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

이규연 기자
2019-01-09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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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


    ◆ 생애

    노영민은 문재인정부의 두 번째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청와대 안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해 손발을 맞추면서 청와대 밖의 국회, 경제계, 시민사회와 소통해야 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1957년 11월25일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공장에 취업해 노동운동을 하다가 전기기술업종에서 종사한 경험을 살려 금강전기를 설립했다.

    사업가 경력을 바탕으로 시민운동을 시작했다가 정치에 입문해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러나 시집 강매 논란 등의 여파로 20대 총선에는 불출마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 후보 비서실장을 지내는 등 ‘원조 친문’으로 꼽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뒤 주중국대사를 맡았다가 청와대 비서실장을 맡고 있다.

    3선 국회의원 출신으로서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사업가 출신이고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을 맡아 경제 시야도 넓다.

    ◆ 활동의 공과

    ▲ 노영민 주중대사(오른쪽)가 2018년 12월10일 서울 청와대에서 열린 '2018년도 재외공관장 만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비서실장 임명
    노영민은 문재인 정부의 집권 초기부터 청와대 비서실장 후보로 거명돼 왔다. 결국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뒤를 이어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비서실장을 맡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월8일 노영민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노영민은 1월9일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후임자인 노영민을 직접 소개하면서 "각계 현장과 풍부한 네트워크를 보유했고 소통능력도 강점으로 갖췄다"며 "기업과 민생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최고의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노영민은 임명 소감으로 “나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 참 두렵지만 경청을 통해 부족함을 메우려 한다”며 “어떤 주제든, 누구든, 정책이든 가리지 않고 경청하겠다”고 말했다.

    △주중대사 활동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중국대사를 맡아 중국과 관계 개선 노력을 기울였다.

    2017년 8월 문재인 정부의 첫 주중 한국대사로 내정됐다. 2017년 9월 대사 자리를 수행하기 위해 민주당에서 탈당한 뒤 중국대사로 부임했다.

    중국대사로 임명된 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에 따른 갈등 완화에 힘썼다. 한국-중국 통화스와프의 연장에 이어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도 힘을 보탰다.

    중국 정부를 상대로 한국 기업의 담합 조사를 완화할 것을 요청하는 등 기업친화적 행보도 보였다. 삼성전자가 중국 시안에 세운 반도체공장 기공식에도 참석했다. 

    중국사와 한시, 바둑 등을 잘 알아 중국 인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내부의 인적 네트워크도 상당히 갖춘 것으로 전해졌다. 

    노영민은 2017년 9월29일 외교부 기자간담회에서 이마트와 롯데그룹의 중국 철수가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과 관련되지 않았다고 말해 경솔한 발언이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2017년 12월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임장 제정식 때 방명록에다 황하가 만 번을 굽이쳐 흘러도 반드시 동쪽으로 향한다는 의미의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글을 적었는데 이 말이 조선 시대 명나라 만력제를 기리는 사당 이름으로 사용되는 등 중국을 향한 충성을 의미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노영민은 12월19일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사대주의라면서 모든 일이 본래의 뜻대로 된다는 사필귀정의 뜻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사드 갈등 등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다시 잘 풀릴 것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문재인과 인연
    노영민은 정치권에서 친문재인계 핵심 인사로 분류된다.

    2003년 대통령정책실 신행정수도건설 추진기획단 자문위원으로 일하던 시절 문재인과 처음 알게 됐다. 다만 그때는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계파 모임인 민주평화국민연대 사무총장을 역임하는 등 ‘친김근태’ 인사로 분류됐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012년 민주평화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을 중용하는 과정에서 노영민이 후보 비서실장을 맡으면서 ‘친문재인’으로 떠오르게 됐다.  

    노영민은 문재인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한 뒤 선거캠프에 참여한 의원 10여 명과 함께 ‘문지기(문재인을 지키는 사람)’ 모임을 만들었다. 그 이후 최측근 인사로 활동하면서 ‘원조 친문’ 또는 '문재인의 스핀닥터(정치전략가)'로 꼽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시절 노영민은 당직 인선을 총괄했다. 이때 문재인 대표의 측근 인사들을 일컫는 ‘6인회’ 구성원으로도 꼽혔다. 다른 5명은 전해철, 박남춘, 홍영표, 김태년, 윤호중 의원이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선거캠프의 조직본부장을 맡아 선거조직을 총괄하면서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당시 문재인 후보의 지지 모임인 ‘더불어포럼’ 출범을 주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전현직 의원 모임인 ‘달개비’에도 참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경선에 출마했을 때 한 라디오 토론회에서 정치적 고민을 누구와 상의하는지 질문받자 “노영민 의원과 상의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노영민 주중대사가 2018년 8월15일 제73주년 광복절을 맞아 중국 베이징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광복절 경축사를 대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계 입문에서 3선 국회의원까지
    노영민은 1997년 정권교체 민주개혁 충북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1999년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원을 거쳐 2000년 새천년민주당 중앙당 부대변인을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선거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선대위 충북본부장을 맡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충북 청주시 흥덕구을 선거구에 출마해 52.44%의 득표율로 당선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통합민주당,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37.46%, 52.96%의 득표율로 연이어 당선했다. 

    민주당에서 원내대변인과 원내수석부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중진 정치인의 반열에 올랐다. 3선 의원 시절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경제 이슈에 밝은 의원으로도 꼽혔다. 

    노무현 정부 시절 열린우리당 의원들 가운데 이례적으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하는 등 시장에 비교적 가까운 행보를 보여줬다. 

    반도체와 IT산업을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2008년 ‘반도체의 날’ 제정을 제안했고 반도체에 관련된 여러 법안도 발의했다. 2008년 시스템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미래산업 지원을 논의하는 국회신성장산업포럼 설립에 참여해 2015년까지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초선의원 시절 조경태 열린우리당 의원과 ‘한미 의원 친선모임’을 만드는 등 외교관계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2015년에는 이명박 정부의 해외 자원 개발 문제를 조사했던 ‘국회 해외자원개발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노동운동가에서 사업가 거쳐 시민운동가 되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다니던 도중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77년 구국선언서 사건에 연관돼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혐의로 구속된 뒤 2년 동안 복역했다. 

    1979년 광복절 특사로 석방돼 사면복권된 뒤 1980년 연세대 복학생협의회장을 지냈다. 그러나 그해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수배되면서 제적됐다.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서울, 오산, 청주 등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이때 생계를 위해 전기공으로 일하면서 전기공사 2급 자격증을 따 경력을 쌓았다. 청주에서 전기기술자노조를 출범하기도 했다.

    1986년 전기공 경험을 살려 금강전기를 설립하면서 중소기업인으로 활동했다. 그 뒤 청주환경운동연합 이사, 아동학대방지센터 자문위원, 충북자치21 발행인 등 시민운동을 했다. 

    ◆ 비전과 과제

    ▲ 노영민 주중대사(오른쪽)가 2018년 3월29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만나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집권 3년차에 접어드는 시기에 청와대 비서실장을 맡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대통령과 손발을 잘 맞출 인사로 평가된다. 

    국회의원과 문재인 대선 후보의 선거캠프에서 보여준 기획력과 조직력을 토대로 청와대의 내부 기강을 잡고 외부 소통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민주당 안에서 여러 계파를 거치면서 폭넓은 정무감각을 보여준 만큼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의 관계를 더욱 가깝게 만들면서 야당과 관계도 조율하는데 힘쓸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3년차를 맞아 대표적 친문 인사인 노영민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하면서 청와대의 국정 장악력과 추진력을 높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노영민은 노동가와 기업가 양쪽을 경험했는데 문재인 정부에서 노사 양쪽과 소통하고 경제정책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다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노영민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 시절 시집 강매 논란을 일으켰던 점을 지적하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노영민이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 점을 놓고 ‘친정 체제’ 구축에 일조할 것이라는 비판적 시각도 나온다.

    ◆ 평가

    ▲ 노영민 주중대사가 2018년 1월2일 중국 베이징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2018년 신년 하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3선 의원 출신으로 조직 장악력이 뛰어난 인사로 알려졌다. 

    대표적 ‘친문’으로 꼽힌다.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아 문재인 정부의 집권 이후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 후보로 거명되기도 했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2019년 1월4일 YTN라디오 인터뷰에서 “노영민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선거캠프를) 실질적으로 지휘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과 관계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해 자신이 가장 아끼는 사람을 중국대사로 내보냈다”고 평가했다. 

    민주당에 계속 몸담아 왔지만 비교적 중도 성향에 현실감각을 갖춘 인사로 평가된다. 다만 정책적으로는 강성 이미지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의원 시절 기업 규제 완화와 반도체 육성 등에 상당한 관심을 보여 '시장을 아는 운동권'으로 꼽혔다. 2008년 '반도체의 날' 지정을 주도하기도 했다. 

    학생운동을 할 때는 활동가보다는 분석가나 전략가 성향이 강했다고 한다.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다가 금강전기를 설립해 기업가로 변신한 경험이 있다. 기업가 출신이고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을 지내는 등 경제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사로 꼽혔다.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제적된 후 생계를 위해 전기공사기술자 자격증을 따고 10여 년간 배전현장에서 일했다. 이론은 강했는데 손재주가 없는 편이라 감전돼 추락할 뻔 하는 등 위험한 순간이 많았다고 한다. 금강전기를 세운 뒤에도 현장 일을 계속했다. 국회 입성 후에도 전력기술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자신을 국회 유일의 ‘전기당(黨)’ 당수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노영민은 주중대사로 시진핑을 여러 차례 만난 뒤 그를 카리스마가 있다고 평가했다. 또 원칙적이면서도 융통성도 지니고 있는 지도자라고 말했다.

    조상이 16대조 시절부터 충청북도 청주에서 살아왔다. 청주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만큼 지역구에 상당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다. 주중대사 시절인 2018년 6월19일 청주를 방문해 6.13 지방선거에 출마한 광역·기초의원 출마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취미는 바둑으로 아마2급의 실력이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한국과 중국 사이의 '바둑 의원외교'를 진행했고 주중대사 시절에도 바둑으로 중국 인사들과 교류했다.

    3대째 기독교를 믿는 독실한 신자다. 아버지는 장로, 형이 목사로 알려졌으며 자신은 교회 고등부 시절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학생운동을 할 때도 연세대학교 기독학생회(SCA)를 이끌었다. 

    예술에 상당한 관심을 보인다. 미술에 일가견이 있고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에는 문학서적에 심취했고 신동엽 시인에게 빠져 갑오년 동학혁명을 노래한 서사시 '금강' 전편을 암송했다고 한다. 1997년 지역 미술작가를 후원하는 동호인모임 무심미술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이장섭 충청북도 정무부지사와 시민운동을 함께 했다. 이장섭 부지사는 노영민이 3선 의원을 지내는 동안 보좌관과 정무 특보 등을 맡은 측근 인사이기도 하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진표 민주당 의원 등과 친분이 깊다고 알려졌다. 이재한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과도 가까운 사이로 전해졌다. 이재한 부회장은 노영민의 정계 입문을 이끈 이용희 전 국회 부의장의 아들이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영민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2019년 1월8일 페이스북에서 "노영민은 회사를 경영한 경험과 실물 경제의 이해를 바탕으로 경제계와 원활하게 소통하고 실물경제를 정확하게 진단해 대통령에게 고언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인사"라고 평가했다. 

    ◆ 사건사고

    ▲ 노영민 주중대사가 2017년 11월24일 주중문화원에서 한국-중국 문화교류 행사로 열린 인문학-인문악 융합콘서트에 참석해 자작시를 낭송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집 강매 논란
    노영민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이던 2015년 말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 카드결제 단말기를 두고 국회 산업통상자원위 산하 기관들에 그의 시집 ‘바람 지나간 자리에 꽃이 핀다’를 판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강매 논란’에 휩싸였다. 

    시집 강매 논란의 여파로 노영민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에서 물러났다.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원도 자체조사를 통해 노영민에게 당원 자격정지 6개월의 징계를 처분했다. 노영민은 2016년 20대 총선에도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0대 총선에서 노영민의 지역구 청주 흥덕구에는 시인이자 비례 초선 의원이었던 도종환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노영민은 도종환 후보의 지원유세에 참여하며 당선에 일조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2019년 1월7일 노영민이 비서실장에 내정된 사실이 알려진 뒤 “노영민은 2015년에 저서를 강매해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당원 자격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았다”며 “현재 한국의 가장 큰 화두인 ‘갑횡포’외 공정성 문제에 근본적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들 특혜채용 논란
    노영민은 민주당 원내대변인 시절인 2010년 6월 당시 26세였던 아들이 홍재형 국회 부의장의 기획비서관(4급)으로 채용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특혜채용 의혹에 휩싸였다. 노영민의 아들은 2009년 시카고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앞서 노영민은 국회 부의장 경선에서 홍재형 부의장을 적극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노영민의 아들이 20대 중반에 국회 부의장의 기획비서관으로 채용된 점을 놓고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등으로부터 비판이 쏟아졌다. 

    노영민은 연합뉴스에 “홍재형 부의장실에서 영어에 능통하고 경제 분야를 보좌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미국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아들을 소개했다”며 “일반직이 아닌 별정직으로 채용돼 미국에 돌아가기 전인 2010년 말까지만 일하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노영민의 아들은 2010년 10월 사직했다.   

    △골프 외유 물의
    노영민을 비롯한 통합민주당 의원 9명이 2009년 1월9일~13일에 태국 방콕으로 골프여행을 함께 다녀왔다. 임시국회 회기 중에 여행을 다녀온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원혜영 통합민주당 원내대표는 “상임위원회 일정을 생각해 지장이 없도록 계획한 일정”이라면서도 “국회가 파행을 겪고 국민이 걱정하는 상황에서 의원들이 해외에 간 것은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노영민 의원실은 “박기춘 의원의 동생이 운영하는 리조트가 저렴하지만 운영이 어려운 상태라는 말을 듣고 주말을 이용, 회동한 것”이라며 “순수하게 의원 자비로 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숙박비 2만 원, 한끼식대 5천 원, 일일 골프 이용료 3만5천 원으로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호화성 골프여행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민주화운동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다니던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하는 구국선언서를 배포한 사건으로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구국선언서 초안을 작성하고 대강당 3층에서 유인물을 뿌리는 등 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1978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출을 거부하는 옥중투쟁을 벌이다 추가로 기소돼 추가로 징역 5년을 받았다. 1979년 광복절 형이 집행정지돼 석방됐고 1980년 복학해 연세대 복학생협의회 회장으로 다시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수배되면서 연세대학교에서 제적됐다.

    노영민은 2014년 재심에서 긴급조치 9호 위반과 관련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5년 6월에는 1억3420만9600원의 형사보상금 지급 판결을 받았다.

    ◆ 경력

    ▲ 노영민 주중대사(왼쪽)가 2017년 10월25일 서울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장을 받은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6년 금강전기를 설립했다. 

    1995년 청주환경운동연합 이사를 지냈다. 

    1997년 아동학대방지센터 자문위원을 지냈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충북자치21 발행인을 맡았다.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정세분석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1999년 국민정치연구회 상임이사를 지냈다. 

    2000년 국민정치연구회 충북본부 대표를 맡았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 중앙당 당무위원을 역임했다.

    2003년 대통령정책실 신행정수도건설 추진기획단 자문위원으로 일했다. 

    2004년 5월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2007년 6월 열린우리당 원내대변인을 맡았다. 

    2008년 5월 제18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2009년 2월부터 2010년 8월까지 민주당 대변인을 지냈다. 

    2011년 5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를 역임했다. 

    2012년 12월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2년 5월 제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2015년 7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을 맡았다. 

    2017년 10월 제12대 주중국대한민국대사관 대사로 임명됐다. 

    2019년 1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 학력

    ▲ 노영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이 2016년 6월1일 충청북도 청주시 사천동 천주교 청주교구에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주 석교초등학교와 주성중학교를 졸업했다.

    1976년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6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지만 민주화 운동으로 구속과 기소를 연이어 겪고 1980년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수배되면서 제적됐다. 1990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6남매 가운데 넷째다. 2018년 2월에 어머니가 구순을 맞았다.

    부인 최영분씨와 연세대학교 동문이다. 최영분씨와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공장에 함께 취업해 노동운동을 했다. 1983년 최영분씨와 결혼했다. 

    노해영씨와 노해준씨 2명의 아들을 뒀다. 노해영씨는 2010년 26세의 나이로 홍재형 국회 부의장실 기획비서관(4급)에 채용돼 특혜채용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 상훈

    2009년 한국전력기술인협회에서 주는 자랑스런 전기인상을 수상했다.

    2011년 국정감사 NGO모니터단에서 선정한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뽑혔다.

    2011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기술분야에서 의정활동 우수의원으로 뽑혔다. 

    2014년 제2회 한국신뢰성대상 공공부문 수상자로 뽑혔다. 

    2018년 12월 연세대 상경대학·경영대학 동창회로부터 자랑스런 연세상경인상 사회봉사부문을 수상했다.

    ◆ 기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018년 3월 내놓은 고위공직자 재산등록사항을 살펴보면 노영민은 자신과 가족들의 재산을 합쳐 모두 21억5582만 원의 재산을 보유했다.

    수형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바람 지나간 자리에 꽃이 핀다(2007)’, ‘하늘 아래 딱 한 송이(2015)’ 등 시집 2권을 비롯해 ‘싯다르타에서 빌 게이츠까지(2009)’, ‘현대사의 비극들(2011)’, ‘내 삶에 다가온 열 개의 성서 구절(2013)’, ‘시대를 일깨운 편지들(2013)’ 등 저서 6권을 펴냈다. 

    ◆ 어록

    ▲ 노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6년 2월1일 충북도청 기자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에 일찍 와서 몇몇 방을 들러 봤는데 '춘풍추상(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의 줄임말, 스스로에게는 가을서리처럼 상대방에게는 봄바람처럼 대하라)'이라는 글이 걸려있는 것을 봤다. 청와대 비서실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되새겨야 할 한자성어다. 실장이 됐든 수석이 됐든 나는 비서일 뿐이다. 그것을 항상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2019/01/08, 서울 청와대 대브리핑룸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소감을 밝히면서)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에 안정적인 발전은 역내 안정과 평화·번영에 중요한 요소다. 현재 미·중간 이견이 있는 사안들도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희망한다.” (2018/11/28, 충청신문과 인터뷰에서 중국과 미국의 갈등을 두고)

    “북미정상회담 합의사항이 신속히 이행돼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 정착과 관련된 실질적인 진전을 거두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으며 우리 정부는 중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계속할 수 있도록 전략적 소통을 이어나갈 것이다.” (2018/06/26, 베이징 특파원단과 만나)

    “중국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아 임시정부 청사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잘 보존됐다. 앞으로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 (2018/04/13, 중국 상하이 랭함호텔에서 열린 임시정부 수립 99주년 행사에서)

    “만절필동은 황하가 어떠한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결국은 동쪽으로 간다는 의지를 표현한 말이다. 고전을 공부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올해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미 주호영 원내대표가 이걸 인용했다.” (2017/12/19,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서 만절필동이 중국을 향한 충성을 표현했다는 주장과 관련해)

    “농부가 밭을 탓할 수 없듯 외부환경이 본인 의지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극복하는 스스로의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자구노력은 기업의 몫이다. 이마트가 철수했는데 사드와 아무 관계가 없다. 사드 터지기 전에 철수가 이미 결정됐고 매각을 위해 노력했다.” (2017/09/29, 외교부 기자단과 간담회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에 관련된 중국의 경제 보복과 관련해)
     
    “새누리당은 결국 국민의당과 합친다고 생각한다. 국민의당과 합당하고 싶을 것이다.” (2016/12/03, 한 비공개 강연에서)

    “책임 있게 내 거취를 정하는 것이 제가 사랑하는 당을 위한 도리라 믿는다. 그동안 정말 고통스러웠고 알려진 것과 실체적 진실 간 괴리 사이에서 억울한 점도 없지 않았지만 ‘수원수구(誰怨誰咎,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탓하랴)인 만큼 모두 내 부족함과 불찰에서 비롯된 일이다.” (2016/02/01, 시집 강매 논란으로 중징계를 받은 뒤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VIP’ 자원외교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 최경환 부총리, 윤상직 장관, 박영준 전 차관 등 당시 정권의 실세들이 주도한 것이다. 전문성도 없는 정권 실세들의 선택으로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 것을 놓고 국민 앞에 진실을 밝혀야 한다.” (2014/11/24, 새정치민주연합 ‘MB정부 해외자원개발 국부유출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 시절 이명박 정부의 해외자원외교에 관련된 의혹을 제기하면서)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는 '전깃밥' 외에는 먹어본 적이 없다. 100만 전기인의 애환을 잘 알고 있다. 전기는 완벽한 세계다. 전기를 다루면서 꼼수를 부리면 죽음과 직결될 수 있다.” (2013/06/12, 전기 관련 경력을 소개하며)

    “반도체산업은 우리나라 첨단 IT산업의 기본 동력이다. 이런 반도체산업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13/08/28,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반도체 장비·소재산업 육성전략’ 세미나에서)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의 후보 경선 과정을 통해 선택된다면 당 바깥에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관계에서도 모든 면에서 우위에 선다.” (2012/08/07,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 시절 불교방송 라디오에서)

    “한나라당이 감세 철회와 반값 등록금 등을 추진하고 있다. 요즘 한나라당은 확실히 ‘짝퉁 민주당’이다.” (2011/06/01,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이제 매력적이지만 힘들었던 550일간의 여행을 마친다. 정론관에서 만난 수많은 언론인들과의 행복한 시간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대변인으로서는 좀 나이가 많지 않나 라는 내 나름대로의 쑥스러움도 이 행복함으로 넘길 수 있었다. 아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순간일 것이다.” (2010/08/05, 민주당 대변인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이명박 정권이 대한민국을 유신, 5공 시절로 돌려놓고 있는 줄 알았더니 조선 시대로 돌려놓으려고 했다는 말인가. 조선 시대의 우리 선배들이 모욕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조선 시대가 아니라 그 이전 시대로 돌려놓은 권력의 전횡이다.” (2010/07/09,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이 KB금융지주 회장의 인선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비판하면서)

    “부자 자녀들은 맛있는 도시락을 먹고 서민 자녀만 따로 모여 공짜 밥을 먹어야 하느냐. 빈부격차로 국민들의 편을 가르고 어린 학생들의 마음에 상처를 줘선 안 된다.” (2010/02/19, 무상급식을 제한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나 있었던 언론통제 수준을 뛰어넘는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이 2010년 대한민국에서 청와대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이 사실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암흑기가 도래한 증거다.” (2010/01/15, 한겨레에서 폭로한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의 홍보 문건 논란을 비판하는 논평에서)

    “이명박 정부 1년 동안 민주주의는 후퇴했고 경제는 나락으로 빠져들었고 한반도는 위기로 치닫고 있다. 다음 해 이맘때 2주년을 평가할 때는 제발 긍정적인 평가가 되길 기대한다.” (2009/02/25, 국회 브리핑에서 이명박 정부의 출범 1주년을 평가하면서)

    “강경진압은 강경 대응을 불러온다. 불행한 사태만 초래할 뿐이다.” (2009/02/09, 용산 철거 참사를 계기로 경찰청이 시설 점거 농성의 대처를 강화할 계획을 세우자 반대하면서)

    “키코 등 환헤지 금융상품에 가입했던 중소기업의 위기는 환리스크 관리의 한계이고 실패 사례다. 중소기업들이 참여하는 풀링 시스템을 갖춰 기업 스스로 환위험을 관리할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2008/10/08,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의 코트라와 한국수출보험공사 국정감사에서)

    “일정 규모 이상 국가 가운데 지난 5년 동안 우리나라와 비교해 경제성장률이 높은 나라는 지구상에 한 곳도 없다.” (2008/05/26,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통합민주당 18대 총선 당선자 워크숍에서 전영기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노무현 정부의 무능력함을 주장하자) 

    “개성공단의 지속 여부는 남한의 필요에 따라 전적으로 이뤄진다. 개성공단이 중단되면 우리 기업의 막대한 손해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 한반도 평화도 후퇴한다.” (2006/11/09,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수도 이전은 눈앞에 닥친 현실이며 동시에 역사적 소명이다. 지적 나태나 능력 부족으로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지도자는 역사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는 사람이다.” (2004/10/18, 국회 건설교통위원회의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이명박 서울시장을 추궁하면서)

    “선관위의 활동 자제 권고가 있는 데다 선거를 앞두고 산악회가 사조직 정도로 비춰지고 있어 자진 해체하기로 했다. 순수한 산행 모임으로 애정도 있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운영위원회를 거쳐 결정했다.” (2003/12/17, 한겨레 기사에서 4년여 동안 운영해 왔던 ‘영우산악회’를 해체하는 이유로)

    “한 줄 시 쓰기가 이토록 어려움은/나의 삶이/진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시를 사랑함이/우리 삶을 사랑함이란 것을/알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는/진정/시를 사랑했다.” (1995/04/28, 자작시 ‘우리는 진정 시를 사랑했다’)
  • ◆ 활동의 공과

    ▲ 노영민 주중대사(오른쪽)가 2018년 12월10일 서울 청와대에서 열린 '2018년도 재외공관장 만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비서실장 임명
    노영민은 문재인 정부의 집권 초기부터 청와대 비서실장 후보로 거명돼 왔다. 결국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뒤를 이어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비서실장을 맡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월8일 노영민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노영민은 1월9일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후임자인 노영민을 직접 소개하면서 "각계 현장과 풍부한 네트워크를 보유했고 소통능력도 강점으로 갖췄다"며 "기업과 민생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최고의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노영민은 임명 소감으로 “나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 참 두렵지만 경청을 통해 부족함을 메우려 한다”며 “어떤 주제든, 누구든, 정책이든 가리지 않고 경청하겠다”고 말했다.

    △주중대사 활동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중국대사를 맡아 중국과 관계 개선 노력을 기울였다.

    2017년 8월 문재인 정부의 첫 주중 한국대사로 내정됐다. 2017년 9월 대사 자리를 수행하기 위해 민주당에서 탈당한 뒤 중국대사로 부임했다.

    중국대사로 임명된 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에 따른 갈등 완화에 힘썼다. 한국-중국 통화스와프의 연장에 이어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도 힘을 보탰다.

    중국 정부를 상대로 한국 기업의 담합 조사를 완화할 것을 요청하는 등 기업친화적 행보도 보였다. 삼성전자가 중국 시안에 세운 반도체공장 기공식에도 참석했다. 

    중국사와 한시, 바둑 등을 잘 알아 중국 인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내부의 인적 네트워크도 상당히 갖춘 것으로 전해졌다. 

    노영민은 2017년 9월29일 외교부 기자간담회에서 이마트와 롯데그룹의 중국 철수가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과 관련되지 않았다고 말해 경솔한 발언이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2017년 12월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임장 제정식 때 방명록에다 황하가 만 번을 굽이쳐 흘러도 반드시 동쪽으로 향한다는 의미의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글을 적었는데 이 말이 조선 시대 명나라 만력제를 기리는 사당 이름으로 사용되는 등 중국을 향한 충성을 의미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노영민은 12월19일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사대주의라면서 모든 일이 본래의 뜻대로 된다는 사필귀정의 뜻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사드 갈등 등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다시 잘 풀릴 것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문재인과 인연
    노영민은 정치권에서 친문재인계 핵심 인사로 분류된다.

    2003년 대통령정책실 신행정수도건설 추진기획단 자문위원으로 일하던 시절 문재인과 처음 알게 됐다. 다만 그때는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계파 모임인 민주평화국민연대 사무총장을 역임하는 등 ‘친김근태’ 인사로 분류됐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012년 민주평화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을 중용하는 과정에서 노영민이 후보 비서실장을 맡으면서 ‘친문재인’으로 떠오르게 됐다.  

    노영민은 문재인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한 뒤 선거캠프에 참여한 의원 10여 명과 함께 ‘문지기(문재인을 지키는 사람)’ 모임을 만들었다. 그 이후 최측근 인사로 활동하면서 ‘원조 친문’ 또는 '문재인의 스핀닥터(정치전략가)'로 꼽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시절 노영민은 당직 인선을 총괄했다. 이때 문재인 대표의 측근 인사들을 일컫는 ‘6인회’ 구성원으로도 꼽혔다. 다른 5명은 전해철, 박남춘, 홍영표, 김태년, 윤호중 의원이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선거캠프의 조직본부장을 맡아 선거조직을 총괄하면서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당시 문재인 후보의 지지 모임인 ‘더불어포럼’ 출범을 주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전현직 의원 모임인 ‘달개비’에도 참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경선에 출마했을 때 한 라디오 토론회에서 정치적 고민을 누구와 상의하는지 질문받자 “노영민 의원과 상의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노영민 주중대사가 2018년 8월15일 제73주년 광복절을 맞아 중국 베이징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광복절 경축사를 대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계 입문에서 3선 국회의원까지
    노영민은 1997년 정권교체 민주개혁 충북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1999년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원을 거쳐 2000년 새천년민주당 중앙당 부대변인을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선거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선대위 충북본부장을 맡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충북 청주시 흥덕구을 선거구에 출마해 52.44%의 득표율로 당선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통합민주당,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37.46%, 52.96%의 득표율로 연이어 당선했다. 

    민주당에서 원내대변인과 원내수석부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중진 정치인의 반열에 올랐다. 3선 의원 시절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경제 이슈에 밝은 의원으로도 꼽혔다. 

    노무현 정부 시절 열린우리당 의원들 가운데 이례적으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하는 등 시장에 비교적 가까운 행보를 보여줬다. 

    반도체와 IT산업을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2008년 ‘반도체의 날’ 제정을 제안했고 반도체에 관련된 여러 법안도 발의했다. 2008년 시스템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미래산업 지원을 논의하는 국회신성장산업포럼 설립에 참여해 2015년까지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초선의원 시절 조경태 열린우리당 의원과 ‘한미 의원 친선모임’을 만드는 등 외교관계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2015년에는 이명박 정부의 해외 자원 개발 문제를 조사했던 ‘국회 해외자원개발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노동운동가에서 사업가 거쳐 시민운동가 되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다니던 도중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77년 구국선언서 사건에 연관돼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혐의로 구속된 뒤 2년 동안 복역했다. 

    1979년 광복절 특사로 석방돼 사면복권된 뒤 1980년 연세대 복학생협의회장을 지냈다. 그러나 그해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수배되면서 제적됐다.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서울, 오산, 청주 등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이때 생계를 위해 전기공으로 일하면서 전기공사 2급 자격증을 따 경력을 쌓았다. 청주에서 전기기술자노조를 출범하기도 했다.

    1986년 전기공 경험을 살려 금강전기를 설립하면서 중소기업인으로 활동했다. 그 뒤 청주환경운동연합 이사, 아동학대방지센터 자문위원, 충북자치21 발행인 등 시민운동을 했다. 

  • ◆ 비전과 과제

    ▲ 노영민 주중대사(오른쪽)가 2018년 3월29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만나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집권 3년차에 접어드는 시기에 청와대 비서실장을 맡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대통령과 손발을 잘 맞출 인사로 평가된다. 

    국회의원과 문재인 대선 후보의 선거캠프에서 보여준 기획력과 조직력을 토대로 청와대의 내부 기강을 잡고 외부 소통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민주당 안에서 여러 계파를 거치면서 폭넓은 정무감각을 보여준 만큼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의 관계를 더욱 가깝게 만들면서 야당과 관계도 조율하는데 힘쓸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3년차를 맞아 대표적 친문 인사인 노영민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하면서 청와대의 국정 장악력과 추진력을 높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노영민은 노동가와 기업가 양쪽을 경험했는데 문재인 정부에서 노사 양쪽과 소통하고 경제정책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다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노영민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 시절 시집 강매 논란을 일으켰던 점을 지적하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노영민이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 점을 놓고 ‘친정 체제’ 구축에 일조할 것이라는 비판적 시각도 나온다.

  • ◆ 평가

    ▲ 노영민 주중대사가 2018년 1월2일 중국 베이징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2018년 신년 하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3선 의원 출신으로 조직 장악력이 뛰어난 인사로 알려졌다. 

    대표적 ‘친문’으로 꼽힌다.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아 문재인 정부의 집권 이후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 후보로 거명되기도 했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2019년 1월4일 YTN라디오 인터뷰에서 “노영민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선거캠프를) 실질적으로 지휘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과 관계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해 자신이 가장 아끼는 사람을 중국대사로 내보냈다”고 평가했다. 

    민주당에 계속 몸담아 왔지만 비교적 중도 성향에 현실감각을 갖춘 인사로 평가된다. 다만 정책적으로는 강성 이미지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의원 시절 기업 규제 완화와 반도체 육성 등에 상당한 관심을 보여 '시장을 아는 운동권'으로 꼽혔다. 2008년 '반도체의 날' 지정을 주도하기도 했다. 

    학생운동을 할 때는 활동가보다는 분석가나 전략가 성향이 강했다고 한다.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다가 금강전기를 설립해 기업가로 변신한 경험이 있다. 기업가 출신이고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을 지내는 등 경제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사로 꼽혔다.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제적된 후 생계를 위해 전기공사기술자 자격증을 따고 10여 년간 배전현장에서 일했다. 이론은 강했는데 손재주가 없는 편이라 감전돼 추락할 뻔 하는 등 위험한 순간이 많았다고 한다. 금강전기를 세운 뒤에도 현장 일을 계속했다. 국회 입성 후에도 전력기술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자신을 국회 유일의 ‘전기당(黨)’ 당수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노영민은 주중대사로 시진핑을 여러 차례 만난 뒤 그를 카리스마가 있다고 평가했다. 또 원칙적이면서도 융통성도 지니고 있는 지도자라고 말했다.

    조상이 16대조 시절부터 충청북도 청주에서 살아왔다. 청주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만큼 지역구에 상당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다. 주중대사 시절인 2018년 6월19일 청주를 방문해 6.13 지방선거에 출마한 광역·기초의원 출마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취미는 바둑으로 아마2급의 실력이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한국과 중국 사이의 '바둑 의원외교'를 진행했고 주중대사 시절에도 바둑으로 중국 인사들과 교류했다.

    3대째 기독교를 믿는 독실한 신자다. 아버지는 장로, 형이 목사로 알려졌으며 자신은 교회 고등부 시절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학생운동을 할 때도 연세대학교 기독학생회(SCA)를 이끌었다. 

    예술에 상당한 관심을 보인다. 미술에 일가견이 있고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에는 문학서적에 심취했고 신동엽 시인에게 빠져 갑오년 동학혁명을 노래한 서사시 '금강' 전편을 암송했다고 한다. 1997년 지역 미술작가를 후원하는 동호인모임 무심미술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이장섭 충청북도 정무부지사와 시민운동을 함께 했다. 이장섭 부지사는 노영민이 3선 의원을 지내는 동안 보좌관과 정무 특보 등을 맡은 측근 인사이기도 하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진표 민주당 의원 등과 친분이 깊다고 알려졌다. 이재한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과도 가까운 사이로 전해졌다. 이재한 부회장은 노영민의 정계 입문을 이끈 이용희 전 국회 부의장의 아들이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영민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2019년 1월8일 페이스북에서 "노영민은 회사를 경영한 경험과 실물 경제의 이해를 바탕으로 경제계와 원활하게 소통하고 실물경제를 정확하게 진단해 대통령에게 고언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인사"라고 평가했다. 

    ◆ 사건사고

    ▲ 노영민 주중대사가 2017년 11월24일 주중문화원에서 한국-중국 문화교류 행사로 열린 인문학-인문악 융합콘서트에 참석해 자작시를 낭송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집 강매 논란
    노영민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이던 2015년 말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 카드결제 단말기를 두고 국회 산업통상자원위 산하 기관들에 그의 시집 ‘바람 지나간 자리에 꽃이 핀다’를 판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강매 논란’에 휩싸였다. 

    시집 강매 논란의 여파로 노영민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에서 물러났다.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원도 자체조사를 통해 노영민에게 당원 자격정지 6개월의 징계를 처분했다. 노영민은 2016년 20대 총선에도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0대 총선에서 노영민의 지역구 청주 흥덕구에는 시인이자 비례 초선 의원이었던 도종환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노영민은 도종환 후보의 지원유세에 참여하며 당선에 일조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2019년 1월7일 노영민이 비서실장에 내정된 사실이 알려진 뒤 “노영민은 2015년에 저서를 강매해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당원 자격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았다”며 “현재 한국의 가장 큰 화두인 ‘갑횡포’외 공정성 문제에 근본적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들 특혜채용 논란
    노영민은 민주당 원내대변인 시절인 2010년 6월 당시 26세였던 아들이 홍재형 국회 부의장의 기획비서관(4급)으로 채용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특혜채용 의혹에 휩싸였다. 노영민의 아들은 2009년 시카고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앞서 노영민은 국회 부의장 경선에서 홍재형 부의장을 적극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노영민의 아들이 20대 중반에 국회 부의장의 기획비서관으로 채용된 점을 놓고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등으로부터 비판이 쏟아졌다. 

    노영민은 연합뉴스에 “홍재형 부의장실에서 영어에 능통하고 경제 분야를 보좌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미국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아들을 소개했다”며 “일반직이 아닌 별정직으로 채용돼 미국에 돌아가기 전인 2010년 말까지만 일하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노영민의 아들은 2010년 10월 사직했다.   

    △골프 외유 물의
    노영민을 비롯한 통합민주당 의원 9명이 2009년 1월9일~13일에 태국 방콕으로 골프여행을 함께 다녀왔다. 임시국회 회기 중에 여행을 다녀온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원혜영 통합민주당 원내대표는 “상임위원회 일정을 생각해 지장이 없도록 계획한 일정”이라면서도 “국회가 파행을 겪고 국민이 걱정하는 상황에서 의원들이 해외에 간 것은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노영민 의원실은 “박기춘 의원의 동생이 운영하는 리조트가 저렴하지만 운영이 어려운 상태라는 말을 듣고 주말을 이용, 회동한 것”이라며 “순수하게 의원 자비로 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숙박비 2만 원, 한끼식대 5천 원, 일일 골프 이용료 3만5천 원으로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호화성 골프여행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민주화운동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다니던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하는 구국선언서를 배포한 사건으로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구국선언서 초안을 작성하고 대강당 3층에서 유인물을 뿌리는 등 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1978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출을 거부하는 옥중투쟁을 벌이다 추가로 기소돼 추가로 징역 5년을 받았다. 1979년 광복절 형이 집행정지돼 석방됐고 1980년 복학해 연세대 복학생협의회 회장으로 다시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수배되면서 연세대학교에서 제적됐다.

    노영민은 2014년 재심에서 긴급조치 9호 위반과 관련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5년 6월에는 1억3420만9600원의 형사보상금 지급 판결을 받았다.

  • ◆ 경력

    ▲ 노영민 주중대사(왼쪽)가 2017년 10월25일 서울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장을 받은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6년 금강전기를 설립했다. 

    1995년 청주환경운동연합 이사를 지냈다. 

    1997년 아동학대방지센터 자문위원을 지냈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충북자치21 발행인을 맡았다.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정세분석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1999년 국민정치연구회 상임이사를 지냈다. 

    2000년 국민정치연구회 충북본부 대표를 맡았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 중앙당 당무위원을 역임했다.

    2003년 대통령정책실 신행정수도건설 추진기획단 자문위원으로 일했다. 

    2004년 5월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2007년 6월 열린우리당 원내대변인을 맡았다. 

    2008년 5월 제18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2009년 2월부터 2010년 8월까지 민주당 대변인을 지냈다. 

    2011년 5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를 역임했다. 

    2012년 12월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2년 5월 제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2015년 7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을 맡았다. 

    2017년 10월 제12대 주중국대한민국대사관 대사로 임명됐다. 

    2019년 1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 학력

    ▲ 노영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이 2016년 6월1일 충청북도 청주시 사천동 천주교 청주교구에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주 석교초등학교와 주성중학교를 졸업했다.

    1976년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6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지만 민주화 운동으로 구속과 기소를 연이어 겪고 1980년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수배되면서 제적됐다. 1990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6남매 가운데 넷째다. 2018년 2월에 어머니가 구순을 맞았다.

    부인 최영분씨와 연세대학교 동문이다. 최영분씨와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공장에 함께 취업해 노동운동을 했다. 1983년 최영분씨와 결혼했다. 

    노해영씨와 노해준씨 2명의 아들을 뒀다. 노해영씨는 2010년 26세의 나이로 홍재형 국회 부의장실 기획비서관(4급)에 채용돼 특혜채용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 상훈

    2009년 한국전력기술인협회에서 주는 자랑스런 전기인상을 수상했다.

    2011년 국정감사 NGO모니터단에서 선정한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뽑혔다.

    2011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기술분야에서 의정활동 우수의원으로 뽑혔다. 

    2014년 제2회 한국신뢰성대상 공공부문 수상자로 뽑혔다. 

    2018년 12월 연세대 상경대학·경영대학 동창회로부터 자랑스런 연세상경인상 사회봉사부문을 수상했다.

    ◆ 기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018년 3월 내놓은 고위공직자 재산등록사항을 살펴보면 노영민은 자신과 가족들의 재산을 합쳐 모두 21억5582만 원의 재산을 보유했다.

    수형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바람 지나간 자리에 꽃이 핀다(2007)’, ‘하늘 아래 딱 한 송이(2015)’ 등 시집 2권을 비롯해 ‘싯다르타에서 빌 게이츠까지(2009)’, ‘현대사의 비극들(2011)’, ‘내 삶에 다가온 열 개의 성서 구절(2013)’, ‘시대를 일깨운 편지들(2013)’ 등 저서 6권을 펴냈다. 

  • ◆ 어록

    ▲ 노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6년 2월1일 충북도청 기자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에 일찍 와서 몇몇 방을 들러 봤는데 '춘풍추상(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의 줄임말, 스스로에게는 가을서리처럼 상대방에게는 봄바람처럼 대하라)'이라는 글이 걸려있는 것을 봤다. 청와대 비서실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되새겨야 할 한자성어다. 실장이 됐든 수석이 됐든 나는 비서일 뿐이다. 그것을 항상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2019/01/08, 서울 청와대 대브리핑룸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소감을 밝히면서)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에 안정적인 발전은 역내 안정과 평화·번영에 중요한 요소다. 현재 미·중간 이견이 있는 사안들도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희망한다.” (2018/11/28, 충청신문과 인터뷰에서 중국과 미국의 갈등을 두고)

    “북미정상회담 합의사항이 신속히 이행돼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 정착과 관련된 실질적인 진전을 거두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으며 우리 정부는 중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계속할 수 있도록 전략적 소통을 이어나갈 것이다.” (2018/06/26, 베이징 특파원단과 만나)

    “중국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아 임시정부 청사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잘 보존됐다. 앞으로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 (2018/04/13, 중국 상하이 랭함호텔에서 열린 임시정부 수립 99주년 행사에서)

    “만절필동은 황하가 어떠한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결국은 동쪽으로 간다는 의지를 표현한 말이다. 고전을 공부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올해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미 주호영 원내대표가 이걸 인용했다.” (2017/12/19,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서 만절필동이 중국을 향한 충성을 표현했다는 주장과 관련해)

    “농부가 밭을 탓할 수 없듯 외부환경이 본인 의지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극복하는 스스로의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자구노력은 기업의 몫이다. 이마트가 철수했는데 사드와 아무 관계가 없다. 사드 터지기 전에 철수가 이미 결정됐고 매각을 위해 노력했다.” (2017/09/29, 외교부 기자단과 간담회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에 관련된 중국의 경제 보복과 관련해)
     
    “새누리당은 결국 국민의당과 합친다고 생각한다. 국민의당과 합당하고 싶을 것이다.” (2016/12/03, 한 비공개 강연에서)

    “책임 있게 내 거취를 정하는 것이 제가 사랑하는 당을 위한 도리라 믿는다. 그동안 정말 고통스러웠고 알려진 것과 실체적 진실 간 괴리 사이에서 억울한 점도 없지 않았지만 ‘수원수구(誰怨誰咎,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탓하랴)인 만큼 모두 내 부족함과 불찰에서 비롯된 일이다.” (2016/02/01, 시집 강매 논란으로 중징계를 받은 뒤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VIP’ 자원외교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 최경환 부총리, 윤상직 장관, 박영준 전 차관 등 당시 정권의 실세들이 주도한 것이다. 전문성도 없는 정권 실세들의 선택으로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 것을 놓고 국민 앞에 진실을 밝혀야 한다.” (2014/11/24, 새정치민주연합 ‘MB정부 해외자원개발 국부유출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 시절 이명박 정부의 해외자원외교에 관련된 의혹을 제기하면서)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는 '전깃밥' 외에는 먹어본 적이 없다. 100만 전기인의 애환을 잘 알고 있다. 전기는 완벽한 세계다. 전기를 다루면서 꼼수를 부리면 죽음과 직결될 수 있다.” (2013/06/12, 전기 관련 경력을 소개하며)

    “반도체산업은 우리나라 첨단 IT산업의 기본 동력이다. 이런 반도체산업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13/08/28,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반도체 장비·소재산업 육성전략’ 세미나에서)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의 후보 경선 과정을 통해 선택된다면 당 바깥에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관계에서도 모든 면에서 우위에 선다.” (2012/08/07,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 시절 불교방송 라디오에서)

    “한나라당이 감세 철회와 반값 등록금 등을 추진하고 있다. 요즘 한나라당은 확실히 ‘짝퉁 민주당’이다.” (2011/06/01,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이제 매력적이지만 힘들었던 550일간의 여행을 마친다. 정론관에서 만난 수많은 언론인들과의 행복한 시간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대변인으로서는 좀 나이가 많지 않나 라는 내 나름대로의 쑥스러움도 이 행복함으로 넘길 수 있었다. 아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순간일 것이다.” (2010/08/05, 민주당 대변인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이명박 정권이 대한민국을 유신, 5공 시절로 돌려놓고 있는 줄 알았더니 조선 시대로 돌려놓으려고 했다는 말인가. 조선 시대의 우리 선배들이 모욕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조선 시대가 아니라 그 이전 시대로 돌려놓은 권력의 전횡이다.” (2010/07/09,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이 KB금융지주 회장의 인선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비판하면서)

    “부자 자녀들은 맛있는 도시락을 먹고 서민 자녀만 따로 모여 공짜 밥을 먹어야 하느냐. 빈부격차로 국민들의 편을 가르고 어린 학생들의 마음에 상처를 줘선 안 된다.” (2010/02/19, 무상급식을 제한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나 있었던 언론통제 수준을 뛰어넘는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이 2010년 대한민국에서 청와대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이 사실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암흑기가 도래한 증거다.” (2010/01/15, 한겨레에서 폭로한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의 홍보 문건 논란을 비판하는 논평에서)

    “이명박 정부 1년 동안 민주주의는 후퇴했고 경제는 나락으로 빠져들었고 한반도는 위기로 치닫고 있다. 다음 해 이맘때 2주년을 평가할 때는 제발 긍정적인 평가가 되길 기대한다.” (2009/02/25, 국회 브리핑에서 이명박 정부의 출범 1주년을 평가하면서)

    “강경진압은 강경 대응을 불러온다. 불행한 사태만 초래할 뿐이다.” (2009/02/09, 용산 철거 참사를 계기로 경찰청이 시설 점거 농성의 대처를 강화할 계획을 세우자 반대하면서)

    “키코 등 환헤지 금융상품에 가입했던 중소기업의 위기는 환리스크 관리의 한계이고 실패 사례다. 중소기업들이 참여하는 풀링 시스템을 갖춰 기업 스스로 환위험을 관리할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2008/10/08,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의 코트라와 한국수출보험공사 국정감사에서)

    “일정 규모 이상 국가 가운데 지난 5년 동안 우리나라와 비교해 경제성장률이 높은 나라는 지구상에 한 곳도 없다.” (2008/05/26,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통합민주당 18대 총선 당선자 워크숍에서 전영기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노무현 정부의 무능력함을 주장하자) 

    “개성공단의 지속 여부는 남한의 필요에 따라 전적으로 이뤄진다. 개성공단이 중단되면 우리 기업의 막대한 손해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 한반도 평화도 후퇴한다.” (2006/11/09,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수도 이전은 눈앞에 닥친 현실이며 동시에 역사적 소명이다. 지적 나태나 능력 부족으로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지도자는 역사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는 사람이다.” (2004/10/18, 국회 건설교통위원회의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이명박 서울시장을 추궁하면서)

    “선관위의 활동 자제 권고가 있는 데다 선거를 앞두고 산악회가 사조직 정도로 비춰지고 있어 자진 해체하기로 했다. 순수한 산행 모임으로 애정도 있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운영위원회를 거쳐 결정했다.” (2003/12/17, 한겨레 기사에서 4년여 동안 운영해 왔던 ‘영우산악회’를 해체하는 이유로)

    “한 줄 시 쓰기가 이토록 어려움은/나의 삶이/진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시를 사랑함이/우리 삶을 사랑함이란 것을/알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는/진정/시를 사랑했다.” (1995/04/28, 자작시 ‘우리는 진정 시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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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의 댓글 2개

rlatnalss | (182.210.8.179)   2019-01-09 19:27:39
응원합니다..문재인대통령님...화이팅...화이팅.
문재인정부....짝짝짝
김수민 | (182.210.8.179)   2019-01-09 19:26:28
응원합니다..문재인대통령님...화이팅...화이팅.
문재인정부....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