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밀어붙이고 있다.

더 이상 예전처럼 산업은행이 부실기업을 일방적으로 떠안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이동걸은 왜 박삼구에게 아시아나항공 매각 밀어붙이나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과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과 금융당국 모두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압박하면서 아시아나항공이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 회장은 다른 대안은 없는 것처럼 박 전 회장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이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으로는 기업을 살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통 기업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면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 협약 등을 맺는다. 그 뒤 대주주의 감자와 채권단의 출자전환 등이 순차적으로 이뤄져 기존 대주주 지분은 희석돼 경영권을 상실하고 대신 채권단이 대주주로 올라선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비슷한 절차를 밟아도 이상할 게 없다.

최근 사례만 봐도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이 이와 같은 절차를 거쳐 한진중공업 경영권을 잃었다. 10년 전에도 이런 방식을 통해 채권단이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대주주로 올라섰다.

그러나 지금 이동걸 회장의 선택지에 과거와 같은 방식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예전처럼 채권단이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기업을 정상화한 뒤 다시 시장에 내놓는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감자 뒤 유상증자나 채권단의 출자전환 등에 필요한 자금이 조달돼야 하는데 산업은행은 더 이상 거대한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시나리오를 반복하지 않고 단돈 1원도 손해보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또 산업은행이 구조조정의 주도권을 쥐게 되면 민간기업보다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의 입김도 피하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하고 있다. 정치권의 간섭과 반발, 일자리 문제 등 신경 써야 할 변수가 한둘이 아니다.

그동안 모든 잘못의 책임을 온전히 산업은행이 떠안은 것도 채권단 책임의 구조조정을 피하고 싶은 이유다. 산업에 대한 이해 없이 금융논리로만 접근한다는 전문성 논란 역시 거의 매번 제기됐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굵직굵직한 기업의 구조조정에 힘을 쏟다 보니 다른 역할은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구조조정 문제로만 여론의 뭇매를 맞아왔다.

대우조선해양, 대우건설, 현대상선, 한국GM 등이 대표적이다.

대우조선해양이 막대한 공적자금을 지원받고서도 여전히 부실기업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 산업은행의 느슨한 관리도 일조했다는 지적이 항상 따라붙었다.

지난해에는 대우건설 매각에 실패하면서 책임론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밀실협상, 헐값매각 등의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매각 과정이 길어지면 혈세 낭비논란도 피하기 어렵다. 당장 현대상선을 놓고도 유일한 국적선사인 만큼 어떻게든 살려서 정상화해야 한다는 의견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 함께 나온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들어온 회사가 도덕적 해이에 빠지기 쉽다는 문제도 있다. 민간에 매각되면 살아남기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겪게 되지만 산업은행 아래로 편입되면 상대적으로 구조조정 강도가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밖에 인사 때 외부 인사가 채택되면 낙하산인사 논란, 내부 인사면 부실감시 논란에 시달린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탓에 마음 먹고 구조조정을 하기도 어렵다. 일자리 문제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았던 한국GM 사태가 대표적이다.

이 회장은 산업은행의 핵심역할로 혁신기업 지원을 강조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이 역할에만 충실하도록 하기 위해 현재 구조조정을 전담하는 자회사 설립도 준비하고 있다. 

이 회장은 이에 앞서 지난해 말에도 인사와 조직개편을 통해 구조조정 기능은 축소하고 혁신기업 지원 기능을 강화했다.

이 회장은 과거 산업은행이 부실기업을 일방적으로 떠맡고 이에 따른 책임도 전적으로 지는 구조조정 시스템을 놓고 불만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적도 있다.

그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금 산업은행이 떠맡고 있는 부실기업은 4~5년 전 이전 정부에서 내린 결정"이라며 "현재 취임 후에는 단 한 건도 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