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하도급회사의 핵심부품 도면을 빼돌려 다른 회사에 전달하는 등의 기술유용을 저질렀다는 이유를 들어 현대중공업과 현대건설기계를 제재했다. 

공정위는 29일 하도급회사의 기술자료를 유용한 현대건설기계와 현대중공업에 시정명령과 더불어 과징금 4억3100만 원을 부과했다. 두 회사의 법인과 관련 임원 2명도 검찰에 고발한다.
 
공정위, 하도급회사 기술 유용한 현대중공업 현대건설기계 제재

▲ 이하나 공정거래위원회 기술유용감시팀장이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하도급회사의 기술자료를 유용한 현대건설기계와 현대중공업의 제재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건설기계는 굴삭기를 비롯한 건설기계를 제조해 파는 기업이다. 현대중공업 건설장비사업부가 2017년 4월3일 분할되면서 세워진 현대중공업 자회사이기도 하다. 

현대중공업은 굴삭기 핵심부품인 ‘하네스’의 구매가격을 낮추기 위해 기존 납품회사인 A사의 도면을 2016년 1월 다른 하네스 제조회사 B사에 몰래 전해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그 뒤 B사에 하네스의 견적 제출을 요청한 한편 A사에는 납품가격 인하를 요구했다. 그 결과 하네스 납품회사를 바꾸진 않았지만 2016년 4월 A사의 공급가격을 최대 5% 깎았다. 

현대건설기계는 2017년 10월~2018년 4월 동안 하네스 원가를 줄이겠다는 이유로 하도급회사 3곳이 납품하던 하네스 품목의 도면 13개를 세 차례에 걸쳐 다른 회사인 C사에 전해 납품 가능성을 알아보는 한편 견적을 내는 데 쓰도록 했다. 

공정위에서 조사를 시작한 뒤인 2018년 4월에도 C사에게 다른 회사의 하네스 도면을 전달한 사실도 확인됐다. 공정위가 추가 조사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하자 현대건설기계는 하네스 공급처를 바꾸려던 절차를 중단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건설기계는 지게차용 배터리 충전기, 휠로더용 드라이버샤프트(엔진 동력을 바퀴에 전달하는 부품), 굴삭기용 유압밸브 등의 시제품을 입찰하는 과정에서 기존 하도급회사의 부품 도면을 빼돌려 다른 회사에 전한 뒤 입찰 참여 여부를 알아보기도 했다. 

특히 지게차용 배터리충전기와 관련해 현대중공업·현대건설기계는 현대건설기계로 분할되기 전후 두 차례에 걸쳐 기존 하도급회사가 납품 승인을 받았던 도면 7장을 신규 개발회사 2곳에 각각 전달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건설기계는 제공된 승인 도면이 납 배터리 충전기 도면인 반면 입찰품목은 리튬이온 배터리 충전기인 만큼 도면이 실수로 전달됐다고 공정위에 주장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기존 납품회사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정전류-정전압 충전방식을 구현할 수 있는 점을 근거로 들어 현대중공업과 현대건설기계의 행위를 기술자료 유용으로 규정했다.

공정위는 “정전류-정전압 충전방식을 적용한 납 배터리충전기의 승인도면은 같은 방식을 채택해야 하는 리튬이온 배터리 충전기의 개발에도 중요하게 참고할 만한 기술자료”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현대중공업과 현대건설기계 제재는 기술자료 유용과 정당한 사유 없는 기술자료 요구, 기술자료 요구절차의 위반 등이 섞인 복합적 행위를 시정조치한 사건”이라며 “기술유용을 근절하기 위해 2020년 상반기까지 주요업종 3~4곳을 모니터링하면서 직권조사도 하겠다”고 밝혔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