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황우석 사태로 번질 수 있다.’

코오롱생명과학의 퇴행성관절염 치료제 ‘인보사’의 성분논란이 커지자 국내 바이오산업 전체에 불똥이 튈 수 있다는 바이오업계 관계자의 우려 섞인 목소리다.
 
서정진도 바이오 불신에 위기의식, '제2 황우석 사태'는 막아야

▲ 2019년 4월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퇴행성관절염 치료제 '인보사' 판매중단 기자간담회에서 이우석 코오롱생명과학 대표이사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2004년 황우석 박사 연구팀이 줄기세포 논문을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을 때 국내 바이오산업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줄기세포를 활요한 치료제는 사실상 ‘사기’라는 인식이 생겼고 관련 바이오기업들의 신약 연구개발은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바이오업계 사람들은 이 기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른다.

2019년 국내 바이오업계에 또 위기가 오고 있다.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 사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 분식회계’ 의혹으로 국내 바이오산업을 향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바이오산업의 대부로 불리는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도 16일 “제약바이오업계에서 자료를 고치거나 누락시키거나 사실과 같지 않게 만들어내는 것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로 이건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신용에도 문제를 일으킨다”며 위기의식을 보였다.

국내 바이오산업은 가까운 미래에 반도체와 같이 우리나라의 기간산업이 될 산업으로 꼽히지만 매년 오리지날 신약을 쏟아내는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하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에 있다.

이 때문에 신약 개발 과정에서 투명하지 못하거나 회계처리 등에서 절차적 규정이 미비했던 것이 사실이다.

바이오기업의 회계처리에서는 최근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바이오기업들은 그동안 연구개발(R&D)비를 ‘비용’이 아닌 ‘무형자산’으로 처리하곤 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새 외부감사법이 도입되며 무형자산 인식기준이 바뀌어 연구개발비의 상당 부분을 비용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에 걸맞게 신약 개발과 관련한 제도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인보사의 성분이 변경된 것도 모른 채 임상3상을 승인하고 판매허가까지 내줬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안정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내린 판매허가 결정으로 인보사를 투약한 3천 여명의 환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세계에서 허가를 받은 줄기세포 치료제 8개 가운데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허가한 치료제는 4개에 이른다. 허가절차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단 한차례도 줄기세포 치료제를 허가하지 않은 것과 대비된다.

이를 두고 식약처의 심사가 선진국에 비해 부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식약처는 앞으로 첨단바이오의약품 허가를 신청할 때 연구개발에 사용된 모든 세포의 ‘유전학적 계통검사(STR)’ 결과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하겠다며 관련 제도를 정비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바이오업계가 추진하고 있는 첨단재생의료법 내용도 수정이 필요하다.

첨단재생의료법에는 암을 비롯한 중대질환이나 희귀질환, 감염병에 쓰이면서 대체치료제도 없는 바이오의약품을 임상2상만 거쳐도 ‘조건부 허가’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현재의 의약품 품목허가를 방식을 더 간소화해 바이오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첨단재생의료법안은 올해 4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해 제동이 걸렸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첨단재생의료법안은 업계에서도 오랫동안 이야기했던 부분이고 부처 협의나 전문가 공청회를 통해 마련된 법안이라 여기서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다”며 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바이오산업 육성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다.

바이오산업은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규제나 절차를 만드는 데 더 세심하고 철저해야 한다. 안전하지 않은 의약품이 허가를 받아 시중에 풀리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낳을 수도 있다.

이번 위기를 제도 정비의 기회로 삼아 국내 바이오산업이 다시 도약하기를 기대해본다. [비즈니스포스트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