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2년 연속 세계 자동차 판매량 3위를 기록한 현대차그룹이 인도에서 판매량을 대폭 늘려 세계 자동차 판매 1위로 도약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현대차그룹은 지난해까지 2년 연속 세계 판매량 3위 기록했는데, 인도에서 판매량을 늘려 세계 자동차 판매 1위에 올라설 발판을 마련한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29일 현대차와 기아의 판매실적 자료를 종합하면, 두 회사는 지난해 중국에서 합산 32만5천 대를 판매하는 데 그치며 7년째 현지 판매 하락세를 이어갔다.
현대차·기아는 2016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179만2천 대를 팔아 6.4%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고고도미사일(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 정부의 한한령 등으로 시장 점유율이 2022년 1.3%(약 34만 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현대차는 2021년 베이징 1공장을 매각한 데 이어 올 1월 충칭 공장도 현지 업체에 매각하며 현지 사업장을 축소하고 있다. 중국 창저우 공장도 곧 매각할 계획을 갖고 있어, 기존 5개였던 현대차 중국 현지 공장은 2개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그러나 이같은 중국 사업 축소가 오히려 현대차그룹의 전체 세계 판매량 증가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이자,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에서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자국 전기차 브랜드가 급성장하면서 세계 판매량 1, 2위인 도요타그룹과 폭크스바겐그룹의 중국 판매량이 급격히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사상 처음 연간 세계 자동차 판매량 3위에 오른 현대차그룹은 지난해에도 730만4천 대를 판매해 도요타그룹(1123만3천 대), 폭스바겐그룹(924만 대)에 이어 3위를 지켰다.
세계 판매량 2위 폭스바겐그룹은 지난해 중국에서 전년보다 1.6% 증가한 323만여 대의 자동차를 판매하며 현지 자동차 판매 1위를 지켰다. 하지만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만 만들어 판매하는 BYD가 같은 기간 판매량을 45% 늘리며 302만4천 대로 폭스바겐그룹의 뒤를 바짝 추격했다. BYD의 지난해 중국 자동차 판매 순위도 3위에서 2위로 한계단 올랐다.
도요타그룹은 지난해 중국에서 전년보다 1.7% 줄어든 190만여 대의 자동차를 판매했다. 폭스바겐그룹과 도요타그룹은 2022년까지 중국에서 자동차 판매 '톱2'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
하지만 지난해 4분기 중국 자동차 판매량만 따로 보면 BYD가 77만8307대로 1위, 폭스바겐그룹이 66만6892대로 2위, 토요타그룹이 45만4428대로 3위를 기록했다.
중국 자동차 브랜드들이 내수 시장에서 급성장하면서 2019년만 해도 34.1%에 그쳤던 중국 토종 브랜드의 자국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50%를 넘어섰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2026년 폭스바겐그룹과 토요타그룹의 중국 판매량은 각각 170만 대, 120만 대로 2022년과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급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세계 자동차 판매량에서 중국 판매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대차그룹이 약 5%에 그치는 반면 도요타그룹은 약 17%, 폭스바겐그룹은 약 35%에 달한다.
토종 전기차 업체들이 무섭게 성장하는 가운데 중국 시장에서 먼저 매를 맞고 인도 등 다른 시장으로 눈을 돌린 현대차그룹은 도요타나 폭스바겐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국에서 잃을 게 없는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현지 공장 가동이 2년째 중단된 러시아에선 사업을 철수키로 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말 2년 내 재매수할 수 있는 바이백 옵션을 조건으로 달고 2010년 가동을 시작한 연간 24만 대 생산 규모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과 2020년 인수한 10만 대 규모의 제너럴모터스(GM)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현지 업체에 매각키로 했다.
전쟁에 따른 서방국가의 경제 제재 여파로 도요타와 폭스바겐을 포함한 대부분 세계 완성차 업체들은 현대차에 앞서 러시아에서 철수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과 유럽에 이어 세 번째(한국 제외)로 많은 차를 팔고 있는 인도에서 판매량을 더 늘린다면 도요타와 폭스바겐을 빠르게 추격할 수 있게 된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인도에서 합산 108만4878대를 생산했다. 이에 따라 인도는 현대차그룹의 세계 최대 생산기지가 됐다.
현대차그룹은 이에 더해 인도에서 생산능력과 전기차 생태계 확장을 위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현대차 인도법인은 지난해 5월 현대차 첸나이 공장이 위치한 타밀나두주와 앞으로 10년 동안 2천억 루피(약 3조2500억 원)를 투자하는 협약을 맺고, 연산 17만8천 개 규모의 배터리팩 조립공장과 100여곳의 전기차 충전소 등을 짓기로 했다. 또 인도 첸나이 공장의 자동차 생산능력을 현재 75만 대에서 85만 대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인수한 GM의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탈레가온 공장을 내년부터 가동할 계획이다. GM 탈레가온 공장은 재정비를 거치면 생산능력이 기존 13만 대에서 최대 30만 대 이상으로 늘어난다.
기아는 지난해까지 2년 연속 30만 대 생산을 돌파한 인도 아난타푸르 공장 생산능력을 40만 대로 늘리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와 기아는 인도에서 현재 연간 합산 약 110만 대인 생산능력을 2~3년 뒤엔 155만 대 이상으로 늘릴 수 있다.
이는 지난해 인도에서 41.6%라는 압도적 점유율로 현지 판매 1위를 차지한 마루티스즈키의 2023년 연간 판매량(170만7668대)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인도에서 합산 58만7111대의 자동차를 판매하며 합산 점유율 20.9%로, 13.4%를 기록한 인도 타타자동차를 제치고 여유있는 2위를 기록했다.
한편 인도는 지난 2022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에서 세 번째로 자동차 판매량이 많은 시장에 올랐지만, 인도의 가구당 자동차 보유율은 2021년 기준 8.5%에 그쳤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국가 1인당 GDP가 2500달러에서 1만 달러에 이를 때까지 자동차 구매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지난해 인도의 1인당 GDP는 2600달러 수준으로, 앞으로 경제성장과 함께 자동차 구매량이 빠르게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