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1천 명과 2천 명, 1천억 달러와 4억 달러. 

미국의 에너지회사 엔론과 삼성바이오로직스 얘기다. 직원 수와 매출은 이렇게 차이가 난다. 엔론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비교할 수 없는 초대형 기업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폐지 불가라는 '대마불사' 원칙이 위험하다

▲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 사장.


2001년 12월14일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NYSE)는 엔론의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한때 90달러도 넘었던 엔론의 주식은 휴지조각이 됐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보여준 원칙은 확고하다.

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절대적 원칙 앞에서 파장과 후폭풍은 단호하게 배제됐다.

엔론은 40여 개 국가에 2만1천여 명의 직원을 뒀던 미국의 에너지회사다. 매출 기준으로 미국 7위 기업이었지만 2001년 가을 회계장부를 조작해 이익을 부풀린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해 겨울 파산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고 한다. 금융당국의 준엄한 결정처분이다. 거래도 정지됐다.

그리고 상장폐지 여부도 심사한다.

분명히 위기가 맞는데 시장의 반응은 너무도 태평하다.

증권가에서 많은 보고서가 쏟아져 나왔지만 모두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상장폐지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시장 전문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투자증권은 “상장폐지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며 “두 말하면 입이 아프다”고까지 했다.

한국투자증권이 2016년 상장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대표 주관사라는 점에서 ‘팔은 안 쪽으로 굽는다’는 말이 떠오르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여유로움'이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무조건 상장폐지될 이유는 없다.

다만 상장폐지 가능성에 콧방귀를 뀌며 일축하는 지금의 분위기는 문제가 있다.

분식회계는 자본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다. 어찌 보면 경영진의 배임이나 횡령보다 더 무거운 범죄다. 개인이 아니라 기업 전체가 조직적으로 작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폐지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측의 근거를 살펴보면 사실 빈약하다. 투자자 보호 차원과 과거 사례에 비춰 상장폐지까지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른바 학습 효과다. ‘대마불사’를 몸소 겪었기 때문이다.

2015년 이후에만 대우조선해양, 한국항공우주산업 분식회계 사건이 터졌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은 대규모 분식회계와 전직 임원들의 횡령 혐의로 상장폐지 직전까지 몰렸지만 상장폐지는 피했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의 소액주주 비율이 전체의 37.8%로 인원 수로는 10만8천여 명에 이른다는 점에서 투자자 보호, 시장에 미칠 충격 등이 고려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소액주주도 8만 명에 이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가 도입된 2009년 이래 회계처리 위반으로 실질심사 대상이 됐던 코스피 상장회사 16곳은 모두 상장이 유지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자본잠식에 경영진의 횡령 혐의까지 불거졌던 대우조선해양과는 사정이 다르다. 실적이나 지속성 면에서 우려할 수준은 전혀 아니다.

그러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기준 위반이 상장 이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욱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야 할 필요성도 충분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1년 설립 이후 적자에 허덕였지만 상장 직전인 2015년 회계처리를 변경하면서 흑자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물론 상장 관련 규정이 그때 바뀌기는 했지만 분식회계의 목적이 상장이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바꿔 말하면 분식회계가 아니었으면 상장하지 못했을 기업이 상장했다는 얘기다.

분식회계의 배경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고개를 들고 있다.

증권선물위원회의 이번 결정을 놓고 앞길이 창창한 바이오산업에 찬물을 끼얹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각에서 나온다.

그러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사태는 바이오산업 얘기가 아니다. 분식회계를 저지른 한 기업의 얘기다.

한국거래소는 “시가총액이 크고 투자자가 많다는 점은 적격성 판단의 기준이 아니다”라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 기업의 계속성, 재무 안정성, 경영 투명성 등 '원칙'에 따라 판단할 뿐이라는 것이다.

전례가 없다는 사실은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원칙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