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K하이닉스의 미국 ADR 상장은 투자자들이 인공지능 및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지표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시됐다. SK하이닉스 인공지능 메모리반도체 전시장 홍보용 사진. < SK하이닉스 > |
[비즈니스포스트] SK하이닉스의 주식예탁증서(ADR) 미국 상장이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의 ‘버블 붕괴’ 신호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증시에서 주요 기술주와 반도체주에 투자심리가 빠르게 악화할 조짐도 엿보이는 만큼 SK하이닉스의 성공적 상장 여부가 분명한 가늠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SK하이닉스 미국 상장 앞두고 시장에서 기대와 우려 교차
5일(현지시각) 경제전문지 포춘은 “인공지능 열풍을 등에 업고 독보적 주가 상승세를 보여 온 SK하이닉스가 미국 증시에 상장한다”며 “중요한 시장 지표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SK하이닉스는 현지시각 오는 10일 미국 나스닥에 주식예탁증서를 상장해 290억 달러(약 44조4천억 원) 상당의 자금을 조달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주식예탁증서는 해외 금융기관이 주식을 담보로 발행한 증권을 의미한다. SK하이닉스와 같은 기업이 우회적으로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포춘은 SK하이닉스 주가가 한국 증시에서 최근 20% 넘는 하락세를 보이며 조정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1년 전과 비교하면 약 770% 상승했다는 데 주목했다.
미국 투자자들이 주식예탁증서를 통해 접근성을 높인 SK하이닉스에 더 활발히 투자할 수 있게 된다면 수요가 높아져 주가가 더 상승할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춘은 그동안 SK하이닉스 주가 상승을 주도했던 인공지능 열풍에 투자심리가 다소 불안해지고 있어 시장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SK하이닉스 실적과 주가는 주로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를 설립하는 빅테크 기업들의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수요 급증에 힘입어 강세를 보여 왔다.
하지만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투자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주식이나 채권을 새로 발행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지속가능성을 두고 불확실성이 떠오르고 있다.
포춘은 “빅테크 기업들이 부채로 데이터센터 투자 자금을 조달하는 구조가 계속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온다”며 결국 설비 투자 속도가 둔화하면 반도체 호황기도 끝을 맺을 가능성이 있다고 바라봤다.
| ▲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연합뉴스> |
◆ ‘AI 버블’ 붕괴에 증권가 우려 확산, SK하이닉스 상장 성과에 투자자 촉각
포춘은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 잦아들고 유가도 점차 안정화되며 인공지능 열풍도 한층 더 힘을 받을 수 있다는 시장의 기대감이 커져 왔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최근 증시는 이와 반대되는 흐름을 보였다. 미국 증시가 전반적으로 약세에 진입했고 반도체주 및 기술주는 특히 부진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투자기관 캐피털이코노믹스는 포춘에 “코스피 지수와 글로벌 주요 증시의 동반 하락은 과거 닷컴버블이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롯한 약세장에서만 나타났던 현상”이라며 “시장에 지나친 거품이 형성되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을 전했다.
포춘은 199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닷컴버블 사태와 달리 주요 빅테크와 반도체 기업 주가는 탄탄한 실적을 바탕에 두고 상승해 왔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상장사들의 실적 증가세가 시장의 기대만큼 장기간 강력하게 이어질 수 있을지 불확실해지면서 증시에 먹구름이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포춘은 결국 SK하이닉스의 미국 상장 뒤 성과가 시장 전반에 중요한 시험대라고 분석했다.
주식예탁증서 가격이 상승하면 인공지능 열풍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에 다시금 확신을 심어줄 수 있지만 반대로 하락한다면 버블 붕괴를 예고하는 신호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기관 시노버스트러스트의 다니엘 모건 매니저는 블룸버그에 “반도체 주식에 투자 열기가 높아져 SK하이닉스의 미국 상장에 좋은 시점”이라며 “다만 실제 거래가 시작된 이후 시장의 반응을 살펴 매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전했다.
| ▲ SK하이닉스의 미국 나스닥 ADR 상장은 인공지능과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는 가늠자로 꼽힌다. <그래픽 챗GPT 제작> |
◆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대규모 투자도 불안 요소, ‘슈퍼사이클’ 의문 키워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한국에서 발표한 대규모 반도체 산업단지 구축 계획이 미국 주식예탁증서 상장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고개를 든다.
호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메모리반도체 시장 특성상 무리한 생산 확대는 공급 과잉으로 이어져 업황 악화 및 관련 기업들의 실적과 주가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6일 논평을 내고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초대형 반도체 공장 건설 프로젝트는 한국 경제에 긍정적”이라며 “하지만 산업 전체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메모리반도체 생산량이 단기간에 크게 늘어 공급 부족이 빠르게 해소된다면 호황기가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시장의 기대를 저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애플과 메타 등 대형 메모리반도체 고객사들의 수요가 위축될 조짐이 보이는 점도 업황 전망에 부정적이라고 전했다.
애플은 최근 메모리반도체 원가 상승을 이유로 대부분의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메타는 AI 데이터센터 일부를 자체 활용하는 대신 외부 고객사에 임대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스(CXMT)를 비롯한 중국 메모리반도체 기업의 공격적 증설 계획도 반도체 업황 전반에 리스크로 지목됐다.
블룸버그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글로벌 메모리 시장 과점 구조가 생각보다 튼튼하지 않을 수 있다며 수요와 공급 구조가 빠르게 변화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은 모두 인공지능 분야의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이전과 같은 불황기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슈퍼사이클’을 기대하고 투자를 늘리고 있다.
다만 블룸버그는 메모리반도체 기업들의 급격한 주가 하락과 수요 및 공급 상황의 변동성을 고려할 때 슈퍼사이클이라는 개념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결국 SK하이닉스의 미국 주식예탁증서 상장은 인공지능과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미래를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시선을 분명하게 파악하는 계기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블룸버그는 “메모리반도체 산업은 공급과 수요의 균형이 복잡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조차 변화를 예측하기 어렵다”며 “그동안 주가 상승을 주도해 온 낙관적 투자심리는 언제든 반대로 돌아설 수 있다”고 전했다. 김용원 기자