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사업 홍보에 도움이 되기 위해 왔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 김동선 전 한화건설 차장은 2015년 12월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갤러리아면세점63’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새로 진출하는 서울 시내면세점사업에 힘을 실었다.
 
[오늘Who] 한화그룹 잇단 사업철수, 김승연 승계구도 새 판 짜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한화그룹이 서울 시내면세점 신규사업자에 선정돼 첫 사업장의 개장을 준비하던 때였다. 재계에서는 김 전 차장이 한화그룹의 면세점사업을 키워 물려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한화그룹 면세점사업의 주체인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는 29일 이사회를 열고 전격적으로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30일 재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면세점사업 철수를 비롯해 한화그룹에서 최근 이뤄지고 있는 사업재편과 관련한 결정들은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김동선 전 한화건설 차장의 승계구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는 면세점사업에서 발을 빼는 이유로 어두운 사업 전망을 내세우고 있지만 김동선 전 차장의 부재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한화그룹 면세점사업은 한화건설과 함께 김 전 차장이 물려받을 대표 사업으로 분류됐다. 김 전 차장은 한화그룹 계열사에서 일할 당시 한화건설, 면세점TFT(태스크포스팀) 등에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김 전 차장은 2017년 일어난 술집 폭행사건으로 한화그룹 계열사 자리에서 모두 물러난 뒤 최근 독일에서 요식사업자로 변신했다.

김 전 차장이 한동안 면세점사업에 관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당분간 한화그룹 계열사에 복귀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면세점사업 철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는 셈이다.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는 그동안 지속해서 적자를 봤는데 경영능력 입증이 중요한 3세 경영인인 김 전 차장은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서울 시내면세점사업은 당장 경쟁 심화에 따른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적자를 감수하는 지속적 투자가 필요하지만 김 전 차장의 복귀는 현재 기약이 없다.

한화그룹이 최근 롯데카드 인수전에서 발을 뺀 것도 승계구도를 염두에 둔 결정으로 분석된다.

한화그룹이 롯데카드를 인수하면 김승연 회장의 둘째 아들인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가 이끄는 금융사업에 대폭 힘이 실릴 수 있었다.

김동원 상무는 한화생명을 중심으로 꾸려진 태스크포스팀에 참여하며 롯데카드 인수에 상당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종적으로 예비입찰에만 참여했을 뿐 본입찰에는 도전장을 던지지 않았다.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와 한화생명은 각각의 결정이 계열사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결정의 무게감을 볼 때 김승연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높다.

재계에서는 애초부터 김 회장이 첫째인 김동관 전무에게는 태양광과 방산사업, 둘째인 김동원 상무에게는 생명과 손해보험 등 금융사업, 셋째인 김동선 전 차장에게는 건설과 백화점사업 등을 물려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김 회장은 1981년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29세의 나이에 준비 없이 그룹을 물려받았는데 이후 동생인 김호연 전 빙그레 회장과 3년이 넘는 재산분쟁을 벌이기도 해 경영권 승계 준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오늘Who] 한화그룹 잇단 사업철수, 김승연 승계구도 새 판 짜나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현재 이뤄지고 있는 한화그룹의 굵직한 결정들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전 참여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화그룹이 롯데카드 인수전에 참여하거나 지속적 투자가 필요한 비주력 적자사업을 유지하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거나 인수 뒤 경쟁력 확대 과정에서 그룹의 역량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화그룹은 롯데카드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1조 원 이상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자금 여력을 추가로 확보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화그룹이 아시아나항공을 품에 안게 되면 자연스럽게 승계구도의 새 판 짜기가 이뤄질 수도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2018년 말 연결기준으로 8조2천억 원 규모의 자산을 보유한 대형 항공사다. 한화그룹의 어떤 계열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외형을 지니고 있다.

한화그룹은 “현재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해 검토하고 있는 것은 없다”며 지속해서 인수설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대형 인수합병(M&A)의 준비 과정이 비밀리에 진행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화그룹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참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승연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단언하건데 앞으로 10년은 우리가 겪어온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혁명적 변화의 시기가 될 것”이라며 무엇보다 변화를 강조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