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유료방송 합산규제를 다시 도입하는 문제가 논의되는 과정에서 국내 방송사업자와 넷플릭스의 경쟁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유료방송 합산규제가 도입되면 국내 방송사업자들이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울 길이 막히면서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공룡 동영상사업자’와 경쟁하는 일도 어려워진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유료방송 합산규제 재도입 놓고 ‘넷플릭스만 유리’ 논란 거세

▲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가운데)이 1월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정보통신방송법심사소위에서 소위원장으로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6일 국회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은 2월 임시국회에서 유료방송 합산규제를 다시 도입하는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료방송 합산규제는 IPTV, 케이블TV, 위성방송 등 유료방송 시장에서 한 사업자가 전체 시장 가입자의 3분의 1(점유율 33%)을 넘어설 수 없도록 제한하는 제도를 말한다. 2015년 6월 시행됐다가 2018년 6월에 법안이 일몰되면서 효과가 끝났지만 연장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과기방통위 의원들은 KT가 자회사 스카이라이프를 통해 종합유선방송사(SO) 국내 3위 딜라이브 인수를 추진하면서 점유율 상한선을 넘을 가능성을 고려해 유료방송 합산규제의 연장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가 유료방송 합산규제를 다시 도입하면 국내 방송사업자들이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사업자들과 경쟁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국내 방송사업자들이 인수합병을 통해 지금보다 몸집을 키우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 투자할 여력도 늘어나 국내시장의 전체 규모를 키우고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다고 업계에서는 바라보고 있다.  

미국에서 2009년 유료방송사업자들의 점유율 상한선 규제를 폐지한 뒤 디즈니가 21세기폭스 영화사업부를 인수하거나 AT&T가 타임워너를 합병하는 등 인수합병을 통해 전체 시장과 콘텐츠 규모가 급격하게 커진 전례도 있다.

국내 방송사업자들의 투자 여력이 지금보다 늘어나야 넷플릭스처럼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글로벌 사업자와 경쟁할 토대를 쌓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넷플릭스는 2019년 자체 콘텐츠 제작에 9조 원을 배정할 만큼의 자본력을 앞세워 한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최근 내놓은 자체 한국 드라마 ‘킹덤’ 제작에만 200억 원을 투자했다. 이에 힘입어 국내 가입자 수도 2018년 기준 100만 명을 넘어서면서 1년 만에 3배 이상 늘어났다.

이에 맞서 국내 방송사업자들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사업을 강화하면서 자체 콘텐츠의 제작도 늘리고 있지만 넷플릭스와 비교하면 사업 규모가 아직은 훨씬 작다.

SK텔레콤과 KT가 딜라이브, LG유플러스가 CJ헬로 인수를 검토하는 점도 넷플릭스의 공세와 어느 정도 맞물려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유료방송 합산규제가 다시 도입되면 국내 방송사업자 규모가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의 33% 수준으로 제한돼 투자여력을 늘리는 길이 막힐 수 있다.

김성철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교수는 “유료방송 합산규제가 다시 도입되면 국내 방송사업자들이 혁신적 서비스를 내놓는다 해도 그 서비스를 낡은 부대에 담는 상황이 된다”며 “이렇게 되면 대규모 자본을 보유한 넷플릭스와 경쟁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도 국내 방송사업자들의 인수합병을 통한 대형화를 비교적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2018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유료방송 합산규제의 일몰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말했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도 최근 신년인사회에서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미디어업계의) 인수합병 안건을 긍정적으로 보겠다는 의견을 줬다”며 “국내 미디어회사도 인수합병을 통해 대응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유료방송 합산규제가 도입되지 않으면 독점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 반박도 나오지만 사후규제 강화 등으로 보완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유료방송 합산규제의 정책연구’ 보고서에서 “현재의 다른 제도를 활용하고 일부 보완장치를 마련하면 (유료방송 합산규제 없이도)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다”며 “지금의 유료방송 합산규제는 일몰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분석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