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까지 '험로'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과 독일이 이번 인수에 마뜩치않은 기색을 보이고 있다.

21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두고 기업결합 심사를 맡은 유럽 관련 기관들이 엄정한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이 높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놓고 유럽 심사에 빨간불

▲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대우조선해양 민영화 본계약 체결식에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왼쪽)과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이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안드레아스 문트 독일 연방카르텔청장은 최근 베를린에서 한국 기자들이 '두 회사의 인수합병이 불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안이라는 점을 심사에서 고려하겠느냐'고 묻자 "아직 심사 요청이 들어오지 않아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시장경제주의 관점에서 볼 때 인수합병으로 회생을 꾀하는 것은 맞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심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경쟁 제한성'이라는 것이다. 경쟁 제한성은 한 사업자의 행위가 다른 사업자의 영업이나 경쟁 행위를 방해함으로써 수익성과 시장 지배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뜻한다.

이번 기업결합을 심사할 가능성이 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경쟁총국도 이와 비슷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유럽연합 경쟁총국의 한 임원은 1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인수합병이 성사되지 않으면 해당 기업이 파산할 가능성 등도 심사기준에 포함하긴 하지만 파산에 따른 가격 변동 등 소비자에게 가는 타격을 집중적으로 보는 차원"이라며 "심사를 신청하는 기업은 인수합병이 성사되지 않으면 소비자에게 불리하다는 점 등을 증거자료로 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리카르도 카르도소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경쟁총국 대변인 역시 "회사의 생존보다 소비자가 받을 영향과 경쟁 지속성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유럽연합 경쟁총국은 올해 2월 독일 지멘스와 프랑스 알스톰의 철도사업 합병건을 불허했다. 두 회사가 유럽 철도시장의 양대산맥인 만큼 합병이 이뤄지면 소비자가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선업계에서 오래 일한 한 관계자는 "경쟁국들의 견제는 이미 현대중공업이 인수 의지를 밝히면서부터 예견됐던 일"이라면서도 "당초 매각 측과 인수 측이 어련히 알아서 잘 준비하지 않았겠느냐 싶어 심사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봤는데 생각보다 힘들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럽연합 경쟁총국이 합병을 불허한 사례가 최근 10년 동안 9건 뿐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상황을 낙관하는 시선도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독일 지멘스-프랑스 알스톰' 합병안과 이번 인수건은 다르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고속철도의 수요자와 공급자는 사실상 유럽 철도시장 하나지만 조선산업은 상품군이 다양하고 수요자도 세계에 퍼져 있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에서는 70여 개의 국가들이 기업결합에 관해 신고 및 심사 제도를 운용하고 있으며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건은 국내뿐 아니라 유럽연합과 중국, 미국 ,일본 등의 심사를 거쳐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심사에 걸리는 기간을 보면 미국이 가장 짧은데 1차심사는 사전 신고 이후 30일 이내에 자료 요구가 없으면 자동 승인되고 2차 심사는 자료 제출을 마친 날부터 30일이 지나면 진행할 수 있다. 

유럽연합은 사전 신고서 제출일로부터 최장 35일 내에 1차 심사를 끝내야 하고 2차심사는 90~125일이 걸린다. 중국과 일본은 모두 사전신고 이후 30일 내에 1차심사를 통해 2차심사 개시 여부를 결정한다. 중국의 2차심사는  90~150일, 일본의 2차심사는 90일이 소요된다.

심사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 여부는 경쟁당국들이 이번 인수에 따라 시장 경쟁이 훼손될 것으로 보느냐에 달렸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에서 경쟁 제한적 요소로 지목될 가능성이 높은 부분은 LNG운반선과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시장 점유율이다. 재화중량톤수(DWT) 기준으로 3월 수주잔고를 보면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의 LNG운반선이 합산 점유율은 58.5%, 초대형 원유운반선은 56.6%다.

다만 김홍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10여 년 동안 세계에서 많은 조선소가 도산한 만큼 글로벌 경쟁 격화, 경쟁자의 신규 진입, 강력한 발주처의 존재 등은 경쟁 제한성을 완화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선업이 침체기를 거치면서 일본과 중국 등 주요 국가에서는 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이 부단히 이뤄지고 있다.

일본 이마바리 조선그룹은 1970년대 말부터 흡수합병을 거듭하며 현재 11개 조선소를 거느렸다. 수주잔고 기준으로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에 이어 글로벌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국영 조선사인 중국선박공업(CSSC)과 중국선박중공업(CSIC)은 구조조정을 통한 비용절감을 위해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조선해운매체 트레이드윈즈에 따르면 중국선박중공업은 최근 보유한 조선소 가운데 대련(Dalian)조선소(DSIC)와 보하이(Bohai) 조선소를 합병하기로 했다. 이는 중국 정부의 공급 개편정책에 따라 진행되고 있으며 잉여 생산능력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