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이번에는 예전과 달리 ‘벼랑 끝 전술’에 실패할 것으로 보인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났기 때문이다.
 
[오늘Who] 박삼구 아시아나항공 벼랑 끝 전술, 이동걸 요지부동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과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이 회장은 원칙주의자의 면모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제출한 자구계획을 거부하면서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산업은행은 11일 금호아시아나그룹에게 전날 열린 채권단 회의결과를 통보했다.

자구계획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로 겉으로는 대주주의 사재 출연이나 유상증자 등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안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사실상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라는 메시지를 다시 한 번 던진 것으로 보인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자구계획을 제출한 뒤 시장에서는 채권단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왔다.

박 전 회장에게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강제하기 어려운 데다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형 항공사인 만큼 지원을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회장은 단호했다. 자구계획을 제출한 지 단 하루 만에 ‘퇴짜’를 놨다. 그동안 여러 차례 밝혔던 만큼 대주주의 책임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이동걸 회장은 원칙주의자다.

산업은행 회장에 오른 뒤 여러 기업의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의 고통분담, 기업의 독자생존 가능성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아왔다.

기업 구조조정에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만큼 기업 스스로가 살아남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하고 지원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전 회장이 내놓은 자구계획은 이 회장의 이런 기준을 맞추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자세히 뜯어보면 사실상 알맹이가 없기 때문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채권단에 5천억 원을 요청하면서 추가로 내놓기로 한 확실한 담보는 박 전 회장의 부인과 딸이 보유하고 있는 금호고속 지분 4.8%뿐이다.

금호고속이 비상장회사인 만큼 확실한 지분 가치를 따지긴 어렵지만 대략 200억 원이 될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박 전 회장이 경영에 절대 복귀하지 않겠다고도 했지만 박 전 회장의 나이가 이미 74세인 만큼 큰 의미는 없다. 아들인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도 여전히 그룹에 남아있다.

박 전 회장은 지난 10년 동안 여러 차례 벼랑 끝 전술을 펼쳤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사실상 공중분해된 뒤 이를 다시 재건하는 과정에서 배수진도 몇 번이나 쳤다. 숱한 위기를 겪었지만 모두 넘겼고 그룹 재건에도 결국 성공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호남의 대표적 향토기업이라는 점, 박 전 회장이 재계와 정치권을 아우르는 마당발이라는 점에서 그동안은 박 전 회장의 전술이 통했다. 과거 산업은행 회장들은 박 전 회장에게 휘둘리면서 끌려다닌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박 전 회장의 묘수도 여기까지다.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동걸 회장의 원칙은 분명하다.

대주주가 확실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이와 동시에 시장의 우려를 잠재울 수 있는 확실한 자구계획을 내놓지 않으면 추가 지원은 없다는 것이다. 이게 어려우면 아시아나항공을 새 주인에게 넘기라는 얘기다.

박 전 회장은 자칫 그룹의 승계구도도 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박 전 회장뿐만 아니라 박세창 사장까지 겨냥했다. 아버지가 물러나고 아들이 대신 물려받는데 뭐가 달라지냐는 것이다. 최 위원장의 발언 의도 역시 분명해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200억 원을 담보로 맡기고 5천억 원을 빌려달라는 건데 채권단 입장에서는 도저히 수용하기 어렵다”며 “3년을 요구한 것 역시 내년 총선과 2022년 대선을 염두에 둔 것으로 결국 정치권까지 끌어들이겠다는 속내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