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삼성생명 보유의 삼성전자 지분 살 시간 벌다

이한재 기자
2019-04-21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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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이 삼성그룹 금융 계열사 소유의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여야 하는 시기를 조금 더 늦출 수 있게 됐다.

금융사가 일정 기준 이상의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법안이 20대 국회 임기인 2020년 5월까지 처리될 가능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확보한 대규모 현금을 삼성전자 지분 확대 등 지배구조 개편에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과 달리 차입금을 대거 줄이는 데 사용했다. 앞으로도 현금 들어올 곳을 많이 보유한 만큼 우선적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 삼성물산, 삼성전자 지분 매입 시간 확보

21일 국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보험업법 개정안,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안 등 이른바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20대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 삼성생명 보유의 삼성전자 지분 살 시간 벌다

▲ 최치훈 삼성물산 이사회 의장.


보험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자유한국당 측에서 논의조차 해주고 있지 않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2020년 총선에 관심이 집중되는 만큼 20대 국회에서 법안 통과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이라고 말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과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안은 각각 보험사와 금융사가 일정 기준 이상의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한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2018년 말 기준 삼성전자의 보통주를 각각 8.5%와 1.5% 등 모두 10%를 들고 있다.

한국신용평가 분석에 따르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하면 대략 6.8%,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하면 대략 5%의 삼성전자 지분을 5년 안에 매각해야 한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가장 상단에 있지만 삼성전자를 향한 지배력이 약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삼성전자 지분을 살 가능성이 높은 계열사로 꼽힌다.

2월 말 종가 기준(4만5100원) 삼성전자 지분 6.8%의 가치는 18조3천억 원, 5%의 가치는 13조5천억 원으로 삼성물산이 이를 매입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보험업법 개정안과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안의 20대 국회 통과 가능성이 줄면서 삼성물산은 단기간에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해야 할 필요성이 낮아졌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순환출자 해소 권고에 따라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을 외부에 매각하며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를 냈는데 금융 계열사에서 소유한 삼성전자 지분 처리를 놓고는 시간을 조금 벌게 된 셈이다.

◆ 1년 사이 크게 줄어든 삼성물산 차입금

삼성물산은 지난해 대규모 현금을 확보했는데 시장에서는 이를 삼성전자 지분 매입을 위한 사전작업으로 바라봤다.
 
삼성물산, 삼성생명 보유의 삼성전자 지분 살 시간 벌다

▲ 이영호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이사 사장.


삼성물산은 2018년 2300억 원 규모의 서울 금천물류센터 매각, 7500억 원 규모의 서울 서초사옥 매각 등을 통해 1조 원에 육박하는 현금을 확보했다.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SDS 등 주요 계열사에서 받은 배당금 5524억 원을 더하면 지난해 본업을 제외한 곳에서 확보한 현금은 1조5천억 원이 훌쩍 넘는다.

더군다나 삼성물산은 지난해 건설부문의 호실적에 힘입어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냈다. 삼성물산은 2018년 연결기준으로 영업이익 1조1천억 원을 냈다. 2017년보다 25% 늘어나며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 원을 넘겼다.

시장에서는 삼성물산이 현금을 크게 늘린 만큼 2018년 말 연결기준으로 4조 원이 넘는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지난해 삼성물산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오히려 1년 전보다 줄었다.

삼성물산은 2018년 말 기준 연결기준으로 2조9천억 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2017년 말보다 3% 줄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확보한 대규모 현금을 빚 갚는 데 사용했다.

삼성물산은 2018년 말 연결기준으로 단기 차입금과 장기 차입금을 각각 1조3700억 원, 1조2500억 원 보유하고 있다. 2017년 말보다 각각 35%와 52% 줄었다. 1년 사이 2조600원 규모의 장기·단기 차입금이 줄었다.

개별기준 재무제표를 봐도 마찬가지다.

삼성물산은 2018년 말 개별기준으로 단기 차입금과 장기 차입금을 각각 5700억 원, 7300억 원 보유하고 있다. 2017년 말보다 각각 51%와 63% 줄었다. 1년 사이 2조 원에 육박하는 빚을 갚았다.

◆ 삼성물산, 여전히 현금 확보할 방안은 많다

삼성물산은 규제환경의 변화 속도가 조금 누그러진 상황에서 앞으로도 현금 들어올 곳을 많이 보유한 만큼 우선적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 현금을 사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물산, 삼성생명 보유의 삼성전자 지분 살 시간 벌다

▲ 3월22일 서울 강동구 삼성 글로벌엔지니어링센터 1층 국제회의장에서 제55회 삼성물산 정기 주주총회가 진행되고 있다. <삼성물산>


삼성물산은 여전히 대규모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2018년 말 기준 삼성전자 5%, 삼성생명 19.3%, 삼성SDS 17.1% 등의 지분을 들고 있는데 이들은 지속해서 배당 규모를 늘리고 있다.

삼성물산이 이 계열사들에서 받은 배당금은 2017년 3천억 원에 그쳤는데 2018년 5500억 원을 거쳐 올해는 7천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매각을 철회한 한화종합화학 지분 20%를 현금화할 수도 있다. 한화종합화학 장부가격은 2018년 말 기준 2750억 원으로 잡혀있지만 앞으로 상장이 추진되면 기업가치가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물산은 2015년 한화그룹에 삼성종합화학(현재 한화종합화학)을 매각하고 남은 지분을 들고 있는데 2015년 매각 당시 한화그룹은 한화종합화학을 2021년까지 상장하기로 했다.

삼성물산이 삼성SDS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처분해 현금을 확보할 가능성도 나온다.

백광제 교보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전환 시나리오가 고려되지 않는 상황에서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SDS,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며 “삼성물산이 이 지분을 처분해 삼성전자 지분 매입여력을 확대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SDS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가치의 합은 현재 13조 원 이상으로 이들 지분을 매각하면 상당한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다.

전지훈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최근 낸 ‘그룹 구조개편의 가이드라인’ 보고서에서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에서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하더라도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는 선에서 지분을 매입할 것”이라며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3.3%를 매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공정거래법상 자회사 주식가액의 합계가 자산총액의 50%를 넘으면 삼성물산은 지주회사로 전환해야 하는데 이러면 삼성물산이 삼성생명 등 금융 계열사의 지분을 처분해야 하는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전 연구원은 삼성물산이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는 선에서 매입할 수 있는 삼성전자 지분은 3.3% 가량이며 이때 필요한 비용을 약 9조 원으로 추산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지난해 현금의 많은 부분을 차입금 상환에 활용했다”며 “지배구조 개편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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