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제무역법원(CIT)이 미국 상무부에게 반덤핑 조사기법인 '특별시장상황(PMS: Particular Market Situation)'을 한국에 잘못 적용했다며 관세를 다시 매기라고 판결했다.

한국산 철강이 '관세 폭탄'을 피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 법원, 상무부에 "한국산 유정용강관 관세 재산정하라" 판결

▲ 유정용 강관.<현대제철>


20일 미국 국제무역법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법원은 미국 상무부가 한국산 유정용 강관에 관해 반덤핑 1차 연례재심에서 내린 최종판정이 옳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상무부에게 특별시장상황에 관한 판정을 되돌리고 반덤핑 관세율도 재산정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이에 앞서 현대제철과 세아제강, 넥스틸, 휴스틸, 아주베스틸, 일진 등은 미국 상무부의 반덤핑 1차 연례재심 최종판정이 부당하다며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상무부는 2016년 10월 한국산 유정용 강관에 관한 1차 연례재심 예비판정에서 넥스틸에 8.04%, 세아제강 3.80%, 기타 5.92%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그러나 2017년 4월 최종판정에서는 넥스틸 24.92%, 세아제강 2.76%, 기타 13.84%로 대부분 업체의 관세율을 높였다.

상무부는 관세율을 올린 근거로 특별시장상황을 들었다.

미국 상무부는 반덤핑 관세율을 산정할 때 수출기업이 기업의 나라에서 판매하는 정상가격과 대미 수출가격의 차이를 계산한다. 한국에서 판매하는 가격보다 미국 수출가격이 낮으면 그 차이만큼을 관세로 부과하는 것이다.

특별시장상황은 조사대상 기업이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이런 정상가격을 산정할 수 없다고 볼 만한 수출국의 특별한 시장상황을 말한다. 이 때는 상무부가 재량으로 정상가격을 결정하게 된다.

당시 상무부에 반덤핑 조사를 요청했던 미국 철강업체들은 연례재심 과정에서 한국에 4가지 특별시장상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가 주는 보조금 때문에 유정용 강관의 원료인 열연코일 가격이 왜곡됐으며 한국에 값싼 중국산 열연강판이 넘쳐나 열연코일 가격이 하락했다는 것이다. 또 유정용 강관 생산업체들과 전략적 제휴관계인 포스코, 현대제철이 이 기업들에만 열연코일을 유리한 가격에 공급했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가 낮은 산업용 전기요금의 형태로 유정용 강관 생산업체들을 보조했다는 이유도 들었다.

당초 상무부는 예비판정에서 이런 주장에 근거가 없으며 한국에 특별시장상황이 없다고 판정했으나 6개월 뒤 내놓은 최종판정에서 이를 뒤집었다.

이에 대해 미국 국제무역법원은 상무부가 같은 자료를 근거로 예비판정과 최종판정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도출한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상무부가 법원의 명령대로 특별시장상황 판정을 되돌리게 되면 한국산 유정용 강관에 매기는 관세율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유정용 강관은 미국이 2015년 특별시장상황 규정을 재정비한 이후 처음으로 적용한 사례다. 상무부는 이후 2017년 12월 한국산 스탠더드 강관, 2018년 1월 한국산 송유관 반덤핑 연례재심 예비판정에서 특별시장상황을 적용했다.

특별시장상황은 특성상 기업 노력만으로 피하기 어렵다. 업계에서는 미국 국제무역법원의 이번 판정이 상무부의 특별시장상황 남용을 막고 비슷한 소송에서 한국 기업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제무역법원이 특별시장상황 자체가 아닌 적용 방식에만 문제를 제기했다는 한계가 있지만 앞으로 상무부가 이 규정을 적용하는 데 부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정용 강관은 원유와 셰일가스 채취에 사용되며 대부분 미국으로 수출한다.

2017년 미국에 수출한 철강 354만3천 톤 가운데 57%가 유정용 등 강관류였고 수출이 빠르게 늘면서 미국이 한국에 철강 쿼터(할당)제를 적용한 결정적 원인이 됐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