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은 왜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그것도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했을까?

LG화학은 오랜 기간 많은 투자를 통해 확보한 지적재산권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거듭 밝히고 있지만 미국에서 법정 공방을 시작한 것을 두고 경쟁자인 SK이노베이션을 견제할 가장 효과적 수단을 선택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LG화학은 왜 미국에서 SK이노베이션 상대로 소송전 들어갔나

▲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


3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미국에서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지더라도 잃는 것이 적지만 SK이노베이션은 패소하면 치명적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LG화학은 4월30일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기술인력을 지속적으로 빼가 영업기밀을 침해했다며 미국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제소했다.

이와 함께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관련제품을 수입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LG화학은 미국 법정에 제소한 이유를 놓고 전기차 배터리사업은 미국 등 해외시장의 비중이 월등히 높다는 점을 들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 및 연방법원이 강력한 증거 공개제도를 시행하고 있어 증거 은폐가 어려우며 이를 위반하면 소송결과에도 큰 영향을 주는 제재로 이어진다는 점도 함께 들었다.

하지만 이를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황유식 NH투자증권 연구원은 “LG화학은 소송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경쟁사의 추격속도를 늦춰 전기차 배터리 수주 경쟁에서 우월한 지위를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파악했다.

LG화학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시장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중국시장에서 전기차 배터리를 수주하지 않고도 110조 원에 이르는 수주잔액을 쌓았다. 폴란드의 전기차 배터리공장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폴크스바겐의 전기차 배터리 수요물량을 대거 수주했다.

하지만 후발주자 SK이노베이션이 맹렬한 속도로 LG화학을 추격하고 있다. 4월 기준으로 50조 원이 넘는 수주잔액을 확보해 2016년 말보다 수주잔액을 20배가량 늘렸다.

이런 상황에서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견제하기 위해 소송전을 시작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LG화학의 주장이 법원에서 상당 부분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LG화학이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을 놓고 지더라도 크게 잃을 것이 없는 '안전한' 선택을 했다는 말도 나온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북미시장 의존도가 낮다. 소송전이 오래 진행되도 고객사에 영향이 적다.

이와 달리 SK이노베이션에게 이번 소송의 무게는 간단치 않다.

SK이노베이션이 법정에서 결백을 입증받을 수도 있지만 패소한다면 전기차 배터리사업에서 치명적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SK이노베이션에게 미국은 전기차 배터리사업의 핵심거점이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북미 지역에서 2022년부터 폴크스바겐의 전기차 배터리 수요를 전담하기 위해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배터리 생산공장을 짓고 있다.

9.8GWh 규모의 공장을 짓기 위해 50GWh 공장을 짓는 데 필요한 만큼의 부지를 확보했다는 점, 기공식에서 1조9천억 원의 증설 투자계획까지 밝혔다는 점을 감안하면 SK이노베이션이 수주한 전기차 배터리 물량의 상당 부분은 폴크스바겐의 북미 지역 물량으로 파악된다.
 
LG화학은 왜 미국에서 SK이노베이션 상대로 소송전 들어갔나

▲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총괄사장.


LG화학이 20곳이 넘는 고객사들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는 것과 달리 SK이노베이션은 다임러와 기아차를 제외하면 의미 있는 고객사가 폴크스바겐뿐이다.

만약 소송에서 져 폴크스바겐의 전기차 생산일정을 맞추지 못한다면 최대 고객사를 잃을 수도 있다.

게다가 LG화학이 승소 판례를 들고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소송을 연다면 재판 결과에 따라 북미에서 사업을 철수하는 수준을 넘어 배터리사업을 모두 접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릴 수도 있다.

두 회사의 법적 공방전이 파국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두 회사 모두 전기차 배터리시장의 가파른 성장세에 대응해야 하는 만큼 법적 공방을 통해 이미지가 나빠지면 고객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이 협상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특허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LG화학과 달리 침해 당사자로 지목받는 SK이노베이션이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배터리 수주영업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생산공장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붓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중국, 헝가리, 미국에 전기차 배터리 생산공장을 짓고 있는데 헝가리 공장은 준공하기도 전에, 미국 공장은 첫 삽을 뜨는 것과 동시에 각각 증설계획을 내놓았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까지 확정한 전기차 배터리 투자금액만 6조 원을 넘어선다. 이 투자들을 물거품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LG화학을 상대로 다소 물러날 가능성은 충분한 셈이다.

다만 아직까지 공방전의 불길이 사그라들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LG화학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에 유출된 영업기밀의 가치가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LG화학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은 배터리 생산방식이 다르며 LG화학이 주장하는 영업기밀의 유출도 없다”며 “LG화학이 멈추지 않는다면 법적 조치 등으로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