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현대중공업 물적분할 '전쟁통', 이동걸과 산업은행은 '뒷짐'만

▲ 3월8일 오후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대우조선해양 민영화 본계약 체결식에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왼쪽)과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울산은 마치 전쟁터같다. 현대중공업이 31일 물적분할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을 여는데 대치전선이 날카롭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출발부터 삐끗할 판이다. 그러나 이를 주도한 KDB산업은행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개별기업의 노사관계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도적 선 긋기’로 보이는데 무책임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30일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31일 임시 주총을 열고 회사를 분할해 중간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가칭)은 존속회사로 하고 현대중공업은 신설회사로 하는 물적분할을 승인하기로 했다.

이를 놓고 노사대립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며칠째 주총이 열리기로 예정된 한마음회관을 점거하고 있다. 이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물적분할을 중단하라는 것이다.

노조는 회사가 나뉘고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완료되면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속노조의 상위단체인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도 현대중공업 노조의 투쟁에 동참하기 위해 한마음회관 인근으로 모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노동자들도 이날 거제에서 울산으로 이동했다.

한국조선해양의 본사를 서울에 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역사회와 지역 국회의원들도 노조의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울산은 일촉즉발의 상황이지만 산업은행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이고 매각주체이긴 하지만 인수주체인 현대중공업 내부의 노사관계를 놓고 대응하기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시끄러운 상황에서 굳이 끼어들어 노조를 설득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있을 수도 있다. 물적분할과 주총에 법적 하자가 없는 만큼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는 시각도 깔려있다.

그러나 산업은행이 지난해부터 이번 매각을 주도하고 물적분할을 포함한 지금의 방안을 설계하고 추진했던 만큼 모든 부담을 현대중공업에 떠넘기는 건 무책임하다는 비판도 일각에서 나온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전면파업과 점거농성을 동시에 벌인 건 1994년 이후 25년 만이다. 재계에선 노사의 극한대립이 이어지고 지역사회의 반발도 거세지면서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늦어지거나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전망조차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주총에서 안건이 무사히 통과된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이 ‘강행’하는 모양새가 이어지면 앞으로 남은 기업결합심사를 비롯해 여러 과정에서도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이에 앞서 김종훈 민중당 의원을 비롯해 울산지역 의원들은 성주영 산업은행 수석부행장을 만나 현대중공업의 물적분할과 본사 이전과 관련한 울산지역 민심과 우려사항을 전달했다.

성 수석부행장은 이 자리에서 이 같은 사항을 현대중공업에 전달하겠다는 원론적 대답만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3월 이후에는 대우조선해양이나 현대중공업과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전까지 기습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밝혔던 점과 대조적이다.

다만 이 회장이 현대중공업의 물적분할이 이뤄지고 한국조선해양이 대우조선해양 지분을 인수하는 등 산업은행과 관련한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다시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 회장은 취임한 뒤 금호타이어의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노조의 반발에 부딪쳤는데 당시 직접 금호타이어 광주 공장을 방문해 노조 관계자와 면담하는 등 적극적 모습을 보였다.

이 회장은 매각이 결정된 뒤 대우조선해양 노조의 반발과 관련해 “언제든 (노조와) 얘기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산업은행 입장에서 아직까지는 현대중공업 내부의 일인 만큼 벌써부터 나서봤자 ‘긁어 부스럼’이라는 생각에 일부의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의도적으로 묵묵부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이 맺은 계약서에도 계약이 마무리될 때까지 둘 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만큼 앞으로는 산업은행도 나서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