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일감 몰아주기 해소를 거듭 압박하면서 대기업집단의 내부거래와 지배구조 개편속도도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23일 재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김 위원장이 CEO들을 만난 자산 순위 11~34위 대기업집단 가운데 상당수는 일감 몰아주기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떠안고 있다. 
 
김상조, 대기업 CEO 만나 일감몰아주기 해소 고삐 다시 죄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회관에서 재계 11~34위 대기업집단 전문경영인들을 만나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위원장과 이날 간담회에 참여한 기업은 한진그룹 CJ그룹 부영그룹 LS그룹 대림그룹 현대백화점그룹 효성그룹 영풍그룹 하림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 코오롱그룹 OCI그룹 카카오그룹 HDC그룹 KCC그룹이다.

공정위는 하림그룹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실태를 살펴본 결과를 조만간 내놓으면서 제재 수위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림그룹은 비상장 계열사 올품,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상장 계열사 아시아나IDT 등에 일감 몰아주기로 부당지원을 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에 앞서 공정위는 2일 이해욱 대림그룹 회장을 호텔사업 분야의 일감 몰아주기에 따른 부당지원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현대백화점그룹도 급식회사 현대그린푸드의 총수 일가 지분율이 37.7%에 이르러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나온다. 현대그린푸드의 연간 내부거래액도 2018년 기준 249억 원에 이른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대기업 총수 일가의 지분율 20% 이상인 비상장 계열사나 30% 이상인 상장 계열사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적용된다. 이 회사들이 내부거래로 연간 거래액 200억 원을 넘어섰거나 최근 3년 매출의 평균 12% 이상을 냈다면 공정위가 총수 일가를 제재할 수 있다.

지금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문제가 없지만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계열사가 규제대상에 오르는 곳들도 많다. 

이 개정안은 일감 몰아주기 대상을 상장사와 비상장사 모두 총수 일가의 지분율 20%로 통일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총수 일가의 지분율 20% 이상인 A회사가 B회사의 지분 50% 이상을 보유하면 B회사에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적용되는 내용도 새로 들어갔다.

이대로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 대기업집단 계열사 상당수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적용받게 된다. 예컨대 OCI그룹에서는 유니드와 OCI, 영풍그룹은 영풍과 영풍정밀, LS그룹은 LS와 예스코홀딩스, HDC그룹은 HDC아이콘트롤스 등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적용받게 된다.

김 위원장이 대기업집단 최고경영인들에게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없애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 점도 이런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지배주주 일가가 지분을 많이 보유한 비주력·비상장 계열사에 계열사의 일감이 집중된다면 합리적 근거를 시장과 주주가 납득하도록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2018년에 자산 순위 1~10위인 대기업집단 총수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들어 비상장·비주력 계열사 지분 매각을 권고했다.

그 뒤 LG그룹 총수 일가가 물류 계열사 판토스 지분을 정리하고 현대자동차그룹이 이노션과 롯데컬처웍스의 지분을 맞교환하는 등 규제 강화에 앞서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재계 자산 11~34위 사이의 대기업집단들도 총수 일가의 지분 매각이나 비상장 계열사의 상장 추진에 더욱 힘을 실을 것으로 예상된다. 

CJ그룹이 최근 일감 몰아주기 조사대상인 시스템통합 계열사인 CJ올리브네트웍스를 물적분할하기로 결정하는 등 눈에 띄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공정위는 최근 대기업의 물류와 시스템통합(SI) 계열사의 내부거래 실태를 조사하는 등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고삐를 조이고 있다”며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의 의결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기업의 선제적 행보를 요청하는 뜻도 읽힌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