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선해양이 조선업 종가인 울산시에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현대중공업은 반세기를 함께한 울산시를 외면하지 말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송철호 울산시장이 29일 현대중공업에 한국조선해양 본사를 울산시에 설립할 것을 요구하고 삭발하면서 한 말이다.
 
'현대중공업 본사' 붙잡기 위한 송철호 삭발, 명분이 너무 약하다

송철호 울산시장이 29일 롯데백화점 울산점 광장에서 한국조선해양 울산 존치를 촉구하며 삭발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의 물적분할에 따라 설립되는 중간지주회사를 말한다. <연합뉴스>


삭발은 약자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는 최후의 수단이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 앞에 힘없는 약자는 최후의 저항으로 삭발과 단식을 단행하며 불의를 저지하고 정의를 관철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와 사생결단의 각오를 내보여 왔다. 

삭발이 최후의 투쟁으로 승화되며 대중에게 선명하게 각인되고 노도(努濤)의 물결을 만들기 위해서는 삭발이라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뜨거운 가슴을 느낄 수 있는 '명분'이 필요하다.

물론 송철호 시장은 현대중공업이 지역경제를 살리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송 시장이 아무런 힘도 없는 사회적 약자로 삭발의 고귀한 명분을 담아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울산시의 수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삭발이라는 행위만을 이용해 사기업의 경영활동에 압력을 넣고 한국조선산업의 위기를 뚫고 나가려는 정부와 조선업체들의 각고의 노력에 '떼'를 쓰고 있는 모습만 강하게 남는다는 반응들이 오히려 힘을 얻는다.

현대중공업은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서 물적분할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신설 현대중공업의 중간지주회사 격인 한국조선해양 본사를 서울시에 설립한다는 계획을 내놨기 때문에 불거졌다. 핵심은 모두 서울로 가고 빚더미만 울산에 남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송 시장이 울산시민들의 걱정에 편승해 '행위'만을 보여주고 다음 정치적 입지만 생각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정당하게 한국조선해양 본사를 존치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내놓지 못했고 울산에 남는 것이 기업에도 매력적이라는 내용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송 시장은 삭발하면서 마땅한 법적, 제도적 근거도 없이 단순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만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이번 삭발의 의미가 퇴색하는 또 다른 이유는 현대중공업 노동조합과 사용자 측의 충돌이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물적분할을 반대한다. 현대중공업은 31일 시행될 주주총회에서 물적분할 안건을 통과하려고 하는데 노조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주주총회 예정장소인 동구 한마음회관을 점거하고 있다. 

회관 앞에는 노조원과 경찰병력 수천 명이 몰렸다. 현대중공업은 주주총회를 강행하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경찰에 노조 퇴거를 요청해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송 시장은 이처럼 극한 대립과 충돌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삭발하고 현대중공업을 비판함으로써 오히려 갈등의 불씨를 키운 셈이다. 

삭발로 시민을 자극하는 대신 현대중공업과 노조 사이를 차분히 중재하는 것이 시장이 할 일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삭발의 다른 예는 이강덕 포항시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대중공업 본사' 붙잡기 위한 송철호 삭발, 명분이 너무 약하다

▲ 이강덕 포항시장(왼쪽)과 서재원 포항시의회 의장이 4월2일 포항시 북구 덕산동 육거리에서 열린 ‘포항지진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범시민 결의대회’에 참석해 머리를 깎고 있다. <연합뉴스>


이강덕 시장은 2017년 대규모 피해를 냈던 포항 지진이 지열발전소 운영에 따른 인재로 확인되자 지진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포항 지진 피해 배상 및 지역 재건 특별법’ 제정을 정부에 요구하며 4월2일 삭발했다.

지열발전소 프로젝트를 시행한 정부를 상대로 상대적 약자인 시민들의 입장을 대변했다는 점에서 삭발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이 시장이 삭발을 감행하고 포항 지진 문제를 알리면서 지진특별법 제정 사안은 국민적으로 공감대를 얻었다. 

지진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에 21만 명가량이 동의했고 여러 고위 관계자들이 지진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명분없이 행위만 담고 남발되는 삭발은 공감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송 시장의 삭발이 패스트트랙 원천무효를 주장했던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삭발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