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주주들의 반대로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하면서 앞으로 ‘주주 행동주의’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년 동안 대한항공의 조종간을 잡았던 조 회장을 끌어내리면서 주주 앞에 더 이상 오너의 성역은 없다는 첫 사례를 만들었다.
 
조양호 퇴진 낳은 스튜어드십코드, 주주 행동주의 '원년' 만들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27일 열린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이 불명예 퇴진했다.

그동안 주주 행동주의는 기업에게 경각심을 주는 상징적 의미에 그쳤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사상 처음으로 주주들이 뜻을 모아 대기업 총수를 자리에서 끌어내리면서 다른 대기업도 주주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의 퇴진에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채택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스튜어드십코드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를 유도하는 자율지침이다.

국민연금은 전날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서 “기업가치 훼손이나 주주권 침해 이력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조 회장의 연임 반대 사유를 밝혔다. 이 발표가 주주들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앞으로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강화하고 KCGI를 비롯한 주주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도 거세지면서 주주 행동주의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외국계 주주 행동주의 펀드가 주로 활동하면서 주주 행동주의를 놓고 부정적 인식이 강했다.

외국계 투기자본의 배만 불려 국부룰 유출한다는 논란이 항상 따라다녔고 지나친 경영권 간섭이라는 지적과 기업의 주요 전략이 유출된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주주들이 대주주나 기업을 상대로 표 대결을 펼쳐 과연 이길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컸던 점도 주주 행동주의의 존재감이 미미했던 이유로 꼽힌다.

실제 그동안 주요 기업 주총에서 주주들이 결집해 승리했던 일이 없다. 주총 직전까지 표 대결을 놓고 떠들썩 하다가도 막상 표를 까보면 회사쪽의 승리로 싱겁게 끝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해 말 강성부 대표가 이끄는 토종 행동주의 펀드 KCGI가 조양호 회장과 한진그룹을 정면으로 겨냥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KCGI는 국내 펀드인 만큼 국부 유출 논란에서 자유롭다. 특히 지난해부터 오너 일가의 위법 및 탈법행위로 대중들에게 미운 털이 제대로 박힌 한진그룹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주주는 물론 여론의 지지도 얻었다.

이번 주총 결과로 의결권자문사의 목소리에도 더욱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외국계 의결권 자문사 ISS와 국내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 등은 국민연금에 앞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를 권고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번 주총을 계기로 올해가 주주 행동주의의 원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대한항공 주총은 증권시장 발전과 주주가치 제고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큰 대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계기로 우리나라 기업에도 대주주나 경영진이 아닌 주주의 이익, 국민을 위한 경영문화가 뿌리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