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희 취임 3년, 현대차 주가 선방

이원희 사장이 2016년 3월 대표이사에 오를 당시 현대차 주가는 14만 원대였는데 3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한 수준이다.

취임 1년가량 됐을 때인 2017년부터 2018년 초까지만 해도 주가는 최고 17만 원대까지 오르기도 했다.

현대차는 2015년에 글로벌 판매량 496만 대로 정점을 찍은 뒤 2016년 486만 대, 2017년 451만 대로 판매가 지속적으로 후퇴했다.

특히 2017년 중국의 사드보복이 한창일 때도 주가는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2018년 3분기에 2010년 이후 분기 기준으로 최저 실적을 내면서 주가가 9만 원대까지 무너지기도 했다.

올해 들어 현대차가 팰리세이드와 신형 쏘나타 등을 내놓으면서 판매에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많아졌고 지금은 이 사장의 대표이사 취임 초기와 같은 수준까지 회복됐다.

◆ 현대차 주가, 실적에 울었지만 신차에 웃었다

지난해 10월, 현대차의 3분기 실적 발표가 있었다. 당시 증권가는 현대차가 분기 영업이익으로 7천억 원에서 9천억 원을 낼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이런 시장의 기대를 저버리고 2889억 원이라는 충격적 수치를 발표한다. 이른바 ‘어닝쇼크’를 낸 것이다.

2018년 11월에는 주가가 9만 원대 초반까지 떨어진다. 현대차 주식이 9만 원대에 거래된 것은 2009년 이후 약 9년 만이었다.

미국에서 엔진문제로 대형 리콜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주가는 한동안 약세를 면치 못했다. 현대차의 시가총액 순위는 9위까지 밀렸다.

주가는 지난해 11월 말을 기점으로 반등을 시작한다. 이른바 시장에서 ‘이미 모든 악재는 반영되지 않았겠냐. 앞으로 반등만 남았다’라는 기대심리가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룹 내부의 혁신 움직임도 주가 상승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정의선 총괄 수석부회장은 2018년 12월 기존 현대차의 부회장단을 1명만 빼고 모두 물갈이하는 대규모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이밖에 현대차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내세우고 있는 수소차 분야에만 8조 원에 가까운 돈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고 대형SUV 팰리세이드가 흥행에 성공하는 등 복합적 작용으로 주가를 끌어올린다.

현대차 경영진도 주가의 회복세를 이어가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원희 사장은 올해 2월27일 ‘CEO 인베스터 데이’라는 기업설명회를 직접 진행한다.

여태껏 현대차 사장이 직접 회사의 경영현황과 미래전략, 경영목표 등을 밝힌 적이 없었는데 이날은 직접 등판해 회사의 청사진을 설명했다.

이 사장은 2%까지 떨어진 회사의 영업이익률을 향후 7%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면서 이를 위해 다양한 라인업 구축, 친환경차 플랫폼 개발, 플랫폼 공유를 통한 원가 절감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한다.

사장이 직접 설명회를 진행하니 현대차를 바라보는 증권가를 비롯한 주주의 신뢰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오죽하면 증권가에서 “현대차, 이제야 말이 통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렇게 주가가 오르려나 싶었는데 현대차의 불청객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주주총회에서 고배당 요구를 내세우며 어깃장을 놓기 시작하면서 다시 주가가 불안정한 흐름을 보인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현대차에게 약 5조8천억 원을 배당하라고 요구했다. 현대차의 2018년 순이익이 2조5천억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마무시한 배당액이었다.

현대차와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주총 표대결이 어떻게 될지 가늠하기 힘들다는 전망들이 나오면서 주가는 박스권을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주총을 준비했고 결국 주총에서 압승을 거두게 된다. 

이후 현대차는 8세대 쏘나타 DN8 출시로 시장에 큰 기대를 안겨 주며 주가 또한 상승세를 타게 된다.

◆ 현대차의 주가 상승을 발목 잡는 악재 이겨낼까 

이원희 사장은 3월22일 열린 주총에서 “신차로 현대차의 경영위기를 넘겠다”고 약속했다.

글로벌 판매량이 2015년 정점을 보인 뒤 하락세를 이어오는 상황에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보고 판매 회복을 위해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의미였다.

이 사장은 판매 회복뿐 아니라 차량 전동화와 자율주행, 커넥티드카와 같은 미래차 분야에서도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오픈 이노베이션, 이른바 개방형 혁신 전략도 가속화해 현대차의 기업가치를 올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하지만 위험요소는 여전히 있다.

정의선 부회장의 경영전략과 미국과 중국 무역분쟁, 미국의 수입차 관세 부과 여부, 글로벌 시장 판매량,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지배구조 개편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현대차 주가의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 이원희는 재무 전문가 출신 CEO

이원희 사장은 현대차그룹이 대표적 재무 전문가로 꼽힌다.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일리오니대학교 대학원에서 회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대차에 입사한 뒤로는 재정팀장과 국제금융팀장, 미국법인 재경담당 임원 등을 거쳐 현대차 재경본부장을 맡는 등 줄곧 재무 분야에서 일했다.

2016년 3월 현대차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다. 재무책임자 출신 임원에게 대표이사를 맡긴 것이 다소 뜻밖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제조와 생산, 판매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현대차의 특성상 경험이 부족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의 수익성이 갈수록 후퇴하는 상황에서 내실을 다지기 위한 조치로 재무 전문가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차도 2015년 이원희 사장을 기획과 영업마케팅, 재경 담당 사장으로 선임하면서 “급격한 경영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해 기업의 체질을 강화하고 내실경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 이원희, 재무 전문가 특유의 신중함 갖췄다

이원희 사장은 재무 전문가답게 특유의 신중함을 앞세워 현대차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는 재무전문가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공식석상에서 현대차의 현안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도 “잘 될 것이다” “나아지고 있다” “열심히 하겠다” 정도로 말을 아낀다.

지난해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도 한 주주가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이사회 의장인 이원희 사장에게 돌발질문을 하자 이 사장은 “원래 주주총회에서는 상정된 의안만 이야기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지배구조 개선 관련 부분을 대답하는 건 적절치 않다”라며 대답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현대차그룹의 보수적 문화으로 볼 때 대표이사들이 전면에서 무엇인가를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되어 있는 것도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이 사장은 현대차를 이끄는 총괄책임자로서 고객 경험을 만족하기 위한 브랜드 이미지 제고 전략에 힘을 쏟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한 보도에 따르면 이 사장이 제네시스의 G70을 구매한 고객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자필로 쓴 건 아니고 명의를 빌린 거지만 사장 명의로 된 편지를 받은 고객의 소회가 남달랐다고 전해진다.

이 사장은 편지에서 “제네시스 G70을 구입해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제네시스 G70과 함께 하는 모든 순간마다 최상의 품질과 최고의 경험을 제공해 고객님의 삶을 더욱 안전하고 풍요롭게 만들어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했다.

이른바 ‘고객 최우선주의’를 추구하는 제네시스의 감성마케팅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국내를 대표하는 자동차기업으로서 위상을 강화하려는 이 사장의 노력이 돋보인 대목이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