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에게는 그동안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강조해왔던 이해당사자의 ‘고통분담’ 원칙을 유독 느슨하게 들이대고 있다.

항공산업의 특성상 구조조정 압박 등이 안전문제와 직결될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산업은행은 왜 아시아나항공 노조에겐 '고통분담' 관대할까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과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아시아나항공 사태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된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모든 자리에서 내려오며 책임을 진 데다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그동안 비상경영을 통해 이미 고통을 분담해오고 있다는 점 역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30일 아시아나항공 직원 등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29일 사내 게시판에 ‘희망휴직(무급휴직) 실시 안내’ 공고를 냈다.

희망휴직 대상은 2016년 이후 희망휴직을 하지 않았던 직원들로 국내 일반, 영업, 공항 서비스직, 의무직, 운항관리직, 항공엑스퍼트직 전체, 국내 정비직 가운데 사무업무 수행자다

이번 희망휴직은 산업은행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협의한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정상화 자구계획 세부내역'에 포함된 사안이다. 여기에 아시아나항공 주식 매각과 채권단의 금융 지원, 임원 연봉 반납 지속(10~20%), 일반사무직 대상 무급휴직 확대 시행 등이 포함됐다.

그동안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등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노조에 요구했던 고통분담 수준과 비교하면 강도가 현저히 낮다.

대우조선해양은 과거 산업은행의 추가 지원을 받는 과정에서 희망퇴직을 통한 인력 감축, 모든 직원 임금 일부 반납, 무급휴직 등을 실시해 인건비를 20%가량 절감하는 등 피나는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당시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노조로부터 무분규 동의서를 받기도 했다.

일각에서 이를 놓고 형평성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김선동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은 29일 “이번 아시아나항공 금융 지원은 대주주에 책임만 묻고 노조의 자구노력은 빠졌다는 점에서 산업은행이 스스로 세운 구조조정 원칙을 위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산업은행이 노조를 비롯한 직원들에게 강도 높은 자구노력을 요구하지 않는 이유로 항공산업이라는 특수성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기장과 부기장 등 운항직과 객실 승무원, 정비직 등의 인력은 항공기 운항과 안전에 절대적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 직종들은 이번 무급휴직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아시아나항공이 몇 년 전부터 이미 구조조정을 해왔다는 점 역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은 2015년 말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몇 년째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한항공과 임금격차가 벌어지면서 직원들 사이에서 처우 등을 놓고 불만이 매우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시아나항공은 오히려 인력 유출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동걸 회장은 최근 언론과 인터뷰에서 넉넉한 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조종사와 안전관리를 맡고 있는 정비직 등 핵심인력의 동요를 막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은 인력 구조조정이 전혀 필요 없다”며 “오히려 핵심인력들이 이직할까봐 걱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과 대우조선해양은 처한 상황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대우조선해양은 업황이 급격하게 악화되면서 과거 호황기에 늘어난 인력을 줄이는 일이 불가피했지만 항공산업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어 업황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다.

박삼구 전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을 포기한 상황에서 직원들에게 추가로 부담을 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 매각이라는 지금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박 전 회장 개인의 잘못이 절대적이라고 보고 있다. 직원들은 오히려 피해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이 그룹 확장과 재건에 이용되는 과정에서 직원들은 자체 경쟁력과 무관하게 경영 악화에 따른 피해를 본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매각이 마무리되면 한창수 아시아나항공 사장을 비롯해 박 전 회장의 측근들이 물러날 가능성 높다”며 “사실상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인물들은 거의 물러난다는 측면에서 고통분담 기조가 오히려 더 뚜렷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