를 전문위원회를 통해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문위원회의 검토대상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양측 모두 해당된다”며 “자료제출을 신고했다고 다 수리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위원 검토를 거치기 때문에 일종의 허가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LG화학은 “증거개시절차 과정에서 영업비밀 관련 자료의 경우에는 법원의 강력한 ‘비밀보호명령(Protective Order)’을 통해 상대방 당사자나 제 3자에게는 열람, 공개가 금지된다”며 “관련 자료를 모두 ‘영업비밀정보(Confidential Business Information)’로 제출하려 하기에 법원의 강력한 ‘비밀보호명령’에 의해 관리돼 외부로 유출될 위험성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 관계자는 “LG화학이 (국제무역위원회에) 자료 제출을 위해 검토를 신청했고 전문위원회가 열리는 시점은 아직 논의 중이다”며 “국제무역위원회의 조사가 실질적으로 개시되는 시점이 중요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국제무역위원회가 내년 6월경에 예비판결을 내리고 내년 말까지 최종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법원에 제기된 소송은 최종결과가 나오기까지 3년 가까이 걸릴 수도 있다고 본다. 두 회사가 강경 대응방침을 밝히고 있지만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앞서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전 직원 76명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배터리 핵심기술을 빼갔다며 미국 델라웨어주 지방법원과 국제무역위원회에 제소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석현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